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85)
러스트 [RUST]-785
머리가 둘인 까마귀의 왕은 부하들이 속절없이 추락하는 이상 현상이 무엇 때문인지 알아챘다.
‘놈이다.’
‘그게 왔다.’
오른쪽 머리와 왼쪽 머리가 텔레파시처럼 소통했다.
‘보이냐?’
‘보이지는 않아.’
‘일정한 영역이 있다.’
‘봤어.’
지름 20m~25m 되는 죽음의 영역이 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 거리 안에 닿기만 하면 속절없이 죽어가는 부하들. 30만 가운데 11마리밖에 없는 호위 까마귀들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기이한 공간으로 조금 깊게 들어간 호위 까마귀 두 마리는 잠시 견디는가 싶더니 결국 추락하고 말았다.
‘정말 죽음이란 말인가?’
‘그럴 리 없다.’
동탄에서 도망쳤다는 미친 비둘기가 심장이 파먹히면서도 ‘죽음이 온다.’. ‘너희도 다 죽을 것.’이라고 저주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제는 두목 까마귀가 아니었다.
까마귀 마을의 우두머리도 아닌, 까마귀 왕국을 세운 왕.
까마귀의 왕이었기에, 죽음이니 사신이니 소문만 무성한 인간 한 마리에게 휘둘릴 수 없었다.
까아악! (덮쳐!)
오른쪽 머리가 능력을 발휘했다. 능력자의 정신계 능력과 식인귀의 지배력이 뒤섞인 것 같은 능력이 펼쳐지며, 주위에 있던 까마귀들의 뇌리에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가 떠올랐다.
쌍두 까마귀의 외침과 동시에 동그란 영역으로 밀려드는 까마귀떼.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천 단위의 까마귀들이 낙하하는 마루를 향해 밀려들었다.
살기의 반경 속으로 밀려 들어와 죽는 순간까지 고작 몇 초가 걸렸지만, 그 몇 초의 죽음이 삽시간에 쌓이고 쌓이기 시작했다.
속절없이 추락하는 까마귀에서 빠진 깃털이 마루의 영역에서 흩날리며 은신 로브에 달라붙었다.
‘저기다!’
오른쪽 머리가 떠올린 이미지는 까마귀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 뒤, 떨어지는 영역을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이었다.
그 상상과 동시에 근처에 있던 까마귀들이 서로를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쩍 갈아지는 상처, 날개를 펼칠 때마다 튀는 핏방울.
까마귀떼는 검은 구름과 붉은 안개가 뒤섞인 듯한 모습으로 변해 마루가 내려꽂히는 방향으로 밀고 들어왔다.
마루는 그런 까마귀들을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깃털과 핏방울이라.’
비행이 가능한 노심 기체에 은신 로브 조합으로 까마귀 왕까지 한 번에 뚫으려고 했건만. 놈들의 저항이 거셌다.
핏방울을 뿌리며 날아든 까마귀떼는 살기를 맞고 굳어서 추락했다. 약한 놈은 즉사, 좀 강한 놈은 전신 마비로 추락.
덧없는 죽음에 공포심을 느낄 법도 하건만, 까마귀떼들은 마치 공포라는 감정이 도려내진 것처럼 달려들었다.
이건 마치···.
‘지배력? 아니. 정신계 능력?’
뉴욕에서 고위급 식인귀를 죽이려고 했을 때, 하위 개체들이 목숨을 버리듯 그 앞을 막아섰던 것과 비슷했다.
‘까마귀에게 지배력이 생겼다고?’
단순히 지배력이라고 보기엔 까마귀의 움직임은 다분히 전술적이었다. 그걸 생각해 본다면 텔레파시 능력자가 떠올랐다.
머리가 두 개인 까마귀를 바라보는 마루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까마귀 우두머리를 잡아 까마귀떼를 통제하겠다는 생각을 깨끗하게 버려버린 마루가 로켓엔진의 출력을 높였다.
그렇지 않아도 가속이 붙기 시작한 노심 기체가 순식간에 음속을 돌파했다. 천둥소리 비슷한 울림이 대기를 흔들며 쌍두 까마귀를 향해 검붉은 그림자가 쏘아졌다.
까아아악! (막아!)
천 단위 만 단위로 흩어져 비행선의 포격 피해를 줄인 까마귀들이 성난 벌떼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성층권 비행선에서 정보입니다. 놈들이 전부 이곳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모이고 있다고? 영상 켜봐.]필사적으로 날아오는 까마귀 무리를 상공에서 보면 검은 뱀처럼 보였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뱀떼처럼.
‘이거 죽여달라고 하는 거지?’
김 양은 차려진 밥상을 그냥 지나갈 여자가 아니었다.
[목표 최선두. 주포 발사!]공기의 마찰로 하얗게 타오른 레일건 포탄이 까마귀로 이뤄진 뱀의 머리를 뚫고 들어갔다.
쿵-
몇 킬로미터 상공까지 치솟는 먼지 구름과 파편. 까마귀들은 레일건의 끔찍한 화력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광학 조준기 사용 불능.] [짙은 먼지로 레이저 조준기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쯧- 주포 정지. 부포로 전환. 제압사격실시.] [부포로 제압사격한다.] [발사!!!]하늘에서 강철의 소나기가 쏟아졌다.
‧
까마귀 왕의 판단은 정확했다.
고속으로 이동하는 비행체, 인간이 만든 비행기를 공격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간단한 것은 들이받는 것.
버드-스트라이크(bird-strike, bird aircraft strike hazard) 또는 조류충돌(鳥類衝突)은 인간의 날개를 꺾는 방법이었다.
‘놈이 보인다.’
‘죽음은 무슨 죽음.’
부하들이 죽어가면서 뿌린 핏방울로 은신이 깨졌다.
보이지 않는 죽음에서 보이는 적이 된 것.
까아아악! (놈이 보인다!)
까악! (죽여라!)
두 개의 머리가 동시에 울부짖었다.
뚜렷한 목표가 보이자, 부하들을 조종해 그것을 공격하기 편해졌다. 놈에게 닿기 전 부하들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날아가던 관성은 남아있기 마련.
까아아악! (돌격!)
까마귀 왕은 부하들을 탄환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퍽- 퍼퍼퍼퍽-
일반적인 엑소슈트였다면 충돌을 버티지 못했겠지만, 노심 기체는 버텨냈다.
‘왕이라고 하더니 한다는 짓이 부하들을 갈아 넣는 거냐?’
[방어막 전개.] [방어막 가동합니다.]웅-
강력한 파동음과 함께 볼록렌즈처럼 둥그스름한 투명막이 만들어졌다.
일반 노심 아머가 정면 상체를 가리는 정도였음에 반해, 마루의 노심 기체는 동그란 거품처럼 완전한 구(球)의 형태였다.
버드-스트라이크로 막을 수 있으리라 여유를 부리던 까마귀 왕이 당황했다. 처음부터 방어막을 사용했다면 미리 피했을 텐데.
‘피. 피해.’
‘막아. 당장 막아.’
왼쪽 머리가 몸을 움직였고 오른쪽 머리가 부하들을 닦달했다.
까악!
까으악!
온몸을 던져 앞을 가로막는 까마귀들. 하지만 마루가 이클립스를 믹서기처럼 돌리자, 순식간에 피곤죽으로 변해 버렸다.
그 잠깐의 틈을 타 도망치는 까마귀 왕. 수직으로 떨어지던 노심 아머가 거의 직각으로 기동하며 까마귀 왕의 뒤를 밟았다.
오른쪽 머리가 필사적으로 부하들을 끌어모았고 왼쪽 머리가 고개를 돌려 마루를 향해 부리를 벌렸다.
두근-
순간적으로 조이는 듯한 감각에 마루는 그대로 기체를 비틀었다.
■■■■■■■■■■—-aaaaaaa—
강력한 음파가 얼음송곳처럼 찌르곤 사라졌다.
‘음파 공격?’
왼쪽 머리가 마루가 피할 줄은 몰랐는지, 다시 부리를 벌렸다.
▮▮▮▮▮▮▮▮▮▮▮▮▮▮▮▮—
동그란 음파가 보자기처럼 펼쳐지며 마루를 덮쳤다.
큭-
날카롭고 뾰족했던 처음과는 달리, 넓게 펼쳐진 음파가 마루의 돌진을 흔들었다. 노심 아머의 방어막이 음파를 상쇄시켰지만, 추격 속도가 느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치지직- *포 발사하**음-치익]사방으로 흩어졌던 까마귀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생체 EMP(electromagnetic pulse) 효과가 생겼다.
처음에는 울산 까마귀를 확보하는 계획이었지만, 마루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쏴.] [삐이익-**음. 삐잇]김 양의 대답과 함께 심장이 요동쳤다.
마루는 그대로 방향을 꺾었다.
두근
두-근-
두—근—
시간이 느려지며 보이는 광경.
허겁지겁 도망치는 쌍두 까마귀를 향해 하얀색 빛의 기둥이 떨어졌다.
하나. 둘. 셋···.
무려 10개가 넘는 빛의 기둥이 쌍두 까마귀를 향해 떨어졌다.
그 찰나의 순간. 마루는 볼 수 있었다.
왼쪽 머리가 빛의 기둥을 향해 부리를 벌리는 것과 동시에, 까마귀가 움켜쥔 검은색 조각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뒤섞이는 것을.
우우우웅-
왼쪽 머리가 뿜어낸 음파가 검은색 파편에서 흘러나온 기운과 섞여, 하얗게 불타는 레일건 탄환을 살짝 빗겨냈다.
쿠우우우웅—
빗겨나간 레일건 탄환이 대지를 터뜨렸다. 소형 전술핵이 터진 것처럼 피어오르는 버섯구름을 뚫고 계속해서 레일건 탄환이 쏟아졌다. 연달아 터지는 질량 공격에 피어오른 먼지 구름이 겹치고 겹쳤다.
마루는 재빨리 거리를 벌리며 외쳤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치이이익— 삐이이이익-]보조 인공지능이 보고했다.
[생체 EMP 효과로 연결이 끊겼습니다.] [놈은 어딨지?] [짙은 먼지 구름으로 동작감지기, 생체 탐지기, 적외선 센서 모두 작동하지 않습니다.] [······.]놈이 죽었을까? 10여 발이 넘는 레일건 포격이라면 마루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한두 발이라면 어떡하든 회피하고 이클립스로 빗겨내 봄직도 하다만, 동시에 쏟아지는 10여 발의 레일건은···.
‘···죽었겠지.’
한두 발도 아니고 10발이 넘는 레일건 포격이었으니까.
‘죽었을까?’
‘죽었다.’에서 ‘죽었겠지.’로, ‘죽었겠지.’에서 ‘죽었을까?’로 변하는 순간. 마루는 먼지 구덩이로 뛰어들어갔다.
30cm 앞도 보이지 않는 시야. 모든 센서는 먹통. 지원 포격도 기대할 수 없었지만, 마루의 직감이 외치고 있었다.
놈이 살아있다.
그리고 어쩐지 이클립스가 진동하고 있었다. 총탄을 막은 것도 아니고, 충격을 흡수한 것도 아닌데도.
우우웅-
이클립스의 진동이 방향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기괴한 감각. 진동으로 주변을 살필 수 있게 된 것 같은 느낌.
마루는 그런 생소한 감각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보다 더 큰 불길함에 집중했다. 머리가 두 개인 까마귀 왕을 놓치면 안 된다는 직감이 점점 더 커졌다.
후- 흡-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이 이클립스의 진동과 결합하면서 머릿속에 레이더가 달린 것처럼 짙은 먼지 속이 떠올랐다. 반지름 15m~20m 정도가 동시에 인식됐다.
그리고 자석에 이끌리는 것처럼 특정 방향으로 이끄는 이클립스의 유도를 따라 내달리기 시작한 마루.
레일건 포격이 만든 커다란 크레이터를 껑충껑충 뛰어넘고 내달린 끝.
반원으로 동그란 공간이 나왔다.
▫▫▫▫▫▫▫▫▫▫▫▫▫▫▫▫—
이클립스의 진동과 노심 아머의 방어막이 뒤섞여 만들어진 동그란 공간 안쪽에 머리가 둘 달린 까마귀가 엎어져 있었다.
날개가 꺾이고 한쪽 다리가 부러진 채, 깃털이 듬성듬성 빠진 모습은 초췌했다. 하지만 마루는 그 모습에 속지 않았다.
정말 탈진 상태라면 이렇게 이상한 방어막을 펼치지 못했을 테니까.
까드드드드드드-
마루가 이클립스를 투명한 반원에 꽂자, 유리 깨지 소리와 함께 동그란 공간이 터졌다. 반원이 깨지면서 짙은 먼지가 안으로 밀려들었다.
탈진한 것처럼 쓰러져있던 쌍두 까마귀의 왼쪽 머리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마루를 향해 부리를 벌리는 순간. 스틸레토가 쏘아졌다.
음파 공격을 취소하고 스틸레토를 덥석 물어버린 왼쪽 머리를 향해 마루의 이클립스가 수직으로 떨어졌다.
까악! (멈춰!)
마루의 뇌리를 울리는 까마귀의 의념. 쌍두 까마귀의 오른쪽 머리가 마루를 노려보며 강력한 정신파와 지배력을 쏘아 보냈지만, 수직으로 떨어지는 이클립스는 멈추지 않았다.
‘어. 어떻게?’
‘항복!’
‘살려줘!’
‘제발 멈춰!’
찰나의 순간.
쏟아지는 쌍두 까마귀의 사념이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이 괴물–’
‘주. 죽어–’
부리로 물었던 스틸레토를 뱉어내고 음파를 쏘려 한 왼쪽 머리가 수직으로 쪼개졌다.
왼쪽 머리에서부터 왼쪽 날개까지 절단하고 내려간 이클립스가 수직으로 꺾이며 오른쪽 머리의 목을 쳤다.
우우우우웅——
검은색 파편을 움켜쥔 쌍두 까마귀의 다리가 뭔가를 하려고 했었는지 버둥거리다 서서히 멈췄다.
그리고 이클립스에서 전해지는 깊은 탐욕.
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웅—-
마루는 그런 이클립스를 그대로 검집에 넣었다.
???????
어디서 지랄이야.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