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05
203화 천하제일 면왕대회(3)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무림에서 살면서 느낀 건데, 그 말은 희대의 개소리다. 최소한 무림 세계에서는.
태어나길 허약하게 태어난다면 무공을 익히기는커녕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해 굶기 일쑤였고.
글공부를 해 출세해 보려 해도 집안이 받쳐 주지 않으면 불가능했으니까.
남은 건 농사꾼이나 상인이 되는 길뿐인데, 물려받은 땅이나 재산이 없으면 평생 남 밑에서 가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월화루를 떨어뜨린다!’
지금 나는 양령의 월화루를 탈락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개소리를 마음속에 품고서 말이다.
또한,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라면이란 본래 서민의 친구, 결코 좋은 재료만을 써서 만드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스턴트의 맛을 보여 주마.’
텅텅텅텅텅.
가장 먼저 양령에게 배운 분노의 칼질로 모든 재료를 일정한 크기로 썰었다.
물론, 재료는 싱싱하지 않았다.
채소들은 오래되어 절반쯤 물러 있었고, 닭은 삐쩍 말라 살 한 점 없었으며, 밀가루에선 몇 해는 묵은 듯 퀴퀴한 냄새가 났다.
그렇기에 나는 재료에 손을 뻗었다.
치이익.
강기와 더불어 초절정의 상징 중 하나인 삼매진화.
내공으로 만들어 낸 초고온의 열기가 재료들을 그을리기 시작했다.
열을 가해 향을 극대화한 것이다.
덕분에 재료에서 풍기던 오래된 냉장고 냄새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후우.’
엄청난 내공 소모에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이것만 해도 이렇게 힘든데 고열의 불을 자유롭게 내뿜다니.
역시 북궁 사부는 마왕의 환생이 분명하다.
그렇게 한차례 가열한 재료들을 커다란 솥에 넣고 불에 올려 육수를 끓이기 시작했고.
물이 끓는 사이 밀가루에 물을 부어 치댔다.
평범한 반죽이 아니다.
화아악.
‘태양의 손!’
내공으로 손에 열을 가해 반죽과 동시에 숙성을 시켰으며.
꾸우욱. 으지직.
전왕기를 끌어올려 엄청난 압력을 가해 글루텐을 생성시켰다.
대충 압착 기계로 뽑은 사누끼 우동을 생각하면 된다.
덕분에 반죽은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이제 길게 뽑아 기름에 튀기기만 하면 면은 완성이다.
‘오래된 거 같지만 쓸 만하군.’
그나마 다행인 건, 기름은 쉽게 상하지 않는 특성상 최악의 상태는 아니었다는 거다.
치이익.
가열한 웍에 덩어리진 돼지기름을 넣어 녹임과 동시에.
슥슥슥슥.
전왕십삼투의 묘리를 담은 움직임으로 벼락같이 면을 뽑아 냈다.
치이익.
가늘고 긴 면을 기름을 묻혀 둔 젓가락에 돌돌 감아 웍에 넣자 순식간에 튀겨지기 시작했다.
면을 완성하자마자 솥을 열어 육수의 상태를 확인했다.
‘일단 냄새는 합격.’
후룩.
‘역시.’
재료가 좋지 않아 육수가 진하게 우러나지 않았다.
뭔가 수를 써야 했다.
라면의 생명은 진하고 깊은 육수에 있었으니까.
이 자리를 빌려, 한 숟가락으로 깊은 맛을 주는 가루를 개발한 식품 업계 관계자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바다.
‘흡.’
파지직. 파직.
이 갑자가 넘는 전왕기를 전부 끌어올렸다.
지금이야말로 전력을 다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다시는!’
뜨거운 솥에 양손을 붙여 다시 한번 삼매진화를 펼치는 한편, 진동을 줬다.
지이이잉.
시뻘겋게 달궈지는 솥.
제한된 시간 안에 재료에 담긴 마지막 맛까지 뽑기 위함이었다.
‘다시는 라면을 먹지 못해도 좋다!’
최고의 라면을 만들어 양령 년을 패배시키고 말리라.
웅성웅성.
‘응?’
그렇게 육수까지 완성하고 나니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니 관객과 숙수들이 하나같이 놀란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심지어 나름대로 고수의 반열에 이른 적화란까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아뿔싸!’
그랬다.
복수심에 사로잡혀 정체를 감추는 걸 그만 깜박 잊고 있었다.
“이, 이런! 87번 참가자는 무림의 고수였습니다!”
오늘 대회의 사회를 맡은 하진형이 내공을 담아 외치자.
와아아-!
관객석에서 폭발적인 함성이 터졌다.
“저런 고수까지 대회에 참가하다니. 이거 참 신기하네그려.”
“이를 말인가. 돈이 좋긴 좋나 봐. 고수라면 나가서 칼질만 해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텐데.”
“예끼, 이 사람아. 저런 고수가 돈을 보고 왔겠나?”
“그럼?”
“특급 주사라는 영광을 얻기 위해 온 게지.”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대충 ‘요리사가 무공을 숨김’ 정도로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오히려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전력을 다한다.’
작은 냄비에 육수를 걸러 붓고 소금으로 간을 한 뒤, 튀긴 면을 넣고 끓였다.
동시에 웍에 기름을 넣고 갖가지 향채와 산초를 볶았다.
화룡점정인 향미유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완성이오!”
마침내 복수의 라면을 완성할 수 있었다.
* * *
“인피면구를 쓴 것 같은데 정체를 감추는 이유가 있소?”
대회 심사의 장을 맡은 북궁창이 물었다.
“오로지 국수로만 평가받고 싶어 정체를 감췄소이다.”
목소리를 변조하여 대답하니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존중하겠소.”
“고맙소.”
그가 심사단을 돌아봤다.
“천천히 맛을 보고 점수를 적어 내게 주시오.”
그러자 심사단이 서둘러 다가왔다.
아마, 아까의 퍼포먼스가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
아, 참고로 심사단은 북궁창과 상련의 고위층들이 맡게 되었다.
아무래도 직업 특성상 천하에 내로라하는 음식들을 이것저것 많이 먹어 봤을 테니 말이다.
후루룩. 후룩.
긴장되는 순간.
단언컨대 살마광귀 현산월을 상대할 때보다 다섯 배는 더 긴장되었다.
“…….”
한 입씩 먹은 심사단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
맛은 완벽했다고 자부한다.
어쩌면, 월화루에서 만든 것보다 더욱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육수에는 자신이 있었다.
‘면이 문젠가?’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면의 식감. 유탕면이라는 개념이 없다시피 한 무림이기에 대중적인 맛과 동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 이럴 수가!”
“처음 먹어 보는 맛이다!”
“입안에서 닭이 날아다니는구나!”
정신을 차린 심사관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정신없이 라면을 흡입했으니까.
“꿀꺽, 이 국수의 이름이 무엇이오?!”
북궁창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라면이오.”
“라면이라……. 심심한 이름이군.”
그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내 이 국수의 이름을 지어 줘도 되겠소이까?”
“얼마든지.”
좋은 생각이 있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제품명은 언제나 중요한 법이니까.
“닭의 깊은 향과 소채의 달큼한 향, 돼지의 향까지 머금었으니 삼향라면이라 하는 게 어떻겠소?”
“……뭐, 그렇게 합시다.”
이거 표절 아닌가 싶긴 했지만, 뭐 어떤가.
여기는 중세고 거기는 현대인데.
“다들 어떻소이까. 이 정도면 최종 심사로 넘어가도 될 듯한데.”
“좋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집니다.”
단 셋만 뽑는 최종 심사다.
여기에만 넘어가면 33.3%의 확률로 우승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 어떤 국수가 올라와도 라면의 상대는 아니다.’
그렇게 우승으로 달려가나 싶었지만.
“이의 있소!”
생각지도 못한 태클이 날아들었다.
‘아니, 저 양반이…….’
한중상련의 바지련주, 모극이었다.
그가 좌중을 돌아보며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맛은 훌륭하나 다른 이들의 국수를 이기기엔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외다.”
“맛있게 드시는 것 같더구먼, 무슨 불만이라도 있습니까?”
북궁창의 물음에 그가 자신이 먹은 그릇을 들어 모두에게 보여 줬다.
텅텅 빈 그릇.
싹싹 긁어 먹어 놓고 왜 저 지랄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보시면 알겠지만, 이 국수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소이다.”
“그게 무엇이오?”
“고명이외다. 무릇 국수란 국물과 면, 고명이 한데 어우러져 맛을 내는 법. 하나 이 국수에는 고명이라곤 기름에 볶은 향채밖에 없었소이다.”
“으음…….”
“그,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해 보니 조금 빈약한 것 같긴 했소이다.”
그의 주장에 몇몇 심사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 상련에 소속된 상단주인 심사관들이기에 상련주이자 대상단의 주인인 그의 의견에 반박하지 못하는 모양.
“맛만 있으면 되지 그렇게까지 따져야 하는 것이오?”
북궁창이 반박했으나 모극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평소라면 최고의 국수가 맞겠지만, 지금은 면왕을 뽑는 대회요. 당연히 모든 것을 따져 봐야 하지 않겠소이까?”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나조차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라면이 잘해 봤자 라면이지, 최고급 요리는 아니지 않은가.
“으음…… 그러면 역시 최종 심사에 올리지 않는 것이…….”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이 아닌 법.
“여러분들은 국수라는 음식을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최후의 변론을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릇 국수란 무엇입니까? 배고픈 서민이 식사를 때우는 끼니가 아닙니까?”
“그, 그건 때에 따라…….”
“허어, 그럼 천하에 있는 백성들이 쌀밥에 고깃국만 먹고 삽니까?”
“그렇게까진 말하지 않았는데…….”
“그게 그거지요.”
동시에 검지로 벼려 놨던 재료들을 가리켰다.
“저기 보십시오. 하나 같이 버려지기 직전의 싸구려들입니다.”
심사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상인들이라 물건 보는 안목이 있었다.
“……확실히 좋은 것들은 아니구려.”
“저는 이것들로 이 라면을 만들었습니다.”
“이, 이런 것들로 그런 맛을?”
“비싸지 않은 재료로 누구나 만들 수 있어야 진정한 국수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누구나 만들긴 개뿔이.
삼매진화를 일으키고 이 갑자가 넘는 내공을 쏟아부어서 겨우 완성했는데.
“하지만, 지금 이 자리는 면왕을 뽑는…….”
“면왕이 대체 뭡니까!”
내공을 담은 외침에 관객들의 시선이 전부 내게 집중되었다.
“백성의, 백성에 의한, 백성을 위한 국수를 만드는 이가 아닙니까!”
옳소-!
짝짝짝짝.
관객석의 모두가 손뼉을 마주쳤다.
어느새 연설이 되어 버린 상황.
나는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백성들이 가볍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자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이 라면입니다. 소동파 선생께서 만든 동파육처럼 말입니다.”
“그, 그런 깊은 뜻이…….”
모극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사회적 위치를 생각한다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미안하외다. 내 그런 깊은 뜻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소이다. 오늘의 결과를 떠나 이 모극, 그대를 대숙수라고 생각할 것이오.”
“아닙니다. 처음부터 설명했어야 하는 건데……. 저도 잘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북궁창이 나섰다.
“자, 그럼 87번의 국수를 최종 심사에 올리는 데 다들 동의하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우승을 확신하며 머리 끈을 풀었다.
“변변치 않았습니다!”
* * *
잠시 후.
나는 시상대에 올랐다.
“…….”
상금도 칭호도 없는 3등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일 등은 누구냐고?
짝짝짝짝.
“다들 고마워요. 호호호호.”
집밥 묘 선생이지 누구겠는가.
생각해 보면 애초에 심사단이 상련 소속의 상단주들인 것부터가 문제였다.
실세가 대회에 나왔으니 당연히 만점을 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정말 더러운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이하 동문.”
짝짝짝짝.
“…….”
2등을 한 탓에 이름도 불리지 않은 양령이 썩은 표정으로 상금을 받았다.
아, 참고로 그녀는 온갖 최고급 재료를 때려 박아서 국수를 만들었다.
아무리 라면이 맛있어도 열 냥짜리 홍화주를 때려 부은 볶음면을 어떻게 이기냔 말이다.
‘이건 실력이 아니야.’
개 같은 계집애.
“……이하 동문.”
짝짝짝짝.
시상자를 맡은 육학이 빳빳한 종이를 건넸다.
이거 어제 내가 직접 쓴 상장이다.
‘내가 쓰고 내가 받는 상장이라니.’
시뻘겋게 내리쬐는 석양이 꼭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하지만, 한 번의 좌절로 목표를 포기한다는 건 하남자의 특징.
나는 이를 악물며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번엔 반드시 우승한다.’
제2회 천하제일 면왕대회의 개최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