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 * *
목표는 언제나 일직선. 눈앞을 벽이 가로막지만, 가뿐히 태클로 부수며 나아간다.
꽈앙!
“거기서! 이 새끼야!”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용병 패들이 무기를 꼬나 쥐고 내 뒤를 쫓아온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끌며 몇 개인가의 건물 벽을 부수고 골목길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꽝! 꽝! 퍼서석!
“누, 누구십…….”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 벽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니 가정집이 나를 반겼다. 중년 남성이 웬 꼬맹이와 꿀꿀이 죽 비슷한 걸 먹다가 엉거주춤하게 일어서서 나를 경계했다.
신체는 마약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자들은 내 목표가 아니다. 나는 반대편 벽을 발로 차 부수며 다음 건물로 뛰었다.
“아저씨. 용병들 따라오니까 구석에 처박혀서 숨어.”
“예, 예? 히이익?!”
대답을 들을 시간은 없다. 나는 반대편 벽을 부수며 전진했고, 내가 뚫은 공간을 통해 이십 명이 넘는 용병, 양아치가 들이닥쳤다.
나는 그들을 처리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는 데 집중했다. 소란이 커지면 커질수록 골목길 곳곳에 있는 시정잡배가 이변을 눈치 채고 나를 담그려는 용병 무리에 합류했다.
그들을 줄줄이 달고, 골목 중앙에 있는 제법 커다란 건물로 들어간다.
일전에는 제법 한가락 하는 용병단이 통째로 대여하던 건물이라 한다. 십수 년 전부터 시작된 투쟁의 시대와 흑마법사의 동란이 겹치자 흐라탄을 떠났고, 그 와중에 건물도 버려졌다.
버려졌다지만, 제법 호화로운 건물. 위치도 흑마법사의 옆자리. 빈집은 당연하게도 시궁창 인생 무리의 보금자리로 변했다.
그리고 이곳이 내 목적지다. 나는 문을 뻔히 앞에 두고서도 바로 옆의 벽을 발로 차서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투쾅!
“허으?”
“누구……?”
젊은이, 늙은이 너나 할 것 없이 마약이나 빠는 기가 찬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약은 담배처럼 흡입하는 류가 아니라 잘게 찢은 육포 쪼가리를 입 안에 넣어서, 점막으로 흡수하는 부류의 것이었다.
이러저러한 인공물을 넣고 잘 찢어서 끓인 것 같은데, 인간 도살자 1급 자격증을 따도 되는 내 감식안은 속이지 못한다. 저건 인육으로 만든 육포였다.
“너희도 죽어라.”
나는 벽을 뚫고 오며 회수한 돌덩어리를 악력으로 으스러뜨렸다. 으드득! 돌덩이를 잘게 조각내고 망설이지 않고 사방으로 내던진다.
뻥! 뻐엉!
암석비가 빗발쳤다.
검으로 후려치면 검이 부서지고, 방패로 막으면 팔과 어깨, 갈비뼈가 통째로 으스러진다. 테이블 밑에 숨은 녀석도, 창문이나 뒷문으로 도망치는 놈들도 뒤통수에 돌이 박혀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잽싸게 다른 방으로 도망친 놈들도 있었다. 하지만 막대한 속도를 품은 질량 병기 앞에서 사막의 허접한 돌벽은 썩은 나무껍질이나 마찬가지.
꽈득!
“꺼흑……!”
그래도 꼴에 벽이라고 충격을 막아주긴 했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그들에게 행운인지는 알 수 없다. 벽을 엄폐물로 삼은 놈들은 즉사하지 않고, 여러 망가져선 안 될 기관이 망가진 고통을 생생하게 느껴야 했다.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나는 곧 죽을 놈들을 무시하고, 끈질기게 나를 따라온 무리를 기다렸다.
그쯤에 살기등등해서 나를 뒤따라오던 용병들도 건물 안으로 발을 디뎠다. 요란스럽게 건물 벽을 때려 부숴가며 이어진 돌진에 이목이 집중된 탓인지 무리의 수는 처음보다 두~세 배는 늘어났다.
용병, 양아치, 건달, 약 빤 저급한 암살자, 등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머저리들이 수적 우위를 믿고 내 간격 안으로 들어왔다.
“어, 어어…….”
하지만 아무도 내게 달려들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돌입한 지 단 몇 초 만에 피와 시체만이 남은 보금자리를 보고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들이 나와 죽은 이들을 번갈아 보더니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발치에 나뒹구는, 죽은 용병의 검을 집어 들었다.
똑! 또독!
커터칼 날을 갈 듯이, 검날을 작게 조각낸다. 숨 몇 번 들이쉴 시간이 지나자 내 손에 들린 장검은 열댓 개의 조각난 쇳조각으로 변했다.
그 시간이면 용병들도 건물 안의 버러지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짐작했을 거다. 사인은 빠르게 던져진 돌덩이나 나뭇조각이 급소에 박혀 즉사!
그리고 내 손에 들린 것은 양손으로 다 들기도 힘든 검조각. 가장 앞의 용병이 나를 말리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자, 잠깐… 우리는…….”
“닥쳐.”
나는 봐주지 않고 검조각을 표창처럼 던졌다. 북방의 악마의 장기인 초능력 돌팔매질이다.
쉐엑!
날카로운 날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막 입을 연 용병의 혓바닥을 갈랐다. 검조각은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볼과 턱뼈, 마지막으로 뇌와 두개골까지 가른 후 그의 뒤통수로 튀어나왔다.
용병을 가른 검조각은 뒤에 두 녀석의 피까지 꾸역꾸역 집어삼켜서야 만족했는지 세 번째 녀석의 양눈에 박혀 전진을 멈췄다.
“끄아아아!”
양눈에 정확히 검날이 박힌 용병이 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지른다. 그의 비명이 고요한 건물에 울려 퍼졌다.
그의 비명만, 오로지 그가 목청껏 내지르는 외침만이 빈 건물을 채운다. 나머지 용병들은 검조각 세례에 비명도 지를 수 없는 몸으로 변했다.
나는 눈을 감싸 쥐고 피범벅인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용병을 죽일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한 명쯤은 살려두는 게 내가 한 일을 퍼트리는 데 도움이 되겠지.
“아아! 으…! 흐으으으!”
나는 울부짖는 그를 무시하고 바닥을 노려보았다. 흑마법사 네 놈은 동호회라도 하는지 이 건물 지하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러모로 타이밍이 좋다. 나는 발을 세게 굴렀다. 진동을 이용하여 바닥에 암석 붕괴 마법을 걸었다.
쩍! 쩌저적!
유리가 깨지는 광경을 수백 배 느리게 촬영한 영상을 보듯이, 지상 1층과 지하 1층을 분리해주던 바닥면이 통째로 금이 간다.
여기 와서 느낀 건데 사막에 지어진 집은 재료가 이상하다. 돌도 아니고 그렇다고 벽돌도 아닌, 고운 모래가 단단하게 응집된 요상한 녀석을 재료로 쓴다.
딱히 사막 민족의 건축 양식을 공부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 참신한 건축 재료가 암석 붕괴 마법에 아주 효율적으로 부서진다는 점이 중요했다.
꽈과광!
바로 지금처럼. 암석 붕괴 마법 한 방에 바닥에 통째로 붕괴하고 어두운 지하로 빛이 스며들어왔다.
20평은 훌쩍 넘어 보이는 널찍한 건물의 1층 로비. 바닥면을 이루는 돌의 두께는 적어도 수십 센티 이상, 그 무지막지한 돌덩이가 한 번에 무너져 내리며 지하로 추락했다.
“이런 미친놈이?!”
지하 1층에 있던 흑마법사 넷이 소란을 눈치 채고 각각 공격마법이나 방어마법을 준비하다가 난데없이 떨어지는 돌덩이 무리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급하게 쉴드 마법을 써서 떨어지는 돌덩이를 막으며 위협적으로 외쳤다.
“저, 전면전을 시작하자는 거냐! 우리를 죽이면……!”
나는 흑마법사의 협박에 혀를 찼다.
“멍청한 놈들아.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때냐.”
그들은 흙먼지로 시야가 가려지고, 아무리 천장이 무너져 빛이 들어온다지만 지하라는 어두울 수밖에 없는 구조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어둠은 나의 편이다.
반면에 흑마법사는 협박 따위에 혓바닥을 날름거리느라 마법을 쓸 최후의 기회를 놓쳤다. 나는 어둠과 흙먼지를 틈타서 네 놈 중 가장 강해 보이는 흑마법사의 뒤로 접근했다.
코앞, 숨만 내쉬면 내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이 다가왔는데도 흑마법사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눈곱만큼도 알아채지 못했다. 이러면 너무 쉽잖아. 나는 허탈감을 갈무리하며 훤히 드러난 등에 단검을 박았다.
푹!
“허윽?!”
단검을 찌르고 밑으로 훅! 내리 긋는다. 간, 위, 신장 등을 베인 흑마법사가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나머지 세 놈은 작은 말뚝을 집어 던져 옆구리에 처박아 주었다. 말뚝에 새겨진 뇌전 마법이 발현되어 신경계를 태우고, 근육을 오므렸다.
“까그그그극??!”
흑마법사 셋은 뇌전에 직격타를 맞고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나는 기절한 넷을 들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올라오는 와중에도 부서진 돌덩이가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암석 붕괴 마법의 효과가 너무 좋다. 1층 바닥을 붕괴시키고도 힘이 남아서 기둥과 외벽까지 실금이 번지기 시작했다.
1층 기둥과 외벽이 무너지면 건물이 폭삭 주저앉을 것이다. 나는 무너지는 건물을 방치하고 흑마법사 넷만 챙겨서 건물을 빠져나왔다.
콰르릉!
밖으로 나온 내 뒤로 건물이 주저앉았다. 3층 건물이 무너지며 골목길 전체가 흙먼지에 휩싸이고 눈앞이 뿌연 먼지로 가려졌다.
흑마법사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던 건물이 무너지자 사방에서 왈가닥패가 뛰쳐나와 웅성였다.
“너희도 반만 죽자.”
나는 그들의 얼굴을 꼼꼼히 보아 마약을 한 기미가 느껴지는 녀석들은 한 놈도 빼놓지 않고 죽였다.
먼지로 가득 찬 골목길. 어딘가에서 바람이 휙! 불면 콜록대던 양아치 둘의 목이 베이고, 위에서 칼이 번뜩이면 무너진 건물로 다가가던 용병의 허리가 베여 쓰러진다.
석! 서걱!
“으, 으악!”
“뭐야?! 누군가가 있다! 모두 무기를 들어!”
칼밥 먹고 사는 놈들이라고 몇 놈 죽이자마자 금세 이상한 기미를 느끼고는 경계를 한다. 하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들의 수준으로 나를 죽이려면 전부가 몸 안에 고폭탄을 들고 자폭공격을 해야 한다. 아니, 그래도 죽일까 말까인데, 이미 먼지를 틈타서 절반 가까이 죽어 나자빠졌지 않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엉뚱한 곳을 향해 칼을 겨누고 경계하는 용병의 목을 베었다. 그가 기우뚱~! 쓰러지며 절단면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오기 전, 가벼운 몸놀림으로 피를 맞지 않게 피한다.
그리고는 옆으로 몸을 꺾어서 먼지 속에서 탈출하려는 한 건달의 머리를 세로로 쪼갠다. 쓰러진 건달의 품에서 단검을 몇 자루 빼앗아 멀리 도망치는 놈들의 뒤통수와 심장에 박아 넣었다.
퍽! 퍼버벅!
바보 같이 흙먼지가 울창한 공간으로 들어온 이상 그들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높게 피어오른 흙먼지가 사라지기 전, 죽일 이들을 전부 처리한 뒤 흑마법사 넷을 들고 자리를 떠났다.
내가 떠난 자리 뒤로, 무너진 건물과 골목길 사이사이에 목과 몸통이 베여 죽은 시체 수십 구만이 내가 있었다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 * *
나는 흑마법사를 정리하고 나서도 바로 흐라탄을 떠나지 않았다. 처음에 양다리를 자른 달을 포함해서 사로잡은 흑마법사는 총 다섯 명. 그들에게 정보를 얻어야 했다.
흑마법사 넷을 죽이지 않고 데려온 나를 보고 살저 하라한은 예측한 것처럼 은밀한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곳에서 고문을 받는 달이 있었고, 넉넉하게 비어있는 자리로 나머지 네 명의 흑마법사를 채워 넣었다.
고문은 내가 주도했다. 고문 하면 나지.
“우웨엑!”
잔뜩 불만을 품고 내게 항의하러 온 매저가 구역질을 할 정도로 독하게 정보를 뽑아낸다.
하지만 얻은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애초에 적의 소굴로 대놓고 염탐을 보내는 놈들인데, 그런 위험한 임무에 중요한 인물을 보낼 리가 없다.
그들은 그저 하부의 하부 조직의 머리 정도에 불과했다. 상부 조직의 이름이나 윗선 흑마법사의 이름도 모르고, 알고 있다 해도 의미 없는 코드네임 정도가 고작이었다.
“다 말했으니… 이제… 죽여줘.”
“안 돼. 교차 검증하고 마지막 점검이 남았어.”
나는 꼼꼼히 얻은 정보를 확인했다. 흑마법사의 뇌를 마지막까지 쥐어짜서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흑마법사의 이름을, 심지어는 코드네임까지 불게 했다.
그 이름 중에 니웨바와 만자흐마비코는 없었다. 나는 정보를 토해낸 흑마법사에게 안식을 주고는 살저 하라한을 만났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약 하루. 살저 하라한은 그 사이에 사막 부족의 역사와 다음 목적지인 올스 부족의 정보를 정리하여 내게 건네주었다.
“받을 건 다 받았으니 떠나지.”
“잠깐.”
양피지를 대충 가방에 우겨넣고 떠나는 나를 살저 하라한이 막았다. 그가 밖을 향해 손짓하자 한 남성이 등장해 나를 향해 다가왔다.
저벅저벅!
굳건하게 자리 잡은 만년 거암(巨巖)과도 같은 사내. 갈리어드가 준비를 단단히 마치고는 내 앞에 우뚝 섰다. 살저 하라한이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갈리어드도 데려가라. 그가 함께하면 올스 부족을 설득하기도 쉬울 것이다.”
“갈리어드?”
어제 내게 참마도를 내려치다가 일수 만에 제압당한 호위무사, 갈리어드다. 그 또한 익스퍼트 하급의 강자이니 도움이 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수준의 강자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흑마법사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을까?”
살저 하라한은 내가 사막 부족과 아무런 연이 없다는 것을 고평가했다. 사막에는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강한 이들도 있지만, 그들은 어딘가에 얽매여있다.
그렇기에 나처럼 대놓고 흑마법사를 쳐 죽이는 대범한 짓을 할 수 없다. 그들 위치에 있는 이가 흑마법사를 죽이면 그것은 곧 전면전을 의미하니까.
반면에 나는 어디까지나 테러범! 안 그래도 대륙 곳곳에 원한을 잔뜩 만든 흑마법사이니 나 같은 테러범의 존재도 있을 법하다고 넘어갈 수도 있다.
안 넘어가면 어쩔 건가? 실제로도 흐라탄처럼 살육과 피바람을 일으켰고 올스에서도 같은 짓을 반복할 계획인데.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에게만 통용되는 이치.
갈리어드는 사라지고, 갈리어드와 체구도 똑같고, 무기도 똑같고, 오러의 색도 똑같은 무인이 미치광이 테러범과 함께한다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흑마법사가 나를 테러범이 아닌 사막 부족의 숨겨진 고수로 의심할 수 있다. 어쩌면 흐라탄이 공격받아 전면전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진심이냐는 눈빛으로 갈리어드를 바라보았다.
“주인에게 당신의 말을 주인처럼 믿고 따르라 들었소.”
“아니, 내 말을 믿고 따르고 이전에 너희와 나와의 관계가 의심받으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니까.”
그런 내 걱정을 살저 하라한은 가볍게 넘겼다.
“목격자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이면 되는 일 아닌가. 거기에 갈리어드는 참마도만이 아니라 다양한 무기도 다루네.”
두툼한 옷을 입고, 천 싸개로 얼굴까지 가리고는 다른 무기를 들면 갈리어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수도 있다고 예상할 수도 있는……. 이게 무슨 개소리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걱정을 털어 넘겼다.
에이, 모르겠다. 사막이 내 고향도 아니고. 살저 하라한의 잘못된 선택으로 피가 무수히 흐르든 말든 알게 뭔가. 나는 쓸만한 전력이 생겼다고 좋아하며 넘어가면 될 일이다.
‘갈리어드도 마냥 나를 도와줄 목적으로 합류하려는 게 아니야.’
아마 나에 관해 정보를 얻고, 내가 약속을 따르는지 확인하려는 용도도 있겠지. 품 안에 담긴 여러 마법 물품을 보건대 내가 배신한다면 최후의 한 수를 먹일 수단은 준비한 게 분명했다.
나는 알겠다는 뜻으로 갈리어드의 합류를 허락했다. 어쨌든 감시는 감시고 전력이 더해졌으니, 받은 만큼 줘야 마음이 편하기에 살저 하라한에게 한 가지 정보를 더 알려주었다.
“흑마법사가 추궁하러 오면,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라. ‘슈타펜드의 미치광이 웨일이 형제들의 피 값을 받으러 왔다.’ 이 말을 하면 웬만큼 허접한 변명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거다.”
“슈타펜드? 에레스발다를 말하는 건가?”
“그래.”
“오호. 어디서 이런 고수가 나타났나 했더니… 과연 에레스발다라면 그럴만하지.”
살저 하라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를 배웅했다.
“이곳으로 떠나라. 타칸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다.”
그는 200년에 걸쳐 흐라탄을 개조한 이답게, 지하를 통해 외부로 나가는 비밀통로도 몇 개나 준비해두었다.
나와 갈리어드가 지하 비밀통로로 나가자 전날 만났던 타칸이 낙타 두 필과 식량, 물 따위가 담긴 봇짐을 건네주었다.
“부디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조심하기는 무슨. 대놓고 사고를 치라고 관짝까지 짜서 고이 보내주는 건데. 하지만 아랫것한테 일일이 불만을 할 일은 아니다.
나는 얌전히 타칸이 건네준 낙타를 타고 갈리어드와 함께 북쪽을 향해 몰았다. 한 시간 정도 낙타를 타고 사막을 달리다가 적당한 장소에 도착하자 낙타에서 내렸다.
“갈리어드. 당신도 내리도록.”
“어째서요?”
“어째서라니. 토박이인 네가 그러면 어쩌냐.”
올스는 사막 협곡을 따라 형성된 대도시이다. 협곡 끄트머리에서 샘솟는 물 덕분에 사막이라고 볼 수 없는 다채로운 식생(植生)이 분포했고, 올스 가문은 풍부한 물과 식물 자원을 기반으로 사막에서 손꼽히는 발전을 이룩했다.
또한, 지형이 협곡인 만큼 도시도 세로로 길쭉하고, 협곡 위도 방비가 철저하게 되어있다. 모르긴 몰라도 십 수 킬로미터 밖에서 접근하는 이들은 협곡 위의 감시병에게 낱낱이 파악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흐라탄 방향에서 귀중한 낙타를 두 마리나 얻어 타고 접근하는 이들을 감시병이 본다면? 그 둘이 오자마자 올스의 흑마법사가 모조리 죽었으면 앞일이 어찌 될지는 너무 뻔하지 않은가?”
“그건 나도 알다만, 지금부터 낙타를 버리기에는 갈 길이 너무 험하지 않소?”
아, 갈리어드는 내 능력을 모르지. 나는 갈리어드와의 논쟁을 포기하고 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사사삭!
나와 갈리어드의 망토에 흙이 달라붙더니 기가 막힌 위장막으로 변했다. 여기에 빛 분사와 일렁이는 그림자 마법까지 걸자 가까이서 봐도 우리의 모습을 분간하기 힘들다.
갈리어드가 환경에 동화된 자신과 나를 번갈아 보며 깜짝 놀랐다. 그가 더듬거리며 나를 가리켰다.
“이, 이건……! 웨일, 당신 마법사였소?”
“이제 알았으니 낙타나 버리자고.”
나는 낙타를 흐라탄과 올스 어느 쪽으로도 가지 않는 방향으로 돌려보냈다.
“히에에에에!”
낙타가 길게 울며 아무것도 없는 사막으로 자유의 질주를 개시했다. 길어봤자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몬스터에게 잡아먹힐 한정적인 자유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뛰어다녀 기쁘겠지.
나는 멀어지는 낙타를 잠시 지켜보다가 올스 쪽을 향해 걸었다.
“이 속도로 가면 밤쯤에 도착하겠지?”
“맞소이다.”
“도착하면 몇 시간 쉬고 새벽에 침투한다. 갈리어드, 당신은 은밀히 숨어들어서 올스 가문의 인간을 만나라. 나는 협곡을 관통하며 올라가지.”
“협곡을? 그러면 저항이 만만치 않을 텐데?”
“만만치 않다? 내가 흐라탄에서 무슨 짓을 한지 잊은 건가?”
“…….”
피 냄새가 잔뜩 묻어나오는 질문에 갈리어드의 입이 막혔다.
“흐흐! 만만치 않아야지. 당연히 그래야 해. 그게 바로 내가 노리는 거야.”
올스의 저항이 격하면 격할수록 살저 하라한의 의도가 먹혀 들어간다. 나는 올스에 자리 잡은 흑마법사가 흐라탄처럼 밍숭맹숭하지 않기를 바라며 천천히, 하지만 확고하게 올스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