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03)
러스트 [RUST]-403
후드는 내심 적잖이 놀랐다.
쥐로 고문하는 게 아니라.
‘쥐를 고문한다?’
대체 무슨 정신세계면 쥐를 고문할 생각을 하는 거지?
하지만 매복, 기습을 넘어 차량 밑으로 들어가 적의 본진에 직접 침투하려는 계책까지 쓰는 쥐를 생각해 보면, 고문이 먹힐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 고문한다는 걸까?
사이코메트리는 짐승의 기억을 읽지 못했다. 다만 어디로 이동했는지, 강한 잔류 사념이 남은 곳에서 벌어진 사건을 파악하는 건 가능했다.
바퀴벌레가 공격했다든가, 그것들이 어디로 갔다거나 하는 정도는 됐다. 사이코메트리가 동료를 버리고 도망쳤던 것도 끔찍한 잔류 사념을 읽었기 때문이지, 바퀴벌레의 정신세계를 읽은 게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암살 공포에 짓눌려 그마저도 못 하는 상황. 사이코메트리의 능력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간호사를 쓴 건데.
‘가능할까?’
고문에 성공했다고 치자. 고문으로 쥐의 본진이 어디인지 간호사가 통역했다고 가정해도 그랬다. 쥐가 뭘 말하는 건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파악하는 게 가능할까?
쥐들이 인간의 지도나 방위체계를 쓰고 있을까?
방향, 거리개념을 비롯해 모든 것이 다를 텐데?
간호사로 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 거지?
마루의 쥐 고문 계획은 곧바로 진행됐다.
추락한 비행선 주변을 맴돌고 있던 쥐들을 사로잡은 것.
오노 나나에는 쥐를 구슬려 본진을 찾아내라는 말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 그래도 머리가 좋다고 했으니까. 일단 대화를···.’
케이지에 갇힌 쥐가 그녀를 보곤 소리높였다.
찌이익!(저리 가!)
“어 저기. 그러니까 들리나요.”
간호사의 말에 쥐들이 웅성거렸다.
찌이이익!(미친 여자다!)
찌익- 찍!(야 잠금장치 열 수 있냐?)
찌이익-(해봐야지-)
에?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잠금장치를 연다고? 그러니까 탈출?
말을 붙여보기도 전에 파탄이 났다.
“그러니까 이것들이 탈출하려고 했단 말이지?”
“네. 잠금장치 연다고.”
찌이이익-
찍-
“이 새끼들 뭐라는 거야?”
“에- 눈깔이 이상하다는데요···. 아니, 눈이요.”
“눈이? 누구 눈깔이? 어디 눈이?”
마루의 질문에 간호사는 그저 슬그머니 그를 쳐다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 음···.”
그러니까 쥐새끼들이 내 눈을 평가하고 앉아있다는 소리네.
마루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잠시 뒤, 길고 곧은 나뭇가지에 꽁꽁 묶인 쥐가 울부짖었다.
찌이이이익!
서서히 회전하는 나뭇가지 아래에 보이는 촛불 하나. 빙글빙글 느릿하게 돌 때마다. 꼬리 끝이 촛불에 닿을락 말락 스쳤다.
그걸 바라보는 후드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꼭 불로 저래야 합니까?”
“동물들은 불을 무서워하지. 그리고 화상은 굉장히 고통스러우니까 효과적이야.”
약한 불로 천천히, 꼬리 끝부터 타들어 가면 저절로 입이 열릴 거다. 지금처럼.
찌이이이익!
@$%#%$#$
“왜 이러느냐는 데요?”
“왜 그러냐고? 하- 묻지도 말고 대답하지도 마.”
살살 달래서 본진 찾으라면서?
간호사의 표정을 본 김 양이 고개를 저었다.
“쥐새끼들이 아직 정신 못 차려서 그럼.”
“네?”
“나댔잖음.”
“?”
“어디서 감히 먼저 말대꾸.”
“······.”
그냥 제발 살려달라고 울부짖어도 시원치 않은 판국에 어딜.
김 양과 마루가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 뒤에는 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소에 묶인 쥐들이 몸부림치는 모습. 덜컹- 퐁당! 시소가 기울어지며 차가운 물에 머리가 처박힌 쥐.
뽀글뽀글 거품이 일고 숨이 넘어가나 싶기 전, 다시 털컹- 흔들림과 함께 반대편으로 기울어지는 시소. 반대쪽에 매달렸던 쥐가 머리를 도리도리 돌려보지만, 시소는 속절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뽀그르르륵!
그 장면을 케이지에 갇혀 지켜보는 쥐들은 조용했다.
찍소리를 내면 바로 그 쥐를 잡아 불에 구웠기 때문. 딴짓하는 쥐도 잡아서 직접 놀이기구를 체험하게 해줬다.
역시 똑똑하긴 했다. 찍소리라도 내면 매달린다는 것, 제대로 보지 않으면 끌려간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으니까.
“저. 이제 물어보면 될까요?”
“아니 기다려.”
“네? 나대지 않고 잘하고 있는 데요?”
“입은 하나만 있어도 되니까. 기다려.”
에?
쥐들은 처음에는 똘똘 뭉쳤지만, 조금만 굶어도 돌변했다.
고문이 계속되면서 먹이를 제대로 주지 않자, 제일 약한 쥐를 공격해 나눠 먹은 것.
“본래 쥐들은 신진대사가 활발해서 굶주림에 취약합니다.”
하수구에서 적당히 숨어 살던 쥐새끼들이 갑자기 우글우글 밖으로 나와 사방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것도 굶주림 때문이라는 이야기.
“본진을 찾으면 길목을 막아 굶겨 죽이려고 했었는데, 저렇게 자기들끼리 잡아먹으면 굶겨 죽이기는 쉽지 않겠군요.”
“그렇습니다. 동족 포식도 서슴지 않게 하는 것들이라, 굶겨서 전멸시키려면 오래 걸릴 겁니다.”
철근 콘크리트도 갉아대는 괴물 쥐였으니 통로가 막힌 걸 알면 다른 곳을 뚫고 나갈 게 분명했다.
“독가스를 사용해도 쉽지 않을 겁니다. 방역업자들도 가스를 살포해서 쥐를 잡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잡지 못했으니까요.”
“업자들이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었겠죠. 인체 안전성 논란, 생태계 파괴 문제도 그렇고요.”
근데 마루는 아니었다.
생태계? 괴물 쥐를 잡아먹고 괴수들이 늘어날 예정인 생태계 따윈 알게 뭔가? 잔존가스? 주변 마을 모두 텅 비었으니 걱정 없었다. 뉴욕처럼 사람들 눈치 볼 것도 없었고.
“몇 마리나 남았지?”
“다섯 마리요.”
간호사는 쥐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쥐들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의사소통이 잘 됐던 까마귀와는 달리 쥐들은 반쯤 일방통행이었다.
찌이이익!(악독한 것들!)
찌익찌익!(저주한다!)
“저주한다는데요?”
“저 새끼 처분해.”
찍-
“본진이 어디 있는지 아직도 대답 안 해?”
“어. 그게. 그러니까.”
“무슨 문제 있어?”
“그게. 쟤들 ‘본진’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 같은 데요?”
“······.”
“······.”
집념의 마루는 본진이 뭔지 모른다는 쥐새끼들에게 본진이 무엇인지 알려주고야 말았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한 마리가 향한 곳은 비행선이 추락한 곳 근처에 있는 채텀시였다.
“역시- 예상대로 가까운 도시에서 나왔네요.”
불로 고문해서 얻은 정보치고는 너무나 허무한 결말에 후드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수십 마리의 쥐를 고문했지만, 얻은 정보가 많지 않았다.
“아는 게 없는 것들이라 그럼.”
김 양은 당연한 걸 뭘 허탈해하느냐는 듯 말했다. 뉴욕의 쥐떼와 연계했는지도 불분명했다. 생포한 쥐들이 하위계급인지라 고급정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나온 정보를 보면, 생각보다 견고한 계급사회를 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쥐새끼들이 계급사회라니.”
뉴욕에 있는 쥐들이 채텀에 있는 것들과 연계한 건 거의 확실해 보였다.
“지배층에 속하는 쥐를 생포하는 건 어떨까요?”
정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후드가 제안했지만, 마루는 거절했다.
“뉴욕과는 달리 하수구가 작아서 병력을 투입할 수 없어.”
갑주형 엑소슈트라면 갉아대는 걸 무시하고 잡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보통 쥐였을 경우였다.
지금까지 괴물 쥐떼가 했던 짓을 보면 함정을 팔 게 분명했다. 아무리 단단한 엑소슈트라도 돌에 깔리거나, 바닥에 묻히면 끝인 건 마찬가지. 굳이 하수구로 들어가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었다.
정보고 뭐고 싹 죽이면 되는 일이니까.
“VX 가스로 하수구를 채운다.”
“독가스로 하수시설을 채워버리면 하수도를 타고 일반 가정집까지 올라갈 위험이 있지 않을까요?”
“이 도시는 이미 끝났어.”
“······.”
“주변을 봐.”
마루의 말에 후드는 주변을 살폈다. 설상차가 물자를 옮기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얀 눈밭을 더럽히듯 궤도 자국을 남기며 요란하게 움직이는 설상차 건너, 갑주형 엑소슈트를 입은 친위대와 기사단이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렇게 요란한데도 생존자들이 나오지 않고 있어.”
그렇다는 것은 전멸했거나, 나오는 게 무섭다는 의미.
“경고 방송 시작해.”
커다란 사이렌이 채텀시를 깨웠다.
[오늘. 쥐떼를 박멸하기 위해 하수구에 가스를 살포합니다. 유독 가스니, 하수구를 막으시기 바랍니다.]하수구를 막는 방법을 시작으로 다양한 정보들이 울려 퍼졌다. 곧이어 채텀시 하수구에 VX 가스가 가득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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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X 가스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작업팀에서 연락이 왔다. 예상보다 VX 가스 소모량이 엄청났다. 채텀에 뿌리기는 충분했지만, 채텀 북동쪽에 있는 런던과 디트로이트 건너편 윈저까지 뿌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상황.
“우선 남은 가스 물량은 전부 윈저로 돌립니다. 윈저와 그 인근까지 꼼꼼하게 뿌리고, 다른 도시는 나중에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시가전이나 특수전 상황에 가스를 쓰려고 했지, 도시규모 하수도를 채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 가스의 소모는 가스를 합성하는 데 사용되는 필수 화학 약품이 떨어진다는 소리였다.
[이번 생산분이 마지막입니다. 핵심 원료가 부족해 추가 생산 어렵습니다.]예전 같았으면 뉴욕에서 거래하면 되는 일이었다.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 국장을 통하면 구하지 못하는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곤란했다.
“설상차가 있으니 인근 도시를 돌아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디트로이트에서 남동쪽 피츠버그 인근에 석유화학 공업단지가 있으니까요.”
[5대호에 인접한 도시 가운데, 중규모 이상의 연구소를 가진 대학은 시카고 대학입니다.]PD와 디아나의 추천에 따라 파밍 지역이 결정됐다.
“피츠버그부터 가죠.”
설상차가 디트로이트 남동쪽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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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호텔 샬롯.
심은영 회장은 눈을 감았다. 미군을 본토로 옮겨주는 대가로 주한미군의 협력과 보호를 받기로 했건만 의미가 없어졌다.
물자와 능력자를 징발하겠다는 정부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한미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답은 ‘내정간섭이 될 수 있어.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개소리가 돌아왔다.
사실상 수도권을 장악했던 오진 그룹이 모든 걸 다 버리다시피 하고 울릉도로 거점을 옮겨서 왜 그러나 했더니, 정부가 돌아버릴 조짐을 미리 알아챘던 것 같았다.
분노조절, 식인병 치료제를 비롯한 다양한 약품을 수출하는 것으로 한국을 먹여 살린 오진 그룹이 그렇게 허겁지겁 도망친 이유가 돌아버린 정부 때문이라니.
중국과의 전쟁 때문에 엄청난 예비 병력을 뽑았는데, 전황은 지지부진 휴전도 아니고 종전도 아닌 상태로 멈춰버렸다.
7개로 분열된 중국은 자신들이 승전국이라면서 발광을 떨고 있었고, 미국은 본토에 무슨 일이 터졌는지 미군을 전부 본토로 송환했다.
주한미군이 남아있었지만, 공군이 주력으로 남아있는 주한미군은 말 그대로 애물단지가 되고 있었다. 미친 새떼들이 목격됐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징발이라니.
“대규모 병력이동 조짐이 포착됐습니다.”
“기갑사단 일부도 야간을 틈타 빠진 것이 확인됐습니다.”
“24시간 안에 무조건 항복하면 안전을 보장해주겠다고 합니다.”
“하-무조건 항복? 안전 보장? 그딴 소리를 먼저 했다는 거예요?”
협상하자는 것도 아니고 병력 움직일 준비를 해놓고 안전 보장?
심은영은 결정해야 했다.
미친 정부의 말대로 모든 것을 뺏기고 사라질 것인지, 아니면 지역을 거점으로 할거해야 할지. 하는 짓을 가만히 보니, 항복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부산 지역을 거점으로 봉기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 지금 미친 정부는 최소한 100만이 넘는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생각에 잠겼던 심은영이 결단을 내렸다.
“우리는 미국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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