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healer's hidden ending strategy RAW novel - Chapter 156
155화. 꽃 한 송이, 사탕 한 바구니 (2)
협회 부지 내에 있지만, 기숙사와는 약간 떨어진 곳에 몇 개의 저택이 있다. 감응자 가족 혹은 팀이 함께 살 수 있도록 마련된 숙소다.
개중 가장 크고 화려한 저택은 신여월과 신유하가 사는 곳이고, 지붕의 끄트머리만 보일 정도로 담장을 높게 쌓은 저택이 최이안 팀이 거주하는 곳이다.
유달리 벽이 높은 저택을 향해 신유하가 최이안을 닮은 집이라는 평가를 했었는데, 내가 온 건 처음이다.
‘초대 자체는 진즉 받았었지만, 시간을 낼 수가 있었어야지.’
나만이 아니라 최이안 팀도 워낙 유능한 팀이라 일이 많았다. 셋 다 건강 체질에 기동성도 좋고, 국민들에게 인기도 많아서 외부 활동도 잦았다.
그래서 암암리에 최이안 팀을 강철 체력 팀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팀의 주축인 최이안이 때때로 이유 없이 몸살을 앓으며 자리를 보전하는 날이 있다. 대충 1년에 사흘 정도의 빈도였는데, 아픈 기간은 일정해도 시기는 늘 들쭉날쭉했다.
게다가 워낙 호되게 앓았으며, 그 사흘간 어리광이 말도 못 하게 느는 터라 곁에서 간호해줄 사람이 꼭 있어야만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최이안은 붙임성 있게 구는 것치고는 곁에 두는 사람이 극히 적어서 간호인은 최이안 팀의 일원이자 한집에 사는 강하늘과 강바다였는데….
“이안이가 우리가 아니면 간호받지 않겠다고 글쎄 심 쌤 앞에서 드러누웠지, 뭐야!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지? 우리 다 암것도 모르는 꼬맹이였을 때니까 한참 전이네!”
“진짜 한참 됐지. 아무튼, 그래서 우리가 얘 아플 때마다 간호해야 하니까 덩달아 팀이 휴가를 받는 거야.”
“일 년 내내 바쁜 협회니까 이 정도만 쉬어도 감지덕지긴 한데, 얘가 너무 아파하니까 싱숭생숭하다고 해야 하나, 뭐 그런 느낌?”
평소에 팔팔하다가 딱 사흘간 이런 꼴이 되니까 괜히 심장이 철렁한다며 강하늘이 호들갑을 떠는 사이, 강바다는 열을 재는지 최이안의 이마에 손등을 가져다 댔다.
“기침은 안 해서 괜찮나 싶었더니만 열이 떨어지지 않네. 하늘이가 이렇게 떠드는데도 눈 한 번 뜨지도 못하고.”
“어휴, 어째 평소보다 심한 거 아냐? 우리가 의료지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안이가 뭐라고 하든 이번엔 심 쌤 진짜로 불러야겠어. 요한 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예에…. 선생님께 진료받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재잘거리며 묻는 강하늘과 동의해달라는 눈빛을 팍팍 쏘아대는 강바다를 이길 수가 없어서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끝이 기어들어 가는 세상 패기 없는 목소리에도 좋다고 손뼉을 짝짝 부딪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나오려는 한숨을 꾹 삼켰다.
‘대체 나 왜 여기에 끼어 있는 거냐….’
협회에 돌아오자마자 들은 소식이 최이안이 골골댄다는 말이라서 예의상 병문안 왔는데, 왜 내가 여기 붙잡혀 있는지 누가 좀 설명해줄 사람?
침대에 누워서 머리에 물수건을 얹고 쌕쌕 가쁜 숨을 쉬고 있는 최이안에게 괜찮으냐고 묻기도 전에 강하늘, 강바다 쌍둥이에게 붙들려 그들 사이에 착석하게 된 것부터가 문제였다.
아니지, 신유하가 굳이 안 가도 괜찮다고 넌지시 일러줬는데도 구태여 찾아온 내가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피를 안 토하니까 다 나은 거라는 가공할 논리를 설파하는 진예신을 강제로 묶어두고 정화하면서 최이안이 아프단 소리를 듣는 바람에 괜히 마음이 쏠려서는….
‘그래도 걱정되긴 하니까…. 많이 안 아파도 아무도 병문안 안 오면 괜히 서럽기도 하고….’
게다가 이런 식으로 아픈 건 내가 치료해줄 수 없기 때문에 약간 안쓰러운 마음도 들어서 금방 마음을 다스렸다.
‘차라리 아이온 때문에 아픈 거라면 치료해 줄 수 있으련만. 최이안이 진예신처럼 치료 안 받겠다고 우길 사람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감응자를 치료하는 게 내 역할이기는 한데, 내가 후방에서 지원만 하는 게 아니라 균열 공략에 참여하는 입장이다 보니까 협회장과 상의해서 공식적인 제약을 걸어둔 탓이다.
협회에서 팀 없이 단독행동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인물을 응급실에 박아놓기만 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라고 해야 할까.
여하간 지팡이 한 번 휘두르면 외상을 싹, 낫게 하는 능력을 함부로 남용하면 안 된다는 얘기에 동의했기 때문에 ‘균열로 인한 상처 혹은 아이온으로 인한 병증이 아니면 치유할 수 없다’라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내고, 내 능력을 축소 발표했다.
‘덕분에 그나마 곤란한 일이 줄기는 했지만, 이럴 땐 아쉽긴 하단 말이지.’
협회 홍보팀의 멋진 추진력으로 내 능력이 제한된 채로 만천하에 공개된 터라 내 치료주문의 한계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협회장과 진예신뿐이다.
그래서 쌍둥이들도 내가 최이안을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나를 앞에 두고도 심초연을 부른다고 말하는 거다.
“아, 심 쌤! 지금 시간 되세요? 다름이 아니라 이안이가 기침은 안 하는데, 어제부터 계속 열이 안 내려서요. 이대로 계속되면 위험한 거 맞죠? 네네, 그래서 좀 와주셨으면 좋겠는데, 오, 진짜요?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협회 감응자가 으레 그렇듯이 결정을 내리면 실행에 옮기는 건 빨랐다.
시종일관 통통 튀는 목소리를 내는 강하늘이 휴대폰이 아니라 최이안의 방에 비치된 낡은 유선 전화기로 심초연에게 연락을 넣었고, 곧장 그의 방문 약속을 받아냈다.
미지근해진 물수건으로 최이안의 이마를 한 번 닦아주고, 새로운 물수건으로 갈아준 강바다가 물이 담긴 대야를 들고 일어서면서 물었다.
“초연 쌤 언제 오신대?”
“지금 들어온 환자가 있으니까 거기까지만 보고 잠시 응급실 다른 사람에게 맡겨두고서 오신대.”
“오늘 울린 경보는 죄다 백색이었는데, 다친 사람이 있다고?”
“사람이 살다 보면 얼빠지게 실수하는 일도 있고 그러는 거지 뭐.”
그러면서 사람이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판국에 백색에서 크게 다칠 수도 있는 거 아니겠냐며 강하늘이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강바다는 강하늘의 말에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지만, 영 미심쩍다는 눈빛은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강바다 대신 내가 슬그머니 대화에 끼어들어 오늘의 균열 정보를 살짝 캐내기로 했다. 보통 때였다면 균열 정보야 내 집무실에 보고서로 올라와 있어서 물어보지 않는데, 오늘은 쉬어야 한다며 출입을 금지당해서 어쩔 수가 없다.
“백색 균열이라도 여러 번 들락거리면 피로가 쌓이니 충분히 다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 유하가 꼬마 부장님 오늘 외근이라고 그러더니 아직 얘기 못 들었구나. 여러 번은 아냐. 오늘 울린 경보는 손에 꼽을 수 있거든. 백색만 열린 것도 드문 일이지만, 최근 들어서 이렇게 적게 울린 것도 오랜만이라서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
“맞아. 그래서 내가 운이 나빴던 걸 거라고 말한 거야. 게다가 나 기록 남기기 싫어서 핫라인으로 전화 건 건데, 심 쌤 주변 꽤 소란스러웠거든? 그러면 환자가 많다는 건데, 바로 오겠다고 하셨으니까 중상은 또 없다는 뜻이거든.”
협회원이 협회원을 부르는데 기록을 남기기 싫다는 게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강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강하늘이 어설프게 웃으며 내 시선을 피해 제 혈육을 응시했지만, 강바다가 어이쿠 장난스럽게 당황한 소리를 내더니 대야를 들고 냅다 화장실로 달려가 버렸다.
졸지에 내 눈빛을 홀로 감당하게 된 강하늘이 파마해서 북슬북슬한 머리를 엉망으로 헝클이며 멋쩍게 입을 열었다.
“이안이가 자기 아플 때 심 쌤 부르는 거 진짜 싫어하거든…. 그런데 정식으로 불러버리면 기록이 남으니까 언제고 이안이가 확인할 수가 있잖아? 그래서 약간 꼼수를 쓴 거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 누워만 있는 것보단 약이라도 처방받는 게 나을 텐데, 심초연 선생님과 사이가 안 좋습니까?”
“그건 아냐. 그냥 이건 이안이의 나쁜 버릇 같은 거야. 으음…. 요한 부장님은 이안이랑 친하니까 금방 이유를 들을 수 있을 거야. 개인 사정이라서 내가 뭐라고 말하긴 좀 그래.”
그사이 대야에 새로 물을 채우고, 수건도 몇 개 챙긴 강바다가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오면서 강하늘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들켰다가는 이안이의 토라짐을 감당해야 하는데, 어우, 나는 못 해, 그거.”
“맞아, 맞아. 이안이 기분 풀어주는 거 엄청 까다로워. 치트키 같은 부협회장님이 계시긴 한데, 우리한테는 한참을 툴툴대거든. 그게 싫은 건 아니지만, 혹시라도 감정 상해서 싸우면 서로 안 좋으니까.”
제법 어른스러운 말을 한 강하늘이 언제 그런 모습을 보였냐는 듯 금방 분위기를 바꿔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최이안과 오래 팀을 한 사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최이안이 기분 나쁘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옛 추억을 두서없이 꺼내 줄줄 읊으며 흐뭇하게 웃었다.
분명 셋은 동갑으로 알고 있는데, 쌍둥이가 최이안을 동생처럼 챙기는 느낌이다.
‘사이가 이리 좋은데 게임에서는 결말이 왜 그랬지? 이 셋 사이에 불화가 일어날 만한 일은 없어 보이는데.’
문득 유쾌하지 못한 생각이 머릿속에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쓸려갔다. 병문안 와서 할만한 생각은 아니었다.
“으음, 이번엔 정말 눈 한 번을 뜨질 못하네, 걱정되게.”
“괜찮을 거야! 이안이는 건강 체질이잖아! 예전부터 쭈욱, 1년에 3일 빼고.”
“그렇겠지. 그래도 이안이 목소리 안 들리니까 뭔가 쓸쓸하고 그러네. 평소엔 한참 칭얼거리면서 우리 손 꼭 잡고 그랬는데.”
가쁜 숨을 내쉬는 최이안을 보며 쌍둥이가 소곤소곤 걱정을 늘어놓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괜한 말로 불안을 증폭시키고 싶지 않은가 보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고 얼굴에 서린 그늘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서 내가 솔선수범하여 분위기를 바꾸기로 했다.
아직 정보를 덜 얻기도 했고 말이야. 병문안에 어울리는 짓은 아니지만, 환자에게 인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는 간병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하루에 열리는 균열이 모두 같은 등급인 경우가 있었습니까? 협회의 기록물에서는 없었던 일로 기억하는데, 두 분은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내 질문에 쌍둥이의 눈이 동시에 꽂혔다. 그러고는 휙 고개를 돌려 서로를 빤히 쳐다보다가 도로 내게 시선을 주며 서로 번갈아 말했다.
“요한 부장님은 자료실에 있는 기밀문서도 전부 본 게 맞지? 협회장님이 따로 도장 찍어두신 것도?”
“협회장님이라면 동급인 감응자에게 비밀을 만드는 분이 아니시니까 분명 봤을 거 같아.”
두 사람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먼저 질문을 빙자한 사실 확인을 했던 강하늘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거기 자료 중에 우리 얘기도 있었을 거야. 정확히는 우리가 감응한 균열에 관련된 건데.”
생각을 정리하는 건지, 그날의 일을 떠올리는 건지. 말을 멈추고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을 문지르는 강하늘을 대신하여 강바다가 말을 완성했다.
“그날 우리 앞에 열렸던 균열은 청색이었고, 역대 최고로 많은 수의 청색 균열이 전국에 열렸었어.”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마석과 계약에 성공한 이들 또한 많았던 날이라 청색 균열이 하루에 많이 열렸다는 사실은 뒷전으로 밀렸었지. 유하는 그때 이미 협회원이었지만, 기록 담당은 아녔었어. 그래서 아마 제대로 남겨놓지도 못했을 거야.”
“특히 유하 이전에 기록은, 그….”
머뭇거리는 강바다의 말을 이어 붙인 건, 기계처럼 딱딱하고, 높낮이가 전혀 없는 단조로운 목소리였다.
“지금은 죽고 없는 배신자가 전부 담당하고 있었지.”
언제 왔는지 왕진 가방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오는 심초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