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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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황제 프란츠 4세.
그는 제국의 균형을 원한다. 하나 그렇다고 그가 좋은 군주인 건 또 아니다. 균형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이 죽을 사건도 서슴없이 일으켜 왔으니까.
실제로 역사에 남을 비극 중 황제의 입김이 닿은 사건이 여럿이다. 황제는 비정한 군주였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상태만을 유지하려 했다.
“비텐바이어 변경백. 그는 선을 넘었지.”
황제의 중얼거림에 시종장이 고개를 숙이며 동조했다.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폐하.”
“짐이 그를 굴복시킬 수 있으리라 보는가? 시종장.”
“물론입니다. 날뛰는 황소라고 해도 밧줄이 여러 개 묶인다면 꼼짝할 수 없는 법입니다.”
황제는 노골적이지만 잘 먹히는 방법을 준비했다.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수였다.
“하지만 놈은 간교해.”
“염려 마십시오, 폐하. 어차피 그래봐야 인간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지금의 압박은 그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미 황제는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비텐바이어 변경백이 다음 수로 바이에른 선제후와 결혼할 거란 점을 예상하고 있었다.
“변경백은 자신의 약혼녀를 믿겠지만 어림없는 일. 짐은 니더바이에른 백작이 결혼하려 한다면, 그녀의 선제후 계승을 막을 테니까.”
황제는 결혼이 추진된다면 니더바이에른 백작을 협박할 생각이었다.
“죽은 바이에른 선제후의 죄를 핑계로 비텔스바흐 가문이 바이에른 선제후직을 계승하는 게 정당한지 황제의 이름으로 의문을 제기하겠네. 그리고 그녀의 계승을 두고 제국 제후 회의를 소집하면 다 짐의 뜻대로 되는 거지.”
제국 제후 회의는 제국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선제후와 황제의 합의체다. 현재 제국의 선제후는 다음과 같았다.
-트리어 선제후.
-마인츠 선제후.
-퀼른 선제후.
-브란데부르크 선제후.
-바이에른 선제후.
-팔츠 선제후.
-작센 선제후.
이중에 바이에른과 작센 선제후 자리가 계승 문제로 현재 공석이다. 나머지 5인에 대해서 황제는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으니, 니더바이에른 백작의 계승을 막는 건 일도 아니었다.
“크흐흐, 니더바이에른 백작도 자기 계승 문제가 투표로 가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 결국 약혼을 파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이건 황제가 발푸르기스의 성정을 몰라서 한 예측이다. 그녀라면 약혼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선제후직도 던져버릴 테니까. 일이 황제의 뜻대로 편하게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의 협박에 그녀가 궁지에 몰릴 거란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바이에른의 선제후 자리에서 비텔스바흐 가문이 밀려난다면, 친족과 가신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폐하의 심모원려하심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황제는 비텐바이어 변경백의 수를 미리 내다보며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과연 드래곤답다고 할까. 하지만 그런 그도 염려되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만약 변경백이 황도에 오겠다는 핑계로 대군을 끌고 오면 곤란해진다. 자칫했다가는 짐이 몽진(蒙塵) 길에 오르는 망신을 당할 수도 있으니.”
아무리 대단한 황제라도 허를 찔리면 도망갈 수밖에. 그리고 그게 제국지존의 위신에 큰 타격이 될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아무리 변경백이 풀이나 베던 천한 혈통이라고는 하나, 제국의 시선이 있는데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시종장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말이야. 지금까지 그의 행적을 보면 충분히 조심해야 옳아.”
황제는 비텐바이어 변경백이 파격적인 대담함으로 많은 승리를 거둬왔음을 알고 있었다.
“그라면 황도를 공격할지도 모른다. 이 도시에서 주특기인 선전과 선동을 병행하겠지.”
“당치 않나이다. 이곳은 제국의 심장이옵니다. 폐하께서 버티고 있는데 어찌 그런 무지렁이가 날뛰겠습니까?”
“하하하, 그렇게 믿기에는 짐의 인기가 다소 부족하군.”
그가 균형을 잡기 위해 펼쳐온 절묘한 계책들은 밖에서 보기에는 단순한 실정으로만 여겨졌다. 실제로 심계가 깊은 비텐바이어 변경백조차 황제의 본질을 알기 전까지는 무능한 자라 얕봤을 정도다.
그래서 빈에서 황제를 향한 지지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폐하께선 그마저도 대비하기 위해 모병을 하고 함정을 준비하지 않으셨나이까.”
“그렇긴 하지.”
황제는 비텐바이어 변경백이 전격적으로 군사를 끌고 올 상황을 제일 걱정했다. 그렇게 되면 비텐바이어 변경백은 역도가 되어 실각할지 모르나, 황제가 원하는 균형은 확실히 박살나니까.
“교활한 변경백은 그대로 말라가느니, 같이 죽는 길을 택할지도 모른다.”
이번 타이밍만 넘기면 자신의 페이스라고 황제는 확신했다. 모든 정치, 외교력을 동원해 상대의 손발을 잘라갈 자신이 있었다.
“너무 걱정 마시옵소서. 사냥감을 잡을 계책이 꼼꼼하니 일에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시종장의 말에 황제는 그제야 마음이 놓여 나직하게 웃음을 흘렸다.
“크흐흐흐. 어차피 날고 기어봐야 결국 짐의 손바닥 안인 것을.”
황제는 승리를 확신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거칠고 강한 적이 이번에도 자신의 발아래 무릎 꿇게 될 것이다.
“드래곤은 언제나 승리한다.”
황제의 말에 시종장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깊이 숙여보였다.
“급보이옵니다!”
그때 헐떡이는 전령이 대전으로 뛰어 들어왔다. 지엄한 황제 면전임에도 의복이 흐트러지고 땀을 비 오듯 쏟아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닌 듯했다.
“이런 자가! 어서 똑바로 의복을 정돈하지 못하겠느냐?”
평소 예법을 중시하는 시종장은 당장 인상을 찌푸렸다.
“됐다.”
황제가 고개를 저은 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전령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폐하! 직할령의 후방이 초토화됐습니다!”
손등에 턱을 괴고 있던 황제는 놀라서 얼굴을 떼며 되물었다.
“지금 뭐라 했느냐?”
“그라츠, 라이프니츠, 글라이스도르프, 마리보르가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지금 도망쳐온 피난민들이 줄줄이 황도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뭐라!”
급기야 황제가 권좌에서 벌떡 일어났다. 황제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누가 감히 자신의 직할령을 건드린 건가?
일단 직할령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대를 떠올렸다.
“고룩할감인가!”
고룩할감은 서열 2위 마왕으로, 황제의 직할령 남쪽에 땅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곧 자신의 추론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고룩할감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와 서열 2위 마왕은 서로에 대해 잘 알았다.
마왕은 황제가 드래곤이란 사실을, 황제는 서열 2위 마왕이 사실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몸이 안 좋다는 점을 말이다.
‘그래, 고룩할감은 구 서열 1위 마왕에게 성명제례술을 얻어맞아 아직까지 회복을 못했다. 최근 그의 아들인 조르카두가 대권을 이어받으니 가망이 없다고 봐야겠지. 조르카두는 아버지의 일을 아직 인수하는 중이라 대외적인 안정을 원한다. 땅을 맞대고 있는 날 때릴 이유는 없어.’
황제는 서열 2위 마왕의 집안을 용의선상에서 지웠다.
“정확한 건 알 수 없으나 적은 언데드였습니다.”
“뭐? 언데드?”
보고로는 언데드가 수십, 수백도 아니고 만 단위의 군세라고 했다. 황제는 아연실색해졌다.
“아니, 그 정도의 죽은 자를 이끌 사령술사가 존재하는 건가?”
황제의 물음에 시종장이 고개를 저었다.
“폐하, 사령술사는 인간과 마족을 가리지 않고 숙청됐습니다. 현재 사령술의 계보는 보잘 것 없습니다. 유일한 예외만 빼고요.”
“피와 죽음의 마왕 페자무트 말인가?”
유일하게 전성가의 사령술사, 아니, 그 이상의 사령술을 쓰는 존재가 마왕 페자무트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사망했다.
“장미의 마왕 로엘린이 그를 죽였다고 하지 않나? 아니, 잠깐!”
순간 황제의 영민한 머리에서 퍼즐이 맞춰졌다.
장미의 마왕 로엘린이 비텐바이어 변경백과 긴밀한 동맹인 건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런데 그 로엘린이 페자무트를 죽였다.
“설마, 페자무트의 죽음이 조작된 건가!”
현재 자신을 공격할 자는 비텐바이어 변경백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역시 황제의 신하. 아무리 제국이 막장이라지만 역도란 낙인이 찍히면 공적이 된다. 그렇다면 다른 이를 시키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차도살인인가.”
황제는 막후에서 제국의 균형을 조율하며 무수히 그런 일을 해왔다. 하여 비텐바이어 변경백의 수법을 단번에 이해했다.
“…크윽. 기가 막히군!”
“폐하.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걱정스러워하는 대시종장의 목소리에 황제는 일단 전령을 내보고는 권좌에 등을 기댔다. 그러다 자신의 등줄기가 흠뻑 젖어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자신이 이렇게 긴장했다는 사실에 그는 기분이 나빠졌다.
“완벽하게 압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비텐바이어 변경백은 이대로 말라죽거나, 발끈해 치고 나와 결국 역도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 한데 마왕을 감춰놓다니!”
“아직 확신은 없습니다. 신이 좀 더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늦는다.”
드래곤의 지혜가 이미 사태를 간파하고 있었다. 황제는 지도를 보며 가리켰다.
“보아라. 뮌헨에서 군대가 짐의 후방 직할령까지 가려면 반드시 빈을 지나가야 한다.”
“그러하옵니다.”
뮌헨과 이번에 습격 받은 그라츠 사이에는 거대한 산맥이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산맥이 끝나는 동쪽에 제국의 수도인 빈이 있다.
뮌헨에서 그라츠까지 내려가려면 산맥을 우회해 빈을 거쳐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데 적들은 갑자기 나타났다. 황제는 산악지대를 가리켰다.
“언데드의 특성을 이용해 이 산맥을 넘어온 것이다. 보라, 여기 로엘린이 다스리는 로제란트가 출발지였겠지.”
황제는 그로스글로크너에 있는 언데드 도시, 모르스 쏠라를 모르기에 출발지를 오판했으나, 나머지는 정확히 맞췄다.
“로제란트에서 산맥을 지나 그라츠까지 가는 길은 250킬로미터 정도다. 이 산악지대를 들키지 않고 통과하는 건 언데드나 가능한 일이다.”
사실 산에도 골짜기를 따라 길이 있다. 하지만 마을 역시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어, 길을 따라 이동하면 들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들은 갑자기 나타났다. 즉, 산 속에서 길을 만들며 왔다는 거다.
“적이지만 감탄이 나오는군. 직할령에서 걷는 세금은 짐이 가진 힘의 근원이다. 그걸 철저히 파괴하다니….”
펜을 든 황제는 지도 위에서 습격받았다는 도시를 엑스자로 그어나갔다. 다 긋고 나자 얼마나 큰 일이 벌어졌는지 그는 실감했다.
갑자기 식은땀이 나며 아득해지는 기분이 됐다. 드래곤으로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이런 위기는 처음이었다.
“놀랍군, 비텐바이어 변경백….”
설마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찔러들어올 줄이야.
“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폐하.”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그 간악한 놈에게 말하면 오히려 제국에 언데드가 횡행하다니요! 폐하 제가 원군을 보내겠습니다, 라고 할 놈이다!”
황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직도 비텐바이어 변경백을 모르겠나? 그렇게 출병해서는 또 그럴 듯한 핑계를 대고 황도를 공격하겠지. 그리고 나서 짐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떠들게 뻔하다.”
“그런 악마 같이 지독한!”
시종장의 얼굴에 두려움이 어렸다. 상대가 너무나도 악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 말이 맞다. 우리는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와 싸우고 있는 것이야.”
***
-면목이 없네. 미안하군.
수정구에 비춘 페자무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내게 사과해왔다. 그도 그럴 게, 화려하게 출병해서 아직도 목적지에 닿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황제 직할령의 도시 7개와 마을 30개를 초토화시켰다. 노략질한 재산은 무려 200만 플로린으로 황실 1년 예산의 네 배나 됐다. 그야말로 직할령을 해일처럼 쓸어버리고 있었다.
-괜찮다. 결과적으로 더 잘 됐으니까.
솔직히 좀 기가 막혔다. 그간 나를 몇 번이고 궁지에 몰았던 페자무트의 병신력이 황제를 제대로 엿 먹이고 있었다. 이자는 진정 모사꾼의 킬러인가? 예측이 안 된다, 예측이.
예측이 안 되니까 이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슬슬 물러날 때가 됐네. 황도에 있는 첩자가 보낸 정보에 의하면 황제군이 그대를 토벌하기 위해 출발했다더군.
-그런가? 얼른 도망쳐야겠군.
페자무트는 목적지도 못 찾는 자신에게 실망해 급격히 자신감을 잃은 듯했다. 제국을 평정할 기세로 출발하더니, 이제는 황제군이 온다니 달아날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그전에 해줘야할 일이 있어. 시간적으로 충분하고.
나는 산맥으로 도망치지 말고 그대로 남하하라고 했다.
-엥? 그쪽은 서열 2위 마왕의 땅이야.
-그러니까 가라는 걸세.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페자무트에게 나는 제국의 깃발을 열심히 들고 가라고 했다.
-깃발이라면 노획한 게 많긴 하네. 중요한 전리품이니 잘 챙겼지.
허영심이 많은 페자무트가 깃발 같은 전리품을 놓칠 리가 없다. 나는 그걸 들고 서열 2위 마왕의 영지로 쳐들어가라 했다.
-적당한 도시 하나 박살내 놓게. 그리고 나서 군대를 물려 산맥으로 도망치라고.
-그게 의미가 있나? 가서 툭 한 번 건드리라는 거 아닌가?
물론 의미가 있지.
-그럼, 대신 싸우기 전에 적이 들을 수 있게 이리 외쳐주게나.
-뭐라고 하면 되나?
-황제 폐하 만세!
페자무트는 웬 뜬금없는 소리냐고 반문한다.
-황제 폐하 만세라고?
-그래, 자네는 이제부터 황제에게 고용된 마왕이 되는 거지.
잘만 하면 황제는 직할령이 다 박살날 상황에서 서열 2위 마왕과 전면전을 된다. 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양쪽이 다투게 만들 작정이었다.
-즉, 자네를 잡으러 오는 황제군과 자네 때문에 급히 출병한 서열 2위 고룩할감의 마왕군이 딱 만나게 되는 거지.
-본왕은 싸움을 붙인 뒤 산맥으로 튀는 거고?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군. 하하하.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페자무트가 질렸다는 듯 날 쳐다본다.
-이게 대체 사람이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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