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61
맛깔나게 때린 싸대기에 브라이테네그 백작이 벌러덩 넘어졌다.
“어이쿠!”
대귀족인 백작이 일개 기사에게 맞아 땅을 뒹굴었다. 세상에 이런 웃기는 꼴도 없을 거다.
나는 여기서 브라이테네그 백작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자기가 받은 모욕에 대해 성질을 낼 기개는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그에 대한 평가를 조금 상향할 의사가 있었다.
“살려주십시오! 발러 경!”
하지만 역시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실질적인 권력에 민감한 브라이테네그 백작은 자기가 뺨을 맞았다는 것도 잊고 매달려왔다. 족제비 같이 생긴 놈이 하는 짓도 비굴했다.
“그날의 무례는 제가 사과를…….”
그나저나 이 새끼는 얼마나 인생을 쉽게 사는 걸까. 자기가 이해 못한다고 비웃어 대고, 자기보다 강해보이니 바닥까지 비굴해지고. 한심해서 말이 안 나왔다.
짜악!
이번에는 반대편 뺨을 갈겼다.
“이 새끼! 지난번에 실컷 비웃고 그냥 튀었더라? 다른 영주들은 선물이라도 내놓고 갔는데, 너는 주둥이 놀린 값 치를 생각이 없는 거지?”
“죄송합니다! 발러 경!”
이런 자는 자기 영지가 새카맣게 타야 정신을 차릴 것 같았다.
“니놈 새끼가 미래를 보고 싶으면 그따위로 행동하면 안 되지!”
짜악!
“하루살이 같은 새끼가 진짜! 오늘만 산다 그거냐!”
짜악!
“나하나 좆대로 살다 가면 뭐 인생 끝인가?”
짜악!
“아주 그냥 백작이라고 인생이 편한 거지?”
“아이구! 제발 살려주십쇼!”
더 견딜 수 없던 건지 브라이테네그 백작이 다리에 매달려 왔다.
“계속 그따위로 해? 브라이테네그에 혈전을 선포할 수도 있으니까.”
“히이익!”
혈전이란 말에 브라이테네그 백작은 화들짝 놀라서 엎드렸다. 그의 영지는 백작령이긴 하지만 별 볼일 없었다. 전쟁이 나면 감당하지 못한다.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발러 경.”
브라이테네그 백작은 납작 기었다. 그쯤 되자 나도 슬슬 화가 풀렸다. 백작 뺨이라 그런지 때리는 게 더 맛깔나기도 했고. 기를 충분히 죽였으니 이제 원하는 걸 꺼내놓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화풀이 때문에 이렇게 윽박지른 게 아니다.
나는 어른이다. 화를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걸 알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5대는 더 때리고 싶었지만, 물질적인 게 더 좋았다.
“흐음. 그런데 말이지, 백작.”
“네네.”
나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말했다.
“지난 번 일로 성이 없어져서 정말 큰일이야. 지낼 곳이 없더군.”
“어이쿠! 그것 참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입니다요.”
“그치?”
“네네.”
“그러면 성이 부서졌으니까 새로 지어야겠네?”
“맞습니다.”
“그래, 그러면 기왕 짓는 거 우리 브라이테네그 백작의 도움을 좀 받고 싶은데 말이지.”
내 말에 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성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자금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하지만 그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자기 영지가 있을 때 잘해. 그게 현명한 거잖아?”
“흐이익…….”
브라이테네그 백작은 공포에 질려버렸다. 하지만 나는 협박만으로 그치지 않고 확실하게 스킬까지 발동했다.
아, 그러게 왜 매사 착하게 사는 사람을 비웃어.
<SS등급 스킬 제국선동을 발동합니다!>
제국선동은 상대의 의식 일부에 영향을 끼치는 능력. 특히 공포나 분노 등으로 감정이 극단적으로 치달을 때 최고의 효과를 본다. 이 스킬이 주로 분노한 민중을 봉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걸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브라이테네그 백작. 성을 하나 지어주면 자네는 안전할 거야. 영원히. 그러니까 자네는 그걸 기쁜 맘으로 하는 거지.”
나는 브라이테네그 백작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그의 무의식에 속삭였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몽롱해졌다.
“안전합니까? 영원히?”
“그렇지.”
“저는 기쁜 마음으로 하는 거군요?”
“그래, 이제 말길을 알아먹네.”
<제국선동이 발동합니다!>
좋아.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대성공입니다! 브라이테네그 백작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합니다!>
단번에 성공했다. 그것도 그냥 성공을 넘은 대성공이다. 브라이테네그 백작은 곧 눈에 총기가 돌아왔다.
“아아! 그렇습니다. 당연히 발러 경을 위해 제가 성을 지어드려야지요. 걱정마십시오. 사실 감춰둔 재산이 상당히 있습니다. 그걸 사용하면 될 겁니다.”
뭐야? 숨겨놓은 재산이 있었어? 이거 완전히 속이 시커먼 놈이었네. 역시 성을 지어달라고 하길 잘했다. 그런데 그때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축하드립니다! 신분 높은 인물을 선동했습니다! 제국선동 숙련3단계에 오릅니다!>
오? 뭐야? 벌써 숙련3단계?
물론 숙련3단계까지는 올라가기 비교적 간단하다. 스킬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다른 스킬들도 숙련3단계까지는 수월하게 올라왔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쉽게 올랐다. 아무래도 지위가 높은 인간을 상대라 그런가 보다. 게다가 그냥 성공보다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 대성공인 것도 한몫 한 것 같았다.
<제국선동 숙련3단계의 효과로 일반인 1,000명을 선동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데. 이제 내 한 마디면 1,000명이 움직인다는 거다. 역시 강철선제후는 전투기술이 아니라도 무시무시하구나.
“제가 발러 경에게 근사한 성을 선물하겠습니다!”
이제 브라이테네그 백작은 성에 관한 문제만큼은 자기 뜻대로 판단할 수 없게 됐다. 나머지는 원래대로의 인간이지만, 날 위해 축성해주는 건 만사 제쳐두고 열심히 하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강철선제후의 힘이었다.
생각해 보면 강철선제후를 초반에 치운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그 녀석이 고렙까지 성장했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두려울 정도다. 나는 단순히 힘만 센 용사보다 강철선제후가 훨씬 무서웠다.
“기대하지.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말씀하십시오.”
“이 호수는 틸리 장군이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땅이다. 절대 건들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그래, 그래. 이제야 좀 맘에 드네. 다시 보니까 사람이 인상이 참 괜찮아.”
나는 흡족하게 웃으며 그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줬다.
“감사합니다! 발러 경.”
그렇게 용무를 마친 뒤에 우리는 되돌아왔다. 그러자 브라이테네그 백작의 기병들이 깜짝 놀라 달려온다.
“백작님! 어찌 뺨이 이렇게 퉁퉁 부우셨습니까!”
내가 귓방망이를 맛깔나게 갈겨놨으니 뺨이 엉망일 수밖에.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백작님께서 숲에서 그만 넘어지셨다.”
당연히 이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병들은 얼이 빠져서는 날 쳐다본다. 하지만 자기들 주인도 맘대로 하는 게 나다. 감히 뭐라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브라이테네그 백작님.”
“예. 발러 경.”
“이거 가는 길에 바르시죠.”
나는 품에서 힐링 포션 한 개를 꺼내 내밀었다. 실컷 줘패고, 성까지 받아낸 대가로 준 것이다. 역시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장사를 잘하는 거 같아.
제국에서 누가 힐링 포션 하나 가지고 성이랑 바꾸겠나?
“아이구, 감사합니다. 뭘 이런 걸 다.”
“그럼, 살펴 가시길.”
이제 가보라고 손을 휘휘 젓자 그는 줄행랑을 쳤다. 제국선동이 먹힌 것과 별개로 공포감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백작 일행이 사라지자 틸리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묻는다.
“자네, 대체 뭘 한 건가?”
“그냥 남자답게 얘기를 나눴습니다.”
별 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자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참 재밌는 친구로군. 내 속이 다 시원하구먼!”
틸리는 평소에 브라이테네그 백작에게 감정이 많았던 듯 통쾌해했다. 나는 앞으로 브라이테네그 백작이 이 호숫가를 건들 일은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참으로 일처리가 대단하군. 좋네. 이렇게 된 이상 자네의 진영에 합류하지.”
“감사합니다! 장군.”
드디어 요한 체르클라에스 폰 틸리 장군을 고용하게 되는구나. 앞으로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하는 입장에서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그런데 여기 살림살이가 있어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군. 보름 안에는 자네의 영지로 찾아가지.”
“제 수하들이 거들어 드릴 겁니다. 막스, 텔만. 여기서 장군을 도와드리고 라이테르로 같이 돌아오도록.”
“알겠습니다!”
나는 틸리와 악수를 나눈 뒤 말에 올라탔다.
“장군. 장마가 그칠 때 제국 서남부로 향할 것입니다.”
“역시 그랬나. 흠, 앞으로 반 년 정도로군. 그 사이 모병한 병사들을 강병으로 만들어야겠어.”
“장군만 믿을 뿐입니다.”
출정하게 되면 틸리를 내 대리장군Lieutenant General으로 삼을 셈이었다.
“자, 그러면 보름 뒤에 라이테르에서 뵙겠습니다.”
나는 깃털 모자를 들어 인사해 보이고는 먼저 길을 나섰다.
***
혼자 가도를 내달렸다. 좌우로는 억새풀처럼 키 높은 풀이 넓게 펼쳐진 곳이었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게 마치 바다위의 물결 같았다.
틸리 장군의 일 때문에 난 기분이 좋았다. 그가 내 연대들을 강병으로 만들어 주겠지. 나는 그렇게 만든 정예 연대들은 전투가 끝났다고 해산하지 않고 상비군처럼 유지할 작정이었다. 어차피 대전쟁이 코앞이니까.
“앞으로 돈을 많이 벌어야겠군.”
연간 150만 플로린이라…. 유지비가 아찔하구먼. 군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번에 반드시 페자무트의 재산을 탈탈 털어내야 한다.
앞으로 할 일이 많겠다.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필립도 데이워커로 만들어야겠는데. 로엘린에게 완벽한 믿음을 줘야하니까.
“음…?”
그런 생각을 하며 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저 앞에 호리호리한 인물이 하나 보였다. 그는 어찌된 영문인지 검을 세워 들고 가도 한 가운데에서 버티고 있다.
뭐지?
의아해하며 다가가 보니 여자였다.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굉장한 미녀였다. 눈꼬리가 올라가고 강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 미모가 실로 대단했다. 멀리서도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감탄하는 대신 경계심을 품었다. 저 정도의 미모라면 분명히 유명한 영웅일 거란 짐작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상하다. 저 정도면 유명할 수밖에 없는데. 이 <인류의 수호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보가 바로 히로인에 관한 거니까.
히로인들은 백인백색의 매력으로 무장했기에 연애 루트를 열어보려는 플레이어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저 여자는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저런 규격 외의 미모가 일반인일 리도 없고.
“안녕하시오? 숙녀분.”
나는 가도에서 마주친 그녀에게 깃털 모자를 벗어 인사해 보였다. 하지만 다른 한 손을 조용히 마법을 준비했다. 뭐랄까, 나 자신은 생각 이상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요즘 어지간한 마왕을 봐도 덤덤한데 이럴 수가. 온몸에 털이 곤두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직감이 맹렬히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네가 발러냐?”
역시 안 좋다. 상대는 날 알고 있었다. 결코 우연히 마주친 게 아니라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소. 내가 발러요. 그러는 숙녀분께서는 뉘시오?”
“나는 팔케라고 한다.”
팔케?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은 없는데. 이름도 모를 이런 강자라.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수호자. 분명히 상대는 수호자였다.
나는 조심스레 그녀를 살폈다.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일반적인 갑옷이 아니다. 정말 최소한만 가리는 스타일. 자유로운 움직임을 중시한 갑옷이었다. 게다가 저 검… 나도 과거 들어본 적 있는 유명한 검객의 유품이었다.
이것만 봐도 나는 상대의 정체를 파악했다.
바로 수호자 중 하나인 절세검객, 대검호의 마지막 전인이 틀림없었다. 안 그래도 라이테르 기사가문의 일을 처리할 때 절세검객과 마주칠 거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저쪽이 이탈해 버려서 만남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올 줄이야. 설마 여자일 줄도 몰랐다. 하긴 수호자가 당연히 남자일 거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편견이겠지.
“팔케. 내게 무슨 볼 일이오?”
그리 물으면서도 입맛이 쓰다. 딱 봐도 좋은 의도로 찾아온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으니까.
부스럭.
주변의 키 높은 풀속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녀의 조력자나 부하들이 있는 것 같았다. 눈앞의 여검객만으로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적이 더 있다니.
생각 이상으로 암담한 상황이었다. 어쩌면 오늘이 이 발러의 재삿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을 들고 누군가를 찾아왔다면 뻔하지 않나?”
팔케의 대답에 내 머리가 부산히 돌아갔다. 어쩌면 내 악행을 처단하겠다고 온 걸까?
나는 라이테르 기사가문을 정리한 뒤, 개인적으로 절세검객으로 추정되는 자에 대해 조사를 했었다. 단편적인 정보 밖에 없어서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소식을 듣긴 했다.
라이테르 기사가문에서 스스로 대검호의 마지막 전인이라 주장하는 검객을 고용했는데, 세금을 걷는 과정에서 병사 다섯을 죽이고 이탈했다는 것.
그래서 나는 그 자가 상당히 정의감이 강한 성격이라 짐작해 왔다. 어쩌면 오늘 나타난 건 내가 라이테르 성을 통째로 박살낸 걸 따지러 온 게 아닐까? 과도한 행동이었다고 생각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팔케가 꺼낸 얘기는 내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네놈이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의 끄나풀이란 걸 알고 있다.”
“뭐라?”
“발러, 인류를 위해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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