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King went to school RAW novel - chapter 169
드르륵-
창문을 열고 찬 바람을 맞으며 인형을 바라봤다.
내가 만들어 준 인형이 누군가에게 보물이 되었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다.
이렇게 허접한 인형일 뿐인데 말이다.
그렇게 내가 일렁이는 눈으로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둘러보던 그때.
무언가 의아한 느낌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내가 만든 게 아닌데.”
내가 만든 인형은 똑똑히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인형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박음질, 색 배합, 헝겊의 재질까지 모두 똑같았지만, 무언가 달랐다.
…….
이건 이슬기가 만든 인형이 분명했다.
손재주가 없어 자신만의 인형을 만들지 못하자, 내 인형과 똑같은 인형을 만든 것이다.
보고 똑같이 만드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테니까.
내가 그 사실을 알아챈 건 너무나도 간단했다.
난 인형의 등에 하트 문양을 박아 넣은 적이 없다.
난 인형을 손에 꽉 쥔 채 멍하니 찬 바람을 쐬었다.
오늘따라 밤하늘에 별이 많이 떠 있는 것 같았다.
인형을 꽉 쥔 손에 땀이 차올랐지만, 난 인형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두 번은…… 없어.”
이제 난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됐다.
평소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것도 빚지는 걸 싫어했던 내가 누군가의 목숨값을 빚지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빚을 져 버린 이상.
난 그것을 꼭 갚아야만 했다.
난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꼭 살아 있어라.’
드르륵-
난 다시 창문을 닫고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정령왕까지 키리엘에게 합세한 이상 완벽에 완벽을 거듭한 작전이 아니고서야 승산은 없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다음 결전의 날이 머지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키리엘은 분명 못다 태운 세상을 멸망시키러 올 테니까.
그렇기에 내게 남은 시간은 역시 많지 않았다.
“그래. 계획…… A를…… 해야…… 하는……데…….”
하지만 일주일 넘게 잠을 자지 못하고 끼니조차 챙기지 못한 인간의 몸은 한계치를 이미 아득히 넘어 있었다.
스물일곱 번째 노트를 펼치기 바로 직전.
난 책상에 머리를 세게 처박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제168편 꿈 □
“으…… 머리야. 여긴 어디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며 난 눈을 떴다.
눈을 뜬 곳은 내 책상이 아닌 맑고 푸르른 강물 속.
난 눈을 연거푸 비비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 내가 잠든 건가.”
난 단번에 지금이 꿈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왜냐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내 기억 속 가장 아름다웠던 세계.
바로 정령계였으니까.
난 몸을 일으켜 세운 뒤 푸른 초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강물에 쓰러져 있었음에도 옷은 하나도 젖어 있지 않았다.
푸른 잔디를 지르밟을 때의 기분 좋은 소리 역시 들리지 않았다.
난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내 꿈이라는 걸 확신했다.
“이렇게라도 휴식을 주는 건가.”
일주일 넘게 단 일 분조차 마음 편히 쉬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꿈에서라도 가장 편히 쉬는 것.
난 잠시나마 이 휴식을 완벽히 만끽하기로 했다.
“확실히 공기는 좋네.”
내가 눈을 뜬 곳은 정령의 도시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 같았다.
도시의 흔적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주위에 뛰노는 정령들 역시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난 푸른 강물 길을 따라 정처 없이 걸었다.
난 예전부터 정처 없이 걷는 걸 좋아했다.
목적지 없이 걸으면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하나도 알 수 없기에 난 그 설렘이 좋았다.
물론 정처 없이 걸어 본 적은 손에 꼽지만 말이다.
“잠깐.”
아무도 없는 푸른 초원을 정처 없이 걷던 내 앞에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령의 도시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던 탓에 누군가를 마주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난 본능적으로 실루엣을 피해 근처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그러자 잠시 뒤 의문의 실루엣들이 내 쪽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자네, 정말 그렇게 할 생각인가.”
“굳힌 마음. 어쩔 수 없지 않겠나.”
중후한 중년 남성 두 명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난 바위에 숨은 채로 고개를 살짝 내밀어 그들이 누군지 확인했다.
“……아버지.”
놀랍게도 그 두 실루엣의 정체는 선대 물의 정령왕인 엘시드.
그리고 선대 불의 정령왕인 레바테인이었다.
엘시드는 레바테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아이는 아닐세. 자네도 알지 않는가.”
레바테인은 엘시드의 손을 살짝 내려놓은 뒤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그건 나도 알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 아이를 믿는 수밖에 없네. 인재가 없지 않나.”
난 두 정령왕의 대화를 엿들으며 무언가를 떠올렸다.
선대 정령왕인 저 둘이 저 정도로 심각하게 얘기하는 거라면.
아마…… 키리엘에 대한 얘기가 아닐까, 라고 말이다.
이번엔 레바테인이 엘시드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걱정 말게. 그래도 심성은 괜찮은 녀석일 터이니. 자네도 키리엘을 예뻐하지 않았나.”
“그때는 저런 녀석일 줄 몰랐으니 그랬지.”
“허허. 그래도 믿어 주게. 기회는 줘야지.”
그렇게 두 정령왕의 대화가 오가던 그때.
숨어서 몰래 대화를 엿듣던 내가 커다란 나뭇잎 하나를 지르밟았다.
바스락-
“누구냐.”
“여기까지 올 정령은 없을 터인데.”
나뭇잎 소리를 들은 두 정령왕은 일제히 내가 숨어 있는 바위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젠장할…….’
난 숨을 참았다.
그리고 바위 뒤에 몸을 감춘 채 어쩔 줄 몰라 헤매었다.
지금 도망친다고 할지라도 저 둘에게서 도망치는 게 가능할 리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내가 몸을 웅크린 채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
엘시드가 바위 뒤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 바람이었던 것 같군.”
“그래. 자네 너무 예민한 것 같네.”
정령왕들은 바위 뒤에 숨어 있는 내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마 꿈이라서 그런 것인지 내 모습이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난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바위 뒤에서 나와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려던 바로 그때.
쿠구우우웅-
정령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은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고 땅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난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게 뭐야……!”
그렇게 정령계가 한참 요동친 뒤, 잠잠해지기 시작하자 내 눈앞에는 또 새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는 푸른 들판에 서 있었던 난 지금 거칠게 타오르고 있는 정령의 신전 앞에 와 있었다.
“꿈이 바뀐 건가……?”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난 바닥에 타오르는 불꽃을 피하며 타오르고 있는 신전 안으로 향했다.
신전은 과거의 신전인 것인지 엘림 시절의 내가 알던 신전과는 다른 구조로 되어 있었다.
신전에는 정령왕들의 침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불꽃은 다름 아닌 그 침소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침소의 입구는 이미 거친 불꽃에 막혀 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난 미간을 찌푸리며 그 불꽃을 헤쳤다.
그리고 불꽃이 타오르는 한 침소에 도착했다.
난 흠칫 놀라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어…… 어째서……. 어째서냐……. 난 너를 정말 후계자로 생각했건만…….”
“늙은이가 말이 너무 많아. 내가 정령왕 따위로 만족할 거 같아? 이 키리엘 님이? 천만의 말씀이지!”
불꽃이 휘감고 있는 침소에는 레바테인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쓰러져 있었고 키리엘은 그를 내려다보며 거친 불꽃을 휘날렸다.
그리고 이내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키킥……. 내가 보니까 살짝만 비틀면 정령계가 아니라 전 차원을 먹을 수도 있겠더라고. 너희는 평화 어쩌고 정의 어쩌고 하지만……. 정령의 타고난 위력이 아깝지도 않아?”
“강한 존재일수록 평화를 중시해야 할 터……. 내가 너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 아니더냐…….”
레바테인의 목소리에 생기가 점점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새파란 불꽃을 입에서 토해 내기 시작했다.
키리엘은 그런 레바테인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그래. 그 말 정말 질리도록 들었지. 뭐, 고맙긴 해. 그 쓸데없는 얘기 때문에 내가 이 천재적인 생각을 해낸 거니까.”
“키리엘…… 안 된다……. 안 돼…….”
레바테인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키리엘을 불렀다.
하지만 키리엘은 그런 레바테인에게서 등을 돌린 뒤 불꽃을 걷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에 타오른 침소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키리엘…….”
레바테인의 생기가 없는 목소리가 침소에 울려 퍼지던 그때.
키리엘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 레바테인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신이 질리도록 한 말이 하나 더 있지? 무슨 일이 있어도 웃어라. 웃으면 다 잘될 거다.”
…….
“그 말은 꼭 지켜 줄게. 키키킥!”
기분 나쁜 웃음이 침소를 메움과 동시에 키리엘은 손끝에서 거친 화염 창을 만들어 냈다.
화염 창은 이글이글 타오르며 주위의 불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레바테인을 향해 거칠게 날아갔다.
화르르륵-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불의 정령왕.
그것도 압도적인 위력을 가진 불의 정령왕 레바테인이 화염 창 한 자루에 찔려 죽게 될 것이라고는.
감히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보인 레바테인은 화염 창에 타올라 숨을 거뒀다.
난 어리둥절한 상황에 침소를 빠져나가는 키리엘의 어깨를 잡았지만, 그저 투명한 공기를 만지듯 통과가 될 뿐이었다.
그렇게 숨이 멎어 싸늘해진 레바테인과 함께 침소를 비롯한 모든 신전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불꽃은 굉음을 내며 신전을 삼켰고 그와 동시에 정령계가 한 번 더 흔들리기 시작했다.
난 이젠 다시 평화로운 초원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질끈 눈을 감았다.
잠시 뒤 굉음과 진동이 멈추자 난 살며시 눈을 떴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인 정령계가 나를 맞이했다.
“이건 그때잖아. 실프리스…….”
눈을 뜬 나를 맞이한 건 역시나 불에 타고 있는 정령계였다.
하지만 과거의 신전이 타오르고 있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거대한 불꽃이 정령계를 휩쓸고 있었다.
정령계의 모든 세상이 불꽃에 집어삼켜진 것 같았다.
내가 예상치 못하게 실프리스를 본 그때와 비슷한 광경이었다.
“실프리스…… 이프리트…… 어스…….”
난 서둘러 불에 타오르고 있는 정령계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지금 이곳은 실프리스를 만난 뒤의 정령계일 터.
검게 변해 버린 정령왕들에 대한 단서를 지금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난 계속해서 미친 듯이 정령계를 뛰어다녔다.
그리고 잠시 뒤 불에 그을려 검게 변해 버린 초원에서 걸음을 멈췄다.
검게 변해 버린 초원 위에는 키리엘과 수많은 악령이 서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내가 찾아다녔던 세 정령왕이 있었다.
물론 내가 너무 늦은 탓인지 이미 어스와 이프리트는 검게 변한 채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건 실프리스뿐.
난 거칠게 소리치며 실프리스에게 다가갔다.
“실프리스!”
난 실프리스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끌며 말했다.
“일어나. 일단 도망가야 해!”
…….
“실프리스…….”
하지만 실프리스의 어깨가 내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지금의 난 꿈을 꾸고 있는 것뿐이니까.
내가 허탈한 표정으로 실프리스를 바라보던 그때.
실프리스를 향해 키리엘이 걸어왔다.
터벅- 터벅-
여유가 넘치는 느린 발걸음.
키리엘은 쓰러진 실프리스 앞에 쪼그려 앉은 뒤 실프리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나쁜 정령이 아니야. 쟤들도 내가 저렇게 만들었어? 아니잖아.”
키리엘은 손가락으로 뒤편에 쓰러져 있는 이프리트와 어스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