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52)
러스트 [RUST]-552
끼융끼융-
엑소슈트 특유의 기동음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나 들어가면 격벽 내리셈.]김 양의 비상 요청을 받은 인공지능 디아나가 대답했다.
[현재까지 실험실엔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도 비상 격벽 내립니까?] [목 물어뜯기고, 중심에 볼펜 박혔다는데 문제가 없음? 일 터지고 나중에 수습하려면 늦어! 차단벽 내리셈. 대기실에 있는 클론들도 허가 없이 움직이면 처분해버리고.] [알겠습니다. 현재 시간부로 D 섹터에 비상사태 발생. 차단벽 작동. 해당 섹터에 있는 모든 인력 대피 시작합니다.] [비상벨 울리지 말고, 조용히.]‘마크 2년, 언젠가는 그년이 사고 칠 줄 알았어.’
제대로 교육하는 사람이 없으니 사고를 칠 수밖에.
요즘 많이 풀어주기는 했다.
그놈의 마연시 때문에 정신이 팔려서는.
위대한 옆자리를 위해 마연시를 했건만, 현실을 놓치다니.
이건 명백히 자신의 불찰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확인해 보니 나주연이 교육하다가 터진 사고였다.
‘이년이고 저년이고. 왜들 이렇게 선을 넘지?’
자기가 뭐라고 마크 2를 교육한단 말인가?
옆자리를 노리는 건가?
그러고 보니 후드도 요즘 미묘했다. 간호사는 대놓고 흉흉한 흉부를 흔들고 있었고. 나주연, 후드, 간호사. 벌써 셋인데.
지방으로 귀양 보낸 미인계 어쩌고 하던 년들 둘을 합하면 다섯이나 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이코메트리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정도?
‘마크 2년. 그렇지 않아도 클론들과 뭉쳐 다니는 게 영 조짐이 좋지 않았어.’
무럭무럭 자라면 생으로 한번 붙어보고 싶었는데, 클론들 다루는 걸 보니까. 일이 커질 수도 있겠다 싶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한 번 떠봤어야 하나?’
사이가 좋아졌다지만, 김 양에게 있어 유 이사 마크 2는 유 이사의 찌꺼기일 따름이었다. 기본이 찌꺼기, 흔적, 잔해.
여차하면 처분해버릴 셈으로 현장으로 달려가는 김 양에게 든 생각.
정말 그뿐일까?
똥 기저귀를 시작으로 다른 누구보다 제일 많이 엮였던 김 양이었기에.
옛날 유 이사와 엮여 본 일 있는 그녀였기에, 사실은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마크 2는 오리지널 유 이사와는 어딘가 다르다는 걸. 어쩌면 그래서 더욱 찌꺼기일 따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험실 CCTV 화면 보내.] [요청 확인했습니다.]김 양의 HUD에 실험실 내부 CCTV 영상이 작게 떠올랐다.
‘응?’
사건 터지고 제일 먼저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실험실에 마루가 있었다. 소리 높여 내달리던 엑소슈트의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끼이융- 끼이융-
현장부터 확인하고 뛸걸.
괜히 당 떨어지게 헐레벌떡 뛰었네.
끝판왕이 현장에 있으면 끝난 거 아닌가?
모든 의욕이 상실된 김 양의 발걸음이 무거워질 무렵, 피바다가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약간 이상하게 변하는 모습.
‘설마 또 말랑말랑하게 넘어가는 것 아님?’
마크 2랑 마크 3 데려온 용병들 처분도 그렇고, 미인계 쓴 년들도 그렇고. 그냥 깔끔하게 처분하면 되는 걸 굳이 기회를 줄 때가 있었다.
‘지금쯤이면 한 번 정도 본보기를 보여야 할 때가 되긴 됐지.’
느릿하게 움직였던 엑소슈트의 발걸음에 다시 속도가 붙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시범 케이스를 잡아 보리라.
패기 등등하게 팰 생각 가득하게 실험실에 들어가려는 김 양을 나주연이 가로막았다.
[뭐임?]“지금 분위기 막 좋아졌으니까 끼어들지 마세요.”
김 양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분위기? 무슨 분위기?]“그런 게 있으니까 괜히 머리 박지 말고 이쪽으로 와요.”
‘뭔가 있으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건데.’
눈치가 빠른 김 양이었기에 나주연이 이끄는 대로 옆으로 비켜섰다.
[그래서 뭐임?]“뭐긴요. 마연시 때 알잖아요.”
[마연시? 썰림 엔딩 뜰 각임?]“아뇨. 안 썰릴 때요.”
몇백 번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확률이 지금 떴다고?
역시 오면서 느낌이 그렇기는 했다. 상/하체 분리 엔딩이었으면 여기에 도착하기 전에 끝났겠지. 김 양이 나주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왜 그렇게 보시죠?”
[아니. 안 썰렸다고 하니까. 그냥.]‘에효. 유 이사 마크 2도 1트에 생존했는데 백번 넘게···.’
얘도 참 어찌 보면 그런 얘였다.
생각해 보니, 머리도 박을 줄 몰라 100번 넘게 썰린 애를 잡도리하려고 한 것 아니던가? 그런 애를 조지려고 했던 냉혹한 자신을 반성하는 김 양이었다.
“그러고 있어요.”
조금 전에도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어 머리 박으려고 했더니 잘 넘어가지 않았던가? 나주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게좋게 말로 한 김 양이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저긴 왜 저렇게 갑자기 눈물바다임?]“그가 실험체에 이름을 붙여줬어요.”
[유 이사 마크 2한테?]“네.”
[뭐라고?]“···희연이라고.”
김 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유 희연? 미묘하게 관행 좋아하게 생긴 이름이더냐?
[제국의 클론을 전부 슈킹하라는 깊은 뜻인가?]“네?”
[아니 그런 게 있음. 알면 다치는 거.]김 양이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고는 HUD 영상을 확인했다. 폭풍 오열이 끝나고 분위기가 정리된 듯싶었다.
‘이걸 어쩌나···.’
마루가 이름까지 지어줬는데, 하는 짓이 좋지 않다며 대뜸 폐기하자고 할 순 없었다. 그녀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바로 가부간에 결판을 봤을 텐데.
쯧-
김 양이 끼융- 몸을 돌렸다.
“안 보고 갈 건가요?”
[됐음.]끼융끼융-
쿨하게 자리를 피하는 김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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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 다르긴 다른데?”
기순이 보드카 잔을 비우곤 감탄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소주가 제격이었지만, 소주는 떨어진 지 오래.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고?”
“다른 게 없긴 왜 없어. 존나 많이 다르지.”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 환경호르몬, 화학첨가물과 중금속에 찌들고 찌들었던 육체가 새것이 됐는데 다르지 않을 리가.
“고등학교? 중학교? 아주 날밤을 꼬박 세고 게임 해도 멀쩡하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아. 기분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그래?”
“그냥 한마디로 회춘한 느낌이라니까.”
“회춘은 무슨.”
고작 20대 중반이 회춘은 무슨.
“나이가 무슨 상관? 군대에서 갈렸던 무릎만 생각해도 진짜 회춘 마렵지.”
“지랄.”
기순의 너스레에 마루가 피식- 웃고는 앞에 놓인 잔을 비우자 40도짜리 보드카가 맹물처럼 넘어갔다. 기순이 말하는 회춘의 느낌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루 자신도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가상현실 때문이겠지.’
연구결과 가상현실에서 겪은 경험이 실제 현실의 육체에도 영향을 준다고 했다.
제한적이지만 엔피 마루와 싸운 경험이 계속 누적됐고 무엇보다 죽기까지 몰렸던 2회차의 경험이 실제 신체를 자극한 결과였다.
순수 육체적 능력만 비교했을 때, 식인귀 가운데도 하위 개체 정도와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거뜬히 넘어서지 않을까 싶을 정도.
탁- 마루가 보드카 잔을 내려놓자, 기순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지랄이 아니라서 위험하다.”
“위험?”
“그래. 저번에도 말했지만···, 사실상 특이점을 넘어버렸다고 봐야 해.”
“······.”
PD도 이야기했던 말인지라, 마루는 묵묵히 잔을 채웠다.
“단순하게 기술이 발달했다. 과학의 한계를 돌파했다고 볼 게 아니야. 당장 새 몸으로 갈아탈 수 있게 됐어. 아픈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치료나 수술하기보다 새 몸으로 바꾸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마루가 보드카를 털어 넣곤 피식 웃었다.
“누구 마음대로?”
“그래서 위험하다고.”
가상현실이 실제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 신체 갈아타기가 성공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연구원들은 전부 안다고 봐야 했고, 연구원들의 가족들이나 친지, 친구들도 다 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사실상 아크 타워와 아크 타운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위험하다는 게 기순의 의견이었다.
“기술이 있는데 기술을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지금처럼 너를 따를까?”
“어이없군.”
뒈지려고?
“어이없는 게 아니다. DNA 샘플과 기억을 저장해놓기만 하면, 본체가 크게 다치거나 죽어도 언제든 되살릴 수 있게 됐다는 거다. 사실상 영생이고 회춘인데 그걸 독점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까 결말이 좋지 않을 거다?”
마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깊게 가라앉는 목소리에도 기순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모든 인간이 꿈꾸는 영생과 회춘이 바로 앞에 있는데 그걸 보여주곤 ‘너희는 가질 수 없다. 너희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결말이 좋겠냐?”
“······.”
“지금이야 그냥 지나간다고 치자. 하지만 병든 부모가 오늘내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자식들은? 변이 괴수와 싸우다 죽은 병사들 가족은?”
“······.”
“무엇보다 나이 든 여자들은 어떻게 할 거냐? 그녀들은 오래 기다리지 않을 거다.”
“여자들?”
“당장 늙은 몸을 버리고 젊은 몸으로 갈아탈 수 있는 기술이 나왔는데, 여자들이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 것 같냐? 사회적 불안이고 기존 체재의 안정이고 나발이고 40대 30대 여자들이 20대 10대 후반으로 가는 기술이 있는데 그게 풀리지 않는다고 하면 기다리고만 있을 것 같냐?”
“그러니까. 특이점을 넘은 순간 스스로 무너질 위험이 생겼다는 말이지?”
“그래. 그렇다고 세뇌할 순 없잖아. 죽일 수도 없는 일이고. 욕구를 거세할 수도 없어. 그렇게 하겠다면 그건 신이 되겠다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고, 심지어 신이 돼서 직접 인간을 주무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겠지. 씨발.”
무한한 욕구를 가진 인간의 손에 회춘과 영생이 쥐어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쓰게 웃은 기순이 잔을 비우곤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르는 누군가 진작 특이점을 넘었을지 몰라.”
“뭐?”
“생각해봐. 바이러스 사태 당시의 대응을. 사회 시스템을 하나하나 건드려보는 듯한 대응이지 않았어?”
“그래서.”
“특이점이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운 무언가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아니면 세계가 겪은 일들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
“······.”
“일본에서 알 수 없는 촉수 괴물과 제단 이야기 있었지? 중국발 바이러스도 이상하다고 했었고? 미국에서는 클론 기술과 양자컴퓨터 기술 그리고 모듈원전이 있었어. 유럽에는 없을까? 러시아는? 이스라엘은? 각기 숨기고 있던 게 있었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지금 이 개판이 터진 이유도 그렇게 숨기고 있던 게 터졌기 때문이라는 거냐?”
“아니라면 지금 이렇게 세계가 망가진 걸 어떻게 해석할 건데?”
“···거기까지 갈 일은 아닌 것 같다.”
마루의 말에 기순이 킥킥 웃으며 잔을 채웠다.
“하긴. 당장 우리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너무 나갔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사람들은 이제 회춘과 영생을 알게 됐는데?”
크- 잔을 비운 기순이 마루를 직시하며 말했다.
“사람들을 전부 추방할 거냐? 회춘과 영생의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아니면 누구나 쓸 수 있게 해서 회춘과 영생이 넘치는 세상을 열 거냐?”
“······.”
죽음이 없는 세상을 열 것인가?
그건 천국일까 아니면 지옥일까?
마루는 문득 잭 니스 박사의 절규가 떠올랐다.
신세계의 신이 됐다는 선언.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는 외침이 떠오른 이유는 뭘까?
“넌 기순이 맞지?”
뜬금없는 마루의 질문에 기순이 낄낄 웃었다.
“아니. 씨발-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내가 기순이 아니면?”
그래. 이제는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마루가 빈 술잔을 탁- 내려놨다.
“양자컴퓨터를 동결하고 네가 당분간 방콕 한다면 어떨까?”
마루의 한 마디에 기순이 알아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갈아타기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하자는 거지? 복제도 그렇고.”
“그래. 당분간 연구소를 폐쇄하고 일단 연구원들 호기심부터 조절하면?”
기순의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한시적인 건 알지?”
“알아 유예일 뿐이라는 거. 그래도 당장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것보다는 낫겠지. 이따가 다들 모이라고 해. 의견을 모아보자.”
그렇게 회의가 시작됐다.
“그건 좋은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PD가 마루의 의견에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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