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 * *
나는 오러 블레이드가 날아가기 전의 순간을 정확히 포착했다. 트라칸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다. 그가 느릿느릿하게 대검을 휘둘렀다.
의도는 뻔하다. 티안 포러브는 아직 소드 마스터의 수준에 다다르지 못했으니, 죽기 싫으면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피하라는 뜻이다.
양심은 딱 거기까지. 출수한 마나는 회수할 의도가 전혀 없고, 눈과 기세, 검기의 목적지 또한 정확하게 티안 포러브를 노린다. 티안 포러브는 오러 블레이드가 자신에게 쏘아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고 검만 굳건히 움켜쥐었다.
빠득! 트라칸에게서 이빨이 맞물리는 파열음이 들려왔다. 그가 결심하곤, 티안 포러브에게 오러 블레이드를 날렸다. 대기 분자마저 소멸시키는 파멸의 정화가 티안 포러브를 덮쳤다.
번쩍!
‘위험!’
오러 블레이드의 마나 파동이 만만치 않다. 안 그래도 소름 끼치는 파괴력을 장기로 삼은 트라칸의 검술! 오러 블레이드는 그가 자랑하는 무지막지한 힘을 120%로 발휘하게 해주었다.
여파만으로도 대지가 뒤집힌다. 나를 목표로 하지 않음에도, 자격이 되지 않는 이는 지켜보는 불가능하다! 나는 안색이 창백한 라코아를 보자마자 검을 잡았다.
오성검법(五星劍法), 연환십자로(連環十字路)!
오성검법의 전반부 비기, 연환십자로를 펼친다. 안에 담긴 검리(劍理)는 공기조차 베는 극한의 쾌검!
전방에 십자 형태의 오러가 그어진다. 날카롭게 벼려진 오러는 대기뿐만이 아니라 오러 블레이드가 발하는 힘마저 베었다.
힘의 결이 베어진 한순간, 압박감이 사라지고 라코아의 얼굴이 편해진다. 나는 라코아의 뒷목을 잡고, 전력으로 뒤로 피했다.
1초에 20미터씩 뒤로 쭉쭉! 물러난다. 그럼에도 티안 포러브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가 대체 어떤 수단으로 무적의 오러 블레이드를 막을 건가?
스륵~.
티안 포러브의 첫 수는 의외였다. 그는 천재검의 첫 번째 초식, 구검무결(九劍無缺)을 꺼내들었다. 아홉 개의 검결이 완전함을 이루는 시작 지점과 최종 목적지를 제시하는 연환검무.
‘으음?’
티안 포러브의 구검무결은 내가 아는 그것과 많이 달랐다. 먼저, 그 오러는 가벼웠다.
깃털조차 흔들지 못하는 미약한 바람에도 날아갈 것처럼 가볍다가도 거센 태풍에서도 살아남은 해안가의 천년 묶은 거목처럼 무거워진다.
검기는 서릿바람처럼 차갑다가도 사막 한가운데에 놓인 것처럼 뜨겁기도 하다. 검속은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 한순간 트라칸의 목을 베고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것 같지만 달리 보면 느릿느릿하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느긋하기만 했다.
아홉 개의 연환 동작에 아홉 개의 무리(武理)가 섞였다. 구슬을 꿰어 원을 만들 듯이, 아홉 번째의 검결(劍訣)이 자연스럽게 첫 번째 검결과 이어졌다.
‘아, 아니다!’
나는 곧장 내 판단을 수정했다. 이어지지 않았다. 모든 무리가 하나가 되었다. 첫 번째부터 아홉 번째 연속동작까지의 힘이 한곳에 응축되었다!
티안 포러브가 아홉 배로 응축된 힘을 담아 단출한 대각선 베기를 시전했다. 오러 블레이드의 한 귀퉁이가 치즈처럼 부드럽게 쪼개졌다.
스윽!
뒤로 물러서며 크게 한 바퀴 돌아 바로 다음 베기를 날린다. 티안 포러브의 검격에 다시 오러 블레이드의 한 귀퉁이가 베어진다!
오러 블레이드의 전진에 맞서 후퇴하며 연달아 검을 베는 티안 포러브! 어느 자세에서든 이치에 어긋나는 게 없고, 근육과 마나와 정신이 합치(合致)하여 최강의 일격을 연달아 날린다.
파바바바바박!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빛의 군무. 무식하게 큰 오러 블레이드가 조금씩 깎여나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깎여나간 단면은 우주선 불꽃 분사구처럼 엄청난 불똥을 발산한다. 콩알만 한 오러 블레이드 조각이 대지에 닿자마자 고폭탄을 터트리는 것처럼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다.
면면부절(綿綿不絶)의 극치를 보여주는 티안 포러브의 연검술!
거대한 호박을, 한 귀퉁이를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갠다. 그 과정을 수백 번 반복하면 남는 것은 손가락 마디 하나보다도 작은 씨앗뿐이다. 티안 포러브가 그 무식한 이론을 현실로 보여주었다.
폭발과 불꽃, 빛을 벗 삼아 펼쳐지는 티안 포러브의 인생이 응축된 검술이었다. 그 승부의 시간은 십여 초가 넘게 이어졌다.
그 시간 동안, 티안 포러브는 족히 200미터 이상 뒤로 물러났고 천 번이 넘는 검격을 흩뿌렸다. 천 번의 검격은 티안 포러브 인생의 정화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그 끝에, 마침내 중심에 응축된 콩알만 한 크기의 오러 블레이드만이 남아 티안에게 향했다. 하지만 티안도 한계에 다다랐다. 그의 안색은 창백한 수준을 넘어 보랏빛으로 질렸다.
단 10초 조금 넘는 시간, 신체의 모든 힘을 밑바닥까지 끌어 쓰느라 산소 결핍에 빠진 것이다.
후읍~!
티안 포러브가 숨을 급히 들이쉬어 신체로 산소를 실어 날랐다. 그가 마지막 마나를 모아 검에 집중시킨 뒤, 콩알 크기의 오러 블레이드에 평행하게 내밀었다.
으지직!
콩알 크기든, 씨알 크기든 오러 블레이드는 오러 블레이드! 명검이라 불릴 티안의 검을 가로로, 파죽지세로 뚫고 들어온다. 오러 블레이드가 검신을 절반 쯤 파먹었을 때, 티안 포러브가 눈을 빛냈다.
그가 남은 마나를 검신에 모아 폭발시켰다. 완벽하게 트라칸을 엿먹이는, 그의 폭검을 훔쳐서 따라 한 것! 심지어 (양적인 문제는 둘째치고) 완성도 또한 원 저작자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작지만, 밀도 있는 폭발에 오러 블레이드의 방향이 뒤틀렸다. 콩알 크기의 오러 블레이드가 오른쪽으로 휙! 꺾여서 티안의 왼쪽 어깨를 살짝 스친 뒤에 그의 뒤로 날아가 한참이나 먼 곳의 땅에 살포시 닿았다.
꾸과광!
마지막 오러 블레이드의 폭발과 함께, 티안이 우뚝 서서 ‘어떠냐!’ 하는 눈빛으로 트라칸을 노려보았다.
“!!”
트라칸과 나 모두 경악하여 티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비 소드 마스터 주제에 무려, 소드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를 쳐부순 전무후무한 짓거리를 저질렀다!
과거의 션조차 히라자와 싸울 때, 말 그대로 생명을 깎아가며 그가 오러 블레이드를 꺼낼 틈을 주지 않는 폭풍과도 같은 공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티안은 오러 블레이드를 피하지 않고 맞서서 한때의 승리를 달성했다.
다시 묻지만,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티안이 여기 있는가. 다시 대답하지만, 그건 의미가 없는 질문이다. 나는 의문을 넘어 티안의 고집을 인정했다.
“너, 그… 어떻……!”
트라칸이 더듬거리며 티안에게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티안은 그 틈에 격하게 숨을 몰아쉬며 신체에 산소를 공급했다. 보랏빛으로 물든 안색이 원래대로 돌아오다가 다시 하얗게 질렸다.
쿨럭!
티안이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벌리는 그 순간, 그의 입에서 맑은 핏덩이가 울컥! 튀어나왔다. 몸을 바들바들 떨며 트라칸을 노려보지만, 그는 이미 손끝 하나 까딱일 힘조차 없었다.
그리고…….
쿠당!
티안 포러브. 난데없이 등장하여 트라칸을 자극해서 오러 블레이드를 쏘게 유도한 뒤, 정면대결로 꺾은 사내. 그가 말도 없이 쓰러졌다.
이 추운 극지방에서, 얇은 활동복만 입은 채로, 입에선 피를 줄줄 흘려대며 쓰러진다.
“뜨헑?!”
트라칸이 기겁해서 대검도 집어던지고는 티안에게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가 쓰러진 티안을 끌어안고, 자신이 입던 방한복을 꺼내 티안의 몸에 둘둘 말았다.
“어이! 사부! 이런… 정신 나간……. 또라이 같은……!”
안절부절못하지만 방한복을 둘러주는 게 전부. 티안을 부르기만 할 뿐 건드리지도 못하는 트라칸이다.
티안은 분명 내상을 입고 쓰러졌으니 잘못 건드리다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를 게 뻔해서 손도 대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군.
“조용히 하세요.”
나는 트라칸을 밀친 후, 티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트라칸이 대경하여 나를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왼손은 가슴에, 오른손은 하복부에 가져다 댄다.
“야, 이……! 띨빠가?!”
당신 지금 목소리 삑살 났어. 어쨌든 트라칸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초능력 파동을 일으켜 그의 몸이 망가진 정도를 분석한다.
‘내상과 내출혈. 내장이 조금 상했고, 조각난 내장을 방금 뱉었어. 전신 연골과 인대에 약간의 열상이 있고, 사지 근육, 복부, 광배근이 오버 트래이닝을 한 것처럼 잘게 찢어졌어.’
즉, 별것 아닌 상처!
괜히 걱정했잖아. 나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마나와 성력을 일으켜 티안 포러브에게 전해주었다.
왼손에서 흐른 것은 마나. 승천자의 마나 운용술이 더해져 세상 그 어떤 마나보다 정순한 나의 마나가 티안의 심장을 타고 전신 혈맥으로 퍼졌다.
오른손은 성력과 마나의 짬뽕. 성력이 그의 내상을 치료하고, 정순한 마나가 텅 빈 마나홀을 채운다.
초능력 파동으로 그의 몸이 어디가 망가졌는지 파악하고, 왼손을 통해 몰래 초능력을 흘려보내 신체 강화 초능력을 전해준다.
“…….”
똥 씹은 것 같던 트라칸도 내가 치료에 정통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얌전히 지켜보았다. 그 사이에 라코아가 와서 가방에서 방한복을 한 벌 더 꺼내 트라칸에게 입혀주었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십여 분간 치료행위를 하자 급한 불은 대강 껐다. 천천히 이동하면서 치료를 해도 된다. 나는 염동력으로 티안의 몸을 띄웠다.
“추우니까 목표로 한 산부터 가죠. 그곳이라면 몸을 녹일 수 있는 동굴이……?”
부부부부부!
기이한 소리가 내 말을 막는다.
‘이 소리는?’
커다란 무언가가 빠르게 회전하며 나는 소음. 이세계에선 들릴 리가 없는, 과거 지구에서만 몇 번 들었던 그 소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들린다.
나는 의구심에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뜨헙?! 저, 저게 뭐시냐??”
소리를 내는 물체를 확인하자 라코아가 공포에 질려 외쳤다. 나도 마음이 흔들려 염동력이 끊겨서 티안을 바닥에 떨굴 뻔했다.
부부부!
여전한 소음과 함께, 말보다 족히 다섯 배는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온 그것. 나는 그 거대한 쇳덩이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비행기! 아니, 헬리콥터!!’
미치겠군. 이놈들은 마법으로 헬리콥터를 만들 기술력을 달성했다. 그것도 일반 헬기가 아니라 수송용 대형 헬리콥터다.
나는 승천자의 감각으로 대형 헬리콥터를 살폈다. 먼저, 부피를 보면 수백 명 단위의 무장 병력을 신속하게 이동시키는 데 쓰이는 것 같았다.
날개에선 프로펠라 대신 기이한 스피커를 달고 있다. 그 스피커에서 부부부! 하는 소음이 들리며 대형 헬리콥터를 띄웠다.
‘푸셔야.’
에레스발다의 선박에 달린, 프로펠라를 대신한 추진력 기관! 그것이 항공용으로 개조되어 대형 헬리콥터를 띄웠다.
푸셔는 날개 부분에 파이(π) 모양으로 네 개가 달렸다. 두 개는 밑으로 꺾여서 헬리콥터를 띄우고, 두 개는 대각선 뒤로 향해서 속도를 더해준다.
꼬리 부분에는 익히 보던, 자그마한 프로펠라가 달려있다. 이들도 꼬리 로터가 헬리콥터의 안정성에 필수적이라는 걸 아는 듯했다.
어쨌든, 비행기든 헬리콥터든, 거대한 비행물체가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라코아가 잔뜩 긴장해서 무기를 꺼내 들고 오러를 피웠다. 하지만 트라칸이 손을 내저어 그를 말렸다.
“비행선을 볼 줄이야……! 라코아. 적이 아니다. 무기를 내려라.”
트라칸이 감탄 석인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나는 그가 아는 눈치를 보이자 다가가 물었다.
“트라칸. 저게 뭔지 압니까?”
“흐음? 히드라 크라켄 토벌에 한 손 거들었다면서 비행선을 모르나?”
“히드라 크라켄하고 비행선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당연히 상관이 있지. 익스퍼트만 50이 넘게 모였다며. 마법사는 그 세배쯤 되고. 그들이 어떻게 한 달 안에 이 넓은 땅에 퍼진 익스퍼트를 모았겠냐.”
“그건… 비행선을 운용해서?”
트라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하!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나는 항구도시 슈타펜드와 거리가 가깝고, 거의 마지막에 참가했기에 비행선을 타보기는커녕 볼 기회조차 없었다.
“비싼 돈을 주고 빌렸다고 하던데.”
“비쌀 수밖에 없겠죠.”
비행선은 비싸다. 아마 지구의 헬리콥터보다 훨씬 비쌀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계는 기술자와 자원이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 대량설비 시설만 구축하면 빵 굽듯이 마구 찍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마법으로 굴러가는 도구는 대량생산이 불가능했다. 승천자는 가능하지만, 이세계는 기초적인 마법 물품도 대량생산을 할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니 고위급 마법사가 저 무식하게 큰 비행선에 들어갈 마법 회로를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새겨야 한다는 뜻! 생산 속도가 바닥을 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거기에 연료는 땅만 파면 나오는 기름이 아니라, 고위급 몬스터를 처치해야 가끔 하나둘 나오는 마력석을 기반으로 한다. 마력석이 산더미처럼 넘쳐날 리가 없고, 그것들 모두가 비행선에만 쓰일 리가 없다.
즉, 생산설비와 연료 공급의 한계로 비행선은 이종족 연합지역에서도 극히 희귀하다고 한다. 생산 방법은 물론이고 그 수와 이동거리, 시간적 한계 또한 극비여서 트라칸도 자세한 건 몰랐다.
내가 물었다.
“그 소식을 알면서 히드라 크라켄 토벌은 왜 안 온 겁니까?”
“내게도 부탁하려 했지만, 나는 그때 이종족 연합지역 외부에 있었다. 아무래도 거기까지 비행선을 운용하면 여러 가지로 곤란하기에 포기했다는 말을 들었지.”
“아하.”
“그리고 익스퍼트 상급 이상의 ‘진짜’ 실력자는 고향을 벗어나기도 힘들었어. 에레스발다를 도와주다가 자기네 도시에 초대형 몬스터가 쳐들어오면 큰일나니까.”
그래서 중하급 실력자만 있었군. 나는 소소한 의문점을 풀며 헬리콥터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트라칸의 말이 끝나고 잠시 후, 대형 헬리콥터가 언 땅에 착지했다. 뒷문이 열리자마자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수많은 사람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다다닥!
내린 것은 200명이 넘는 중대급 병력. 하나하나가 마나 유저 상급에 들어섰고, 스칼라에 들어선 기사 급 실력자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좌우로 도열한 병력 사이로, 스칼라 상급 둘의 호위를 받는 익스퍼트 급 무인이 내렸다. 생김새와 신체를 살펴보면 부모 중 한 명은 순혈 오크, 다른 한 명은 르암인을 기반으로 한 옅은 혼혈종인 듯싶었다.
이종족 연합지역의 계급 표는 모르지만, 가슴팍에 박힌 화려한 문양과 극적인 등장 씬을 고려하면 저자가 이중에서 가장 계급이 높은 이가 분명했다.
그가 자못 긴장된 기색으로 트라칸에게 다가오다가, 내게 치료받는 티안 포러브로 시선이 닿았다. 작게 한숨을 쉰 후, 트라칸 앞에 서서 절도 있는 차렷 자세를 하고는 오른손을 가슴팍에 쿵! 소리 나게 때렸다.
“충! 제 2 비행대대, 소장 체어스코입니다! 소드 마스터 트라칸님을 만나뵈어서 영광입니다!”
“음.” 트라칸은 여태껏 우리에게 보여준 개 같은 모습을 버리고, 진중한 태도로 인사를 마주 받았다. 그가 물었다.
“체어스코 소장. 물을 게 많지만, 자리가 적절치 않군. 비행선이 왔다는 것은 우리를 안내하겠다는 걸로 받아들여도 되겠는가?”
“옙! 맞습니다!”
“음, 그럼… 타, 타……. 어, 타도 되겠는가?”
와, 오글거린다. 트라칸은 뭔가 있어 보이게 말하려고 하는데 고풍스러운 말투가 익숙하지 않아 어색함의 극치를 달렸다.
나는 입을 가려 작게 웃고, 라코아는 대놓고 소리 없이 웃었다. 트라칸이 은근히 얼굴을 붉히며 작게 욕지거리를 했다.
체어스코 소장이라는 인물은 이런 일을 자주 겪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트라칸과 우리를 이끌었다. 우리가 타고, 도열한 병력도 차례대로 대형 헬리콥터에 탑승했다.
착착착!
창고 부분은 복층 구조로 되어있다. 그곳에 200이 넘는 병력이 차곡차곡 우겨 들어갔다. 나와 트라칸, 라코아는 조종석 바로 뒤의, 넓은 공간으로 안내를 받았다.
다 착석하자 3결 수준의 마법사가 조종간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푸셔 라는 추진 기관이 작동하고, 헬기를 서서히 높이 띄웠다.
“오오…! 뜨, 뜬다?! 뜬다고 이거!”
라코아만 들뜬 기색으로 창밖을 내려다본다. 나는 지구에서 이것보다 족히 백 배는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 본 적이 있어서 심드렁했다.
트라칸은 말없이 팔짱을 끼고 앉았다. 체어스코 소장이 복잡한 눈빛으로 트라칸과 기절한 티안 포러브를 번갈아 보자, 트라칸이 변명하듯이 속사포처럼 말했다.
“티안 포러브가 우리가 있는 위치를 알아내곤 기다렸다. 그가 시비를 걸어서 싸웠고, 지금 이렇게 중상을 입었지. 더 궁금한 거 있나? 체어스코 소장?”
“아, 아닙니다. 실례했습니다.”
“그럼 내 질문을 계속하지. 하나, 티안 포러브와 당신, 둘 다 어떻게 우리 위치를 알았는가. 둘, 티안 포러브가 무슨 일로 서이바람 숲을 벗어나서 이 북방에 왔는가. 셋, 북방에 어떤 참사가 벌어졌기에 귀중한 비행선까지 운용하는 거지?”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같은 답을 공유합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부터…….”
내가 티안을 치료하다가 체어스코의 말을 끊었다.
“뻔하지. 북상하면서 마을을 들려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중앙에서 우리 정보를 모를 리가 없잖아. 체어스코 소장, 당신 중앙에 소속된 거 맞지?”
“마, 맞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몬스터 난리가 확실한 것 같은데. 북방의 몬스터 전선이 흔들렸나? 그래서 티안도 은거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거지. 마침 트라칸과 나도 오니까 힘을 빌려달라고 티안 포러브에게 의견을 제시했다가…….”
“예. 티안 님과 트라칸 님 사이의 사정을 몰라서 생긴 불찰입니다. 티안 님은 정보를 듣자마자 주둔지를 벗어나 트라칸 님에게 향하셨고, 저희도 허겁지겁 따라왔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기절한 티안을 턱짓했다.
“이미 사고는 벌어졌지. 당신도 참 곤란하겠어.”
“하하…….”
차마 동의하지는 못하는지 메마른 웃음만 흘리는 체어스코 소장이었다. 나는 그의 난처한 감정 뒤편에서 느껴지는, 진한 전투의 향기를 읽었다.
“비행선마저 태울 정도면 몬스터 전선이 그만큼 시급하다는 뜻일 테야. 익스퍼트 최상급은 물론이고 소드 마스터까지 필요할 정도면 보통은 아닐 텐데…….”
꿀꺽! 헬기를 조종하던 마법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체어스코 소장도 은근히 긴장한 기색이었다.
이건 감이 딱 온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체어스코 소장을 노려보았다.
“평범한 일은 아니군. 흑마법사……. 맞나?”
“…….”
체어스코 소장이 계급제도에 묶인 불쌍한 회사원의 눈빛에서 익스퍼트에 들어선 검사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꿨다. 그가 나를 분석하듯이 요리조리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설하의 땅에 오자마자 흑마법사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첫 타석부터 운이 좋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티안 포러브의 치료를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