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healer's hidden ending strategy RAW novel - Chapter 98
97화. 오래된 나각과 낡은 노리개 (11)
‘나각은 용왕을 불러낼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인 건가? 아니지. 그건 주된 효과가 아닐 가능성이 더 높아. 여의주가 달려 있고, 여기엔 물도 있으니까 용왕이 나각의 위치를 잡았다는 게 더 맞겠어.’
반사적으로 반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나각에 대해 평가하는데, 뒤꿈치에 벽이 닿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벽에 기대어 시치미를 떼면서 용왕의 모습을 잽싸게 살폈다.
용궁에서 봤을 때와는 다른 옷이었지만, 유난히 소매가 기다란 건 여전했다. 그리고 용왕이 나를 등진 채 나타나 어렴풋이 확인한 팔목은 뼈마디가 도드라졌으며, 얼핏 비늘 모양이 보였다.
무엇보다 이 작은 방을 꽉 채우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느끼고 있으려니까 다른 존재가 변장했다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그나저나 선옥이 주치의로 계속 붙어 있었을 텐데, 여전히 아파 보이네. 용왕이 병에 걸렸다는 건 게임에서도 안 나왔던 설정이라서 정확한 병명이 뭔지도 모르겠어.’
용왕과는 좋은 관계를 구축해둬야 하고, 선옥과의 친분도 있으니 도와주고 싶은데 방도가 마땅히 없다.
잠시 딴생각에 빠져서 벽에 등을 댄 채로 멍하게 있는데, 강나비가 슬그머니 내 옆구리를 찌르며 속삭였다.
“부장님, 알고 있었어? 용왕님 오시는 거?”
“아니.”
“정말…?”
강나비의 좁혀든 미간과 작아지는 말소리에 짙은 의심이 묻어났다.
아무래도 내가 놀란 티를 크게 드러내지 않아서 그런가 본데, 나도 계획을 짤 때 듣지 못한 부분이라 놀란 상태다.
다만 물이 출렁거리기 시작하니까 주오의 표정이 맑게 개길래 혹시나 용왕과 직접 대화라도 가능하게 되나 싶었던 거지.
“내일 받을 신유하의 쿠키를 걸고 진짜 몰랐어.”
“그러면 믿을 수밖에 없네. 알았어. 그래도 이 일 제대로 공유해줘.”
“응.”
내 대답에서 진실을 읽은 강나비가 미심쩍은 표정을 털어내고 제대로 된 약속을 받아 갔다.
어차피 계속 같이 일해야 해서 알려줄 생각이었는데, 나한테 믿음이 그렇게 없나.
조금 씁쓸했지만, 자업자득이라 불만을 토로하지 않을 정신머리는 있다.
“그러면 보고서는 언제 작성할까?”
“그건 내가 다 끝나면 쓸 거야. 대신 강나비 너는, 음?”
강나비의 질문에 앞으로의 일정도 같이 알려주려는 찰나, 물끄러미 나각을 바라보고 있던 용왕이 옷자락을 휘날리며 뒤를 돌았다.
정확히 내게 꽂히는 강렬한 시선에 말을 멈추고 그와 눈을 마주하자 용왕이 자연스럽게 나각을 집어 소맷자락 안쪽에 넣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로구나, 봄아.”
“선옥과 비슷한 인사를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용왕님.”
“후후, 그런가? 오래 곁에 있다 보니 서로 닮게 된 모양이구나.”
나지막하게 웃은 용왕은 수반 위에서 내려오더니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모를 윤혜아가 마련해놓은 푹신한 보료에 자리를 잡았다.
허리에 아주 좋지 않은 자세로 보료에 늘어지듯 앉은 용왕은 나란히 서 있는 우리에게 앉으라며 손짓했다.
그러자 윤혜아가 중앙의 수반을 구석으로 치우더니 가장 먼저 용왕의 좌측에 앉았고, 주오가 곧장 달리듯 다가가 우측을 차지했다.
나와 강나비는 자연히 용왕과 마주 보는 방석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평화로운 해결이었다고는 해도 용왕과 엄연히 피를 보는 전투를 했던 강나비가 부담되어 미치겠다는 표정을 지어서 내가 용왕과 완전히 마주하는 방석에 자진해서 앉았다.
강나비는 애써 표정을 가다듬었지만, 몸은 삐걱대며 무릎까지 꿇고 앉았다.
“그래도 봄아. 실제로 난 너를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란다.”
“그때의 용궁은 역시 과거의 용궁이었습니까.”
“그래, 금방 알아차릴 줄 알았단다.”
나긋나긋하게 답하는 짧은 사이에 옅은 호흡이 몇 번이나 끼어들었고, 말이 끝날 때마다 작게 터지는 기침이 귀에 자꾸 걸렸다.
균열 속이 오랜 과거라면, 지금은 조금이라도 호전됐어야 하지 않나?
선옥한테 미안하지만, 그때보다 더 아파 보인다. 당장 봄을 불러서 용왕을 샅샅이 진찰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때, 굳어 있던 강나비가 비로소 용왕에게 입을 열었다.
“저, 용왕님. 제가 주오 씨한테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요….”
“왜 또 주오 씨? 떼고 부르라니까.”
“아, 알았어요, 주오. 됐죠? 아무튼, 주오는 잠시 빠져봐요. 아까 말 안 해줘서 이러는 건데, 양심이 있으면 가만히 있어 줘요.”
둘이서 무슨 얘기를 나눴던 거지? 평소라면 온유하게 반응해야 할 강나비가 유독 오늘따라 예민해 보였다. 그게 주오와 나눈 대화 때문인가?
심란한 표정의 강나비와 뻔뻔하게 턱을 치켜든 주오를 번갈아 봤다. 용왕은 그 가운데서 난감하게 턱을 문지르더니 나와 윤혜아에게 미안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리며 웃었다.
“봄아, 혜아야, 부탁을 좀 해도 되겠느냐.”
“무엇을 말입니까?”
“갑작스럽지 않아요, 용왕님?”
연속으로 터진 나와 윤혜아의 반응에 용왕은 다시금 난처하게 웃었다.
스승을 따라서 오래 용왕과 알고 지냈을 윤혜아는 그런 어울리지도 않는 표정 짓지 말라고 하며 간접적으로 승낙했고, 나는 일단 들어보고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어중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란다. 그저 선옥을 이리 불러서 이것을 전해주면 되는 간단한 일이지.”
용왕은 치렁치렁한 머리를 틀어 올리고 있던 비녀 중에서 유독 눈에 띄지 않고 수수하던 것을 뽑아 윤혜아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받은 윤혜아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가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윤혜아의 반응으로 봐서는 비녀가 평범한 물건은 아닌 느낌인데, 설마 다른 형태로 바꿔서 가지고 있다던 여의주가 저건가. 게다가 형태를 한 번만 바꿀 수 있던 게 아녔나 보다.
‘선옥에게 용왕이 건넬 것도 그것뿐이긴 하지. 그런데 나각에 달린 걸 주는 거 아니었나? 쓰던 걸 주네.’
어느 쪽이든 용왕의 힘이 담긴 물건이니까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지만 이유가 궁금하긴 했다.
“선옥을 부르는 건 어렵지 않은데, 이게 전부는 아니죠? 어서 속내를 밝혀주세요. 제가 지금 많이 졸려서 눈에 뵈는 게 없거든요. 그래서 손이 미끄러진 나머지 스승님께 연락을 드릴지도 모른답니다.”
“어이쿠. 조그맣던 아이가 언제 이리 협박에도 능한 자가 되었는지. 인간의 시간이란 참 빠르기도 하지.”
“말 돌리지 마세요, 용왕님.”
“후후, 그렇게 들렸다면 유감이구나. 하지만 난 솔직하게 말했단다. 선옥을 불러 이걸 전달해주렴. 그걸 위해 아주 잠시 이 방에서 벗어나 달라는 청이지. 들어주지 않을 셈이더냐?”
아하, 그러니까 주오가 강나비에게 한 발언이 용왕은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해명할 용의가 있지만 그걸 나와 윤혜아는 듣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지?
이걸 눈치채지 못한 사람은 이 방에 존재하지 않았다. 윤혜아는 불만스럽게 눈을 치켜떴고, 강나비는 제가 들을 대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알쏭달쏭한 표정이 됐으며, 나는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 관계없이 결국은 제가 알게 될 텐데 번거롭게 움직여야 합니까?”
“맞아요. 용왕님처럼 중요한 분과의 대화는 제가 숨길 수가 없어요. 그랬다가는 가면 쓴 도깨비에게 잡혀갈지도 모르거든요.”
뭐든 용왕에게서 나올 말을 놓치고 싶지 않은 내 항의에 강나비가 냉큼 올라탔다. 혼자서 책임을 전부 질 생각이 없다는 모습이 결연했다.
그나저나 감사부의 존재를 모르는 협회원들이 감사부에 걸려서 즉결처분당하는 것을 도깨비에게 잡혀간 것이라고들 하는데, 본인이 감사부면서 가면 쓴 도깨비를 운운하는 모양새가 한두 번 오리발을 내밀어본 솜씨가 아니다.
순간 어이없다는 듯 쳐다볼 뻔했지만, 다행히 용왕이 곧장 대답했기에 그에게 시선을 집중할 수 있었다.
“사이가 돈독한 것은 좋은 일이지. 하지만 이건 사적인 일이란다. 우선은 바다의 아이가 들은 후에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구나. 내 나름대로 호의지. 마음에 들지 않느냐?”
“저와 용왕님 사이에 사적인 얘깃거리가 있나요…? 제가 물어보려는 건 공적인 영역에 더 가까울 텐데요.”
“글쎄다, 아마 얘기를 들으면 달라질 거란다.”
그 대화에 나는 깔끔하게 둘 사이의 대화를 듣는 것을 포기했다.
만약 내게 전달해야 할 사항이 생긴다면 강나비는 숨기지 않을 것이고, 용왕은 정말로 선의로 대화를 하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정을 기다리고 있던 윤혜아에게 넌지시 나가자는 눈빛을 던졌고, 윤혜아는 씩 웃으며 보란 듯이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 뒤를 나도 조용히 따라붙자 강나비가 정말 나가냐며 울상을 지었다.
“궁금한 게 있었던 거잖아. 여기는 혜아 선배의 구역이고, 전투가 생길 일도 없으니까 편하게 얘기해.”
“부장님…. 내가 왜 이러는지 알면서 너무한 거 아니야?”
“뭐 어때. 어차피 오늘 일은 전부 비밀인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면서 강나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다. 바짝 긴장해서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 내려가는 걸 보고선 방 밖으로 나갔다.
먼저 방 밖으로 나가 벽에 기대서 비녀를 만지작거리던 윤혜아가 굳게 닫혀 있던 창문을 활짝 열었다. 훅 밀려드는 꿉꿉한 바람에 헝클어지는 머리를 내리누르자 윤혜아가 작게 웃었다.
“거기서 버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순히 물러서는구나.”
“제가 그런 이미지였습니까?”
“뭐든 알고 싶어 하잖니. 지식을 얻고 싶다는 의미에서 알고 싶다가 아니라 무언가 쫓기는 것처럼 하나라도 더 알아두고 싶다는 느낌으로 말이야.”
“…그렇게 보였습니까?”
“네 신입 시절을 내가 붙어서 지냈잖아. 벌써 신입 딱지는 떼고 베테랑처럼 움직이고 있어서 그렇게 오래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후배가 어떤지 지켜볼 시간으로는 충분했지.”
먼지 한 톨 없는 창틀을 손끝으로 문지르던 윤혜아는 손톱만 한 초승달을 올려다보고는 대뜸 밖으로 뛰어넘었다.
내게도 넘어오라는 손짓을 해서 실내화가 더러워지지 않도록 아이온을 살짝 감은 후 창문을 넘었다.
창밖으로 넘어가면 잘 정돈된 정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가운데에 척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거대한 온실이 있었다. 윤혜아는 온실로 향하는 길로 나를 이끌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그냥 열정이 있는 후배네, 싶었어.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협회 기록실에서 산다는 소문이 들렸고, 최연소 부장 자리까지 가져갔잖니. 몹시 급한 일이 있는 사람처럼.”
조곤조곤하게 이어지는 윤혜아의 관찰일지에 겸허하게 내 행실이 잘못됐음을 받아들였다.
협회에 눈치 빠른 인간들이 한둘이 아닌데 내 급진적인 행보에 의문을 품은 인간이 윤혜아 하나일 리가 있나.
협회원이라면 일단 믿어주는 신여월도, 나를 원래부터 알고 있던 진예신도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내게 오늘 찾아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잘못을 알아도 또 저지르는 게 나라는 사람이라.
“넌 아직 어려, 요한아. 너보다 어릴 때부터 협회에서 일한 내가 말하기엔 부적절하겠지만, 필사적으로 협회를 위해서 일하지 않아도 돼. 뭐가 그리 급해? 네게 남은 날은 아주 많은데.”
“그냥 열심히 하는 겁니다. 건성으로 하는 건 체질상 맞지 않기도 하고….”
“어이구,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구나.”
노련한 선배의 모습으로 말하던 윤혜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끌끌 찼다. 스승은 나이 지긋한 범이고, 친하게 지내는 이들이 전부 조부모뻘인 사람다운 애늙은이 같은 반응이었다.
“너라면 알아서 잘하겠지만, 나중에라도 네가 계획을 말해줬으면 좋겠어.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지 않겠니?”
“그런 거라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제가 부탁할 일이 생겼을 때, 거절하시면 안 됩니다, 선배.”
“그래그래, 알았어.”
구두 약속도 잘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라며 장난스럽게 웃은 윤혜아는 어느새 도착한 온실의 자물쇠를 풀고 안으로 들어갔다.
협회의 온실처럼 귀한 품종이 가득한 온실은 박력이 대단했다. 느릿하게 온실을 둘러보면서 윤혜아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윤혜아는 다소 구석진 곳, 달이 유독 잘 보이는 장소에 무리 지어 피어있는 달맞이꽃 앞에 섰다.
“음, 좋아. 상태 괜찮네.”
“무엇을 하려는 겁니까?”
“응? 선옥을 부르는 일이지, 당연히.”
꼼꼼하게 꽃과 달을 살핀 윤혜아가 비녀를 내게 건네고는 아이온을 듬뿍 달맞이꽃에 쏟아부었다.
활짝 피어있던 꽃은 윤혜아의 아이온을 쭉쭉 빨아먹더니 은은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고, 이내 그 빛은 기다란 실이 되어 달을 향해 뻗어 나갔다.
달과 은은하게 이어진 선은 곧 길처럼 넓어졌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위를 깡충깡충 뛰어오는 선옥을 마주할 수가 있었다.
‘오…. 달토끼는 대체 정체가 뭐지.’
놀라운 광경에 절로 호기심이 일었다.
달맞이꽃을 사뿐 밟으며 도착한 선옥이 바닥으로 뛰어내리자 달과 연결된 길이 서서히 흩어졌다.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토끼의 모습에서 사람으로 변한 선옥이 폴짝폴짝 뛰더니 내게 손을 불쑥 내밀었다.
나는 군소리 없이 비녀를 넘겼고, 선옥은 비녀를 유심히 살피더니 방긋, 웃었다.
“역시 이쪽 여의주를 주셨네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재료가 조금 더 필요하겠어요.”
“시간 내로 만들 수 있겠어, 선옥?”
“그럼요, 그럼요! 준비는 이미 끝냈고, 아주 조금 재료를 더 모으면 되는 일이거든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윤혜아에게 다정하게 답해준 선옥은 우리 둘에게 도와줘서 고맙다며 꾸벅 인사를 하고는 비녀를 품속에 잘 챙기며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말이에요, 두 분도 용궁에 가시나요?”
“용궁이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까?”
“어머? 용왕님께서 초대하지 않았어요?”
댕그랗게 눈을 뜬 선옥이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뭐라고 부연 설명을 하려는 순간, 우리 사이로 불쑥 물방울이 생겨났다.
물방울은 저 혼자 이리저리 모양을 바꾸다가 하나의 거울이 되었고 이런 짓을 할만한 인물은 용왕뿐이라 모두 입을 다물고 거울만 쳐다봤다.
매끄러운 거울에는 멋쩍게 웃는 강나비의 얼굴이 가장 먼저 비쳤고, 이어서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용왕의 얼굴이 나타났다.
-선옥아, 네가 하려던 이야기는 내가 해도 되겠느냐?
“물론이랍니다! 전 이미 말씀하신 줄 알았거든요.”
-순서가 조금 꼬여서 이제야 말하게 됐거든. 그래서 말인데, 봄아, 혜아야.
용왕의 입에서 나오는 ‘그래서 말인데’가 왜 이렇게 불안한지 모르겠다. 윤혜아와 내가 동시에 눈을 마주했다가 용왕에게 집중했다.
-무사히 협회와의 교섭이 성공한 축하의 의미로.
무슨 교섭. 난 아직 한 마디도 안 꺼냈고, 윤혜아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인데. 설마 강나비와 사적인 얘기라고 쑥덕거린 게 교섭의 밑바탕이고 뭐 그랬어?
-성대한 잔치를 열 계획이란다. 장소는 용궁이고, 너희를 초대하고 싶구나.
의심의 눈초리로 우리의 눈빛을 피하는 강나비를 노려보면서 초대를 받아들이겠다고 답하자 용왕이 생긋 미소를 지었다. 수려한 미인의 미소를 보면 기분이 좋아야 할 텐데, 그저 불안감만 차올랐다.
-다만 조건이 있는데….
이어지는 용왕의 말은 예측 범위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착잡해진 마음에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시커메진 시야가 내 미래처럼 느껴져서 울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