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41
340화 무황성(2)
“당했군.”
“예, 완전히 당했습니다.”
서천의 지배자 구룡성의 성주, 그리고 그 구룡성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문상이 한숨과 침음성을 흘렸다.
“최근 들어 사자맹의 행보가 과감해지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흐음…….”
“오랑캐를 사주하여 중원을 침공하게 하고 뒤에선 황제를 죽이고 황궁을 장악하다니요.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 계략을 세운 놈의 머리를 열어 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문상이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허…… 이러려고 문상을 했나 자괴감이 드는군요. 아무래도 물러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자네가 물러나면 나도 같이 물러나지.”
“예?”
“성주 짓도 귀찮아서 말이야. 그냥 은자림 같은 곳이나 가서 술이나 담그며 살고 싶네.”
“아직 환갑이 되시려면 한참 남은 걸로 압니다만…….”
“그러는 문상은 나보다 한 살이 어리지.”
“무인과 문사는 다르지요. 엄연히 수명의 차이가 있는데요.”
“평균 수명은 문사가 더 높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거야 무인은 싸우다 죽는 경우가 많아…… 아니. 진 당주에게 입담이라도 배우셨습니까? 오늘따라 청산유수이십니다그려.”
“사람이 세 명이면 하나는 스승이라고 하지 않는가. 제자에게 배울 때도 있는 것이지.”
북궁백이 작게 웃으며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이미 벌어진 일. 그만두기보단 대책을 찾는 게 우선이겠지. 또 후임자도 정하지 않고 그만두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설마 진짜 그만둔다고 했을까 봐요. 그냥 투정 한번 부려 본 것이지요.”
“그럴 줄 알았네.”
“…….”
“그래, 앞으로 어떻게 되리라 생각하나?”
“이대로 몇 년이 지난다면 사자맹의 힘이 극단적으로 커질 겁니다.”
“그렇게까지?”
생각보다 강한 표현에 북궁백이 눈썹을 꿈틀거렸고 문상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류 제국의 황실이 지배하는 강소와 절강은 중원에서 가장 부유한 땅입니다. 두 성에서 나오는 곡식이 서천 전체에서 나오는 양보다 많을 것이고, 물자 또한 풍부하여 군대를 조직하기도 용이한 곳이지요.”
“…….”
“이런 곳을 집어삼켰으니 사자맹이 천하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단순히 돈이 많다고 해서 전력이 상승하는 건 아니지 않나?”
“일만의 군대를 거느린 사자맹과 전쟁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구룡성 홀로 감당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으음…….”
“그리고 어디 겨우 일만이겠습니까? 있는 대로 박박 긁어모을 놈들이 아닙니까? 모르긴 몰라도, 삼만 명까지도 가능할 겁니다.”
“필패로군.”
“그렇습니다. 거기다 후방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날개를 달게 되는 셈이지요.”
북궁백의 눈빛이 깊어졌다.
조부인 북궁일, 아버지인 북궁십, 그리고 자신까지.
삼 대가 꿈꿔 온 북궁가의 재건이다.
구룡성을 바탕으로 힘을 키워 가는 이 상황에서 재건의 가장 큰 장애물인 남궁가가 팽창하는 건 위험한 신호다.
아니, 어쩌면…….
‘천하가 남궁 놈들의 손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
만약 그렇게 되면, 북궁가를 재건하기는커녕 목숨을 부지할 방법을 걱정해야 할 터이다.
심각해진 표정으로 그가 방법을 물었다.
“방안이 있나?”
“먼저 시간을 끌려 합니다.”
“시간?”
“역모를 획책하여 황제를 죽였다 하나, 아직 강소와 절강을 장악한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시의적절하게 우도독 조명산이 빠져나갔다고 하니 당분간 치열한 공방이 지속될 겁니다.”
“거기에 참여한다?”
“맞습니다, 우도독에게 힘을 실어주어 사자맹이 두 성을 차지하는 시기를 늦추는 겁니다. 마침 진 당주가 우도독과 인연이 있으니 받아들일 겁니다.”
“그놈이?”
“지금 우도독을 지키는 무인들이 바로 충렬공파의 무인들입니다. 전룡당과 은가장, 태모산성, 해남검파가 참여한 나름 거대한 세력이지요.”
“여기저기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더니 나름 인맥을 쌓아 놨군.”
“하늘이 내린 입담이 아닙니까? 순진한 장문인들 정도야 찜 쪄 먹고도 남죠.”
“그것도 그렇군.”
작게 웃던 북궁백이 다시 물었다.
“그래봤자 임시방편이겠지?”
“예, 이쪽에서 전면전을 펼칠 각오로 싸우지 않는 이상 결국 사자맹이 이길 겁니다. 하여.”
문상이 숨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무황성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무황성이라…….”
“강소의 바로 위는 무황성의 영역인 산동입니다. 만약 무황성의 오천 검귀 중 일천만 남하해도 사자맹으로선 큰 부담이 될 것입니다.”
“장성을 지키느라 바쁜 그들이 과연 우리 말을 들어줄지가 의문이군.”
“오히려 장성을 지켜야 하니 들어줄 가능성이 큽니다.”
북궁백이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문상을 마주했다.
“사자맹이 오랑캐들에게 식량을 지원하며 중원 침공을 사주했습니다. 이건 무황성에 대한 도전이나 다름없지요. 아마 내부에서도 말이 많을 겁니다.”
“호오.”
“동시에 무황성은 우리에게 빚을 졌습니다.”
“빚을 졌다라…….”
“어떤 분의 제자가 삼만의 오랑캐를 통째로 갈아 마셔 버려서 말입니다. 그만큼 방위에 대한 부담도 많이 줄게 되었으니 충분히 협상할 여지가 있습니다.”
“옳군. 그렇게 하지. 직접 다녀올 텐가?”
“제가 왜 갑니까? 빚을 지운 당사자가 한중에 머물고 있는데. 무황성에서도 제가 가는 것보다 훨씬 좋아할 겁니다.”
“……사고를 칠까 염려되어서 말이지.”
가능성 있는 이야기에 문상의 눈동자가 살짝 요동쳤다.
“설마,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지위도 지위이고 혼인한 지 꽤 되었으니 어른스러워졌을 겁니다. 아마도……?”
“…….”
“정 뭐하면 이번에 논의했던 감투를 먼저 씌워 주는 것도 방법일 듯합니다. 구룡성을 대표하는 위치에 오르면 행동거지를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
무전의 승진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 * *
“구룡성 망했으면 좋겠다.”
사람이 능력을 갖추는 이유가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편히 살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놈의 무림은 능력이 있는 순서대로 부려 먹히니, 이래서야 언제 애를 낳아 출산율에 기여한단 말인가.
전쟁의 뒤처리를 끝내고 이제 부인이 있는 집에 돌아가는 일만 남았었는데 사천 리가 넘는 무황성으로 가라는 건 너무 하지 않는가.
“허어……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구나!”
한탄스러움에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우리가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하면 무황성주가 그리 말할 겁니다. 그러니 제발 빨리 가시죠. 이대로 가다간 늦을지도 모른다고요.”
“네 이놈! 명색이 전룡당의 수석 군사라는 놈이 어찌 남의 생각만 한단 말이냐!”
“그럼 무황성주를 기다리게 하려고요? 천하제일인을?”
“그건 안 되지. 뭐 해? 빨리 출발 안 하고?”
“…….”
내 전용 호위대인 용풍대의 무사가 마차를 출발시켰다.
성주의 호위를 전담하던 암독단 출신들이라 그런지 마차의 코너링이 매우 훌륭했다.
“철산아.”
“예.”
창문을 열고 이름을 부르니 가장 뒤에서 스물의 용풍대 무사들을 통솔하던 주철산이 얼른 달려왔다.
“얼마나 걸리겠냐?”
“지금 속도로는 이틀 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아슬아슬하네.”
아무래도 북경 구경에 시간을 너무 썼나 보다.
“속도를 올리시겠습니까?”
“반나절만 당기자.”
무황성에 도착하면 이것저것 준비도 해야 하니깐 말이다.
“알겠습니다. 속도를 올린다!”
“예!”
두두두두.
유소평이 창밖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무슨 고민이 있나 싶어 물으니 생각 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평생 당주님을 따라다닐 제가 처량해서 그렇습니다.”
“…….”
아니, 나 같은 상사가 또 어디 있다고.
‘내년 연봉 협상 때 두고 보자…….’
딱 물가 상승률만큼만 올려 줄 테다.
그렇게 하루를 더 간 우리는 목적지인 무황성과 반나절 거리에 있는 전서에 도착했다.
바로 객잔을 잡아 식사를 해결한 뒤, 모두에게 휴식을 명령했다.
“오늘은 다들 고생했으니 호위고 뭐고 그냥 쉬자. 아, 내일은 무황성에 들어가야 하니까 깨끗이 씻는 거 잊지 말고.”
“그래도 호위는 서야…….”
“쓰읍, 나 몰라?”
“아무리 천하에서 손에 꼽히시는 고수셔도……. 컥.”
털썩.
지풍을 날려 주철산의 수혈을 짚었다.
일전 종남산에서 매화 사랑 산악회의 회주를 기절시켰을 때와 같은 수법이었다.
“데려가서 재워. 그리고 다들 씻고 바로 자. 눈이 시뻘게져서 호위는 무슨.”
“……예.”
현대에서 여행이란 즐거운 여가 생활이지만, 무림에서 여행이란 골병을 양산하는 중노동이다.
아무리 고수라도 이렇게 쉬어 주지 않으면 병에 걸릴 수도 있다.
‘그야말로 참된 CEO.’
이 진무전이나 되니까 이렇게 챙겨 주지, 다른 악독 상사 같으면 어림도 없을 것이다.
“소평이도 얼른 가서 쉬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
그렇게 모두를 올려 보낸 나는 전서의 밤거리로 향했다.
진정한 CEO는 항상 스스로의 발전을 획책하는 법.
기왕지사 여기까지 왔으니 무황성의 백성들은 어떻게 사는지, 또 무황성은 어떤 식으로 운영하는지를 보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어머엇! 멋진 공자님! 여기예요. 여기!”
“이쪽으로 오셔요. 소녀가 아주 화끈하게 모시겠습니다.”
“오늘 마침, 북경 최고 모화주가 들어왔답니다. 오셔서 한잔하시는 건 어떠세요?”
“크흠, 그럼 그 모화주인지 뭔지 한번 마셔 볼까?”
“오호호! 어서 들어오셔요! 주화야, 여기 상다리 부러지게 한 상 차려 와라!”
바닥 민심을 살펴야 전체 민심을 알 수 있다고 했으니깐 말이다.
애들 떼어 놓고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 * *
술자…… 아니, 공부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묘향보단 못하긴 하지만 나름 봐 줄 만한 기녀가 딱 붙어서 연신 술을 따라 주며 장단을 맞춰 줬으니 재미가 없으면 이상한 일일 터다.
홍화주보단 못했지만 모화주 역시 꽤 먹을 만했고.
한 병에 두 냥이나 하는 게 조금 그랬지만.
덕분에 나는 편한 분위기 속에서 무황성의 통치 방식을 살폈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세율이 육 할이나 하는데 굶는 사람은 없게 한다는 거지?”
“예, 당장 저만 해도 무황성에서 운영하는 장원에서 컸답니다. 호호호.”
바로 북유럽식 복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본인이 다닐 의지만 있다면 학당은 물론 무관도 보내 준다는 소리에 어안이 벙벙했다.
“또, 큰 병에 걸려 일을 못 하게 되거나 해도 나을 때까지 돌봐 준답니다.”
“어떻게?”
“그야 저희 같은 관기들이 나서서 돕는 거죠.”
“여기 무황성에서 운영하는 곳이었어?”
“여기뿐만 아니라 이 거리 전체가 성에서 운영하는 곳이에요. 그렇지 않고서야 홍루 하나 없을 리가 없죠.”
참고로 홍루는 여인과 잠을 자는 기루였고 청루는 술만 마시는 곳이다.
“너무 열심히 일하길래 생각도 못 했네.”
“호호호, 성에서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고, 또 많이 팔면 그만큼 월봉을 더 받거든요.”
“크으, 좋은 곳이구먼. 안 되겠다. 오늘…… 근데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아이참, 월향이라니까요. 공자님.”
“그래, 월향이의 이번 달 월봉은 내가 책임져 주마. 모화주 한 병 더 가져와!”
“꺄악!”
추가 주문을 받은 기녀가 방방 뛰며 방을 뛰쳐나갔다.
홀로 남은 방에서 생각했다.
‘재미있네.’
어쩌면 무황성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곳일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