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60)
건우는 선상 파티에 가기 전날까지, 농사일을 하면서 정체불명의 생명체와 함께 다녔다. 녀석의 먹이 대용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건우는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나하고 하와가 주는 것만 받아먹네?’
녀석의 입맛은 상당히 까다로웠다. 은빛송송이꽃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것이다. 억지로라도 먹으려고 하면 켁켁거리면서 토해 내기 일쑤였다.
그런데 건우와 하와의 손이 탄 것은 뭘 줘도 잘 먹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지금만 봐도 그랬다.
갸우갸우.
넓은 그릇에 고개를 박고 김치볶음밥을 탐하는 녀석. 건우가 직접 만들어 준 김치볶음밥이었다.
건우는 자신의 밥그릇에도 담긴 김치볶음밥을 슬쩍 맛보았다.
‘맛없어.’
“하으왁······.”
하와도 때마침 혓바닥을 쭉 내밀면서 맛없다는 것을 어필했다. 그 와중에도 용케 김치볶음밥을 꾸준하게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결국 건우의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먹는 것은 녀석밖에 없었다.
그때, 녀석이 목에 두른 보자기에서 은빛송송이꽃 하나를 슬쩍 꺼내더니, 반찬처럼 김치볶음밥 위에 두고는 다시 우물거렸다.
갸웅~
행복해 보이는 녀석의 모습에 어머니가 가볍게 웃으면서 물었다.
“호호. 자꾸 보니까, 정도 들고 귀엽네. 아들. 이 아이, 이름 지어 줘야 하지 않을까?”
그 말을 들은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보니까 너하고 하와를 잘 따르는 것 같은데······ 이름 하나 지어 줘라. 자꾸 저 녀석, 저 녀석 그러지 말고. 보니까 가축으로 기르려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건우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했다.
“떠오르는 게 없는데요?”
“그래? 그럼 엄마가 지어 줘도 돼?”
어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건우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네. 그러세요.”
“그럼 노랑이로 하자! 노랑이!”
어머니의 제안을 들은 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렸다.
“노랑이라니? 당신, 노랑이 뜻은 알고 말하는 거야?”
“노란색이니까 그냥 노랑이죠. 호호.”
“어이구. 골이야. 노랑이는 쫌생이한테나 쓰는 말이잖아!”
그 말을 들은 어머니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혀를 쯧쯧 차면서 말했다.
“그냥 곤잘레스로 해.”
그 순간, 건우는 먹고 있던 김치볶음밥이 목구멍에 막힐 뻔했다. 그가 물을 급하게 마시면서 물었다.
“곤, 곤잘레스요? 진심이세요?”
“왜? 이상해? 세바스찬으로 하든가. 그것도 나쁘지 않네.”
“······아버지 네이밍 센스가 어마무시하시네요.”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이름이 평범하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때, 잠자코 있던 하와가 참전했다.
“하와!”
“바둑이? 무슨 강아지도 아니고······.”
건우는 결국 자신이 해결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일단 특징을 찾아보기 위해서 녀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갸웅?
건우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
‘트리케라톱스를 닮았으니까······ 트스? 트톱? 케톱톱?’
이상한 이름만 계속 떠올랐다.
그러는 사이에 어머니와 아버지, 하와는 녀석의 이름을 정하기 위해서 열심히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는 사이 아침을 만족스러울 정도로 먹은 녀석이 자연스럽게 건우의 무릎으로 향해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더니 꼬리로 자신의 몸 주변을 둥글게 말면서 입을 크게 벌렸다.
갸오옹~
배도 부르니 잠이 솔솔 오는 모양이었다.
건우는 녀석이 하품하는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즉흥적으로 이름을 정했다.
“가온이라고 하죠.”
갸웅?
슬슬 눈을 감으려던 녀석이 눈을 번쩍 뜨고서 되물었다.
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부터 네 이름은 가온이야. 이렇게 된 거, 잘 지내 보자. 가온아.”
갸웅!
건우는 그렇게 ‘가온’의 이름을 정했다. 가온이라는 이름에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녀석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문득 떠오른 것이다.
그런 건우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가볍게 툴툴거렸다.
“곤잘레스가 딱인데······ 가온이라는 이름은 너무 약해 보이잖아.”
물론 그 이후에는 가온이라는 이름을 꼬박꼬박 제대로 불러 주었다. ***
건우가 지난 며칠간 가온과 함께하면서 가장 불편한 점을 뽑자면, 오랫동안 못 떼어 놓고 다닌다는 점이었다.
‘아마 내가 주는 먹이 때문에 붙어 다니려는 거겠지.’
가온이 건우나 하와가 주는 먹이 외에는 안 먹는 바람에 던전 농지에서 키울 수도 없었다. 결국 바깥도 같이 다녀야 했는데,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결국 내가 테이머가 돼 버렸지.’
가온을 테이밍 몬스터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몬스터를 테이밍 할 수 있는 초인들이 더러 있었다. 그들은 몬스터를 데리고 다니는 만큼, 무조건 관련 몬스터에 대한 정보와 초인 협회에 등록해야만 했다. 그리고 테이밍 몬스터에게 증표를 만들어 줘야만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테이밍 몬스터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건우는 가온에게 한 가지 선물을 해 주었다.
갸웅?
가온은 자신의 왼쪽 앞발에 겹쳐진 두 개의 링을 신기한 듯 만지작거렸다. 주홍빛과 녹빛이 도는 예쁜 링이었다.
건우가 그런 가온에게 주의 사항을 알려 주었다.
“웬만하면 벗기지 말고 꼭 하고 다녀. 필요 이상으로 꽉 끼는 일은 없을 거야.”
사실, 건우가 선물한 링은 보통 링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려 아티팩트였다. 물론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값비싼 아티팩트는 절대로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개발해 낸 보급형 아티팩트였다.
그렇다고 성능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불덩어리를 쏘아 보내거나 얼음 창을 만들어 내는 등의 놀라운 기능은 없었지만, 착용자에 따라서 크기가 자유자재로 조절되는 신기한 기능이 있었다. 몸집이 너무 작든, 너무 크든 어떤 테이밍 몬스터나 착용할 수 있으니, 가
온에게 잘 맞는 아티팩트였다.
갸웅!
다행히 가온도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녀석은 연신 링을 만지작거리면서 놀았다.
하와도 슬금슬금 다가가서 호기심을 보였다.
하지만 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슬슬 약속 시간이다. 자, 가자.”
오늘이 바로 서울로 올라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와와 가온이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하왓!”
갸웅!
그렇게 건우는 하와와 가온을 데리고 서울 상경 길에 올랐다. 하지만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일과 던전 농지에 잠시 들리는 일이었다.
건우는 일단 부모님을 먼저 찾아뵈어 인사를 드리고, 던전 농지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뀽!(어서 오라뀽!)”
엘과 뀨뀽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를 해 왔다.
갸웅!
가온이 가장 먼저 엘에게 가서 안겨 들었다.
엘은 그런 가온을 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하와도 어느새 거기에 껴서 가온을 같이 예뻐해 주었다.
그런데 뀨뀽이는 오히려 살짝 뒤로 물러났다.
건우는 뀨뀽이가 어째서 그런지 알고 있었다.
‘이상하게 가온이한테는 다가가기 어렵다고 했지.’
그나마 뀨뀽이는 나은 편이었다. 바위벌이나 다른 뿔토끼들은 가까이 접근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던전 농지에 오면 가온은 정령들과 함께 노는 경우가 많았다.
건우는 갑자기 뀨뀽이가 살짝 안쓰럽게 느껴져서, 녀석을 안아 들었다.
“뀨뀽아. 뭘 그렇게 무서워해? 너, 뿔토끼들 대장이라며. 가온이는 너 안 물어.”
“뀨뀽!(무서운 건 아니라뀽!)”
“그럼 너도 가서 가온이랑 놀아. 가온이도 보니까, 너랑 놀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실제로 가온은 건우에게 안긴 뀨뀽이를 노리고 있었다. 기회만 포착되면 뀨뀽이와 장난칠 생각인 것이다. 그나마 뿔토끼들 중에서는 뀨뀽이가 가장 가까이 다가오니 친해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건우의 말을 듣고 가온의 기세를 느낀 뀨뀽이가 흠칫 놀랐다.
“뀨뀨뀽.(이상하게 가온이가 다가오면 몸이 이상해진다뀽.)”
“흐음. 왜 그럴까?”
건우는 의아해하면서 뀨뀽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바닥에 놔주었다. 그 순간, 가온이 뀨뀽이에게 날아들었다.
갸웅!
뀽!
갑자기 시작된 추격전.
가온은 결국 오늘도 뀨뀽이와 놀지 못하고 시무룩하게 건우에게 돌아왔다.
건우가 피식 웃으면서 가온의 등허리를 가볍게 쓸어 주었다.
“언젠가 뀨뀽이도 네 마음을 알아줄 거야.”
갸웅?
“응. 정말.”
건우의 말에 다시 힘을 받은 가온이 방긋 웃으면서 건우 앞에서 재롱을 부렸다.
건우는 미소를 지으면서 엘과 다시 다가온 뀨뀽이에게 말했다.
“내가 계속 말했지만 오늘 가면 내일 올 거야. 그때까지 던전 농지 잘 부탁할게.”
건우의 말에 엘이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제가 열심히 할게요!”
“뀽!(나도 도와줄 거라뀽!)”
둘의 대답을 들은 건우는 든든함을 느꼈다.
“좋아. 믿을 만하네. 올 때, 선물 사 올게. 하와, 가온. 가자.”
“하왓!”
갸웅!
건우의 말에 하와와 가온이 엘과 뀨뀽이에게 인사를 하고서 던전 농지를 벗어났다. 엘과 뀨뀽이는 손을 흔들면서 잠시 자리를 지켰다. 그러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보고는 뀨뀽이가 먼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다만 엘은 그 자리에 잠시 더 기다리다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오늘이 바로 기회의 날이랍니다. 흐흐.”
평소와는 다르게 음침하게 웃는 엘은 작업복 안에 넣어 두고 있던 것을 꺼내 들었다.
우주폰 폴드7.
엘이 그것을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
‘민서린’은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한 초인이었다.
27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각성했고, 헌터계로 나서면서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그리고 3년 만에 서울의 꽤 유명한 길드를 통째로 인수하는 기염을 토해 냈다.
사람들은 이 기적적인 업적을 놀라워했다. 보통 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서린은 무척이나 겸손했다. 그녀는 이 모든 공을 자신의 파트너인 ‘돌쇠’에게 돌렸다.
하얗고 부드러운 털과 유려한 몸매를 자랑하는 돌쇠. 그냥 보면 귀티 나는 하얀 고양이일 뿐이지만, 진신(眞身)은 몬스터였다. 그것도 상식을 가볍게 뛰어넘는 흉포한 몬스터.
사람들은 그녀가 앞으로 더 뛰어난 업적을 쌓을 것이고, 더 유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길드도 전문 경영인을 앉혀 놓고 자신이 직접 운영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민서린의 행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서른인 그녀가 은퇴한 것도 그렇지만, 운영하지 않을 길드를 힘들게 인수한 것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헌터계에 짧지만 강렬한 족적을 남긴 민서린.
그녀는 이번 선상 파티에 참석하기 전에 잠시 벚꽃 나무 아래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냐앙~
옆에는 느긋하게 누워 있는 돌쇠와 함께였다. 돌쇠는 가온과 똑같은 링을 목에 차고 있었다.
민서린이 돌쇠에게 물었다.
“돌쇠야. 나도 이제 31살이야. 만으로 29살. 하아. 어떡하지? 요즘 보니까 주름도 많이 는 것 같아. 네가 생각해도 그래?”
돌쇠는 그 말을 듣고는 슬쩍 고개를 들어서 민서린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관심 없다는 듯이 늘어졌다.
냐앙.
‘그렇네.’라는 대답을 남긴 채였다. 그에 민서린이 발끈했다.
“야. 그럴 때는 아니라고 말해 줘야지!”
냐앙~
“너, 진짜!”
민서린은 그러면서 돌쇠의 배를 만지작대며 귀찮게 했다. 그러자 돌쇠가 짜증이 잔뜩 난 표정으로 벚꽃 나무에 빠르게 올랐다.
그 모습을 본 그녀가 피식 웃으면서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오늘 파티에 온다는 신화그룹 사람은 누굴까?’
민서린이 오늘 선상 파티에 가려는 이유는 온전히 신화그룹 내에서 상당한 직위를 가진 인물이 참석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임원에게 한 가지 물을 것이 있었다.
‘바위벌 양봉 기술······ 과연 어떻게 성공시킨 걸까?’
사실 민서린은 헌터계에서 은퇴한 이후로 몬스터 사육 연구를 독자적으로 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그녀의 꿈은 헌터가 아니라, 몬스터 사육 박사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과도 상당히 좋아서, 바위벌 양봉에 거의 성공한 상태였다. 몇 가지 문제만 해결한다면 말이다.
민서린은 오늘 파티에서 신화그룹 관계자에게 그것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물론 알려 줄 리는 없겠지.’
그래서 협업을 제안할 생각이었다. 분명 서로 기술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웬만하면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네.’
민서린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하와~”
갸웅!
“뛰지 말고 천천히 가!”
상당히 인적이 드문 이곳에 무척이나 독특한 무리가 등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