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05)
러스트 [RUST]-305
얌전히 있는 게 이상한 건가?
그런 김 양의 의구심을 마루가 풀어줬다.
“여기가 어디지?”
[디트로이트?]그렇다. 여긴 바로 그 디트로이트였다. 그러니까 창고를 장악한 생존자들이라면 누군가 접근했을 때 총알로 안부를 묻는 게 정상 아닐까?
그도 아니라면 구해달라고 눈물 콧물 쏟으면서 애원하고 달라붙든지. 얌전히 통제에 따른다고? 몇 개월 동안 창고에 갇혀 있던 자들이?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니?
‘어? 그러네.’
[그럼 쟤들 뭐임?]“그걸 알아봐야지.”
그러려고 직접 온 게 아니던가. 마루는 덴 브라운이 마지막으로 보낸 자료를 떠올렸다. 식인병에 여러 기관이 잠식된 것 같다는 내용. 그러니까 누군가 미합중국의 이름을 판다고 해도 믿지 마라.
연방정부의 이름을 댄다고 해도 믿지 말라는 소리는 연방정부가 무너졌다는 의미. 처음에는 협박이나 한탄, 힐난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면?
‘식인병자들이겠지.’
마루는 생존자들을 통제하고 있는 마트 창고로 향했다. 창고 앞에서는 파워로더형 엑소슈트를 장비한 요원이 날아온 종이비행기를 잡으려고 어기적거리고 있었다. 바닥에 구겨지고 찢어진 종이비행기들이 몇 개 있었다.
[야. 거기. 너 뭐함?]김 양의 목소리에 마트 창고 입구를 감시하던 요원이 몸을 일으켰다.
[아닙니다. 꼬마가 종이비행기를 날려서요.] [종이비행기?]뒤끝이 올라가는 김 양의 목소리에 마루가 살짝 끼어들었다.
“어떤 꼬마죠?”
[아. 예. 저쪽에 있는 녀석이요.]히히- 웃고 있는 꼬마가 소매를 슥- 입을 닦는 모습. 마루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히죽- 슥- 웃고 반대쪽 소매로 입을 닦았다.
“야- 봤냐?”
[봤음.] [네? 뭘 말씀이신지.]반사적인 틱? 그건 아니었다.
마루는 꼬마의 눈을 보고 알았다. 웃고 있는 얼굴임에 반해, 그렇지 않은 눈동자. 아이들 특유의 천진난만한 미소라기보다는 뭔가 다른 것.
그걸 김 양도 알아챘다. 어린 시절부터 살아남기 급급했던 김 양이었기에 저 꼬마의 이질적인 분위기를 알아챘다.
“변종은 아닌 것 같다. 변종이라면 덩치도 컸을 거고, 덤벼들었겠지.”
마루와 김 양은 식인병자를 접해봤었다. 블라디 아크 타워를 둘러싼 감염자들 뒤편에 있던 식인병자들. 그런데 저 꼬마는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처음 보는 행동 패턴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냥 꼬마, 다르게 생각하면 정말 찝찝한 상황. 자신과 김 양만 있었다면 상관없겠지만, 지금은 찰리 팀이 같이 있었다.
증거 없이 식인병자로 몰거나 죽인다면 문제가 생길 게 분명했다. 증거 찾겠다고 블라디 아크 타워로 데려가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고.
“미치겠네.”
[처분?]“아니.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
[이상하면 처분하는 게 맞음.]“씨발.”
[내가 할까?]“기다려. 조금 더 확인해 보고.”
마루와 김 양이 자기를 보고 뭐라고 이야기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꼬마가 손을 내밀었다. 종이비행기를 던져달라는 행동.
김 양이 꼬마와 종이비행기를 주고받던 팀원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꼬마를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팀원.
꼬마는 다시 슥-입을 닦은 손으로 날아오는 종이비행기를 받아, 다시 던졌다. 방향은 김 양이 있는 곳이었다.
퍽-
12.7mm 총구가 날아오는 종이비행기를 패대기쳤다.
[간나새끼가 어디서 수작질이니.]김 양의 행동에 찰리 팀원들의 시선이 몰리는 게 느껴졌다. 마루는 슬쩍 그들의 주의를 돌리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안쪽에 있습니다.]“이 꼬마는 언제부터 나와 있는 거죠?”
[10~15분 정도 됐습니다.]팀원의 대답에 긴가민가했던 마루의 눈빛이 흉흉하게 변했다.
‘이 새끼들이.’
분명히 김 양이 구조대가 아니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럼 구조대도 아닌, 무장한 자들이 출입구를 막고 감시하고 있는데, 애를 덜렁 10분 넘게 던져두고 그냥 있다고? 정상적인 부모라면 그럴 리가.
“꼬마랑 접촉한 사람. 비행기 놀이한 사람 또 없습니까? 꼬마 아니더라도 여기 생존자들이랑 접촉한 사람 있습니까? 있으면 나오세요.”
“돌아가서 영상 확인하면 다 나오니까, 옆으로 빠지세요.”
두 사람이 옆으로 나섰다.
“나머지 사람들과 수색 계속해. 혹시 지금 같은 상황이 생기면 알지?”
[알겠음.]덴 브라운 부장의 말이 이해됐다. 만약 이런 식으로 폐쇄된 벙커에서 확산이 시작됐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게 분명했다. 김 양이 찰리 팀을 데리고 멀어지는 것을 본 마루가 남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일단 여기 창고 셔터부터 내리죠.”
[······.] [무슨 일이신데 그러시는 겁니까?]녹슨 소리와 함께 내려가는 셔터. 셔터가 내려감에도 멀찍이 떨어진 꼬마는 그 모습 그대로 있었다. 히죽- 슥-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디아나, 방역대책이 필요해.”
[상황을 알려주세요.]“식인병자와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
[검역실 준비하겠습니다.]“바이러스 연구원들에게 식인병 대책 세우라고 해.”
[전달했습니다. 식인병자 샘플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온전한 것이 필요하다는 요청입니다.]“준비하지.”
마루와 디아나의 대화를 들은 두 사람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타액으로 감염되거나, 비말로 감염된다니까 걱정할 건 없습니다. 방역만 철저히 한다면 말이죠.”
[그럼 저희는 왜 남으라고 한 겁니까?] [······.]자기들 앞에 있는 사람은 블라디마루 칼린이었다. 칼 한 자루로 수백 단위의 변종 괴수를 도륙하고 천 단위의 감염자들을 썰어 버린 존재.
그런 블라디마루가 식인병 감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른 팀원들을 따로 보냈다는 것은? 설마? 우리를? 두 사람의 경계심이 극에 달했다.
쯧- 두 사람이 긴장하다 못해 경계하는 모습에 마루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렇지 않아도 쓸 만한 인력이 부족한 판국인데 오해는 사양이었다.
“두 분은 직간접적으로 접촉했으니, 다른 사람들과 분리했어야 하니까요. 그래도 엑소슈트를 입고 있었으니까 감염됐을 확률을 낮을 겁니다. 조금 전에 이야기했듯 타액이나 비말로······.”
마루가 갑자기 이야기를 멈췄다.
타액···
꼬마.
히죽-
슥-
종이비행기.
하? 이것들 보소.
“종이비행기 만진 손으로 뭘 하지는 않았지요?”
마루의 질문에 두 사람의 고개가 아주 작게 흔들렸다. 그 미세한 시선을 따라 마루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바닥에 구겨지고 찢어진 종이비행기들이 몇 개 보였다.
종이비행기를 날려주려고 어물어물하던 요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두꺼운 장갑을 끼고 종이비행기를 날렸을까? 장갑을 벗지 않고 종이비행기를 접을 수 있었을까?
“하- 빌어먹을-”
마루의 중얼거림과 함께 두 사람의 총구가 올라가는 순간, 지독한 살기가 그들을 덮쳤다.
[···!!] [???]총을 든 팔이 수전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파워로더형 엑소슈트를 입고 있음에도 소용없었다. 몸이 생기를 잃은 것처럼 굳어버리기 시작했다.
심장을 옥죄는 공포에 숨을 쉴 수 없었다. 폐에서 빠져나간 공기를 다시 채우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떠오른 것은 죽음-
그건 단순한 공포가 아닌, 죽음의 기운이었다.
죽음 그 자체가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컥—–!] [크으윽–]‘괴··· 괴···.’
‘사. 살려······.’
점점 강해지는 살기에 엑소슈트가 무릎을 꿇은 채 비명을 질렀다.
끼이이- 끼이이잉-
“아니. 씨발. 바로 총구를 들어 올리네.”
마루는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자기들이 식인병 걸렸을지 모른다고 판단하자마자 태세를 전환해 버리네. 요원들이라서 그런가? 감염됐으니 처분되리라 생각했나? 실험실행으로 될지 모르니까? 어쨌든 씁쓸했다.
앞으로 꼬꾸라져 가늘게 몸부림치던 몸뚱이가 버르적거리던 움직임을 멈췄다. 마루는 그들의 목덜미를 지르밟아 으스러뜨렸다.
‘개- 씨-’
반년 넘게 한솥밥을 먹어서 그런지 기분이 더러웠다. 그러니 안에 있는 것들을 후딱 처리해야겠지. 마루는 바로 내려 닫은 마트 창고의 셔터를 끌어 올렸다.
끼기기기기-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셔터를 올리자 보이는 모습.
슥- 입가를 닦은 꼬마의 눈이 쓰러진 두 사람을 보곤 둥글게 호선을 그렸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침을 다시 슥- 닦으며 마루 향해 히죽 웃는 꼬마.
웃어?
이 새끼가.
꿈틀- 마루의 전신에서 죽음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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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융끼융
찰리 팀을 이끌고 수색하던 김 양은 갑자기 오소소 소름 돋았다. 그러니까 뭔가 느낌적인 느낌에 뒤를 돌아봤다. 빡친 백정이 휙-하고 나타날 것 같은 기분?
‘그럴 리는 없는데.’
요즘 허한 것 같기도 하고. 일 끝나면 저녁에 삼계탕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김 양이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전복도 넉넉하게 냉동해 두는 건데.’
심신이 허할 때는 전복삼계죽이 최고인데. 그러고 보니까 인삼도 없었다. 그렇게 많이 챙겼는데 전복이랑 인삼을 빼먹다니. 황기, 감초, 엄나무, 옻나무 빼먹은 게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그래도 김치랑 깍두기는 꼬박꼬박 잘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은 김 양이었다. 아마도 아시아 식자재 마트를 봐서 그런가 싶었다.
[킴 대위님. 3블록 생존자 없습니다.] [각 팀. 보고] [치익- 알파 팀 4블록 수색 중입니다.] [삐이익- 브라보 팀 5블록 수색 완료. 6블록 수색 개시.]‘나는 왜 대위고 지는 소령인지.’
군에서 군복 보냈을 때, 자신은 중위였고 백정은 대위였다.
‘나도 소령.’
‘지금 계급놀이 하는 거 아니잖아.’
나도 높은 계급이 좋은걸.
‘생각을 해봐라. 너 23살이다. 23살에 대위가 어딨어. 미군이 무슨 계급을 막 퍼주는 줄 아냐? 소위나 끽해야 중위지.’
그러는 자기는 25살에 소령이라면서.
‘나는 훈장 받았고 특진 기록도 있잖아. 군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봐도 소령(진)이라고. 근데 넌 중위고. 대위 올린 것도 아슬아슬한 거야.’
‘근데 왜 갑자기 군 계급인데?’
‘인근에 있는 군사기지부터 정리하려고 계급 쓰는 거니까. 적당히 구색은 맞춰야지.’
덴 브라운 부장의 정보에 따르면 식인병자들은 골치 아픈 것들이었다. 이것들이 정부기관 여럿을 잡아먹었다고 하는데 만약 군기지를 장악했다면? 혹은 장악한다면?
‘놈들이 군사기지에 손을 대기 전에 먼저 정리하려고.’
‘그러다 군에 엮이면? 장군이나 그런 애들이 비상사태다. 너 내 밑에서 굴러. 이러면?’
‘특수임무 수행 중이라고 까면 돼. 그래도 지랄하면 전역시켜주고.’
아-
‘그리고. 앞으로 상황이 복잡해질 것 같으니까. 슬슬 우리도 체계를 잡아야지.’
제일 쉽고 빠르게 체계를 잡는 방법은 군 계급을 이용하는 것이었고. 김 양도 동의했다. 그래도 계급이 아쉬웠다. 김 장군. 얼마나 좋은 울림이란 말인가? 제너럴 킴.
‘제너럴 하? 풋-’
계급으로 불리는 것이 조금 낯설기는 하지만, 나름 잘 적응하고 있었다. 응.
[여기는 알파. 4블록 수색 중 생존자 발견.] [킴 대위님. 알파 팀 4블록에서 생존자를 발견했습니다.]김 양이 목소리를 깔았다.
[감염위험 있으니 접근하지 말고 거리 유지. 반복한다. 감염위험 있으니 생존자와 접촉하지 말고 거리를 유지하라.] [접촉금지. 거리 유지. 확인. 대기합니다.]명령을 내린 김 양이 찰리 팀을 이끌고 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김 양의 눈에 보인 것은 눈물, 콧물 짜고 있는 옷 짧은 어린 여자들을 다독이고 있는 병신들이었다.
‘종간나 새끼들이. 내 말을 씹어?’
[야! 야-아! 뭐하는 짓들이니!]김 양의 사자후에 여자들을 다독이던 알파 팀원들이 벌떡 일어섰다.
[감염위험 있다고 했어? 안 했어?] [아니- 그 감염자들은 사람에게 달려들지 않습니까?] [변종도 아니고요.]요원들도 변이 바이러스에 대해 알고 있었다. 감염자들은 분노조절을 못 했고, 변종은 겉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아가리 닥쳐!]김 양의 분노어린 일갈이 쏘아졌다.
[식인병은? 식인병이면? 빌어먹을 새끼들이 다 뒤지고 싶음?]꺄악!
흐흐흑-
눈물 콧물로 범벅된 여자들이 알파 팀원들 팔다리를 붙잡고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처절하다 못해 안타까울 정도. 그들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한 요원이 김 양에게 말했다.
[킴 대위님. 감염에 대해 걱정하시는 것은 알겠지만, 이 여성분들 식인병에 걸렸으면 지금까지 이렇게 생존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뭐?
뚝- 김 양의 이성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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