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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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말[言]
등편은 창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호인 둘이 창살을 떼어내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노란 의복의 호인은 척 보기에도 거만한 발걸음을 옮기곤 창살 안의 아이들을 살폈다.
등편은 안쪽에서 그의 표정을 유심히 읽었다. 그는 얼굴에 불만을 가득 품은 채 고개를 슬쩍 돌려가며 아이들을 살피고는 옆에 있는 흰 털의 호인에게 으르렁거렸다. 흰 털의 호인은 고개를 굽실대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등편은 그런 그들의 행동을 보고 노란 의복의 검정 털을 가진 호인이 하얀 털의 호인보다 계급이 높음을 알아차렸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다른 아이들은 알아차리지도 못하겠지만, 등편은 어순과 단어를 조합하고 분위기를 파악하여 검정 호인이 하얀 호인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화를 내고 호통을 치는지 알 방도는 없었으나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아이들은 멀뚱멀뚱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서도 두려운 마음을 얼굴에 확연히 내비쳤다.
어떤 대화를 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 대화에 자신들의 목숨이 달렸다는 것은 그들도 직감적으로 알아챘을 터였다.
검정 호인이 고개를 심하게 도리질 치고는 우리 바깥으로 신경질을 내며 나갔다.
흰 호인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들고 있던 동아줄을 가지고 안에 있는 아이들을 이전 행군할 때처럼 줄줄이 묶었다.
손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손으로 칭칭 줄을 감는데도 아이들은 반항다운 반항도 하지 못했다.
등편 또한 이를 갈며 묶는 손아귀를 빠져나가려 했으나 호인은 잽싸게 잡아채어 힘으로 누른 후 묶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아 아이들은 긴 동아줄에 한데 묶인 형상이 되었다. 그러자 호인은 남자아이들을 묶고 나서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그저 그가 나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후 멀리서 검정 호인들이 창살 안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아까 물품을 수레에 옮기던 자들이었다.
병장기를 쥐고 자신들에게 다가온 모양새를 보며 아이들은 더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그들은 남자아이들이 있는 창살로 먼저 가지 않고 그 왼편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의아해했으나 곧 그들이 왜 왼편으로 갔는지 알 수 있었다. 여자아이들의 비명이 들렸기 때문이다. 날카롭게 허공을 울리는 여자아이들 특유의 울음소리가 장원을 가득 채웠다.
그 호인들은 여자아이들의 동아줄을 잡아끌고 나왔다. 그러자 여자아이들은 손이 묶인 채 팔을 길게 뻗고 줄에 끌려 나왔다.
거친 동아줄은 여자아이들이 반항할수록 손에 상처를 내었고, 손목이 붉게 물든 아이들도 여럿 보였다.
등편과 남자아이들은 그 광경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여자아이들은 줄에 의해 몸이 강제로 끌려 나오면서 비명과 함께 울음을 터트려 아이들의 마음은 더욱 찢어지는 듯했다.
“제길!”
한 아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제법 매섭게 생긴 아이였다. 그 아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고 제법 호기 있던 아이였다.
등편은 그 아이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제법 그를 따르는 듯했다.
그는 여자아이들이 개가 끌려가듯 하는 모습에 분노가 인 듯했고, 그를 따라 여러 아이가 움직였다.
등편도 자리에서 따라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용기만으로 저들에게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리라 생각한 등편은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보았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감시하는 초병이 없자 한데 모여 가장 먼저 일어난 아이를 필두로 서로의 매듭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호인의 손은 뭉툭하여 단단하게 줄을 동여맬 줄은 알았으나 매듭짓는 것은 상대적으로 허술했으므로 다른 이의 도움이 있다면 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이들은 호인들이 여자아이들을 끌고 나가는 시간을 이용해 그들의 눈이 닿지 않는 창살 안쪽 음지로 들어가 매듭을 풀었다.
한 명의 매듭이 풀리자 줄은 빠르게 아이들의 구속을 풀어버렸다.
한 아이가 등편의 줄도 같이 풀어주었다.
등편은 구속에서 풀린 것에 고마움을 표시하긴 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섣불리 나서지는 않았다.
아이들 몇몇은 비장한 각오를 했다. 그들 대부분이 자신의 눈앞에서 부모님을 잃고 여기로 잡혀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죽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이가 서둘러 다른 아이들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여기 장원은 탁 트이고 넓은 곳이라 도망가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만큼 탁 트인 곳이기 때문에 우리 전부를 잡을 순 없을 거다. 이대로 저들에게 죽을 순 없지 않은가. 우리 수십이 동시에 도망치면 개중 한두 명은 꼭 살아서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저들의 손에 잡혀 죽느니, 차라리 도망치다 죽는 것이 나을 거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 여러 아이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떡였지만 등편에게 그런 그들의 말은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이었다.
강함과 약함을 상대적으로 명확하게 잴 수 있었던 등편은 호인들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는 판단을 이미 오래 전에 내린 상태였다.
아이들은 그저 흐릿한 희망에 자신들의 생명을 내던지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등편을 포함한 아이들에게 그것 이외의 선택은 없었다. 결국 어리석은 행위임을 인정하면서도 등편도 최선을 다해 아이들과 뛰어보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여자아이들이 수레 근처로 끌려가는 순간 우리 모두 달린다. 알았지? 내가 먼저 신호하고 달리겠다.”
침을 꼴깍 삼키며 나이 많은 아이가 말하자 다들 입을 굳게 닫고 고개를 끄떡였다.
여자아이들이 점점 수레에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들의 눈빛이 한 아이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땀방울 여럿이 그 아이의 이마 언저리에서 볼을 타고 흘러내려 갔다.
순간 아이가 말했다.
“도망가자! 어떻게든 살아남자!”
그 아이의 달음질을 시작으로 아이들은 일제히 밖으로 튀어나왔다.
여자아이들을 끌어내는 데 집중한 호인들이 순간적으로 당황한 듯 사방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고 멍하니 멈춰 섰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순간이었다. 곧 그들은 두 다리를 맹렬히 움직이면서 아이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호인들은 진실로 빠르고 날쌨다.
아이들은 도망친 지 일각도 안 돼서 모두 잡혔다. 전부 잡혀 마당에 단단히 묶여 무릎을 꿇렸다. 아이들은 모두 죽음을 각오한 상태여서 맹렬히 저항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의 힘은 호인에 비해 너무나도 유약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전부 울화가 터질 듯한 상태였지만 강한 힘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크르렁! 크릉! 크어엉!”
노란 의복을 입은 검정 호인이 아이들 앞에 나와 길게 울부짖자 아이들은 그 울음소리에 잔뜩 위축됐다.
검정 호인이 한 아이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 아이는 나이가 가장 많고, 아이들을 선동한 아이였다. 멱살이 잡혀 검정 호인과 얼굴 위치가 대등해지자 아이는 갑자기 호기롭게 검정 호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죽여라! 내 부모를 죽인 원수 놈들아! 어서 나도 갈가리 찢어 죽여라, 이놈아!”
그에 검정 호인은 분노하여 그 아이를 집어 던졌다. 아이는 장원을 가로질러 삼십 척은 족히 날아가더니 머리부터 땅에 박혀 고꾸라져 죽었다.
검정 호인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앞쪽에 꿇려있는 아이들을 발로 차고 주먹을 휘둘러 때렸다. 아이 여럿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머리가 깨졌다.
호인의 힘이 너무나도 가공해서 아이들은 그 광경을 보고 어떠한 말도 잇지 못했다. 다만 공포에 물들어 입술과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그때, 아이들 사이에서 인간이 낼 수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랑! 크우어어어어!”
============================ 작품 후기 ============================
2014-07-30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