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esperson Kim Yubin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 듀레인 회장의 당부(2)
“네?”
“이사회 안건에 E디테일을 올리겠네.”
마크 램버트는 듀레인 회장이 당연히 안건 상정을 거부할 거로 예상했다.
그래서 준비한 패가 셀아키텍트에 대한 부적절한 투자와 미래전략연구소 팀장인 앤 해밀턴과의 관계를 폭로하는 것이었다.
마크 램버트는 에이티제이를 인수하면서 셀아키텍트가 에이티제이의 블록버스터 약품인 애브비의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해 임상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듀레인 회장의 투자는 회사의 결정과 반대되는 방향이었다. 개인적인 투자를 할 수는 있지만 듀레인 회장의 명성을 봤을 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 결정을 내리는 데 손녀인 앤 해밀턴과 제네스 코리아의 말단 사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듀레인 회장의 명성에도 금이 갈 수 있었다.
이 패를 준비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듀레인 회장이 시원하게 승낙을 한 것이다.
자신이 준비한 패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이사회 안건상정을 승낙받으려 했던 마크 램버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동분서주하며 유빈, 앤, 그리고 듀레인 회장 세 사람의 관계를 밝힌 톰 로렌스의 노력은 그대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왜 그렇게 놀라는가?”
“아, 아닙니다.”
램버트를 흥미롭게 쳐다보던 듀레인 회장이 지나가듯 물었다.
“자네, 한국에 로렌스를 보냈나?”
“······그게 얼마 전에 아시아 리전을 한 바퀴 돈 적이 있습니다. 그때 잠깐 들렀을 겁니다.”
“그래?”
“시장 조사를 위한 출장이었습니다.”
“흐음, 그렇구먼.”
알 듯 모를 듯한 잔잔한 미소를 지은 듀레인 회장은 잠시 램버트를 응시하다가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한 가지 조건이 있네.”
“조건이요?”
듀레인 회장의 질문에 마크 램버트의 굳어졌던 표정이 조금 더 굳어졌다.
“나비로이에 한해서 각 리전에 자율권을 주게.”
“자율권이라면······.”
“자네가 유럽에서 E디테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만큼 다른 리전에도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떤가 해서 말이네.”
마크 램버트가 듀레인 회장의 숨은 뜻을 파악해 보려 했지만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다른 리전에서 도대체 무슨 시도를 한단 말인가.
나비로이의 글로벌 런칭은 이제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기존의 전통적인 영업 방식 말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
남은 기간을 떠나서 새로운 시도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그렇지만 듀레인 회장이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조건을 내걸을 리도 없었다.
“힘들겠는가?”
“그럴 리가요.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다른 리전에서 어떤 수를 써도 2년간 철저하게 준비한 E디테일만큼 성공할 리도, 이슈가 될 리도 없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바라네. 자, 열심히 해 보게.”
듀레인 회장이 마크 램버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줬다.
손이 닿을 때 잠깐 움찔했지만, 마크 램버트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듀레인 회장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 * *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누구보다 일찍 아시아 본부에 출근한 유빈이 컴퓨터를 켰다.
이제 본격적으로 BD 팀의 업무를 시작할 때였다.
“자, 메일부터 확인할까.”
유빈이 가벼운 손놀림으로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했다.
몇 개의 새로운 메일이 와 있었다.
습관적으로 제일 위에 있는 메일을 열자 나비로이의 글로벌 런칭과 유럽 리전에서의 E디테일을 알리는 기자 회견과 런칭 쇼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E디테일이 뭐지?”
궁금했지만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지 않아 다음 메일을 확인하려던 유빈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회장님?”
듀레인 회장에게 온 메일이었다. 유빈이 곧바로 메일을 클릭했다.
Dear. 유빈.
아시아 리전에서의 새로운 일에는 잘 적응하고 있는가? 새로운 업무와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
그래도 자네라면 잘하고 있을 거로 생각하네.
아시아 본부의 매니저로 발령 났다고 했을 때, 몇 가지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전화상으로는 길 것 같아서 이렇게 메일을 보내네.
부디 옛날 사람의 잔소리로 생각하지 말고 자네를 아끼는 나의 마음이라고 받아들이기를 바라네.
유빈, 자네는 상대적으로 짧은 경력으로 그것도 젊은 나이에 매니저의 자리에 올랐으니 드러나지는 않아도 견제하거나 질투하는 무리가 생길 걸세.
인간이 모여 있는 집단이라면 어쩔 수 없지.
욕심, 질투 그런 감정들이 만들어 내는 현상이지.
극복해 내는 과정에서 아군도 생길 거고 심하게 말하면 적도 생길 걸세.
자네라면 그들의 견제도 현명하게 극복할 거로 믿지만, 그런 과정에서 적은 최소화하고 믿을 수 있는 동료는 최대한 많이 만들게.
그 방법을 깨우친다면 위기를 극복할 때마다 동료는 많아지고 적은 줄어들걸세.
인생도 마찬가지지만 회사 생활에서 인맥만큼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덕목이 없다네.
좋은 동료를 만들게.
그에 더해서 한 가지 덧붙이자면 모든 사람과 함께 갈 수는 없네. 자네와 생각과 성향이 완전히 반대인 사람도 있을 수 있네. 무리하게 그런 사람까지 챙기려 하다 보면 에너지만 빼앗길 걸세.
같이 갈 것인지 아닌지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 사람을 잘 살펴보게.
며칠 전 마크 램버트와 독대를 했네. 이사회가 열리기 전이었지.
그에 과거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해 주겠네.
내가 언젠가 마크 램버트에게 왜 그렇게 효율성을 중시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네. 그 당시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한참 후에 그가 술에 취해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더군.
마크 램버트의 아버지는 브루클린에서 작은 제조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자 공장장이었네. 대기업에 납품하는 회사였지.
잘 유지되던 회사는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어려워지기 시작했네. 그때 주변 사람들이 어려울 동안만이라도 직원들을 해고하라고 마크 램버트의 아버지에게 조언했지만, 직원을 아끼던 그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네. 결국, 빚을 갚지 못한 회사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네.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불행한 일들이 이어졌네. 어린 마크 램버트는 그때 직원들만 해고했다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을 거로 생각했네. 그런 마음이 이어진 거지.
어떻게 생각하면 마크 램버트는 나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 걸지도 모르네. 내가 없어져야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한 거지.
어떤가?
그를 겉으로만 알았을 때와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나?
물론 동정하라는 뜻은 아니네.
그의 생각과 신념에 관해서는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그 확고함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으면 그를 상대하는 데 혹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걸세.
이번에 그는 E디테일이라는 자신의 신념이 담긴 시스템을 개발했네. 그리고 이사회에서 승인을 받았지.
그가 야심차게 준비한 나비로이의 E디테일 성공 여부에 따라 제네스라고 하는 배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결정이 될 걸세.
자네가 참고할 수 있도록 E디테일의 발표 자료를 첨부했네.
유빈은 메일을 끝까지 읽고 싶었지만, E디테일에 관한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첨부 파일을 클릭했다.
이사회에서 승인되었다면 듀레인 회장도 동의했다는 의미였다.
천천히 PPT 파일을 넘기는 유빈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과연······.”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 만들어진 시스템이었다. 듀레인 회장의 말처럼 곳곳에 군더더기 없는 효율성이 녹아 있었다. 다만, 유빈의 예상처럼 시스템은 사람이 끼어들 여지를 최대한 배제하고 있었다.
마크 램버트가 승부를 걸었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듀레인 회장은 무슨 생각으로 이걸 승인했을까? 그리고 E디테일을 자신한테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메일의 뒷부분에서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발표를 들으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지만, 나는 판단을 내리지 못했네.
E디테일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영업방식과는 패러다임 자체가 다른 것이었기에 더욱 판단하기가 어려웠네.
내가 미래의 변화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걸까?
어찌 됐든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과거의 인물인 내가 돼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지.
그 대답을 할 수 없기에 나는 조건부로 이사회 안건 상정을 승낙했네.
난 그 답변을 새로운 세대에게 맡겨 보고 싶네.
그래, 바로 자네에게.
내가 너무 큰 부담을 주었나?
내가 아는 자네라면 나뿐만이 아니라 마크에게도 새로운 길을 보여 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네.
이번 나비로이의 런칭은 단순한 약품의 런칭이 아니라 회사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시험이 될 걸세.
그 말은 자네가 이번 기회에 두각을 드러낸다면 임원들에게 존재감을 보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크 램버트와의 거리도 좁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는 뜻이네.
부디 마크 램버트, 그리고 나에게도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신선한 한 방을 날려 주길 기대하겠네.
Sincerely Yours, 다니엘 듀레인.
메일을 끝까지 읽은 유빈이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너무 많은 내용이 들어 있어서 마음과 머리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에게 품고 있는 회장의 무거운 기대가 어깨를 짓누르려 했지만, 유빈은 움츠려 들지 않았다.
회장의 당부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가야 할 길이었다.
“기회인가······.”
BD 매니저로서 그는 이미 큰 그림은 그려 놓고 있었다. 이제는 그림의 세세한 부분을 칠할 때였다.
가장 먼저 손을 대야 할 일은 듀레인 회장의 당부처럼 동료를 구하는 일이었다.
돌아보면 한국에서도 유빈은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여자친구인 주서윤은 물론이고 이혁 지점장, 동기인 황연희, 메디파트너스의 최재승 대표와 말과 그림의 박정균 과장까지 그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 자리까지 올 수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CEO까지는 가야 할 길이 구만리였다.
이번 BD 팀의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함께 길을 걸을 수 있는 동료가 필요했다.
유빈이 판단하기에 마크 램버트가 추진력이 있는 리더라면 톰 로렌스는 그 뒤를 받쳐 주는 책사 같은 존재였다.
둘 사이가 개인적으로 어떨지는 모르지만, 업무적으로는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 관계임이 확실했다.
유빈이 원하는 것은 그들 이상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팀이었다. 최상의 성과를 내면서도 서로를 북돋워 주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팀.
최상렬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그에게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사람들을 아우르고 동시에 그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힘. 저는 이 힘이 CEO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제가 높이 올라가는 데 도움을 줄 겁니다.’
최상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들려주는 다짐이었다.
‘미스터 나라옌이 뉴욕에서 돌아오면 바로 발령을 낼 수 있게 해야 해.’
나비로이의 글로벌 런칭은 2개월 후인 4월이었다.
유빈은 침착하게 한 가지씩 해치우기 시작했다. 우선 뉴욕에 있는 나라옌 CEO에게 메일을 보냈다.
아시아 본부 전 직원의 인사 자료를 확인하려면 그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