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32
132
132화 가장 가까이에서 (1)
스륵-
문이 열리자,
나직이 들리는 샤미센 소리와 은은한 빛을 피워 내는 전등.
일본 사극 안에서 나올 법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무래도 일식집이라는 컨셉에 충실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걸음을 옮기자.
“어서 오십시오.”
곧 단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성이 나를 맞이했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인 뒤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김준영이라는 이름으로 예약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네, 이쪽으로 오시죠.”
나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러자 곧 원목으로 만들어진 기다란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 한쪽을 통째로 창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라, 안쪽에 만들어 놓은 일본식 정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얼어붙은 폭포와 흔들리는 풍경(風磬).
소복하게 쌓인 눈 위에는 바람만이 가끔 머물다 가는 그 모습을, 나는 홀린 듯이 바라보며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렇게 내가 창밖 풍경을 보는 사이.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목적지에 다다른 듯 직원이 멈춰 섰다. 그리곤 내게 양해를 구한 뒤.
“실례하겠습니다.”
복도에 나 있는 문들 중 하나를 열었다.
그러자 방 안에 있던 두 명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 중 한 사내가 내게 다가왔다.
그 사람은 바로.
“아, 김 대표님 오셨습니까? 이쪽으로 앉으시죠.”
TK 텔레콤의 서민영 팀장이었다.
반가운 표정으로 내게 다가온 서 팀장이 내게 자리를 권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중년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낯선 얼굴. 하지만 사전에 서민영에게 상사와 같이 나올 것이란 언질을 받았었다.
‘아마 저 사내가 서민영의 상사겠지.’
나는 그에게 살짝 목례를 한 뒤, 서민영이 권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이쪽은 저희 콘텐츠 사업부의 기주석 부장님, 그리고 이쪽은 소라게 아카데미의 대표이신 김준영 대표님이십니다.”
서민영이 나와 사내에게 서로를 소개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TK 텔레콤 콘텐츠 사업부 부장 기주석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소라게 아카데미를 맡고 있는 김준영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서로 간의 인사가 오간 뒤.
“자 그럼 식사 먼저 할까요?”
김주석 부장이 입을 열었다.
나는 음식들이 세팅되어 있는 테이블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어떻게, 식사는 입에 맞으신가요?”
김주석 부장이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오랜만에 만족할 만한 식사네요.”
그러자 김주석 부장이 만면에 미소를 띠운다.
“다행이네요. 혹시나 마음에 안 드시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그리곤 내게 술을 한잔 권한다.
“자 그럼 이제 슬슬 중요한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이때쯤 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엊그제 서민영 팀장에게 연락이 오는 순간, 내가 저번에 했던 제안을 TK측에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긴 했지만, 실무자인 서 팀장 말고 부장이 같이 나온 이상 긴장해야 했다.
아무리 저 사람이 일식을 아무리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그거 하나 먹으러 여기까지 온 건 아닐 테니까.
‘대기업 부장쯤 되면 웃으면서 사람 병신 만들기 십상이지.’
그러니 혹시라도 약점을 보였다가는 ‘아차’하는 순간, 테이블 위에 있는 도미처럼 산 채로 회쳐질 게 분명했다.
나는 풀어지려는 정신을 바짝 당기며 허리를 곧게 폈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그러시죠.”
그러자 기 부장이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전에 서 과장, 아니 서 팀장에게서 대표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지 뭡니까. 아니 처음에는 솔직히 젊은 분의 패기라고만 생각했거든요. 뭐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안 그래 서 팀장?
기 부장의 시선을 받은 서 팀장이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뭔가 걸리는 게 있다는 표정.
하지만 기 부장은 서민영 팀장의 대답에 만족하는 듯, 짙은 웃음을 띠우며 입을 열 뿐이었다.
“그런데…이야. 모두의 예상의 뒤엎으셨어요. 아니 2주도 안 되는 시간이었을 텐데 어떻게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시험을 다 케어해 주셨는지…정말 방법이 있으면 배우고 싶을 정돕니다. 진짜.
그리곤 눈을 잘게 뜨며 나를 바라본다.
전형적인 억양법.
도대체 무슨 말을 꺼내고 싶기에 이렇게 뜸을 들이나 싶었다.
“그런데…아직 마음에 걸리는 게 좀…있긴 하거든요.”
어깨를 으쓱하는 그.
나는 그의 모습이 연극적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나는 마치 장단을 맞추는 고수(鼓手)처럼.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적절한 타이밍에 추임새를 넣었다.
그러자.
“그게…아직 그 100명의 사람들이 1차 시험만 합격했다라는 게 아무래도 좀 걸려서….”
그가 주절주절 말을 내뱉었다.
“아, 그래도 그 성과는 익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뭐랄까. 저희가 이번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나중에 뒷말이 나올 일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
보아하니 기 부장은 내가 100명의 공시생들을 통해 만들어 놓은 성과에 딴지를 걸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엊그제 서민영 팀장과 연락을 했을 때만 하더라도 분명 긍정적인 대답. 그리고 윗선에서도 허락했다는 말이 나왔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단단하게 단도리를 칠 테니까요.”
기 부장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뭐지?
나는 슬쩍 서민영 팀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슬쩍 한숨을 내쉬는 서민영 팀장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사고치는 큰 형을 바라보는 동생의 표정.
흠…서 팀장의 얼굴을 보니 뭔지 알 것 같았다.
쓸데없이 거는 딴지.
뒤이은 책임 발언.
그리고 부하 직원과의 트러블까지.
아무래도 기 부장은 서민정 팀장의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은 것 같았다.
어쩐지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내게 의문을 표하나 했다.
하긴 서민영 팀장의 이제 30살 정도 다른 회사였으면 이제 막 대리를 달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서 팀장의 현재 직급은 과장. 기 부장으로서는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가 부담스러울 만도 했다.
‘그걸 저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바보짓이지만.’
이쯤 되니 아까 기 부장을 상대로 긴장했던 것이 아까웠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시죠. 기 부장님이 걱정하시는 일이 벌어질 만한 점수대가 아니니까요.”
말마따나 내가 가르친 100명의 공시생들의 점수는 그들이 면접 자리에서 발가벗고 춤을 추지 않는 이상 합격할 만한 점수였다.
그러자 기부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뭐, 그렇다면야 뭐 믿어야겠죠.
그리곤.
“아, 그건 그렇고 강사분들은 다 준비가 된 건가요? 아무래도 공무원 시험 같은 경우엔 준비해야 하는 교과가 많다고 들었는데요.”
순식간에 주제를 바꿔 내게 묻는다.
음…보아하니 어떻게든 건수를 잡아 내 상투를 틀어잡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의 말처럼 메이저한 과목들이야 강의를 할 수 있는 강사들이 생각보다 많지만, 마이너한 과목들은 그 강의를 듣는 사람도 강의할 수 있는 사람도 생각보다 적긴 했다.
하지만.
‘적다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지.‘
왜 군대에 가면 정말 기상천외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듯이, 온라인 강사들, 그리고 지망생들 중에도 별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거기다 소라게 아카데미를 시작할 때와는 달리, 요즘엔 내가 공시를 준비한다는 이야기가 퍼지자마자 강사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소라게 아카데미를 런칭하기 전에 섭외 메일을 넣었던 ‘별이’라는 스트리머 같은 경우.
‘안녕하세요! 김 대표님 별이…아, 아니 김현숙이라고 합니다!’
소라게 아카데미의 공지 사항에 100인 합격 이슈가 뜨자마자 내게 찾아왔었다.
그리곤 바로 내게.
‘강의가 하고 싶어요. 김 대표님….’
이라면서 소라게 아카데미의 입사를 요청했다.
내가 알기로 별이, 아니 김현숙 같은 경우 제법 이름이 있는 공부 방송 스트리머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 의외였다.
아무래도 스트리머로서 입지도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 밑으로 들어가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으니까.
때문에 처음에는 그녀가 뭔가 야료를 부리려는 것은 아닌 가 의심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매운 떡볶이 먹는 것도 이제 너무 질려서요. 그리고 강의다운 강의도 하고 싶고…그리고 수익도 많이 줄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기존의 공부 방송들 같은 경우 콘텐츠와 접근성으로 시청자들에게 어필했었는데. 소라게 아카데미가 나온 후로는 그 장점이 퇴색했을 테니, 그만큼 수익도 예전과 많은 차이가 났을 것이다.
덕분에 요즘에는 강사를 구하는 게 아니라 강사를 선택하는 게 더 큰 일이었다.
‘괜찮은 사람을 뽑았다 싶으면 또 괜찮은 사람이 보였으니까.’
그렇게 내가 잠시 강사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혹시 힘드실 것 같으면, 제가 추천해 드릴 수도 있는데…저희가 그동안 컨택한 선생님들도 제법 되니까요. 어떠신가요?”
기 부장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계속해서 나를 찔러 보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능력 있는 강사분들이 이번에 많이 지원해 주셔서요.”
내심 TK쪽에서 섭외했다는 강사들이 궁금하긴 했지만, 단박에 거절해 버렸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칼은 아무리 날카롭다고 하더라도 사절이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날카로운 칼일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에이, 그래도 저희가 섭외한 분들은 정말 능력이 뛰어나신 분들이라니까요. 한번 보시기라도 하시죠.”
내 말을 들은 기 부장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쯤 되니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실 TK측과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사측과의 관계가 중요한 만큼 웬만하면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기 부장의 태도는 도저히 파트너로도, TK라는 대기업 부장의 모습으로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부장 자리에까지 올라간 것인지 궁금해질 지경.
‘이러니 만년 꼴찌 소리나 듣지.’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 부장님.”
그러자.
“네. 대표님.”
혼자 주절주절 말을 내뱉던 기 부장이 살짝 딱딱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저는 지금 부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제가 TK측의 사업에 참여하지 않길 바라시는 겁니까? 그런 거라면 바로 말씀해 주시죠. 저도, 그리고 기 부장님도 시간이 넉넉한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순간, 내 말을 들은 기 부장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리고 곧 얼굴을 붉히며 숨을 몰아쉰다.
보아하니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는 모습.
당황과 분기로 얼룩진 얼굴이었다.
하긴 대기업 부장님께서 이런 말을 어디서 들어봤겠어.
그동안 굽실거리는 사람들만 봐 왔겠지.
하지만.
“흠흠…아, 설마 저희가 그럴 리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저는 약간 걱정이 되는 걸 말씀드린 거죠. 음 보아하니 다 괜찮은 것 같으니 예정대로 사업을 진행해도 될 것 같습니다.
현재 나와 TK측의 사업은 이유야 TK측에서 먼저 내게 컨택을 해 온 사업.
그가 비록 콘텐츠 사업부의 부장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결재가 올라간 이상 이제 와서 사업을 뒤집기란 힘든 법이었다.
그러니 방금 전 그의 말은 사실상의 GG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실무자인 서 팀장이란 나누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서 팀장! 그럼 대표님 잘 모시고! 나는 먼저 들어가 볼게.”
말을 마친 기 부장이 도망치듯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는 떠나가는 기 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고생 많으시겠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자 그럼 본격적인 계약 조건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TK측에서 제시한 계약 조건은 상당히 괜찮았다.
마케팅과 방송 관리에 들어가는 돈은 전적으로 TK측에서 부담. 시청률 대비 급여를 소라게 아카데미로 일괄 지급한다는 것을 주요 골자로, 전적으로 지원하겠다던 TK측의 의도가 돋보이는 계약 조건이었으니까.
그렇게 대략적인 조율이 끝나자.
“아, 그리고 대표님 런칭은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내년 1월쯤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괜찮으시죠?”
서민영 팀장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바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내년은 너무 늦습니다.”
그러자 서민영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 저번에 말씀 드렸다시피 내년 런칭이 가장 현실적이지 않을까요? 저희 회사뿐 아니라 소라게 아카데미 쪽에서도 준비해야 할 일이 많을 테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서민영의 말을 따라 넉넉하게 시간을 가지고 일을 진행하는 것이 맞았다.
아무래도 강사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만큼 강사들이 방송을 할 스튜디오도 확충해야만 하고, 강사들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도 필요할 테니까.
그러나.
‘고르기아스의 매듭’
목표를 정한 이상 한시라도 빨리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싶었다.
거기다 이제 곧 수능, 그러니 인강 채널 런칭이 제대로 된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런칭 일을 11월 15일 수능 전후로 하는 것이 좋았다.
더군다나.
‘공시생들도 대부분 연말에 공부를 시작하니까.’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희는 문제없으니까. 올해 수능 전후로 시간을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TK측은 불가하신가요?”
그러자.
“네? 수능이라면 이제 2주도 안 남지 않았나요? 대표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무래도 그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한 달은 걸리는 일이라.”
서민영 팀장이 도저히 불가능 한 일이라는 듯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럼 잘됐네요. 그럼 늦지 않게 준비해 주십시오.”
나는 그의 말이 반가울 뿐이었다.
“아니…대표님? 휴…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런칭을 위해서는 적어도 4주 정도는 필요합니다.”
“네. 제대로 들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4주 뒤 그때 가능하신 거죠? 그럼 그때 하면 되겠네요. 런칭.”
그러자 서 팀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왜 방금 전엔 수능 전후로 런칭하자고 하신 건가요? 설마 착각하신 건가요?”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착각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단지…”
“…?”
“올해 수능은 4주 후에 있을 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