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435
435화
* * *
최악이다.
하필이면 걸려도 최악인 인간한테 걸려버렸다. 다두는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쉘리 반데스를 ‘에잇’ 해버리는 것 말고는 없다는 걸 알았다.
‘아니지.’ 그가 고개를 저었다. 쉘리 반데스라면 ‘에잇’을 당한 대비책도 세워났을 것이다. 다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휴우!”
이것저것 포기한 다두가 할 수 있는 것은 피곤한 얼굴로 쉘리 반데스를 노려보는 게 전부였다. 그가 물었다.
“…언제부터입니까.”
“뭐가. 너를? 아니면 쟈기를?”
“둘 다. 언제부터 저를 의심한 겁니까.”
“어, 으응? 뭐라고?”
쉘리 반데스의 당황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다두가 캐묻듯이 이어 말했다.
“모르는 척하지 마시죠. 저를 의심하지 않았으면 있을 수 없는 반응속도 아닙니까. 대체 얼마나 예전부터 저를 의심하…….”
“푸하하하! 으하! 하하하하!”
급작스레 터져 나온 쉘리 반데스의 폭소가 다두의 입을 막았다. 어찌나 속 시원하게 웃는지 손에 든 고상한 지팡이까지 떨어뜨리면서 낄낄댔다.
다두는 그의 웃음이 심히 불쾌했다. 쉘리 반데스가 인상을 구기는 다두를 보고는 완전히 자지러졌다. 노인네가 옷이 더렵혀지는 것도 모르는지 땅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웃고 자빠졌다.
“으히히! 설마 너, 너… 너어……. 설마 자기 행동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 거였냐? 아니, 진심으로??”
“…?”
“야, 이놈아. 이 미친 자식아. 의심이라는 단어는 그럴 때 쓰는 게 아니야. 의심은 서로 숨기고, 속고 속일 때 속였다는 단서가 나오면 그때 가서 하는 거라고.”
킬킬거리던 쉘리 반데스가 다두를 가리켰다.
“하지만 너는 아니잖냐.”
“…예?”
다두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진심으로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다두가 멍청하니, 입을 살며시 벌리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그 모습을 본 쉘리 반데스가 위험한 약물을 흡입한 사람처럼 꺽꺽, 흐느껴 울 듯이 웃었다.
주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쉘리 반데스의 기행을 신경도 안 쓴다는 투다. 익숙한 게 아니라, 그는 벌써 마법으로 다두와 그와의 공간을 중심으로 인식 변환 마법을 걸어두었다.
다두도 그걸 알기에 안심하고 핵심을 짚는 질문을 한 것이다. 한참을 웃은 쉘리 반데스가 다두의 질문에 답했다.
“언제부터 너를 의심했냐고? 이야. 이거 아주 기막힌 놈일세. 어이, 친구. 이름이 뭔가.”
“다두입니다. 다두 아와 훔.”
“좋아, 다두 아와 훔. 우리 조금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있는 것 같군. 쟈기의 삶 속으로 말이다.”
“아…….”
다두가 탄식했다.
“저 지금 진짜 바쁜데 안 하면 안 될까요?”
쉘리 반데스는 단호했다.
“아니, 안 돼. 네놈이 이렇게 허술한 녀석인지 몰랐어. 언제부터 자기를 의심했냐니. 내 단언하건대 그게 이번 세기 최소의 폭소 발언이었다.”
평가가 너무 박하다. 하지만 쉘리 반데스가 보기엔 그럴 만했다. 그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짚으며 다두의 잘못된 인식을 정정해주었다.
“시작에 앞서 오해를 하나 풀어줘야 할 것 같군. 다두, 쟈기가 교류회에서 자신을 드러냈을 때 할리가 쟈기에게 한 말이 있지 않으냐? 처음부터 너를 의심했다고 말이다.”
“예. 그랬죠.”
“그랬죠로 끝내면 안 되지. 네놈은 날카로운 주제에 가끔씩은 이렇게 답답할 정도로 어벙한 면이 있다니까?”
“……??”
“야, 인마. 잘 생각해라. 할리가 너를 의심했다. 그러면 1. 할리 스스로가 너를 의심했다. 2. 누군가가 너를 의심하고 할리 등에게 너를 잘 살피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둘 중에 하나겠지.”
“그렇… 겠죠? 아마?”
“그렇다면 1번, 할리가 너를 의심하면 그는 그것을 누구에게 보고했을까. 또는 2번, 할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상위권자가 당시 게리소님에 몇 명이나 있었을까.”
“아…….”
다두는 비로소 쉘리 반데스가 숨기고 숨긴 진실 일부를, 쟈기가 죽은 이후에야 깨달았다. 그가 놀란 어조로 쉘리 반데스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쟈기, 아니 똥이 게리소님에 왔을 때부터 그를 의심했군요.”
“이제야 대화가 제 궤도를 찾았군”
쉘리 반데스가 빙그레 웃었다. 다두는 그의 아가리를 찢어버리고 도망칠까 말까 고민하다가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떠올랐다.
“잠깐만. 왜죠? 어째서 5살짜리 꼬맹이를 의심합니까?”
“왜냐니? 전(前) 해적 노예, 도시에 처음 들어온 어수룩한 꼬맹이가 성력을 각성했으면, 마찬가지로 전(前) 흑마법사 출신으로서는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게 당연하지 않나?”
“……!”
다두가 흠칫했다. 그가 성력을 각성했다는 사실은 에이스헨의 검귀들, 르데앙과 험클리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어째서 쉘리 반데스에게 들킨 걸까. 그가 진지하게 이유를 찾다가 고개를 번뜩 들었다.
“그 왼쪽의 눈동자. 악신의 살로 신체를 이뤘기에 그것만큼은 아니지만, 하위호환적인 감지력이 당신에게 있었군.”
“작은 단서만 가지고 거기까지 알아내다니. 놀라워.”
“그걸로 내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때를 노려서 나의 기운을 읽었어. 흑마력의 천적, 성력의 존재 여부를 알아냈군요.”
“성력뿐이다? 이놈의 근골격이… 와! 마나 흐름은 또 아주… 와우! 내 난생 그런 놈은 처음 보더구나. 그래서 잠시 고민했다. 앞뒤 사정 가리지 않고 납치해서 실험대로 써야 하나 기다려봐야 하나… 하고 말이야.
“그게 당사자 앞에서 할 말입니까?”
“결국은 안 했잖아? 척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녀석이니 건드려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말자. 네 녀석 뒤에 있는 집단에게 역정보를 흘려보내는 걸로 만족하자. 정도로 결론짓고 내버려 두었다.”
“할리 어르신에게는 그럴듯한 변명으로 저를 감시하라 일렀고요.”
“그럴듯한 변명이 아니지. 표면만 봐도 네놈이 하는 짓거리는 이상함이 철철 흘러넘치지 않았느냐.”
다두는 ‘이상하지 않았는데.’라는 말을 삼켰다. 기껏 진지해진 분위기가 폭소로 흐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흐흐…! 더 놀라운 게 뭔지 아느냐? 쟈기는 게리소님에 온 첫날부터 영주성을 이상하리만치 경계하더구나. 마치 그 안에 무시무시한 존재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처럼 말이야.”
맞았다. 똥은 영주성에 자리 잡은 괴물을 첫날부터 인식했고, 그날부로 렉시놈을 감시하기 위해 도자기 장인 쟈기의 감투를 쓰면서까지 게리소님에 안착했다.
“다두, 아니, 쟈기. 우리는 서로를 알고 있었어. 하지만 10년 넘게 서로를 만나지 않고 멀리서만 관찰했지. 네가 나를, 천국의 계단의 전신을 판별했듯이 나 또한 너를 판별했다.”
쟈기가 하는 일, 그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 쟈기가 하는 발언과 거기서 보이는 성격까지. 쉘리 반데스는 쟈기의 어린 시절을 스토커처럼 모으고, 또 모았다.
“그렇게 나는 12년 동안 쟈기를 다각도로 관찰한 끝에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하나, 그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둘, 그가 게리소님에 온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셋, 그는… 누군가에게 비전을 사사받지 않고 홀로 성장했다.”
역시. 용병 어쩌고 한 건 처음부터 믿지 않았군. 다두는 그때 한순간만 넘길 요량으로 한 변명이었기에 그리 실망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다른 걸 물었다.
“어떻게 그리 확신하신 겁니까? 당신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게리소님에 오기 전에 미리 고급의 수련법을 익혔을 수도 있지 않나요.”
“아니야. 쟈기는 빨라도 너무 빨랐어. 검술, 마법 뭐든 게 너무나도 빠르게 성장했다. 사람들은 다들 네가 천재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솔직히 천재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 그건 너무 양심이 없잖아?”
“뮤온 보트라는 의심 안 했는데요?”
“그 친구는 가까운 사람한테 약하니까. 또한 드문드문 봤으니까 모르겠지. 하지만 가까이서 지켜본 나는 알 수 있었어. 쟈기의 그것은… 성장이라 말하기엔 지나치게 이질적이었다.”
그건 마치 복구와도 같았다. 라며 쉘리 반데스는 정색하곤 그를 바라보았다.
“이상하지 않나? 갓 스물도 안 된 녀석이 수십 년의 세월이 담긴 검법을 마치 복구하듯이 익혀나가고 있는 모습이라니. 단언컨대 뮤온 보트라가 그걸 봤으면 나보다 빠르게, 단 한 수만에 네 녀석의 이상한 점을 눈치챘을 거다.”
“…….”
“쟈기는 인생 오래 살았다 자부하는 나로서도 정말이지 신비한 녀석이었다. ‘이 녀석은 대체 정체가 뭘까…’ 하는 게 그 당시 나의 최대 화두였지.”
“그러면 쟈기를 남쪽 대륙 정벌에 앞장세운 것은…….”
“둘 다! 표면적인 이유와 이면적인 이유 모두 사실이다. 표면적으로는 네가 그럴만한 능력과 위치에 있기에. 이면적으로는 너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감쪽같이 몰랐어요. 지독하군요. 당신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지독합니다.”
“끌끌… 흑마법사가 원래 지독한 부분이 있어. 여하튼 나는 이스마일이나 소니아와 다른 관점에서, 다른 방식으로 너에 대해 알아갔다. 뭐, 알면 알수록 모르는 놈이라는 답만 나왔지만.”
탁탁! 쓰러진 지팡이를 짚고, 지팡이에 묻은 흙먼지를 털며 그때를 회상한다. 쉘리 반데스가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어 말했다.
“그 모름의 무한한 반복 끝에 몇 가지 가설만 겨우 떠올랐지. 하나같이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헛소리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만족했어. 쟈기야말로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성장세를 보여줬으니까. 그런 놈에 관한 가설을 세우려면 똑같은 선에 올라가야 맞지 않겠어?”
그 가설 중 하나가 쟈기 환생설이었다. 환생이나 전생 같은 것은 르암인 문학이나 신화에도 드문드문 등장했으니 쉘리 반데스가 아예 생각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다만, 마법적으로 그것이 확인된 적은 단 한 번도 없기에 고등한 마법사인 그조차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한 거겠지.
납득한 다두가 물었다.
“가설의 확인은 언제였죠?”
“피오드 대공과 너의 담화.”
“…….”
“그때는 상황이 급해서 그냥 넘길 수밖에 없었지만, 전쟁이 끝나고 게리소님에 돌아와 그 시점을 돌이켜보니. 옳다구나!”
짝! 하고 쉘리 반데스가 손뼉을 쳤다. 그가 기이한 흥분이 감돈 눈으로 다두를 바라보았다. 번드르르하게 굴러가는 눈동자가 광기를 바탕 삼은 탐구 정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었다.
“내 예상 중의 하나가 적중했어! 광인의 발언이, 몽상가의 헛소리가 맞았다고. 너는…….”
가쁘게 숨을 몰아쉰 쉘리 반데스가 그에게 고백하듯이 고했다.
“너는 과거에 션이었다. 션이었고, 쟈기로 다시 태어났다. 네 실력이 그토록 빠르게 향상된 것도 션일 적의 경험을 바탕 삼았기 때문이야.”
“…….”
“내 추리가 어떠냐 다두. 아니 쟈기였고 션이었던 자여.”
“후우!”
쉘리 반데스의 확신에 찬 추리를 듣고 다두가 항복을 뜻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쉘리 반데스는 그의 한숨 소리를 듣고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극한의 흥분에 빠진 그는 다두의 한숨에 섞인 일말의 안도를 눈치채지 못했다.
“당신…….”
“잠깐. 내 말이 맞았으니 다음으로 이것부터 하자.”
다두의 말을 끊고 쉘리 반데스가 빠르게 말했다. 그가 말을 끝내자마자 만세하듯이 양손을 위로 척! 들었다. 과거, 쟈기가 자른 손목은 어느새 멀쩡히 재생되어있었다.
멀쩡한 두 손바닥을 활짝 펴며, 쉘리 반데스가 다두에게 본인의 의사를 명확하게 전했다.
“항복이다.”
“…어. 예?”
다두가 황당해했다. 잘 가다가 뭔 항복이라는 건가? 그가 얼떨떨한 눈으로 쉘리 반데스를 바라보는 것과 대조적으로 쉘리 반데스는 진지 그 자체의 표정을 지었다.
“다두 아와 훔. 나 쉘리 반데스는 너와 적대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다두여. 협정을 맺자.”
쉘리 반데스의 간절한 항복 선언이 다두의 귓가로 스며들었다.
* * *
쉘리 반데스가 말했다.
“다두여. 협정을 맺자. 네 비밀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마. 내가 죽을 때까지, 죽은 그 순간에도, 죽음 이후에도. 네 비밀을 기억하고 있든 기억하고 있지 않든. 자의로든 타의로든, 그리고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심지어 힌트조차 흘리지 않으마.”
“……이해가 안 가는군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무슨 소리라니. 말 그대로다. 나는 죽어도 죽지 않는 괴물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
“오호. 저는 좀 더 격한 수단을 쓸까 걱정했는데요.”
“솔직히 말해서 너를 영원토록 봉인하거나 죽일 수 있을 것 같진 않으니까.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상대면 아예 싸울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지.”
“…….” 같지 않다는 건 계산을 해봤다는 소리 아닌가? 다두는 그의 항복 선언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의 고민을 알아차리듯이 쉘리 반데스가 재빨리 이어 말했다.
“불안하면 거래도 하지. 흑마법적으로, 네게는 어떠한 제약도 없고 내게만 정보유지의 제약을 걸면 된다. 그 대신 너는 내게 마법을 알려다오.”
역시. 이게 목적이었군. 너무 투명해서 도리어 다른 노림수가 있나 의심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쉘리 반데스는 진심이었다. 그의 관심과 욕망은 사시사철 변하지 않고 흐려지지 않는 마법에 관한 탐구였다.
그가 진지한 목소리로 다두에게 재차 말했다.
“나는 너의 비밀을 지킨다. 그 대신 너는…….”
“미리 말씀드리는데 제가 아는 ‘모든’마법은 안 됩니다.”
“아……!”
쉘리 반데스가 눈에 띄게 실망했다. 다두는 그의 실망이 어떠한 극단적인 행동을 이끌어올지 걱정되기에 다급하게 이어 말했다.
“대신 무색사광과 집합적 저주를 드리죠.”
“…뭐?”
“실전된 피의 울타르의 비전. 무색사광과 집합적 저주. 이 두 개를 드리겠습니다. 우선은, 우선은 이걸로 시작하죠. 어떻습니까?”
“우하하! 시작이 울타르의 비전이라니! 통도 크셔라! 그거면 충분하다!”
만족한 쉘리 반데스는 요상한 춤을 추었다. 마법과 관련된 일에는 가끔씩 저런 미치광이 같은 춤을 출 때가 있는 그였다.
다두는 춤을 추는 쉘리 반데스를 지켜보며 곤히 생각에 잠겼다.
‘어쩌지……. 조금 혼란스럽긴 하지만 예상외의 성과를 얻었어. 여기서 만족하고 끝낼까? 아니면 더 할까?’
악신의 피를 기반으로 제작했기에 현 세상의 정보와 에너지로는 더는 관측할 수도, 세울 수도 없는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마법. 무색사광과 집합적 저주.
쉘리 반데스는 마법에 미친 이였고, 그의 ‘거의 모든’ 관심사는 마법과 관련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다두의 비밀조차 다두의 마법을 얻으려는 교섭 재료로만 썼다.
나중에 또 어떤 미친 짓을 할진 모르겠다만, 일단은 지금으로썬 그랬다.
그렇듯이, 다두는 ‘인간’ 쉘리 반데스는 믿지 못하지만, ‘마법사’ 쉘리 반데스는 믿었다. 그리고 그가 믿고 안 믿고 와 관계없이 상황은 쓸 수 있는 수단은 모조리 써야 한다며 다두의 등을 떠밀었다.
‘……상관없겠지. 실패하면 어차피 망하는데, 마법 따위야.’
결국, 다두는 더욱 큰 출혈과 부작용을 감수하고 쉘리 반데스에게 마법을 푸는 것을 결정했다.
“어르신. 어르신, 잠시만요. 춤 멈춰봐요.”
다두는 춤을 추는 쉘리 반데스를 말렸다. 결심한 그가 쉘리 반데스에게 말했다.
“어르신. 마법 더 드릴게요.”
“엉? 더 준다고? 그러면 나야 고맙지. 어떤 걸 줄 게냐.”
“울타르의 대장로가 마지막 전투 때 쓴 흑마법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서 드리겠습니다. 그것들을 저 저만의 방식으로 개량한 버전도 드리지요.”
“오호!!!”
“천국의 계단 5대 마법. 공격의 비은다각형과 방어의 개변상수치환. 이 두 개를 개선한 것도 알려드리죠.”
“저, 정말이냐! 그러면…….”
“계속 들으십쇼. 초장거리 이동 마법진과 통신 마법진의 발전형. 그리고 비행정? 이게 많이 흥미로워서 저도 잠깐 끄적거린 게 있습니다. 그것도 드리겠습니다.”
“어, 어어…? 자, 잠깐? 그것도 준다고?! 나야 좋긴 한데 어째…….”
“아직 안 끝났습니다. 마법 회로. 다 좋지만, 인체에 회로를 까는 거에서 오는 필연적인 단점이 두 개 정도 있습니다. 그걸 완벽하게는 아니고 어느 정도 보완할 방법이 있는데 그것도 알려드리죠”
“……? 자, 잠깐. 다두…….”
“거기에 미세 마법 회로와 고정된 마법 회로를 이용해서 if 가정법을 비롯한 여러 함수 조건 삽입, 현대적인 마나 운용술에 필요한 여덟 가지 필수 조건과 마법사를 위한 신체단련법도 드리겠습니다.”
“…….”
“아, 참. 속성 변환의 심층적인 이해와 도시 단위의 대형 마법진 구축 및 결계 생성 시 반드시 필요한 핵심 이론법도 있군요. 또 삼차원적 마법 회로가 중구난방인 부분이 있는데 그것도 정리해서 드리겠습니다.”
“어, 어이… 다두. 이제 충분하니까…….”
“흠… 또 뭐가 있지? 아, 저번에 저한테 쓰신 어쩌고의 시선. 그, 뭐였냐. 시간 조작하고 공간 왜곡하신 거 있지 않습니까. 그거 완전하지 않은데 저 나름대로 이론을 잡아놓은 게 있습니다. 그것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 다두! 잠깐만! 멈춰라! 그만!”
“마지막으로 다두가 배운 주술입니다. 마법과 주술은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입니다. 격투기 선수가 타격기와 관절기를 따로따로 익히듯이, 숙련된 마법사라면 마법과 주술에 모두 통달해야 하죠. 그것도 드리겠습니다.”
“어……. 허?!”
쉘리 반데스가 턱이 빠져라 입을 벌렸다.
척-!
말을 끝낸 다두가 손을 들어 쉘리 반데스를 가리켰다.
“이게 지금 생각나는, 제가 개발한 마법의 전부입니다. 그것들을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위대한 마법사 쉘리 반데스여, 당신이라면 저것들의 가치를 잘 알고 있겠죠.”
“어, 어어…….”
“제가 바라는 것은 단순한 협정이 아닙니다. 저는 위의 지식을 대가로 당신을 사겠습니다. 당신이라는 인간이 가진 능력과 시간을 온전히 저를 위해서, 제 일을 전심전력으로 돕는 데 쓰십시오.”
“…너의 일을?”
“예. 저는 지금 매우 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당신이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마법의 탐구도 더는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아예 세상이 망해버리니까요.”
“……허?”
“쉘리 반데스. 저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저는 당신의 능력과… 당신이 가진 자원이 필요합니다. 저는 당신의 솔직하고도 완벽한 협력을 위해서라면 제가 개발한 마법 지식 따위야 얼마든지 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
“어쩌시겠습니까.”
주도권이 쉘리 반데스에게서 다두로 넘어왔다. 쉘리 반데스의 눈동자가 어지럽게 운동하며 다두를 위아래로 흘겨보았다.
쉘리 반데스는 그가 아는 관심법으로 다두의 기색을 읽어 진위여부를 판별했다. 놀랍게도, 다두가 미쳤고 쉘리 반데스가 미친 게 아닌 이상 다두가 한 말에는 일말의 거짓도 담겨있지 않았다.
쉘리 반데스의 눈이 젊었던 시절의, 뮤온 보트라와 동료들과 함께 세상을 종횡하던 그것으로 돌아왔다. 그가 침을 꿀꺽 삼키곤 다두에게 말했다.
“다두. 네가 이곳에 온 이유가 그저 고향 구경을 위해서가 아니었군.”
“예. 당신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도둑질 바로 전까지 갔지만, 지금에 와서 거기까지 말하는 건 사족이었다.
“…흠. 내가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어. 미안하네.”
사과한 셀리 반데스가 지팡이를 흔들었다. 그들을 감싼 인식 변환 마법이 몇 단계나 강해지고, 외부로 퍼지는 빛, 파동, 열, 진동 등의 물리적 에너지가 역탐지를 막기 위해 카오스 변환을 겪었다.
그 외에도 몇 가지를 추가로, 쉘리 반데스는 그가 아는 가장 강력한 정보 보호 조치를 취하고는 벤치에 앉았다. 그가 벤치 옆자리를 두들기며 다두에게 말했다.
“전후 사정부터 들어야 결정할 수 있겠어. 다두, 다두 아와 훔이여.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무엇을 보았고, 어떤 곤란한 일을 발견했는지 내게도 알려다오.”
“…예. 그건.”
벤치 옆자리에 앉은 다두의 입이 열렸다.
* * *
두 시간 후. 쉘리 반데스는 다두를 이끌고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그만의 비밀 실험실로 이끌었다.
어두운 돌계단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가는 와중, 쉘리 반데스가 무거운 분위기를 풀 요량으로 예전 이야기를 꺼냈다.
“아, 다두. 쟈기의 육체가 사망하자마자 손을 쓸 새도 없이 급격하게 녹아내리더구나. 뼈까지 말이지. 그게 어찌 된 일인지 아느냐?”
다두가 고개를 슬쩍 들어 허공의 한 점을 바라보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아… 그거 일부러 한 겁니다.”
과거, 쟈기는 웨일의 탄생에 션의 세포 조각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그의 몸에 강력한 세포 사멸 조치를 해두었다.
그의 사망이 확실시되면 세포에 누적된 생명변환 초능력이 세포간 결합과 세포막, 세포내 골격을 유지하는 필라멘트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분자 구조가 풀리며 발생한 잠열은 세포핵으로 전달하여 DNA의 한 조각도 캐내지 못하게 유전구조를 망가뜨리는 건 덤이었다.
참고로 다두에게도 똑같은 보호 조치가 되어있었다. 초능력, 성력, 마나의 세 기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기에 쉘리 반데스 수준의 마법사도 열에너지 조작으로 그의 세포 사멸을 막을 수 없었다.
“아쉽군. 그 탓에 소니아가 어찌나 울어댔는지… 뼛조각이라도 하나 남기지 그랬나.”
독한 녀석, 이라며. 설명을 들은 쉘리 반데스가 혀를 찼다. 계단을 내려가던 다두가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흘겨보았다.
“까고 있네. 마지막에 내장에 손 집어넣고 저 치료하는 척하면서 세포 조각 채취하려고 수 쓴 거 누가 모를 줄 알고?”
“엄…….”
그랬다. 쟈기와 뮤온 보트라가 마지막 대화를 주고받는 감동적인 장면의 이면에는 쟈기와 쉘리 반데스의 치열한 세포 주도권 싸움이 있었다.
다두가 괜히 쉘리 반데스에게 비밀을 밝히는 걸 경계한 게 아니다. 다 이유가 있으니까 경계한 것이다. 그가 단호하게 쉘리 반데스에게 경고했다.
“노인네, 당신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이상 제 손톱 한 조각, 머리카락 한 가닥도 이 세상에 안 남기고 갈 거니까 그렇게 아십쇼. 알겠습니까?”
“……크흠!”
사람은 할 말이 없으면 욕 말고도 헛기침을 한다. 쉘리 반데스처럼.
그의 민망한 헛기침 소리가 폐쇄된 나선형 돌계단을 타고 구석구석까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