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96
95화 – 권능 대 권능
“여기가 어디지?”
뷔네스는 새카만 공간 속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위도 아래도 앞도 옆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르고스. 모드 체인지, 별.”
백 개의 눈을 가진 배틀 슈트, 아르고스가 전방위 파괴를 위한 모드로 변화했다.
360도 전방위를 향해 겨눠진 아르고스의 눈이 일제히 파괴의 섬광을 내쏘았다.
푸화악!
어둠을 살라 먹으며 백 개의 섬광이 치솟았다. 뷔네스는 그 틈을 타 자신이 있는 공간을 살폈다.
하지만 섬광이 가시자 또다시 어둠이 사방을 집어삼켰다.
“여긴 도대체 어디란 말이냐!”
그가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다. 그때였다.
화악. 태양이 폭발하듯 한순간 엄청난 빛이 터져 나왔다.
뷔네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빛 너머를 바라보았다.
“많이 답답한 모양이야?”
이제 완전히 새하얗게 변한 공간에서, 용훈은 뷔네스를 바라보았다.
“이건 무슨 장난질이냐!”
“장난? 장난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더이상 네놈의 장난질에 놀아나지 않겠다! 아르고스! 모드 체인지, 창!”
스팟! 허공의 한 지점에 모인 섬광이 하나의 거대한 창이 되어 용훈에게 날아갔다.
“너야말로 장난은 그쯤 해 둬.”
용훈은 귀찮다는 듯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르고스가 내뿜은 거대한 창이 그의 손바닥 앞에서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뭐, 뭐? 뭐냐, 그건!”
“조용히 해봐. 지금 네놈의 꿈을 이뤄주려 하는 중이니까.”
“뭐?”
“쉿. 다 됐다. 자, 마음껏 즐겨.”
용훈의 말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피처럼 붉게 물든 땅. 지상을 태워버릴 기세로 떨어져 내리는 햇살. 그리고 하늘을 가득 메운 세 개의 태양.
“서, 설마! 여긴?”
“그래. 칼라란 행성이야. 너희가 잃어버린,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고향. 어때. 이렇게나마 돌아와 보니 기분 좋지 않아?”
뷔네스는 칼라란 행성의 풍경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윽고 그의 눈이 용훈에게 돌아왔다. 피로에 지친 표정이었다.
“이건 환상인가.”
“글쎄. 너 자신을 생각해 봐. 니가 환상 따위에 속을 놈인지.”
“물론 그렇지 않다. 그래. 환상이 아니로군.”
뷔네스는 바닥의 흙을 퍼 올렸다. 정말 칼라란 행성에 돌아온 듯, 후끈하고 따가운 촉감이 들었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러던가.”
용훈은 이상하게 편안한 뷔네스를 보며 슬슬 불안함을 느꼈다.
“자, 서비스는 여기까지야. 이제 값을 치러야지.”
하늘에 뜬 세 개의 태양이 점차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복잡한 궤도로 회전하던 천체들이 서로 가까워져 갔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내 기억을 뒤져 칼라란 행성을 재현한 너라면, 그 종말의 순간으로 내게 타격을 주려 할 거라고 말이다. 허나.”
위이잉. 아르고스가 또 한 번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놔두지 않겠다. 아르고스. 모드 체인지, 안개.”
사방을 향해 펼쳐진 아르고스의 눈이 이전처럼 섬광을 뿜어냈다.
그런데 그 양상이 이전과 사뭇 달랐다. 폭발적인 에너지를 쏘아내던 이전과는 다르게, 아르고스의 눈은 마치 안개와 같은 부드러운 기운을 사방에 흘려 넣고 있었다.
[주인님! 주인님의 인스턴스가 침범받고 있습니다!]자비스가 다급한 목소리로 경고를 보내왔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말씀드린 그대롭니다! 아르고스가 쏘아내는 섬광이 인스턴스의 경계를 녹이며 안으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통제를 벗어난 영역이 빠르게 늘어가고 있습니다. 빨리 아르고스를 멈추십시오!]“알았어! 하압!”
용훈이 손을 휘두르자 뷔네스의 양쪽에서 거대한 산이 솟아났다. 그것들은 그대로 무너지며 뷔네스를 덮쳤다.
하지만 뷔네스는 동요하지 않았다. 아르고스의 안개로 침범한 영역에서는 그 역시 용훈과 마찬가지의 힘을 다룰 수 있다.
그는 공간을 비틀어 공격을 피해냈다. 거대한 산이 흉포한 기세로 대지를 박살 냈지만 뷔네스와의 거리는 너무나도 멀었다.
“멸절의 광선!”
용훈의 오른팔 위로 징벌의 손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터져 나온 멸절의 광선이 무한의 공간을 가르며 뷔네스에게 들이닥쳤다.
“크윽!”
뷔네스는 왼팔의 방패를 전개해 그 위로 디멘션 포스를 씌웠다.
꽈아아앙! 거대한 충격이 뷔네스를 뒤흔들었다. 디멘션 포스로 강화된 에너지 실드가 부서질 듯 떨렸다.
[주인님! 아르고스의 안개를 사용하는 동안에는 아르고스로 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공격을 집중하십시오!]“알았어!”
용훈은 바닥을 박차고 몸을 쏘아냈다. 공간을 제어하는 신의 권능이 더해지자 그는 빛보다 수백, 수천 배 빠른 속도로 무한의 공간을 갈랐다.
뷔네스는 자신이 조작해둔 공간을 단숨에 뛰어넘는 용훈을 보며 이를 갈았다.
“아르고스! 개별 모드로 전환!”
위이잉, 차창! 날카로운 기계음과 함께 아르고스의 백 개의 눈이 일제히 뷔네스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뭐지?”
용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것을 살폈다.
떨어져나온 백 개의 눈은 빠른 속도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안개를 퍼트리며 인스턴스의 통제권을 침범해 들어왔다.
[인스턴스의 침식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현재 침식률 2.4%! 50퍼센트를 넘어가면 그때부턴 정말로 위험해집니다!]“알았다고! 먼저 저 귀찮은 눈부터 처리한다!”
용훈은 사방으로 흩어진 아르고스의 눈을 향해 광휘의 창을 난사했다.
“그렇게 놔둘 것 같으냐!”
순간 노호성과 함께 뷔네스가 날아들었다.
인스턴스의 통제권을 일부나마 획득하면서, 뷔네스의 디멘션 포스도 급격히 늘어났다.
그 덕에 그의 에너지 블레이드도 엄청나게 거대해진 상태였다.
후우웅! 거대한 에너지의 칼날이 휘둘러지자 수십 발의 광휘의 창이 부서져 날아갔다.
“크윽!”
용훈은 가슴팍을 베어 들어오는 칼날을 피해 훌쩍 물러섰다.
“나를 쓰러트리지 못하면 넌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이런 썅! 그렇게 나오겠다는 거냐! 좋다! 니가 내 인스턴스를 빼앗는 게 빠를지, 내가 널 고꾸라트리는 게 빠를지 어디 한번 해 보자!”
용훈이 바닥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그런 그를 향해 거대한 칼날이 잔상을 남기며 날아들었다.
용훈은 디멘션 슬라이드로 간격을 벌리며 광휘의 창을 난사했다.
뷔네스가 훌쩍 뛰어오르며 왼팔의 방패를 휘둘러 광휘의 창을 깨트렸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칼날이 창이 되어 용훈을 찔러 들어왔다.
후욱! 칼날이 용훈의 가슴을 찌르는 것 같던 순간, 그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일곱 개로 분화했다.
“칠연굉뢰포!”
거대한 함성과 함께 일곱 명의 용훈이 저마다 굉뢰포를 쏘아냈다.
일곱 줄기의 거력이 하나로 엉겨 붙으며 거대한 회오리가 만들어졌다.
뷔네스는 자신을 갈가리 찢어발길 기세로 날아드는 거대한 힘을 직시하며 가슴팍에 칼날을 곧추세웠다.
칼날 속으로 끝없이 스며드는 디멘션 포스. 에너지의 칼날은 기하급수적으로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졌다.
칠연굉뢰포가 그의 눈앞에 들이닥친 순간, 그의 오른손이 번개처럼 휘둘러졌다.
싸아악! 1초를 몇천, 몇만으로 나눈 그 짧은 시간 동안, 뷔네스의 칼날은 무한히 자라나며 공간 전체를 잘라냈다.
푸화악! 용훈은 가슴팍이 길게 잘려 피가 치솟는 것도 잊은 채, 칠연굉뢰포가 반으로 잘려나가는 것을 넋을 놓고 지켜보았다.
“마, 말도 안 돼···.”
[주인님! 놀라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먼저 상처를 치료하시고 현 위치를 이탈하십시오! 후속타가 옵니다!]자비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낙뢰와 같은 검격이 떨어져 내렸다.
으드득. 용훈은 이를 갈며 디멘션 슬라이드로 몸을 빼냈다. 어느새 그의 가슴팍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크윽! 알았어!”
칠연굉뢰포도 통하지 않는다면 그의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디멘션 슬라이드로 검격을 피하며 용훈은 허공으로 솟구쳤다.
“멸절의 광선!”
쿠와아! 거대한 힘이 깃든 광선이 공간을 가르며 뷔네스에게 짓쳐들었다.
이것만은 뷔네스도 받아치기 위험하다고 느꼈는지, 그가 다급하게 몸을 날렸다.
멸절의 광선은 어마어마한 양의 신력을 소모한다. 만약 여기가 현실이었다면 멸절의 광선을 이렇게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인스턴스 안에서는 용훈 역시 거의 무한한 양의 신력을 쏟아낼 수 있다.
푸콰아! 또 한 발의 멸절의 광선이 허공을 갈랐다. 뷔네스는 이번에도 그것을 받아내지 못하고 허겁지겁 몸을 피했다.
그를 스쳐 간 멸절의 광선이 허공에 떠 있던 아르고스의 눈을 직격했다.
파치익!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서너 개가량의 아르고스의 눈이 먼지로 변해버렸다.
[인스턴스의 침식 속도가 미세하게 감소했습니다. 계속해서 아르고스의 눈을 노리십시오.]“좋아!”
용훈은 전략적으로 움직이며 자리를 잡았다. 뷔네스가 몸을 피하면 아르고스의 눈이 파괴될 만한 위치에서 멸절의 광선을 쏴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되자 마음이 급해진 것은 뷔네스였다. 함부로 몸을 피하기가 어려워진 것이었다.
푸화악! 눈앞으로 쏘아져 들어오는 멸절의 광선을 노려보며 뷔네스는 이를 갈았다.
그가 결심한 듯 칼날을 휘둘렀다. 거대한 에너지의 칼날이 멸절의 광선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카가각!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뷔네스의 칼날이 부러져 나갔다.
하지만 멸절의 광선 역시 궤도가 틀어지며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인스턴스 침식률 46%! 주인님!]“이야아아아!”
용훈은 자리를 잡고 선 뷔네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허공에 뜬 용훈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순식간에 일곱 개로 불어났다.
일곱 명의 용훈이 일제히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들의 오른팔에는 붉게 일렁이는 세 쌍의 날개가 피어올라 있었다.
“이제 끝이다! 멸절의 광선, 7연사!”
일렬로 늘어선 일곱 명의 용훈이 일제히 거대한 섬광을 뿜어 올렸다.
그때였다.
뷔네스가 입고 있던 배틀 슈트가 치이익, 소리를 내며 단숨에 벗겨졌다.
뷔네스는 연기를 내뿜으며 활짝 열린 배틀 슈트에서 내려섰다.
그의 몸 위로 빼곡히 적힌 복잡한 술식들이 일제히 빛을 발했다.
“봉인 해제. 권능 개방. 나와라, 이면(裏面)의 존재들아.”
그의 몸이 마치 공간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끔찍한 어둠에 휩싸이자 그 안에서 셀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수의 그림자가 쏟아져 나왔다.
일곱 개의 섬광 기둥이 그림자의 군세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아니, ‘부딪쳤다’는 표현은 틀렸다.
세상을 통째로 부숴버릴 만큼 강력한 멸절의 광선은 무한히 커져가는 그림자의 품속으로 속절없이 사라져버렸다.
멸절의 광선을 집어삼킨 그림자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용훈을 덮쳤다.
혈관이 툭툭 튀어 오른 붉은 얼굴로 뷔네스가 차갑게 웃었다.
“실컷 맛보라. 차원계를 떨쳐 울린 어비스의 권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