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213)
신비술사 조윤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건우네 집을 나섰다. 일 적인 면에서 원하는 바를 전부 이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 적인 면만 그럴 뿐이었고, 사적인 부분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하와랑 헤어지기 싫다.’
아침 시간대인지라, 하와와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을 달래 주는 것이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 레버랜드에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그걸로 만족해야지.’
지난번 어쩔 수 없이 취소한 레버랜드 약속을 다시 잡은 것이다.
조윤아는 헤벌쭉 웃으면서, 하와와 레버랜드에 가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커플 머리띠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같이 먹고, 커플 티도 같이 입어야지. 회전목마에서 하와랑 한 말에 타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헤헤.’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실없이 웃는 조윤아.
집사 나이트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슬쩍 미소를 지었다.
‘또 엉뚱한 상상을 하고 계시는 것 같군.’
그는 그러면서, 부디 이번에는 조윤아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이뤄지길 빌어 주었다.
그렇게 잠시 후.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설 때였다.
집으로 들어온 조윤아가 갑자기 멈칫거리더니, 약간 멍청해 보이는 표정으로 입을 헤―하고 벌렸다.
나이트가 그런 조윤아의 표정을 발견하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가씨, 왜 그러십니까?”
조윤아는 그런 나이트의 물음에 움찔하면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방금 막 시련을 이겨 냈어요.”
“네? 시련이라면…… 지옥초와 관련된, 그 시련 말씀입니까?”
“네. 그 시련, 맞아요.”
조윤아가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바로 앞쪽 허공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두꺼운 두루마리 하나가 생겨났다.
“보상.”
조윤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손에 쥐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펼쳐서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두루마리를 읽는 속도에 따라서, 점점 더 놀라움이 번져 나가는 조윤아의 표정.
나이트가 그 모습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가씨, 어떤 내용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 물음에, 두루마리를 다 읽은 조윤아가 침을 꼴깍 삼키면서 입을 열었다.
“성, 성장의 비약. 여기에 성장의 비약의 완전한 조합법이 적혀 있어요.”
그 말에 나이트의 눈이 놀라울 정도로 커졌다.
성장의 비약의 조합법이 적혀 있다는 것은, 조윤아가 그토록 바라던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나이트가 그것을 깨닫고, 환하게 웃으면서 조윤아를 축하해 주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결국, 이런 날이 오는군요!”
그 축하 말에, 조윤아는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두루마리에 고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후.
조윤아는 한 차례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감격에 겨워했다.
그리고 두루마리에서 시선을 떼, 나이트를 바라봤다. 그녀의 두 눈은 무섭게 번뜩이고 있었다.
“바로 재료 공수부터 시작할게요.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아가씨께서 말씀하시는 거라면, 세상을 뒤집어엎어서라도 찾아오겠습니다.”
그렇게 둘은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바로 성장의 비약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 * *
조윤아와 나이트가 성장의 비약을 만들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을 때, 건우는 오전 일과를 보고 있었다.
‘흠흠, 슬슬 서리태를 벨 시기가 오는 것 같네.’
그는 그러면서 서리태 밭을 둘러봤다. 서리태의 푸른 잎들은 서서히 누렇게 뜨고 있었고, 콩깍지는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8월 서리태라…… 묘하네.’
건우는 그러면서 서리태에 대해서 간단히 떠올렸다.
보통 서리태의 수확 시기는 10월이나 11월. 지금 같은 무더운 여름이 아니라, 서리가 내릴 때가 되면 수확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우가 8월에 서리태를 수확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소아의 능력이 대단하긴 해. 예상은 했지만, 수확 시기를 이만큼이나 앞당기다니…….’
소아의 급속 성장으로 인해서 서리태가 다 자란 것이다.
그래서 건우에게 걱정이 생겼다.
수확이 빨라서 좋긴 하지만, 서리를 맞지 못한 서리를 추수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서리태는 서리를 맞아야, 맛이 사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복잡한 표정을 짓는 건우.
그때, 일을 도와주러 온 아이스 프린스 박예준이 말을 걸어왔다.
“건우 형님. 걱정 있으십니까?”
그러면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슬쩍 닦아 내는 박예준.
건우는 그런 박예준이 시골 청년 같다고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슬슬 수확을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서리를 안 맞은 서리태라서 조금 걱정이야.”
“서리요? 그게 중요한 겁니까?”
박예준의 물음에 건우는 슬쩍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보통 서리태는 서리를 맞은 후에 추수하는 콩이라서 서리태라고 불리는 거거든. 서리를 맞아야 맛도 좋아.”
그 말에 박예준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리가 내리기 힘든 날씨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걱정인 거고.”
건우가 그렇게 말하자, 박예준이 잠시 생각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난 듯이 입을 열었다.
“제가 빙닭이하고 같이 서리를 내려봐도 되겠습니까?”
“빙닭이하고?”
“네. 빙닭이도 얼음의 정령인데…… 서리 정도는 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건우가 잠시 침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얼음의 정령이라면 서리도 내릴 수 있겠네.”
건우가 그렇게 대답하자, 박예준이 곧장 빙닭을 불렀다.
그 부름을 들은 빙닭이, 하와의 밀짚모자 위에 앉아 있다가 쪼르르 날아왔다.
뺙?
왜 불렀냐고 묻는 빙닭.
박예준이 그런 빙닭에게 물었다.
“서리 좀 내려줄 수 있어?”
뺙?
“필요하니까 내려 달라는 거지. 여기 서리태 밭 전체에 내려 줄 수 있겠어?”
박예준의 말에 빙닭이 잠시 서리태 밭을 둘러봤다. 그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뺙!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는 대답이었다.
그 대답을 들은 박예준이 미소를 지으면서 건우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 바로 해 봐도 되겠습니까?”
“음, 좋아. 무리하지는 말고.”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해 보겠습니다.”
건우의 허락이 떨어지자, 박예준은 빙닭에게 서리를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에 빙닭이 하늘로 날아올라서, 서리태 밭에 서리를 뿌리기 시작했다.
“하왕?”
“반짝이가 내린답니다!”
“눈부셔!”
갸웅!
그에 반응해서 즐거워하는 하와와 엘, 소아, 가온.
강렬한 햇빛이 내려쬐는 하늘 아래에서 서리가 내리는 모습은, 마치 별들이 떨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도 하네. 이런 게 진짜 8월의 크리스마스인가?’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반짝이는 서리들이 무사히 서리태에 내려앉았나 확인해 보았다.
그의 표정에 곧 아쉬움이 서렸다.
‘역시 금방 녹아 버리는구나.’
날씨가 워낙 덥다 보니, 빙닭이 뿌리는 서리가 서리태에 앉지도 못하고 녹아내린 것이다.
뺘악.
시무룩한 표정으로 귀환하는 빙닭.
박예준이 그런 빙닭을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계절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까. 미안해, 무리한 부탁해서…….”
뺙!
빙닭은 괜찮다면서, 박예준의 가슴에 머리를 비볐다.
과거에는 매일 틱틱거리던 둘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꽁냥꽁냥 사이가 좋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건우의 어깨를 차지하고 있던 ‘물의 위대한 존재’, ‘이슬 찐빵’이 입을 열었다.
―계약자여. 내가 도와줄 수도 있다.
그 말을 들은 박예준이 빙닭을 위로하다 말고 움찔거렸다. 건우의 어깨를 차지하고 있는 이슬 찐빵이 어떤 존재인지, 설명을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의 위대한 존재’에게 된통 당한 기억이 있는 만큼, 더욱 과민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건우가 그런 박예준의 모습을 슬쩍 확인하고는, 이슬 찐빵의 말에 대답했다.
“위대하신 분이니, 충분히 가능하겠죠?”
―그렇다. 어떤가? 내 도움이 필요한가?
그 물음에 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필요 없어요.”
―지금은?
“네. 서리는 새벽녘에 내리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없을 때, 부탁드릴게요. 지금 모습으로는 제대로 힘쓰기도 힘드시잖아요.”
그 말에 이슬 찐빵이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렇긴 하지. 하지만 이 정도 밭에 서리를 내리게 하는 것 정도는 이 모습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뭐, 계약자가 새벽에 서리가 내리길 원한다는 그렇게 해 줘야지.
그는 그러면서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박예준이 은근히 건우에게 말을 걸었다.
“전번에 봤던 존재와 동급인 존재를 이렇게 능숙하게 다루시다니…… 역시 건우 형님이십니다.”
건우는 그 말에 멋쩍은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딱히 대단한 건 아니야. ‘위대한 존재’들이 나한테 잘해 주는 것뿐이지.”
“그 말씀은 그분들에게 건우 형님이 인정받았다는 뜻 아닙니까?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박예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무척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건우를 바라봤다.
그에 건우가 다시 한 번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아무튼 덕분에 좋은 아이디어 하나 얻었어.”
“서리 말입니까?”
“응. 나 혼자였다면 인의적으로 서리를 내리겠다는 생각은 못 했을 거야.”
건우가 그렇게 말하자, 박예준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건우 형님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너도 좋지?”
뺙!
박예준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빙닭.
건우는 둘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일을 하던 불의 꽃 박예란이 건우와 박예준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방금 뭐였나요? 우리 빙닭이가 뭔가 한 것 같은데?”
그 물음에 박예준이 방금 전에 있던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그에 박예란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 이곳을 떠날 때가 얼마 안 남아서 그런가? 웬일로 박예준이 이건우 선배님께 도움이 되는 얘기를 했네요.”
그 말에 박예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평소에 엄청 무쓸모였던 것 같잖아.”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면서, 가볍게 티격태격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건우가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잠깐만, 예란아. 방금 뭐라고 했어? 곧 떠날 거라고?”
그 물음에 박예준과 박예란이 묘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박예준이 박예란 대신에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형님.”
“정말? 왜?”
건우는 놀라서 이유를 물었다.
그에 박예준이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명분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명분?”
“네. 저는 놓친 딥 어스 웜 때문에 이곳에 파견을 나온 건데, 별 이상 증상이 없으니 일선으로 돌아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초인 협회에서 파견 종료 공고도 떨어졌습니다.”
“정말?”
“네. 이제 열흘 정도 대기하다가 떠나게 될 것 같습니다.”
박예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에 건우도 아쉬움을 표하다가, 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주억이면서 말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애초에 너는 묵계리 같은 작은 마을에 있을 아이가 아니었지. 고생 많았어.”
“아닙니다, 형님.”
“그래도 강원도에서 활동할 거잖아? 오며 가며 가끔 만날 수 있지?”
건우가 그렇게 묻자, 박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명절하고 휴가 때마다 가족들 다 데리고 찾아올 겁니다.”
“그래. 그러면 됐지, 뭘. 그리고 꼭 그럴 때가 아니라도 언제라도 찾아와. 일하고 있을 때만 아니면 언제나 환영이니까.”
건우가 그렇게 말하자, 박예준이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건우 형님.”
“뭘, 감사씩이나…… 아무튼 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즐겁게 보내자.”
“넵!”
둘은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지만, 조금은 아쉬운 일이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