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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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랑[愛]
“이소호칸 형님이라니… 혹시 이분… 대족장님과 형제인가요?”
무명이 선고우의 대답에 놀라 수에르에게 묻자 선고우는 눈을 크게 뜨고 무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야, 이 인간 새끼는?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어떻게 인간이 범어를 할 수 있는 거야?”
선고우는 무명이 말하는 것을 보고서야 자신의 망치와 집게를 자리에 내려놓고 수에르를 보며 물었다.
범어를 하는 인간. 그것은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영감님, 아니, 아직도 이 애를 모르십니까? 얘가 대족장님에게 범어를 배우게 된 지도 1년이 넘었단 말입니다. 웬만한 자들은 전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왜 방금 들었다는 듯 놀라십니까?”
수에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선고우는 이를 드러내며 적대적으로 말했다.
“형님이 애를 가르치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지 않냐? 1년 내내 여기 처박혀 쇠를 두드리고 있는데 무슨 소식이 나에게 날아들겠냐, 어? 네가 나에게 말이라도 해줬냐? 맨날 칼 하나만 던져놓고 가는 녀석이?!”
“아니, 영감님. 전 이전에 분명 말했다구요. 영감님이 못 들은 거죠. 맨날 철 두드리는 데만 정신이 팔렸으니 제 이야기를 듣질 못하신 거죠.”
수에르가 항변하자 선고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는 못하고 고요히 무명을 바라보기만 했다. 무명은 자신을 쳐다보는 선고우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제야 선고우가 입을 열었다.
“그래, 인간아. 이소호칸 형님은 내 친형이지. 이렇게 작은 인간이 어떻게 형님의 가르침을 받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범어를 능숙하게 쓰는 것을 보니 예사 놈이 아니로구나.”
선고우가 말을 마치자 수에르가 이때다 싶어 말을 이었다.
“그렇소, 영감님. 그런데 말이우, 이 녀석이 이제 여기서 일을 배우면서 지내라는 대족장님의 부탁이 있었소. 영감님, 제가 아끼는 아이기도 하니 잘 부탁드리우.”
“네놈이 아끼는 아이라고? 인간에게 아낀다는 표현을 쓰다니 맛이 가도 한참이나 갔구나.”
“아이고, 영감님. 대족장 어르신도 이 아이에겐 아낀다는 표현을 아낌없이 쓰십니다. 저만 가지고 뭐라 그러지 마십쇼. 뭐 영감님도 무명과 지내다 보면 왜 아끼게 되는지 알게 되시겠지만 말입니다.”
“무명? 이름이 있단 말이냐? 이 인간 새끼에게? 허, 참. 형님도 많이 늙긴 하셨구나.”
선고우가 계속해서 수에르에게 따지듯 말하자 무명이 수에르가 가지고 있는 부담을 조금 덜기 위해 입술을 슬며시 들어 올렸다.
“무명이란 호칭은 ‘이름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소호칸 어르신께서 임시로 지어주신 칭호이니 원하시면 원하시는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흠, 흠. 형님께서 지으신 거라면 뭐…….”
“영감님, 이름이 무슨 상관입니까? 어찌 됐건 이 아이가 지낼 곳은 있겠지요, 영감님?”
수에르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선고우는 아니꼬운 듯 그를 흘겨보고 다시 망치와 집게를 손에 들며 말했다.
“요새 일손이 부족하다고 전언을 넣었더니 이런 꼬맹이 하나를 보내 주시다니… 형님도 야박하시지 않은가.”
“저뿐만 아니라 어르신께서 더 많은 인원을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고우가 뭔가 투덜거리려 하면 무명이 척척 거기에 답을 했다. 선고우는 더 이상 꼬투리 잡을 것이 없는지 툴툴거리며 단조하던 철을 계속 두드렸다.
“다음 주쯤에 여기로 오도록 해. 63녀석에게 말해 둘 테니까.”
선고우가 더 이상 말을 잇고 싶어 하는 눈치가 아닌 것을 느낀 수에르는 슬금슬금 뒤로 빠져 무명과 그곳에서 나왔다.
공방에서 거리를 조금 두자 수에르는 숨을 내쉬면서 무명에게 말했다.
“후… 좋은 분이긴 한데… 선고우 영감님은 워낙 거칠단 말이지. 나 어렸을 때는 저리 거칠지는 않으셨는데 말이지.”
무명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제가 볼 때엔 대족장 어르신만큼은 아니라도 상당히 강해 보이시는데 왜 저기서 철을 두드리고 계신 건가요?”
“아, 너 못 봤구나. 저분 왼쪽 다리가 의족이야. 육 년 전쯤에 대족장 선출 결투 중에 다리를 부상당해 절단할 수밖에 없었지. 본래 결투에서 부상당해 재기할 수 없는 불구가 되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당연한데 이소호칸 대족장님은 동생을 죽이는 것을 한사코 반대하셨지. 선고우 영감님은 자진(自盡)해서라도 죽음을 택하려 했지만, 대장일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은 분이셔서 칼을 들을 수 없는 몸이라면 칼을 만들어 네 존재를 가치 있게 지파를 위해 쓰라는 대족장님의 말에 그 이후로 지금까지 철을 두드리고 계신 거야.”
“그런가요? 다리 쪽은 보질 않아서요. 다리가 의족이셨군요.”
“다리가 그 모양이 되고 나서는 상당히 날카로워지셨지. 그전까지는 이소호칸 어르신보다 더 온화한 분이셨는데 아마 받고 있는 정신적인 고통이 상당하실 거야.”
수에르가 말하자 무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범족에게 불구가 되는 것은 그 어떠한 것보다 큰 수치라는 것을 이소호칸과의 공부를 통해 잘 알고 있는 그였다.
특히나 다리는 더 중요한 것이었다.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같을지 모르나 팔이 떨어져 나간 자는 그래도 남아있는 다른 팔로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자격은 되었다.
하지만 다리가 불구면 그마저도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결투나 사고로 불구가 된 호인에게 예장(禮葬)이라는 독특한 절차로 죽을 기회를 주었다. 그것은 구차하게 사는 것보다 훨씬 명예로운 죽음이었기에 많은 호인들이 불구가 되었을 때 예장을 선택하여 죽음을 맞았다.
수에르의 말대로 불구이면서 살아있는 선고우는 평생 치욕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저렇게 고통스럽게 철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예장을 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몸만 성하셨으면 지금 대족장님이 이소호칸 님이 아니라 선고우 님이 되셨을 텐데 말이지.”
수에르가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무명은 아직까지도 선고우에게서 풍기는 투기로 보아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불구가 되어서도 그 정도의 투기를 풍긴다는 것은 과거, 그가 얼마나 대단한 투사였는지를 쉽게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가 되었다.
“어찌 됐건 앞으로는 더 바빠질 거야.”
수에르가 무명의 머리를 두터운 손가락으로 콕 찍어 내리며 말했다. 무명은 그런 수에르를 보며 헤프게 웃었다.
“악기 배우는 걸 까먹지 말라고!”
수에르는 품에서 피리를 꺼내었고 무명도 따라 피리를 꺼내 불었다. 둘은 실로 죽이 잘 맞는 친우이며 사제 관계였다.
무명은 숙소로 돌아와 이마진에게 자신이 숙소를 옮길 거라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숙소 내에서 원하는 사람과 같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숙소는 한바탕 무명이 가져온 소식을 듣고 소란이 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방에 간다는 것은 이곳보다는 조금 더 나은 대접을 받는다는 소리였다.
공방은 보통 성인이 된 남자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것도 극소수만 공방에 갈 수 있었다. 공방에 가는 것이 무엇이 대단하다고 느낄지는 몰랐지만 이곳 아이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성인식으로 인정받았다. 무료한 이곳의 생활보다는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조건들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그들에게 부담은 컸다. ‘성인이 되지 않았는데 공방에서의 힘겨운 일을 견딜 수 있을까?’라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숙소 아이들 중에 어린 축에 속했던 테이가, 추산, 토레, 긴자안―테이가와 추산은 무명과 나이가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체구가 작았다―은 공방 행을 포기했다. 므한주는 공방에 가고 싶어 하긴 했으나 남는 아이들을 위해 이곳에 남는 것을 결정했다.
다음 주가 되어 공방으로 가는 아이들은 모두 짐을 싸 숙소에서 나왔다. 이마진의 경우 4년 만의 이동이었다. 그리고 이 이동이 공진희와 더 가깝게 지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에 기대를 가졌다.
그들은 수에르가 이끄는 대로 마을 어귀의 공방으로 향했다. 숙소에 남은 아이들이 떠나는 그들을 따뜻하게 배웅해 주었다.
공방에 도착하자 구릿빛 피부의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남자가 수에르를 맞았다. 탄탄한 육체의 근육들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는 아이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마진에게 다가와 말했다.
“너희가 이번에 새로 오는 애들이냐? 너무 앳된데? 나이가 몇이야?”
이마진은 그에게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열, 열아홉입니다.”
“아이쿠,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애들을 보내주다니… 이래서 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
그는 툴툴거리며 수에르를 대신해 아이들을 숙소로 인도했다.
수에르는 그가 가져다 준 서신을 읽고 아이들을 인계했다. 서신에는 범어로 ‘아이들을 이 인간에게 넘겨주고 가’라고 적혀있었다. 수에르는 가면서 무명에게 말했다.
“그럼 내일부터 아침 시간에 여기로 맞으러 올게.”
무명은 웃음으로 화답했고 바로 인도해 주는 사람의 뒤를 따라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 안은 상당히 널찍했다. 자신과 아이들이 사용하던 방의 두 배는 돼 보이는 공간에 마루가 깔려있었고 옷가지와 이불이 가지런히 쌓아져 있었다.
“여기서 지내면 될 거다. 일은 내일부터 시킬 테니까 오늘은 짐을 풀고 쉬도록 해. 앞으로 상당히 고되게 가르칠 테니 몸을 푹 쉬게 두는 게 좋을 거야. 아, 나는 관엽이라 한다. 나이는 너희보다 상당히 많으니 존칭을 쓰는 게 좋을 거야. 아참, 호인들 앞에서는 이름을 부르지 말고 63이라고 불러라. 호인들은 이름을 쓰는 걸 상당히 껄끄럽게 생각하니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새로 배정받은 숙소에 여장을 풀고 하루를 정말 하는 일 없이 쉬었다. 밥 때가 오면 관엽이 와서 식사 장소까지 데려가 먹였다.
아이들은 식사를 하면서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여기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견 이백은 가까이 돼 보이는 무리였다. 모두 남자들이었고, 건실하고 튼실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무명은 수없이 두리번거리며 공방 안 지리를 몸으로 익혔다. 실은 골목마다 너무 복잡하게 꼬여 있었기에 익숙하지 않으면 상당히 헤맬 수 있는 길이었다. 수에르와 한 번 와봤기 때문에 익히 복잡함을 알고 있던 무명은 최대한 빨리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숙소까지 따라온 관엽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무명이라는 녀석이 누구냐?”
무명은 관엽이 자신의 이름을 부름에 재빨리 고개를 들어 답했다.
“제가 무명입니다.”
“네가 무명이냐?”
관엽은 무명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네가 대족장에게 호인의 언어를 배우고 있는 아이냐?”
“예.”
관엽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재차 확인하자 무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물음에 답했다.
“따라와, 철공(鐵工)께서 부르신다.”
관엽은 두터운 눈썹을 찌푸리며 손짓했고, 무명은 자신을 부른다는 말에 철공이 누군지도 모르고 앞으로 나아가 그를 따라갔다.
“관엽 님, 저기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무명이 공손하게 관엽의 등을 보며 말했다. 관엽은 뒤도 쳐다보지 않고 발을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철공 님이 누구십니까? 제가 모르는 분 같은데요?”
관엽은 뒤를 돌아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철공 님은 공방의 최고 담당자이시지. 너도 전날에 만나뵈었을 텐데?”
“선고우 님 말씀이신가요?”
무명은 확신이 서지 않아 조그맣게 말했다.
“음, 그래. 선고우 님. 여기서는 모두가 철공 님이라 부른다. 이름으로 부르지 말고 철공 님이라 불러. 더 기뻐하시니 말이야. 그리고 그분 앞에서 나를 관엽이라 부르지 마라. 63이라고 불러. 그분은 인간이 이름을 가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니 조심하라고.”
관엽은 무명에게 다짐시키며 말했고 무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고우의 공방은 숙소와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워낙에 건물들에 가려 위치를 확인하기 힘들 뿐이지 모든 장소가 오밀조밀하게 붙어있었다.
무명은 지난번 수에르의 인도로 들어간 선고우의 공방에 천천히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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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4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