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214)
오전 일과를 끝낸 건우는, 아이스 프린스 박예준과 불의 꽃 박예란을 돌려보내고 던전 농지로 향했다.
‘예준이, 예란이가 얼마 후면 떠나서 아쉽긴 하지만…… 할 일은 해야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던전 농지에 들어섰다.
“뀽!(어서 오라뀽!)”
―주인, 왔나?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드디어 왔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던전 농지에 들어서자 뀨뀽이와 장군이, 무녀 라일라, 대장 무타무타가 건우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에 하와와 엘, 소아, 가온이 반갑게 인사를 받아 주었다.
“하왓!”
“다녀왔답니다!”
“안녕!”
갸웅!
덕분에 분위기가 북적북적해지면서, 건우의 울적한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우울한 기분이 좀 날아가네. 생각해 보면 예준이, 예란이를 완전히 못 만나는 것도 아니고…… 계속 우울해할 필요는 없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오늘도 평소처럼 농사일에 집중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때, 라일라와 무타무타가 건우에게 다가왔다.
“지구 정착에 관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요.”
“우리 형제들도 결정을 내렸습니다!”
엘프와 드워프들이 지구 정착에 대한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건우는 두 사람의 말에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하와와 아이들을 보면서 말했다.
“하와야. 얘들하고 잠깐만 놀고 있어. 라일라 씨하고, 무타무타 씨하고 얘기 좀 하고 올게. 알았지?”
“하와!”
노는 것은 자신 있다면서 자신의 가슴을 팡팡 치는 하와.
그렇게 자신감을 표출한 하와는 곧바로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하왕.”
그러면서 ‘얼음땡’을 하자고 제안하는 하와.
얼음땡은 술래잡기의 일종으로, 술래가 다른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는 놀이라는 점에서는 술래잡기와 일치했다. 다만 도망치는 아이들은 ‘얼음’과 ‘땡’이라는 시스템으로 술래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다는 차별점을 가지고 있었다.
건우는 그렇게 얼음땡을 시작한 하와와 아이들의 모습을 한 번 보고서, 작업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한 건우는, 뒤따라온 라일라와 무타무타에게 의자를 권하면서 입을 열었다.
“앉아서 얘기하죠. 엘프와 드워프는 어떻게 하기로 했나요?”
그 물음에 먼저 입을 연 것은 무타무타였다.
“우리 형제들은 지구 정착에 모두 찬성했습니다.”
건우는 그 대답에,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라일라를 바라봤다.
“엘프들은요?”
“저희들은 일부 선발대만 먼저 정착해 보기로 했어요. 저하고 한을 포함해서, 총 20명의 엘프들이 선발대로 나서려고 해요.”
그 말을 들은 건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부만 일단 정착해 본다니…… 합리적이네.’
그는 은연중에 모 아니면 도라는 논리로, 모두가 거주할지 아니면 거주하지 않을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또 다른 방식의 결정을 내린 엘프들의 현명함에 감탄한 것이다.
건우가 그러면서 입을 열었다.
“좋은 판단이네요.”
그가 그렇게 말하자, 라일라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조금 걱정했거든요.”
“걱정이요?”
“네. 괜히 선발대만 먼저 보내서, 이건우 님을 불편하게 하는 거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거든요. 혹시, 불편하신 건 아니시죠?”
라일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리 묻자, 건우가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연히 안 불편하죠. 오히려 권장해드리고 싶은 방법이에요.”
그 말에 라일라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단번에 풀어졌다.
“다행이네요.”
그러면서 눈웃음을 짓는 라일라.
건우는 괜히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엘프하고 드워프들은 전부 지구 정착에 도전한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건우는 두 사람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서 화제를 돌렸다.
“그러면 간단하게나마, 엘프와 드워프들이 어떤 식으로 지구에 정착하게 될지 들어 보실래요?”
그 물음에 라일라와 무타무타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건우는 두 사람의 기대 어린 표정을 보면서 조윤아와 나눴던 얘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라일라가 그 이야기를 전부 듣고 입을 열었다.
“그럼, 저희는 근처에 만들어질 양조장에서 일하게 되는 건가요?”
“네. 맞아요. 엘프들의 지식을 반영해서 양조장을 만들 생각이에요. 그리고 양조장뿐만이 아니라, 엘프들이 농사를 짓는 것도 고려해 보고 있어요. 일반적인 농사부터 화훼농사, 수경재배까지…… 식물과 관련된 일을 통해서 엘프들의 장점을 널리 알릴까 해요.”
그 말에 라일라가 잠시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약간 불안한 듯이 입을 열었다.
“저희들이 잘할 수 있을까요?”
“네?”
“양조장은 잘 몰라도, 저희들은 농사를 잘 짓지 못하잖아요.”
그 말에 건우는 엘프들이 돌보고 있던 엉망진창 농경지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렇게 농사를 지을 거면 안 하는 게 나았다.
하지만 건우는 그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직접 나서서 농사를 알려드릴 생각이니까요.”
그 말에 라일라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정말이요?”
“네. 제가 모르는 부분은 신화그룹에서 전문가를 초빙해서라도 알려드릴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엘프들은 잘 배우기만 하면, 저보다 더 대단한 농사꾼이 될 분들이니깐요.”
건우가 그렇게 말하면서 편안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주자, 라일라도 완전히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말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고마워요. 열심히 해서, 이건우 님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할게요.”
건우와 라일라는 그렇게 대화를 마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무타무타가 기대 어린 표정으로 건우에게 물었다.
“그럼 저희들은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겁니까?”
그 물음에 건우는 잠시 침음을 흘리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드워프 같은 경우는 아직 정확하게 정해진 일이 없어요.”
“아, 그렇습니까?”
무타무타는 그러면서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건우가 그 모습을 보면서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는 마세요. 대신에 여러 가지 일을 전부 해 보고 그중에서 잘하시는 일을 맡긴다고 했으니까요.”
그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무타무타가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두 눈을 반짝였다.
“여러 가지 일을 전부 시킨다는 겁니까?”
“네. 건축업, 제조업, 아티팩트 제작, 첨단산업 등등. 제가 만능 일꾼이라고 말해 놨으니까, 이런저런 일을 다 시켜 볼 거예요. 아마 많이 힘드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건우가 그렇게 묻자, 무타무타가 입꼬리를 길게 늘리면서 이빨이 다 드러나도록 웃었다.
“괜찮다뿐이겠습니까? 기분이 날아갈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그러면 이건우 님을 평생 따르겠습니다!”
무타무타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솥뚜껑 같은 손바닥을 강하게 마주쳤다.
짜악!
“으하하하하핫!”
건우가 깜짝 놀랄 정도로 커다란 박수 소리와 웃음소리.
무타무타는 기분이 무척 좋은지, 한동안 그렇게 웃었다.
그러다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면서, 재빨리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건우 앞에선, 웬만하면 인간의 방식으로 표현하기로 한 것을 떠올린 것이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너무 기분이 좋아서…….”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이해해요.”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무타무타와 대화를 마쳤다.
그리고 조금 사담을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구 정착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으니, 오늘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건우는 결국 일과를 바로 시작할 수 없었다.
그가 라일라, 무타무타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던전 농지에선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와!”
“얼음! 이랍니다!”
“땡!”
갸우갸웅!
“뀽뀽!”
-얼음이다.
-힝힝!
-무웅.
-핫!
-우운~
비-
던전 농지에 있는 정령들과 몬스터들이 다 같이 모여서 대규모 얼음땡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건우가 그 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술래인지는 정해 놓고 하는 건가? 뭐, 누가 술래든 상관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는 그러면서 한동안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간을 주기로 하고, 뒤로 살짝 물러났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을 꺼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런 건 남겨 둬야지.’
그렇게 건우는 일과도 잠시 미뤄 두고, 기분 좋은 시간을 만끽했다.
* * *
건우가 던전 농지 식구들의 얼음땡 놀이를 영상으로 남기고 있을 때.
묵계리 한편에서는 포식자 민서린이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던 작업을 잠시 멈췄다.
관찰하고 있던 바위벌 둥지에서 시선을 거둔 것이다.
그 순간, 옆에 조용히 엎드려 있던 돌쇠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냥?
민서린의 분위기가 묘하게 바뀐 것을 눈치채고, 그녀에게 왜 그러냐고 묻는 것이다.
민서린이 그 물음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계속 이러고 있는 게 맞는가 싶어서…….”
냐앙?
“야, 갑자기 무슨 헛소리냐니? 말이 심하다? 나 지금 무지무지 진지해.”
민서린이 그렇게 말하자, 돌쇠가 몸을 완전히 일으켜서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앞자리를 앞발로 두어 번 툭툭 두드리면서 입을 열었다.
냥!
고민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다 털어놔 보라는 뜻이었다.
그에 민서린이 다시 한 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별거 아니야. 그냥 나 스스로 안 될 거에 목을 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런 거니까.”
냥?
“뭐가 안 될 거냐고? 당연히 지금 하고 있는 몬스터 사육 연구에 관한 거지. 요즘 들어서 조금 자신이 없어졌어. 내 능력으로 몬스터 사육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이…….”
그 말에 돌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냐앙―
“확실히 네 말대로 다른 동종 업계 사람들보다는 내가 조금 낫긴 하지. 그런데 건우 씨를 보고 있으면,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 내가 이러고 있지 않아도 건우 씨가 알아서 다 해낼 것 같다고나 할까?”
민서린은 그렇게 말하고서 한숨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본 돌쇠가 인상을 찌푸렸다.
냥냥!
“그래. 네 말대로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거 알아. 그래도 신경 쓰이는 걸 어떻게 하겠어?”
민서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돌쇠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었다.
“역시 잘하는 걸 하는 게 정답일까?”
그녀가 돌쇠에게 그리 묻자, 돌쇠가 입을 다물고 고민에 빠졌다.
그에 민서린이 조금 더 자세한 내용으로 물었다.
“헌터로 계속 활동하는 게 지금보다 나았을까? 생각해 보면, 너도 내가 은퇴한다고 했을 때, 엄청 싫어했었잖아.”
그녀의 말에 돌쇠가 하던 고민을 멈추고 잠시 과거를 떠올렸다.
민서린이 인수한 길드를 안정화시키고 전문 경영인을 길드장으로 섭외한 바로 그날.
그녀는 돌쇠에게 가장 먼저 자신의 은퇴를 알렸다.
돌쇠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그때 당시의 돌쇠에게 낙이란, 던전을 돌면서 몬스터를 때려잡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돌쇠가 그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냐아.
그때는 싫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싫지 않다는 대답이었다.
돌쇠는 그러고 나서, 괜히 자신의 앞을 천천히 지나가는 바위벌을 앞발로 툭 건드렸다.
비―
갑자기 자신을 건든 돌쇠에게 항의하는 바위벌.
돌쇠는 그런 바위벌을 앞발로 가볍게 밀어냈다.
힘없는 바위벌은 그런 돌쇠의 횡포에 불만 어린 투정을 내뱉으면서, 갈 길을 마저 갔다.
민서린이 그런 돌쇠의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너도 많이 변했구나. 나만큼…….”
그 말에 돌쇠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냥!
그리고 자꾸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면서 자리를 피해 버렸다.
민서린이 그런 돌쇠의 뒷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부끄러워하기는…….’
그녀는 그러고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렇게 잠시 후.
돌연, 민서린의 스마트폰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민서린은 슬쩍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나서, 목을 한 차례 가다듬더니 여성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쩐 일이세요? 폰 씨.”
―뭐 하시나 궁금해서 연락해 봤습니다. 혹시 연구 중이셨습니까?
“음, 방금 전까지는 그랬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지금 뭐 하세요?
―저는…….
민서린은 그렇게 집사 폰과 별 의미는 없지만, 즐거운 통화를 나눴다.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공존하는 통화가, 그녀의 복잡한 머리를 잠시나마 가볍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