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King went to school RAW novel - chapter 177
마치 불에 달군 쇳조각이 주먹을 감싼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내 주먹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프리트는 그 검은 연기와 함께 내 얼굴을 멍하니 응시하더니 이내 나를 거칠게 내팽개쳤다.
콰다당-
이프리트가 내 주먹을 거칠게 내팽개치자 난 그대로 몸을 제어하지 못한 채 널브러졌다.
바닥에 쓰러진 난 거친 숨을 뱉어 내며 이프리트를 올려다봤다.
“승산이…… 없는 건가.”
내 절망감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놀랍게도 이프리트는 내게 주먹을 허용했을 때도, 그리고 지금 나를 거칠게 내팽개쳤을 때도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한 손으로도 실피아와 플레임의 불꽃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의 강함은 지금의 내가 감히 판단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실피아! 플레임! 우선 피해!”
난 어쩔 수 없이 둘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실피아와 플레임은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
그 둘이 내 말에 고개를 저은 이유는 단순히 도망치고 싶지 않아서나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주 원초적인 문제.
지금 이 화염 회오리를 거둔다면 자신들을 포함한 모두가 저 불꽃에 휩싸일 테니까.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젠장할…….”
난 이를 악문 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지금 당장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건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이프리트의 불꽃은 점점 화염 회오리를 집어삼켜 갔고 이 속도라면 머지않아 실피아와 플레임을 태워 낼 게 뻔했다.
그렇다고 저 살기 가득한 이프리트가 나와 정령들이 차원 밖으로 도망치는 걸 가만히 놔둘 것 같지도 않았다.
우린 도망칠 수도 없었고, 맞서 싸울 수는 더더욱 없었다.
난 비통한 표정으로 이프리트를 바라봤다.
이프리트는 영혼 없는 눈빛으로 멍하니 불꽃을 뿜어냈다.
그렇게 점차 이프리트의 불꽃이 화염 회오리를 집어삼켜 가 플레임의 손끝에 견딜 수 없는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으아아!
-버텨!
플레임과 실피아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까지 버텼으나 둘의 손끝에 닿는 열기에 결국, 바람과 불꽃을 거둬 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남은 건 둘을 덮치는 거대한 불꽃밖에 없을 터.
그렇게 실피아와 플레임이 공포 어린 눈빛으로 눈앞의 불꽃 파도를 바라보던 그때.
슈우우욱-
이프리트의 불꽃이 멎어 들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만 더 뿜어져 나왔다면 실피아와 플레임을 태우고도 남았을 이프리트의 불꽃이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이프리트의 불꽃은 마치 역재생을 하듯 다시 그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나와 정령들은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야…….”
-인간…… 몰래카메라 아니지?
-야. 뭐라고 말 좀 해 봐.
실피아와 플레임이 계속해서 내게 의문을 품은 목소리를 건넸지만, 난 쉽사리 그 둘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 상황은 나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으니까.
터벅- 터벅-
방금까지만 해도 차원을 집어삼킬 것 같은 불꽃을 뿜어내던 이프리트가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향해 느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난 이프리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망쳐.”
-어? 인간. 뭐라고?
“일단 도망치라고.”
내가 지금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었다.
우선 정령들을 도망치게 하는 것.
비통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으로서는 최선이었다.
-인간! 빨리 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라니까!
플레임은 나를 향해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고 실피아는 나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난 그런그들을 향해 조용히 읊조릴 뿐이었다.
“플레임. 걱정하지 마. 그리고 실피아…… 나 믿지?”
-……에이 씨!
실피아는 내 말에 잠시 고개를 떨궜다.
그러다 이내 잔뜩 화를 내며 플레임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
그리고 노움이 만들어 둔 갑주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 이거 놔! 인간도 데려가야지!
깜짝 놀란 플레임은 잡힌 손목을 뿌리쳤지만, 실피아는 그런 플레임의 손목을 다시 잡아채며 말했다.
-시키는 대로 하라고……!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실피아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플레임은 어벙한 표정으로 실피아의 뒤를 따랐다.
난 그 둘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에는 아직 너무 일렀다.
이제 이프리트의 느린 걸음이 멈춰 섰으니까.
그것도 내 앞에 말이다.
“오랜만이다…….”
이프리트를 올려다보며 건네는 인사에 역시나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제 열기가 식은 손으로 내 목을 잡아챌 뿐이었다.
턱-
이프리트는 내 목을 잡아 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바닥에 나를 내려놓았다.
‘이게 무슨…….’
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머리를 복잡하게 꼬아 대기 시작했다.
만약 이프리트가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내가 쓰러져 있을 때 손날로 내 목을 베었을 것이다.
아니면 간단히 불꽃을 썼을 수도 있을 터.
그건 모두 예상이 가는 행동이지만, 지금 이프리트의 행동은…….
전혀 예상이 가지 않았다.
난 바닥에 발을 붙이고 선 채 이프리트를 바라봤다.
이프리트 역시 선 채로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렇게 잠깐의 적막이 평화라고 느껴지기 시작할 때쯤.
이프리트가 팔을 휘둘렀다.
퍽-
이프리트의 주먹이 내 아구창을 박살 냈다.
“커헉!”
난 마치 차에 치인 듯 거친 숨을 뱉어 내며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다섯 바퀴는 구른 뒤에야 나는 멈춰 설 수 있었다.
“이런 씨……. 허억…… 허억…….”
주먹 한 방을 맞았을 뿐인데 이 정도의 고통이라니.
난 겨우 몸을 일으키며 연신 입가를 어루만졌다.
분명 차에 치인 것 그 이상의 고통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입꼬리를 올렸다.
…….
이제 이프리트의 의도를 파악한 것 같았으니까.
타닷-
난 벌겋게 부어오른 입가를 어루만진 뒤 곧바로 땅을 박찼다.
빠른 속도로 이프리트를 향해 달려간 나는 허리와 팔을 모두 비틀었다.
그리고 가속도와 회전력까지 이용한 주먹을 이프리트를 향해 내질렀다.
콰광-
마치 바위를 망치로 두들긴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내 주먹이 욱신거릴 정도로 강한 충격이 이프리트의 아구창에 적중했다.
아까 전 내가 날린 주먹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충격에 이프리트는 뒤로 주춤거리며 몇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여전히 공허한 얼굴로 빨갛게 달아오른 자신의 입가를 손을 가져다 댔다.
“그래. 이게 우리 대화지?”
난 욱신거리는 주먹과 입가를 뒤로한 채 다시 한번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그러자 이프리트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입가를 어루만진 뒤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내 뺨을 향해 거친 주먹질을 시작했다.
퍽-
둔탁한 소리가 차원에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내 입에서는 붉은 피가 살짝 터져 나왔다.
위력으로 따지면 아까 전 주먹의 배는 되어 보였다.
하지만 난 약간 주춤거릴 뿐 쓰러지지 않았다.
“후…….”
난 숨을 고른 뒤 이번에는 이프리트를 향해 느린 걸음을 옮겼다.
이프리트 앞에 도착한 뒤 난 입에 고인 피를 한 번 뱉어 냈다.
그리고 이프리트를 향해 웃어 보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우리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준비됐지?”
이프리트는 예상대로 그저 공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난 그런 이프리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주먹을 날렸다.
퍽-
이프리트 역시 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퍽-
보통 인간은 한 대만 맞아도 정신을 잃을 정도의 위력.
마치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덤프트럭 같은 나와 이프리트의 주먹이 수십 차례 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와 이프리트는 이 주먹이 오가는 수십 차례의 시간 동안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바닥에 붉은 피가 흥건히 고이고 눈이 부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음에도 난 물러서지 않았다.
잠시 뒤 내 왼쪽 눈이 잔뜩 부어올라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쯤.
이프리트가 주먹질을 멈췄다.
“쿨럭……! 왜. 아프냐?”
난 거친 숨을 뱉어 내며 이프리트를 향해 능청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이프리트는 자신의 부어오른 뺨에 손을 가져다 댄 뒤 입에서 붉은 불꽃을 뱉어 냈다.
아무래도 입안이 완전히 터진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붉은 불꽃을 뱉어 낸 이프리트는 이번엔 꽤 길게 나를 바라봤다.
한쪽 눈이 감긴 탓에 이프리트의 모습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이프리트는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각인을 시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뒤를 돌아 검은 게이트를 열었다.
터벅- 터벅-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프리트가 검은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는 거냐?”
난 제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선 채로 이프리트를 불렀다.
하지만 이프리트는 여전히 내 말에 한마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난 그런 이프리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사실 이프리트를 좀 더 붙잡아 두고 싶었지만, 지금 내 다리는 한 걸음조차 움직이지 못했다.
이를 악문 채 전력으로 이프리트의 주먹을 받아 낸 탓에 이 자세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그간 참아 왔던 고통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결국, 이프리트는 검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검은 게이트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내 몸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미 감겨 버린 왼쪽 눈이 아닌 그나마 뜨여 있던 오른쪽 눈 역시 흐려지기 시작했고 점점 몸이 뒤로 기울기 시작했다.
-인간!
-괘…… 괜찮으세요?
-야! 정신 차려!
내 귀에 들리는 마지막 목소리는 정령들의 걱정 소리였다.
하지만 난 그 목소리에 대꾸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털썩-
난 결국, 이름 모를 차원에 쓰러진 채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정신을 잃고 나서도 내 입꼬리는 내려가지 않았다.
죽기 직전까지 맞고 정신까지 잃은 상태였지만, 지금 한 몸의 대화는 꽤 깊었으니까.
내가 나누고 싶던 대화를 나눈 건 기적에 가까웠다.
뭐, 너무 맞아서 살짝 미친 것 같기도 하다.
■ 제177편 달콤한 고통 □
-야. 물의 정령. 정신이 좀 들어?
-으…… 응? 여긴 어디야……?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니아이스는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프리트의 불꽃이 니아이스의 겉면만 말린 것인지 니아이스의 물결은 점차 살아나기 시작했고 곧이어 다시 푸른 물결을 흘려 보내기 시작했다.
-하……. 다행이다.
다른 정령들은 니아이스가 정신을 차린 것을 확인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한숨이 허공에 닿기도 전, 정령들은 다시금 불안한 눈빛으로 누군가를 바라봤다.
-저…… 어떡하죠?
정령들의 눈이 일제히 노움을 향했다.
노움은 거대한 흙 갑주를 하나 땅에 내려놓은 뒤 울먹이기 시작했다.
바닥에 놓인 흙 갑주는 곧이어 미세한 조각으로 갈라졌다.
쩌적-
갈라진 흙 조각이 바닥에 널브러짐과 동시에 그 안에 들어 있던 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 호야!
정신을 완전히 잃은 내 모습을 바라본 정령들은 다시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히 니아이스는 더욱 놀란 채 나를 향해 성치 않은 몸을 이끌었다.
-야. 너도 환자거든.
실피아는 퉁명스럽지만, 다리를 절뚝이며 나를 향해 걷는 니아이스를 부축해 주었다.
니아이스는 내 앞에 털썩 주저앉은 뒤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호야아……. 호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