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healer's hidden ending strategy RAW novel - Chapter 55
54화. 장미의 무덤 (4)
그 방 안에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두껍게 카펫이 깔려있었고, 빛 한 점 들어오지 못하도록 커튼으로 꼼꼼히 창문을 가려놓았다.
가구라고는 문 바로 옆의 작은 서랍장과 방 중앙의 작은 탁자, 그리고 세 개의 의자뿐이다.
삭막하다 못해 차갑게 느껴지는 방에서 유일하게 온기가 있는 물품은 전등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랜턴이다.
이따금 타닥타닥 심지가 타는 소리가 들리는 방 안으로 위후가 들어왔다. 일반적인 수준의 사교성을 지닌 그는 로라와 제임스의 강도 높은 발랄함에 학을 떼며 먼저 석찬에서 빠져나온 참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이 저택에서 가장 보안이 좋은 방에 자리를 잡은 위후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해.’
기본적으로 정해진 거처가 없이 유랑하는 방랑자 집단에 소속된 만큼 체력에는 자신 있는 위후였지만, 오늘은 정신적인 피로도가 높아서 몸이 축축 늘어졌다.
무겁기만 한 양 눈두덩이를 꾹꾹 눌러가며 다소 맑은 정신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던 위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고 의자 깊숙하게 몸을 기댔다.
등받이에 온몸을 싣고 고개를 뒤로 확 꺾자 푹 덮여있던 후드가 넘어가며 얼굴이 드러났다.
지친 나머지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아이온으로 인해 눈동자에 어두운 녹색 빛이 어렸다가 흩어졌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앉아 있던 위후는 곧 왼손을 튕겨 제 마석을 불러냈다.
“지혜야.”
《부르셨어요?》
수줍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내며 소녀의 모습을 한 요정이 위후의 손등에 앉았다.
팔랑팔랑 흔들리는 날개는 마석의 본래 모습을 닮아서 어두운 녹색에 검은색이 무늬처럼 들어가 있고, 눈동자도 같은 색깔이다.
위후는 똑같이 변했을 자기 눈동자 주변을 손끝으로 한 번 누르고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성공할까?”
《새벽이가 하는 예언은 언제나 맞으니까요. 게다가….》
말끝을 흐린 소녀가 고개를 휙휙 흔들고는 포르르 날아올랐다. 자연스럽게 위후의 왼쪽 어깨에 앉은 소녀는 다리를 모아 둥글게 몸을 말면서 속삭였다.
《저희 중에서 저주에 가장 해박한 것은 봄이거든요. 봄은 자기가 그런 걸 안다는 점이 알려지기 싫은지 잘 말해주지 않지만요. 그래도 봄은 사람을 굉장히 좋아해서, 일이 생기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주는 성격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저주에 관해서 가장 많이 아는 건 신 협회장의 마석일 줄 알았는데. 영원이라는 아이가 너희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면서.”
《그렇죠. 실제로도 아는 게 많아요. 하지만 저주는 조금 궤가 달라서 봄을 따라갈 순 없어요. 그리고 둘은 그리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 아니라서요. 그 사이에 형제자매들이 꽤 있고, 그들도 아는 게 많지만, 그 시간의 간격을 뛰어넘고 더 많은 양의 지식을 쌓을 만큼 봄은 뛰어나요.》
제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뿌듯한 얼굴로 재잘거리는 소녀를 위후가 묘한 눈초리로 응시했다.
행운의 봄이 어떤 성정을 지녔는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있어서 만나봤던 루치아의 마석은 굉장히 내성적이고 순한 성격이었다.
위후 자신의 마석인 ‘거울의 지혜’도 화내는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유순한 성정이다.
치유사들의 마석은 다 이런가.
시답잖은 생각을 하다가 위후가 다소 짓궂게 질문을 던졌다.
“지혜, 너는? 저주보단 다른 쪽을 더 잘 안다고 그랬잖아.”
《앗. 제가 정작 말해드린 적이 없었군요. 제가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아는 건 ‘독’이에요.》
“의외네.”
《그런가요? 치유 능력이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저주나 독, 상처에 관한 쪽에 일가견이 있는걸요. 저는 여러분들이 나눈 등급에 비해 어린 축에 속해서 하나만 파고든 편이고요.》
그래서 이번 일이 독으로 인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 외에는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소녀가 풀죽은 표정을 지었다.
위후가 괜찮다며 달래주자 소녀의 날개가 분주하게 팔랑이며 빛나는 가루를 은은하게 흩뿌렸다.
그러다 문득 날개가 멈췄다.
깜짝 놀란 것처럼 파르르 떨리던 날개가 곧 펑 소리를 내며 허공에 흩어졌고, 소녀는 산솔새의 모습이 되어 위후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닫혀 있던 방의 문이 열리며 집주인 부부 중 한 명인 제임스가 들어왔다.
“잘 쉬고 있는지 보려고 온 건데, 지혜를 깜짝 놀라게 해버렸네.”
“석찬은 온전히 끝났습니까?”
“거의? 마지막 디저트를 대접하고 있어. 로라가 혼자 할 수 있다고 해서 나만 먼저 나온 거야. 위후, 자기가 그렇게 먼저 가버려서 걱정됐거든.”
한쪽 눈을 찡긋하며 잔망을 떤 제임스가 문을 굳게 닫고, 위후의 맞은 편에 자리를 잡았다.
“저택은 안전지대고, 이 방이 가장 안전하지만, 밤이 깊었으니까 말이지. 항상 주의하는 편이 좋아. 섬이 언제 돌변할지 모르잖아.”
“그 돌발상황을 막기 위해 여기에 저택을 지으셨잖습니까. 제임스와 로라가 잔걱정이 많은 겁니다.”
“그런가? 음, 그럴지도 모르지.”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금세 인정해버린 제임스가 쌕쌕 소리를 내며 몸을 옹송그리고 있는 산솔새를 쳐다봤다.
턱을 괴고서 체셔 고양이처럼 장난스럽고 속을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미소를 그린 제임스가 정체 모를 곡을 흥얼대다가 운을 뗐다.
“자기랑 나랑 처음 만난 게 여기였지? 지금에서야 말하는 거지만, 그땐 너무 놀라서 자기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니까?”
“이해합니다. 그 당시 상식 밖의 일이 벌어졌잖습니까.”
“맞아, 그랬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니까, 정말. 서로 다른 균열로 들어왔는데 사실은 하나였다니! 그러고 보니 그때 도우 자기도 같이 있었지 않아? 균열에는 잘 안 들어오는 사람이라서 신기했는데. 혹시 도우 자기는 그날 특이한 일이 일어난다는 걸 알았던 걸까?”
“글쎄요. 수장은 자신이 본 모든 예지를 예언으로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 의중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위후가 눈매를 가느다랗게 좁히며 과거를 더듬었다. 유독 들뜬 상태로 함께 공략을 하자며 먼저 말을 걸었던 도우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를 꽤 오래 알고 지냈는데도 처음 보는 생소한 태도여서 주변에 있던 이들도 깜짝 놀랐었다.
“아마 알고 있었을 겁니다. 스스로 공략에 참여하겠다고 밝혔고, 들어가기 전에 제게 좋은 연이 생길 거란 말을 했습니다.”
“아~아. 예지 능력은 정말 사기라니까~! 게다가 도우 자기는 더 사기적이고. 예지는 멋진 능력이고, 예언으로 정제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인생은 정말 재미없게 살잖아.”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수장은 어린애 같은 면이 많지 않습니까.”
“어휴. 내가 그걸 어떻게 아니? 그날 이후로 다시 너희 사이로 들어가서 머리카락 한 올 못 보고 있다고.”
불만이 가득한 제임스의 말에 위후가 숨죽여 웃었다. 그 잔 떨림에 품에 안겨 있던 산솔새가 눈을 반짝 떴다. 찌르르 우는 높고 가는 소리에 제임스가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석찬이 완전히 끝났겠는걸! 로라가 밤은 위험하니까 방에 있으라는 충고를 해줄 텐데, 애들이 지켜줄 것 같아?”
“착한 아이들이니 잘 지킬 겁니다.”
“어머. 자기가 그렇게 말하는 건 또 처음이네. 오늘 처음 만났지 않아? 벌써 친해졌어?”
“그렇긴 합니다만, 워낙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친구들이라 금방 알 수 있는 겁니다. 그 아이들, 김요한 씨가 자신들 때문에 곤경에 빠지는 건 끔찍하게 싫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위후가 피식 웃으며 조심스럽게 산솔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쁘게 울며 애교를 부리는 새를 토닥이던 위후가 딱 손을 튕겨 마석으로 변환시켰다.
짙고 어두운 녹색에 검은색 무늬가 박힌 마우싯싯은 거울의 지혜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끄러운 면의 거울로 모습을 다시 바꿨다.
위후의 가벼운 손짓에 맞춰 점차 넓어지던 거울은 작은 방의 바닥을 꽉 채울 정도로 커진 채로 바닥에 스며들었다.
“어이쿠, 살벌해라. 이렇게까지 안 해도 이 방은 누구에게도 안 들키는데.”
“유비무환입니다. 전 살아있는 생물에게 뿌리 깊은 불신이 있어서 아무리 저택 안이라도 이 섬에 맨몸으로 있을 순 없습니다.”
“그걸로 위후 자기의 마음이 편해진다면야.”
뜻대로 하라며 어깨를 으쓱인 제임스가 자연스럽게 대화의 화제를 바꿨다. 전야제 및 석찬 도중 김요한과 위후가 나눈 대화에 자신도 흥미가 있음을 드러내는 물음이기도 했다.
“꼬마 부장님, 아차, 이 표현은 이제 안 쓴다고 하니까 김 부장님이라고 해줘야 하나? 아무튼, 요한 자기가 도와준다면서? 벌써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수확을 얻었다고 들었는데, 맞아?”
“네.”
담담하게 긍정한 위후가 살살 턱을 문지르면서 문 쪽을 힐끔 돌아봤다.
아직 김요한이 근처에 오지 않았는지, 그의 아이온은 느껴지지 않았고 인기척도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예언가인 수장을 보필해서 그런지 일종의 ‘촉’이 좋아진 위후는 곧 김요한이 이 방으로 들어올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조금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는 방향의 대화로 화젯거리를 바꾸기로 했다.
“일전에 제임스에게도 제가 자문을 구했던 적이 있지 않습니까. 현장에서 발견했던 물고기 모양의 자물쇠. 기억하십니까?”
“아, 그거. 겉보기에는 평범한 자물쇠여서 금방 열릴 줄 알았는데 꿈쩍도 안 했었지.”
열쇠란 열쇠는 전부 수소문해서 끼워봤는데 실패했던 전적이 있는 제임스가 입술을 비죽거렸다.
뾰로통하게 변한 얼굴로 자물쇠에 문제가 있는 거라며 구시렁대던 제임스는 이어지는 위후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람을 표했다.
“그 물고기, 눈을 떴습니다.”
“진짜? 언제? 아니 이 질문은 안 어울리지, 아까 그랬을 테니까. 그럼 어떻게? 요한 자기가 한 거지?”
“저야 잘 모릅니다. 알았으면 벌써 시도해보지 않았겠습니까? 아마 지금부터 요한 씨가 설명해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위후가 소리 없이 열리는 문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제임스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 빛났고,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던 김요한이 들으라는 듯 한숨을 크게 쉬었다.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가 했더니만, 제 얘기를 하고 계셨던 겁니까?”
이 방에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미리 부여받았기 때문에 분명 들렸을 텐데, 김요한은 능청스럽게 하나도 못 들은 척 물었다. 그 모습이 유쾌했는지 제임스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으하하! 어서 와, 자기. 친구들은 방으로 무사히 보내줬어?”
“예. 로라가 침실에 있을 테니 일이 끝나면 그쪽으로 오라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위후 씨.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석찬 때도 부탁드렸는데 아직도 존칭을 쓰시면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는 자기도 늘 그렇게 딱딱한 말씨면서?”
“그건 제가 제일 어리기 때문입니다. 협회장님도 포기하신 부분이니 제 말투에 대해선 포기하십시오.”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 김요한이 느릿하게 방 안을 훑으며 남은 한자리에 앉았다.
짙은 녹음을 담은 눈동자가 유독 바닥에 시선을 오래 두었다가 위후를 향했다. 누구의 힘인지 잘 알겠다는 그 행동에 위후가 멋쩍게 웃자, 김요한이 두어 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본래의 검은 눈동자로 되돌아온 김요한은 마석 보관함에서 넘겨받았던 자물쇠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위후 씨께 이야기를 들은 후, 협회에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위후 씨의 마을처럼 많은 사람이 걸려든 것은 아니고, 단 한 사람이 이와 똑같은 물고기 자물쇠를 매개로 잠이 든 사례가 있었습니다. 주술사의 행방은 오리무중입니다만, 잠들었던 자는 깨어나서 현재 정부의 외교 관련 부서에 재직 중입니다.”
“제가, 아니, 내가 만나볼 수 있을까?”
높임말로 말을 떼자마자 빤히 노려보는 김요한의 눈빛에 위후가 황급히 말투를 바꿨다. 제 마석에게나 쓰던 친근한 어조에 김요한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위후 씨가 원하신다면 자리를 마련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 사람도 자신에게 저주를 건 자를 찾고 싶어 하니 도움이 될 겁니다. 다만 그 사람 말로는, 스스로 깨어나지 못한다면 타인의 힘을 빌려야 하는데, 기간이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가장 오래 잠든 자를 기준으로 얼마나 남았지?”
“두 달이라고 하셨으니, 보름입니다.”
“보름….”
예상보다 짧았는지 위후가 눈썹 사이를 좁히며 신음했다. 김요한은 여전히 눈을 깜빡이는 기괴한 물고기 자물쇠를 손끝으로 두드리며 가만히 침묵하다가 툭 말을 던졌다.
“정확한 표현을 고르자면, ‘보름달이 세 번 뜨고 질 때까지 일어나지 못하면 가망이 없다.’에 가깝습니다.”
“날짜가 아니라 달이 기준이라는 말이구나. 그렇다고 해도 결론은 같아. 처음 쓰러진 자가 이번 달 보름이면 세 번째임은 같으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입니다. 첫 번째 피해자가 보름에 쓰러졌다면 이미 손을 쓸 수가 없어지니 걱정이 되던 참이었습니다.”
“하하, 그렇게 말하니까 안심이 조금 되네.”
힘없이 웃은 위후가 움직이는 물고기 자물쇠를 쳐다봤다.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펄떡대지는 못하고 진동만 하며 눈을 굴리는 자물쇠는 위후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를 보다가 눈을 감아버렸다.
제임스가 몹시 기묘한 표정으로 자물쇠를 흘겨봤다.
“눈 감은 물고기라니. 정말 적응 안 된다. 그나저나 물고기 자물쇠는 흔한 거야? 골동품으로는 좀 본 거 같은데.”
“제법 있습니다. 물고기는 눈을 뜬 채로 잠을 자기 때문에 도둑이 들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차분하게 설명한 김요한이 물고기 자물쇠를 다시 건드렸다. 감았던 눈이 번쩍 떠지며 다시 정신없이 굴러가고, 몸이 부르르 떨렸다.
심드렁하게 자물쇠를 응시하던 김요한이 왼손으로 자물쇠를 가두듯 탁자 위에 원을 그렸다. 정제된 아이온이 선명한 녹색으로 빛나며 깔끔하게 탁자에 선을 남겼고, 이내 그물처럼 자물쇠를 옭아맸다.
“범인이 누구인지 후보는 몇 명 있지만, 확신의 단계는 아닙니다. 그러니 그보다는 더 급한 해주를 먼저 시도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한 자기가 하는 말이 뭔지는 알겠지만…. 하나하나 해주하는 것보단 범인을 잡아서 강제로 푸는 편이 더 효율이 높지 않아?”
“물론 그렇습니다만, 쉬이 잡히지 않을 것 같기에. 게다가 잡을 수 있었다면 위후 씨의 수장이 그를 잡는 길을 알려줬을 겁니다. 그의 예언은 언제나 사건 해결에 가장 가까운 길을 알려주지 않습니까.”
위후가 느리게 긍정하자 김요한이 그것 보라며 나지막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 동조하는 것처럼 물고기 자물쇠를 옭아맨 아이온이 춤을 췄다.
물고기의 퍼덕거림이 한층 강해졌고, 그물의 색이 짙어지는 가운데 김요한의 손끝에서부터 훈훈한 봄바람이 퍼졌다. 바깥에 만발한 장미와는 다른 꽃향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고, 보드라운 바람이 뺨을 간질였다.
마음을 절로 평온하게 해주는 아이온에 위후가 감탄했고, 제임스가 황홀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니 기대에 보답하여 우선 이것부터 해결해보겠습니다.”
그 후에 의뢰 보수에 관한 협상을 하나 했으면 좋겠다며 김요한이 다소 오만하게 웃고는 딱딱 두 번 손을 튕겼다.
휘이잉. 별안간 물고기 자물쇠를 바람이 감싸 안았다. 달칵, 무언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연이어 툭, 완전히 풀리다 못해 잠금쇠가 사라진 자물쇠가 탁자에 떨어졌다.
위후가 떨리는 손으로 자물쇠를 쥐고 아이온을 불어넣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조약돌로 되돌아가지도 않았고, 물고기가 움직이지도 않았다.
평범한 자물쇠로 돌아간 모양새에 위후가 크게 심호흡하고는 재빠르게 휴대폰을 꺼내 두드렸고, 도착한 답변에 물기가 어린 눈을 급하게 닦아내며 말했다.
“가장 나중에 잠들었던 아이가 깨어났대. 정말, 정말 고마워.”
“별말씀을.”
완벽한 해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