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21)
122화 혈마 박수호 (1)
“마가 발호해?”
“그렇습니다.”
남궁진천은 급하게 전해온 서신을 읽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마몬족의 힘을 연구하며, 무공이 아닌 마공을 발전시켜 익히는 중원인은 역사 이래 종종 등장해왔다.
그런데 마공을 익힌 이들은 마몬족과 같은 취급을 받는지, 중원인을 죽여야 공적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종족을 가르는 진영이, 익힌 무공에 의해서도 갈려버리는 것.
종종 등장하는 마인들은 중원인들 사이에 암적인 존재였다. 한번 놈들이 세를 불리기 시작하면 그 시대의 중원인들은 항상 크게 세력이 쇠퇴해 마몬족이 전성기를 맞이하곤 했다.
한때 구천 행성의 80%까지 마몬족과 마인들이 차지한 적이 있을 정도.
끔찍한 소식이지만, 남궁진천은 서신 하나로 급히 토벌대를 꾸리지는 않았다.
“조사단을 꾸려라.”
“존명!”
격전지가 아닌 중원인 진영에서 일어난 일이다. 격전지와 먼 그곳은 후방으로 취급받는다.
오랜 역사를 가진 가문들이 많다곤 하나, 평화에 안주해 실력은 형편없는 가문들이 대부분이다.
후방 중에서도 최후방이랄 수 있는 설산 끝자락 문씨세가에 일어난 일이다.
그저 작은 소동으로 끝날지, 마교 발호로 인한 혈겁으로 번질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일이다.
*다그닥, 다그닥!
험한 산비탈에 난 좁은 길을 사두마차가 안정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것이 재능?’
왕일은 혹시 마차를 몰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신들린 운전 솜씨를 보이고 있었다.
이건 마치 마차를 모는 게 아니라, 말들이 알아서 달리고 있는 듯한 느낌.
인마일체의 경지!
“어?”
왕일은 좁은 산길의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돌무더기를 보고 급히 고삐를 잡아챘다.
히이이잉!
놀란 말들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즉시 속도를 줄여 부딪치기 전에 멈춰 설 수 있었다.
“와하하하! 멈춰라!”
이미 멈췄지만 한 번 더 경고성을 발하며 나타난 사람들은 척 봐도 산적으로 보이는 무리였다.
순식간에 열댓 명이 마차를 포위했다.
왕일이 잔뜩 긴장한 가운데, 마차에서 내린 수호가 물었다.
“뭐야?”
“뭐긴 뭐야? 산중대왕이시다. 하하하!”
“……?”
수호가 당진철을 바라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산중대왕이 뭐야?”
“산적들이오. 길을 막고 통행세를 걷거나 강도짓을 하는 놈들이오.”
“아, 약탈자 같은 거네.”
지구에도 저들과 같은 무리들이 필드를 떠돈다. 수호는 별거 아니란 듯이 마차로 다시 들어갔다.
“건우야, 들어가자. 약탈자래.”
“네, 삼촌.”
약탈자라면 지구에서는 쫓겨난 범죄자 무리다. 높아 봐야 C급, 대부분은 E, F급의 하위 각성자들.
자신까지 손쓸 필요가 없다.
수호의 무관심을 자신에 대한 신뢰로 받아들인 당진철이 굳은 얼굴로 나섰다.
“대협의 믿음에 보답하도록 하겠소.”
당진철이 진지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구의 약탈자들과 다르게 구천 행성의 산적들은 꽤 실력 있는 고수들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곳이니까.
“흐흐흐, 영웅께선 쉬운 길을 두고 왜 어려운 길로 가려 하시오?”
무식하게 큰 덩치만큼이나 큰 대도를 쥔 녀석이 껄렁거렸다.
“쉬운 길 좋지.”
“클클, 말이 통하려나 보오. 특별히 싸게 해 드리리다.”
당진철이 품에 손을 넣는데도 산적두목을 보니 대충 견적이 나왔다.
‘어중이떠중이이거나.’
돈주머니라도 꺼내는 줄 알고 방심하거나.
‘상상 이상의 고수거나.’
무슨 수를 쓰든 막을 대처할 자신이 있어 방심한 척 위장하는 것이거나.
어느 것이 되었든 싸운다는 선택지엔 변함이 없기에, 당진철은 새로운 무기를 꺼내며 최고의 수를 펼쳤다.
파파팟!
당진철의 손이 품에서 빠져나오며 비도 세 자루가 연달아 날았다. 세 놈이 고꾸라지는 사이 다른 손이 비도를 날렸고, 12자루 비도가 모두 품을 떠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크어억!”
12명의 산적들이 놀랄 틈도 없이 미간에 비도 하나씩을 박고 고꾸라졌다.
“어…….”
순간의 상황 파악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산적 두목을 보니 덩치 큰 애송이다.
경험도 없고, 실력도 없고, 눈치도 없는 놈이다.
“시, 시발!”
뒤늦게 달려드는 녀석을 보며 당진철의 손이 뒷주머니를 찾았다. 새 무기로 인해 전에 쓰던 비도는 한데 뭉쳐 뒷주머니에 차고 다니는 중이다.
슈슉, 챙!
그래도 두목이라고 한가락 하는 놈인지, 대도를 비껴 쳐 비도를 막고는 두 걸음 더 접근했다.
하지만 그뿐.
급소만 노리고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뛰어오는 녀석이다.
슈슉, 챙, 퍽!
“크아!”
공기를 가르고 날아간 두 자리 비도가 노린 건 어깨와 허벅지.
본능적으로 눈과 가까운 거리로 날아오는 어깨를 노린 비도는 막았으나, 허벅지엔 그만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자세가 무너진 녀석이 이를 악물고 다시 한 걸음 내딛었으나 그뿐이었다.
촤악!
“……끄, 끄으.”
날지 않고 손에 들린 비도는 더없이 날카로운 단도다. 목을 베고 지나친 검에 피가래가 끓으며 기도를 막았다.
뒷목에 칼을 박아 버둥거리는 녀석을 처치하자 운 좋게 살아남은 산적 셋이 땅에 뿌리라도 내린 듯 멍하니 있었다.
완전히 겁에 질려 전의를 상실한 얼굴이다.
비도술의 고수를 앞에 두고 등을 보이고 도망갈 수도 없고, 맞서 싸울 수도 없는 상황.
“이야, 무공 선생 깔끔하네.”
창문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어 보고 있는 수호가 박수쳤고, 건우가 눈을 반짝였다.
“잘 봤지? 저렇게 싸워야 해.”
“네, 삼촌.”
얼마나 깔끔하고 좋은가?
멀리서 비도를 던져 사냥감을 잡는다.
피 튀길 일도 없고, 살상력도 뛰어나며 거리를 두고 적을 상대하는 방법인지라 안전하지 않은가?
‘어디 경신법의 고수라도 하나 잡아야겠군.’
좋은 보법이나 신법 하나만 구하면 건우에게 안성맞춤이다. 비도를 던져보고 상대 못할 것 같으면 부리나케 도망가면 그만이다.
일곱 살의 사냥법으로 아주 그만이지 않은가?
“다 했으면 비도 줍고 얼른 타.”
“잠시 기다리시오.”
당진철이 살아남은 산적 셋을 향해 한 걸음 내딛자 수호가 의아한 듯 물었다.
“쟤들도 잡게?”
“당연한 것 아니오? 경로가 노출될 수 있소.”
“와, 잔인한 놈이네.”
길을 막는 놈만 처치하면 되지, 굳이 전의를 상실한 놈들까지 죽여야 할까?
“……문씨세가를 아예 엎어버린 대협께서 하실 말씀은 아니오만.”
“난 안 죽였는데.”
덤비는 놈만 죽였다.
마지막은 그냥 집만 무너트렸고.
“살인멸구는 비일비재한 일이오. 저들이 죽어야 하는 이유는 눈과 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하오.”
“어휴, 건우야. 넌 저런 거 배우지 마라.”
“네, 삼촌.”
“적당히 배부르면 살려도 주고. 그래야 또 잡을 거 아냐?”
수호가 마차에서 내려 손을 휘휘 저었다.
“다들 갈 길 가.”
“가, 감사합니다.”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어, 그래.”
부리나케 도망치는 그들을 보며 당진철이 고개를 저었다.
“대협의 생각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소. 저놈들이 말을 옮기면 앞으로 남궁세가로 가기도 전에 싸우다 진이 빠지겠소.”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냐?”
맹수들이 먹을 만큼만 사냥하는 것은 오래 먹고 살기 위해서다. 모조리 죽어 봐야 썩은 고기밖에 더 만들겠나.
“말 옮겨주면 좋지.”
어중이떠중이들은 겁나서 도망칠 것이고, 알짜 고수들만 앞으로 길을 막아서지 않겠나.
그런 고수들은 보물이나 비급을 품고 있다.
“가는 길에 전리품도 줍고 말야.”
굳이 찾아서 사냥 갈 것도 없이 알아서 찾아와 줄 기회를 왜 날리나?
“후, 나도 모르겠소.”
어차피 복수행을 위한 길.
당진철은 더 이상의 설득을 포기하고 그저 비도 날을 정비했다.
앞으로의 싸움이 부담스러우면서도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아버지, 어머니. 지켜보십시오.’
모용가를 향한 아들의 복수를.
아니, 강호를 향한 당문의 복수를…….
*수호 길드는 다른 여타의 길드와는 참 많은 것이 다르다.
일단 서울 시티 내가 아닌 필드에 상주하는 길드로, 그 자체가 시티의 역할을 하는 곳.
콘크리트 장벽 대신 거대한 나무들이 오밀조밀 자라나 큰 장벽을 이뤘다는 것은 수호시티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한때 13구역 지정까지 논의되었지만 7성 던전 등장과 필드의 빠른 우범화, 몬스터들의 세력화 등으로 인류 행동반경이 줄어들며 보류된 상태.
수호시티 내의 국가 기관은 없으며 모두 길드 사유 시설이다.
호수에 비견될 만한 넓은 해자가 성을 둘러싸고 있어 어지간한 소형 몬스터의 침입을 원천봉쇄하기에, 공성전에 아주 유리한 구조의 성.
아직 5%도 개발되지 않은 수호시티 외성은 버려진 필드의 모습 그대로이지만, 실제로는 몬스터들이 없는 안전지대이다.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야수들은 그 자체로 시티의 훌륭한 경비인력.
이렇듯 필드의 몬스터들과 성의 수호를 위해 야수 전력만으로도 충분한 수호 길드이지만, 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지이이잉.
수호 길드 외성 한쪽에 붉은 포탈이 생겨나 있었고, 출동한 장비차량들이 던전의 에너지 측정을 마쳤다.
던전 규모 – 레벨 5 (5870)
남은 횟수 – 314 (1843180)
브레이크 – 70. 23 : 54 : 41
김미소는 한숨을 쉬었다.
“이건 감당할 수 없네요.”
시티 내에 생성된 포탈이다.
이 일대를 몬스터들과의 격전지로 만들 것이 아니면 무조건 클리어해 내야 하는 던전.
수호가 자리를 비운 지금도 5성 던전 선발대 정도는 꾸릴 수 있다.
A급 용병 전력만 해도 박준호, 명진, 한동수, 장재식, 최수영까지 다섯 명이다.
여기에 요즘 매니저 업무보다 부쩍 사냥 시간이 늘어난 서민수 대리까지 용병으로 치면 여섯 명.
은퇴해 전력 외 취급이긴 하지만 김미소 본인도 A급 각성자.
5성 던전의 권장 선발대는 A급, 공략정보를 획득한 이후 권장 공격대가 B급 풀파티다.
‘나까지 나서지 않아도 선발대는 충분해.’
선발 공략이 가능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여태 뽑은 인턴 전력으론 별도의 공격대를 꾸리는 게 무리다.
이 넓은 땅을 차지한 수호 길드의 정식 공격대는 1개 팀으로 봐야 했다.
공격대 하나로 5성 던전을 70일 안에 314번 공략하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외부에 대여할 수밖에 없는 일.
“관리국엔 연락했나요?”
비서 이소진이 대꾸했다.
“네. 곧 파견 직원 온답니다.”
길드 영역 내의 모든 던전은 발생시 관리국에 신고해야 한다.
“준호 씨는요?”
“복귀중이에요.”
“일단 선발대부터 꾸리죠.”
“네, 보급팀에서 공략 물자 준비 완료했어요.”
모든 준비가 일사천리다.
던전을 외부에 팔려고 해도 일단 최초공략을 통해 정보를 얻어야 한다.
부사장 준호를 위시한 용병들이 속속 모여들고, 수호 없는 수호 길드의 공격대가 던전 진입을 시작했다.
파팟!
던전으로 들어가는 그들을 보며 김미소는 애써 걱정을 떨쳐냈다.
“빨리 끝내야 할 텐데.”
3일 안에만 선발 공략을 끝내주길 빌었다. 그리고 외부의 클랜이나 길드들이 탐낼 만큼 던전이 영양가 있길 빌었다.
그래야 여기까지 몰려와 던전 공략을 차근차근 해 줄 테니까.
멍, 멍!
내성 저 멀리서 들려오는 개소리에 김미소가 잠깐 갈등했으나, 곧 생각을 멈췄다.
“보고는 해야겠지.”
자신의 위치와 권한, 그리고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김미소다.
관리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모든 진행 상황을 보고할 뿐이다. 결정을 내리는 건 리더의 몫.
수호가 걱정에 되돌아오든, 외부의 힘을 빌려서라도 막아내는 걸 지켜보든, 결정은 그가 할 일이다.
“잘 부탁해.”
“왈, 왈!”
컴퓨터가 보급화된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수기로 직접 쓴 보고서를 잘 말아 백구의 목에 걸린 죽통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