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423
– 424화 –
“… 나 이제 다 내려놓으려고.”
그 순간 시간이 멈췄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가 단 하나도 남지 않은 듯.
꼭 죽음과도 같은 고요가 집 안에 내려앉기도 잠시.
창수는 애써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 그래. 쉬자. 너한테는 휴식이 필요해. 힘들 때는 쉬어야 돼. 나도 예전에 과로 때문에 요양을 했었잖아? 네가 어떤 기분인지 잘 알아. 많이 힘들었지?”
경쟁자를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기 위한 전략적 위로가 아닌, 제 혈족을 챙기려는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위로였다.
하지만 이미 절벽 앞에 몰린 사람 앞에서는 그 빛이 바랬던 걸까? 예라는 어딘가 공허한 표정으로 창수를 쳐다봤다.
“잘 모르겠어… 그냥… 가끔은… 병수가 왜 그렇게 엇나갔는지 알 것 같아. 기억나? 왜… 병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었을 때.”
소위 [그 날]로 불리며,
대영그룹 내에서 금기시되어,
절대로 꺼내서는 안 되는 사건.
어느 화창한 날.
강남 압구정동에서 백주대낮에 마병수가 탄 스포츠카가 가로수를 들이받은 일이 있었다. 다행히 차량 운전자, 곧 마병수를 제외한 피해자는 없었지만…
마병수는 그 사건으로 꽤 큰 부상을 입게 되고, 추후 약 3달 정도를 대영 병원에 거의 감금되다시피 지냈다.
사실 이 사건은 세간에 마병수가 음주운전을 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소문이 퍼졌었으나… 실상은 조금 달랐다.
마광위의 압박에 이기지 못한 마병수가,
탈출을 감행해 자살을 기도한 거였다.
이후 마병수는 병원에서 발광하며 마광위에게 저주를 내뱉었고, 이후 마광위 역시 아버지가 아닌 총수로서 ‘전략적 의사 결정’을 함으로써… 마병수는 사실상 호적에서 파여 자타공인 대영그룹의 미친개가 됐다.
그리고 마병수가 그런 선택을 한 것 역시,
멘탈이 무너져내렸기에 생긴 일이었다.
지금의 마예라처럼 말이다.
물론, 둘에게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긴 했다.
마병수는 자신에게 주어진 [악마의 재능]이 마광위의 눈에 발각되어 가혹한 트레이닝 과정에서 마음이 무너졌지만, 마예라는 경영에 대한 욕심은 있었던 반면 추악한 [대영의 법칙]을 목격하며 마음에 독이 섞여버린 케이스였다.
이렇듯 재벌 3세들에겐 특히나 이런저런 문제가 많이 터지는 편이었다.
소위 한강의 기적을 이룬 1세대 경영자들은 모두 그 능력과 수완이 뛰어났지만, 핏줄을 타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그 재능이 점점 더 옅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본인이 여태까지 쌓은 성과를 자식에게 물려주려 하다 보니, 자식들에게 가혹한 훈련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망가진 수레를 끈으로 엮어 강제로 끌고 가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부작용으로 실제 많은 재벌가의 자식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그저 재벌들이 기를 쓰고 막으려 했기에 언론 노출이 잘 안 되었을 뿐.
“… 병수 얘기는 하지 말자. 다 지난 일이잖아. 그리고 예라 너는 병수랑은 달라. 네가 제일 잘 알잖아.”
“… 그래. 나도 다른 줄 알았지. 한 때는.”
그 말에 창수는 덜컥 겁이 났다.
보통 이렇게 극한으로 몰린 사람은 크게 4가지 선택 중 하나를 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을 피해 은둔하거나.
삶을 끊으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아니면 마음의 독을 마셔 괴물이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모두 이겨내고 건강해지거나.
현재 예라의 상태는 첫 번째. 하지만 머지않아 다른 끔찍한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기에, 창수는 본인이 무언가를 해야 함을 느꼈다.
“… 예라야.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 기억나? 이 세상이 모두 무너져 내려도 핏줄만은 남는다고. 나는 너 절대 포기 안 한다. 병수처럼 네가 먼저 끊기 전에는 나 너 절대 안 놓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할게.”
“오빠가 뭘 해줄 수 있는데? 오빠나 나나 둘 다 아버지 아래에 노예처럼 묶인 신세잖아. 둘 다 똑같잖아.”
“… 내가 [대영의 법칙]을 바꾸려고 노력해 볼게. 지금 당장은 아버지께 거스를 수 없지만, 내 대에서 바꿀게. 약속할게. 그러니까 우리 무서운 생각은 하지 말자. 제발.”
창수는 애원하듯 말했다.
살면서 가져보지 못한 게 거의 없는 사람의 애원.
그런 창수의 진심이 조금이나마 빛을 발한 걸까? 예라의 눈동자에 아주 조금은 희망의 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아니. 같이 바꿔. 나도 노력할 거야. 대영이 더는 타락하지 않게. 이제 더는 타협하지 않게끔. 그러니까, 오빠도 나를 도와줘. 아버지께 저항하기 위해서.”
“… 그래. 알겠어. 하지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 대영은 아버지의 것이니까. 일단 너랑 나랑 승계 전쟁을 하는 척 서로의 세력을 만들고, 조금씩 시간을 들여서 바꿔나가자.”
“얼마나?”
“20년. 아니, 10년이면 충분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예라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와 동시에 죽어있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고, 과거와는 약간 다른 색깔의 안광이 서리기 시작했다.
마광위의 안광이 귀신같은 탁한 푸른색이었다면, 마예라의 눈에 방금 서린 안광은 청명한 푸른색이었다. 마치 비 온 뒤 활짝 갠 하늘처럼 말이다.
“알겠어. 대신 그 약속 지켜야 할 거야.”
그 말에 창수 역시 묘-한 안광을 뿜어내며 대답했다.
탁한 것 같으면서도, 탁하지 않은 것 같은…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채도의 안광을 말이다.
“그래.”
그렇게 마창수의 정성 어린 노력으로,
마예라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여전히 톡- 치면 무너질 듯 가냘파 보였기에, 아직은 어떻게 될지 시간을 더 들여봐야 하리라.
본디 사람은 입으로는 뭐든 될 수 있지만,
그 행동은 별개였으니 말이다.
…
비슷한 시각.
서울 이태원, 승사원.
마광위 앞에 피승원이 꿇어앉아 보고를 이어나갔다.
– 현재 마예라 부문장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내부 분위기 쇄신 중 과격한 방법을 사용한 것을 목격한 뒤, 주기적인 두통과 현기증을 호소했습니다. 현재 그 증상이 심화되어 자택에서 요양 중이십니다. 또한, 마약성 마취제인 프로포폴 사용이 확인되었습니다.
– 마창수 상무는 그걸 확인한 즉시 마예라 부문장에게 찾아갔으며, 매우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동시에 음지 전쟁에 관련된 행동을 모두 정지하라 명하셨습니다.
그 말에 마광위가 웃음을 터트렸다.
기쁨 따위는 단 한 점도 섞이지 않은 웃음이 한참이나 이어졌을까? 마광위는 이내 섬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예라 그 녀석은 원래 마음이 약했지. 어렸을 적부터 벌레 한 마리 못 죽여서, 울기 일쑤였어. 그래도 조금 자라면 본인의 위치를 이해할 줄 알았거늘… 쯧.”
마광위는 그렇게 말하고는,
평소와 달리 연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촤아악- 화르륵- 스읍- 파스스- 후우-
“근데 그걸 왜 이제야 말했느냐? 사건이 터지고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것도 내 딸에 대한 것을?”
마광위는 감정 없이 차갑게 물었다.
피승원은 그의 저런 행동들이 사람을 내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본인의 생각을 아무런 가감 없이 내뱉었다.
그는 언제나 마광위에게 이익이 되게끔 움직일 뿐.
그로 인해 내쳐진다고 한들 후회 따윈 없었기에.
“회장님께서 그룹 분위기 쇄신 및 본격적인 전쟁에 앞서 큰일을 정비하고 계셨기에 방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한, 한창 성장 중인 경영자에게 저런 정신적인 충격 내지는 징크스가 생기는 일은 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프로포폴 또한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자주 사용하는 약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육체적인 중독성 또한 없어 가벼운 일탈 수준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마창수 상무 역시 비슷한 일탈을 간혹 즐기셨고요.”
피승원은 딱 거기까지 말하고는,
약 3초 정도 침묵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 그 외에도 마병수 도련님의 케이스를 생각했을 때. 지금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오히려 회장님께 보고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게 마예라 부문장의 정신 건강에도 좋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마병수.
대영그룹의 역린.
허락 없이 이름을 언급하는 순간,
높은 확률로 목이 잘린다는 것을 앎에도…
피승원은 제 생각을 전하기 위해 그걸 언급했다.
그게 충직한 신하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거짓은 옳지 않다고 느꼈기에.
스읍- 파스스스- 후우-
습- 파스스- 후우우-
마치 죽음의 순간 앞에서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은 착각과 더불어, 심장을 옥죄는 것만 같은 침묵 속에서 담배 타들어 가는 소리만 이어지길 약 30초. 마광위가 입을 열었다.
“… 잘했다.”
반어법이나 비꼬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담백한 칭찬이었다.
“독자적인 판단으로 월권 행위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게 회장님께 가장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과거 같았다면, 마광위 역시 망가진 마예라를 보며 혀를 찬 뒤 ‘망가졌군, 쓰레기가 됐어’라며 가차 없이 제 새끼를 버렸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이미 자식 한 명을 잃었다.
세 남매 중 가장 큰 재능을 가졌었던,
마병수라는 존재를 말이다.
그러니 이제 그에게 남은 건 단 둘.
FM 성향이 짙어 임기응변이 부족한 첫째와,
몽상가 기질로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둘째다.
만약 저 둘 중 한 명이 탈락한다면, 대영그룹의 승계는 자동으로 마지막 남은 단 한 명으로 좁혀진다. 마광위는 되도록 그런 상황은 막고 싶었다. 아버지로서도, 총수로서도.
그런 의미에서 이번 창수의 행동은 꽤 특이했다.
가만히 내버려 두거나, 더러운 수를 써서 트라우마를 심어주면 본인이 왕좌를 차지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경영인이 아닌 가족으로써 마예라를 대했다.
과거였다면 마광위는 그런 창수를 보며,
따뜻함 심장은 독이 된다며 나무랐겠지만,
이번만큼은 모르는 척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날 오후.
승사원에는 늙은 폭군이 줄담배를 태웠고,
충성스러운 신하는 그걸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 앞으로 음지 전략은 조금 더 은밀하게 움직여. 적어도 예라에게는 그 어떠한 모습도 보여주지 마라. 아직 예라에게는 더러운 수를 보여주기가 너무 일렀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녀석 역시 이런 방법이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아마 제 손으로 타협하기 시작할 테지. 알겠느냐?”
짙은 담배 연기 사이로 충신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그 외에 여쭙습니다. 마예라 부문장께는 어떻게 얘기할까요?”
“하지 마라. 아무것도. 적어도 지금은 고통에 훌쩍이게 내버려 둬. 눈물은 가끔 상처를 씻어주기도 하니까.”
“알겠습니다.”
…
그렇게 마예라가 다시 한 번 홀로서기를 시작해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나 약의 도움 없이 곤히 잠들었고,
동시에 마창수가 새로운 다음으로 대영그룹에 귀환했으며, 마광위 역시 한발 뒤로 물러나기로 마음먹었을 무렵.
D-Star 참관 중인 준성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그 송신인은 대영 내부에 심어놨던 정보원이었다.
비록 마광위가 직접 칼을 빼 들어 불특정 다수를 정리했지만, 아무래도 준성과의 연관성 자체가 너무 옅은 사람들이 여럿 포진해 100% 말살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일까?
그 무차별한 폭격 속에서도 준성이 가진 몇몇 정보원은 살아남았고, 이들은 언제나 그렇듯 중요한 정보를 가져다줬다.
– (발신 표시 제한)
– 마예라 팀장 2주째 잠적. 마창수 상무가 비서실에 들이닥쳐 마예라 전담 팀장을 무차별 폭행. 이후 마예라의 자택으로 이동. 피승원 비서실장은 승사원으로 이동 추정. 대금은 새벽 3시, 마포대교 아래 벤치. 과자 박스. 현찰.
준성은 그걸 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 오호라, 일이 재미있게 흘러가는군.’
이후 여태까지 대영과 있었던 일을 통해 마광위와 피승원이 취했을 법한 행동을 역산.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마예라가 저번에 직접 총대를 멨던 게 아마 [카페인 중독]건을 터트리기 위해 식약청장을 회유했던 거였나. 그리고 그 실패를 바탕으로 피승원의 사형집행을 보며 정신적인 타격을 입은 모양이군. 내부로부터 붕괴하고 있겠어.’
준성은 딱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피식 미소를 지었다.
굉장히 자주 언급하지만, 경영자 역시 사람이다.
그렇기에 전략에도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었고, 더 나아가 신념과 현실이라는 이름 아래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하는 일’과 ‘그럼에도 타협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존재했다.
이는 준성이 재민과 민우 그리고 태희와 진택에게는 음지 전략에 대한 것을 굳이 숨기지 않지만, 유독 권영은 알지 못하게끔 숨기는 것 역시 어느 정도 일맥상통했다.
근데 마광위 입장에서는 대영그룹의 승계를 위해 티끌 하나 없는 완벽한 경영자만을 원했기에… ‘지배자의 덕목’이라는 포장 아래 마예라에게 독과도 같은 일을 자주 보여줬을 테고, 그걸 이기지 못해 결딴이 난 것이리라.
뭐, 솔직히 말해서 비극이긴 했지만…
준성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적의 비극은 나의 희극일지니.’
싸움에 있어 적의 약점을 공략은 기본 전술이다.
그러니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 뒀다가, 추후 대영의 의표를 찌르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 일정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유니드어스 부스에서 신작 및 새로운 플랫폼을 발표하겠습니다. 대기하셨던 관람객 여러분들께서는 지금 이동해 주세요.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지금부터 유니드어스 부스에서 … … …
지금 당장은 [네스트], [디움], [유니드어스]를 엮은 콤비네이션을 완성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준성은 전략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보고자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