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King went to school RAW novel - chapter 43
“어?”
“점심은 『친구』랑 같이 먹어야지!”
나의 과거 학창 시절은 항상 혼자였다.
딱히 친구의 존재가 내겐 필요하지 않았고, 또 혼자가 익숙하고 편했으니까.
나와 앞으로 마주칠 일 없거나 친해질 일이 없는 또래를 대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지만, 『진짜 친구』를 대하는 건 그것과는 별개이고, 그러기엔 소모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고 판단했다.
『진짜 친구』라…….
“주스 사러 가자.”
-주스!
-주스?
주스라는 말에 니아이스와 플레임의 눈이 번뜩 뜨였고, 나는 그런 정령들의 머리를 살포시 쓰다듬어 주며 주스가 진열되어 있는 냉장고로 향했다.
‘친구랑 먹는 점심. 사실 처음인데.’
* * *
“어…….”
“왔네? 여기 앉아!”
내가 주스와 도시락을 사서 테이블로 가자, 안수진을 포함한 다른 학생들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닭 가슴살을 데우고 있는 김대호 옆자리에 앉아 전자레인지에 도시락을 데운 뒤, 니아이스와 플레임에게 주스를 한 병씩 쥐여 주었다.
“자, 마셔도 돼.”
-응! 강호는 완전 멋쟁이야!
“니아이스, 주스 사 줄 때만 그러기야.”
-헤헤!
꿀꺽. 꿀꺽.
주스를 받아 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벌컥벌컥 마시는 니아이스와는 달리 플레임은 주스병을 받아 들고서 한참 동안 그 속을 들여다보기만 하고 있었다.
“혹시 불의 정령은 액체를 못 마시는 건가.”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신기해서.
“색이 있는 물. 이상하지. 그래도 한번 마셔 봐.”
-으…… 응.
플레임은 마치 니아이스가 처음 주스를 접했을 때처럼 주스에 대한 약간의 경계심과 호기심을 품고 있었고, 내 말에 약간 안심을 한 것인지 고개를 끄덕인 뒤 드디어 주스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으응…….
꿀꺽.
…….
-달아…….
“많이 마셔.”
플레임은 주스를 한 모금 마시더니 서서히 입가에 웃음꽃을 띄우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플레임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 준 뒤 데워진 도시락을 꺼냈다.
“후…….”
자, 이제부터가 문제다.
친구들끼리의 점심.
다른 애들한테는 일상일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처음 겪어 보는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긴장하지 말자.
“저기, 강호! 있잖아.”
“어?”
내가 꽤나 바보 같은 고민에 빠져 있던 찰나, 안수진이 먼저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흠칫 놀라며 그녀의 말에 대꾸했고, 안수진은 내 반응을 보고서 실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푸흡. 왜 그래. 친구랑 점심 처음 먹어보는 사람처럼.”
“어…… 티 나는 건가.”
…….
“푸하핫! 강호 너 의외로 농담 잘하는구나! 완전 의외!”
“농담……?”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건가.
다행이다.
“그것보다 너 요즘 완전 스타인 거 알아?”
“스타?”
나는 데워진 도시락 뚜껑을 열고 밥을 한 입 집어 먹으며 답했다.
“응. 스타. 실시간 검색어에 몇 주째 1위던데? 몰랐어?”
안수진은 햄버거를 한입 크게 베어 문 뒤 우물거리며 내게 휴대폰 인터넷 검색창을 보여 주었다.
“그러네.”
안수진이 보여 준 휴대폰 화면 속에는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가 1위부터 10위까지 쭉 나열되어 있었고, 그중 1위부터 5위까지는 모두 나에 관한 검색어였다.
[1] – 정령사 [2] – KHA 정령사 [3] – 정령“뭐야. 왜 무덤덤한 반응이야. 나라면 완전 방방 뛸 텐데!”
“얼떨떨해서.”
“어쨌든 정령사가 내 친구라니! 완전 대박!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혹시 나중에 SNS에 올려도 돼?”
“어. 나중에.”
“좋아! 좋아!”
안수진은 밝게 웃으며 다시 휴대폰을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이번에는 김대호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야! 김대호!”
“어? 왜.”
“헐. 너 그거 다 먹는 거야? 덩치가 커진 이유가 있구만?”
“전문 용어로는 벌크업이라고 하는 거야.”
김대호는 전보다 커진 몸의 근거를 뒷받침하듯이 마치 수십 마리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양의 닭 가슴살을 흡입하듯이 먹고 있었다.
“치킨을 먹지 왜 맛없는 퍽퍽 살을 먹냐?”
“치킨은 안 돼.”
“예~ 예~ 참. 까다로우시네요~.”
안수진은 쉬지 않고 떠들어 대며 자칫하면 어색할 수 있었던 점심시간을 활기차게 만들어 주기 시작했고 나, 김대호에 이은 안수진의 다음 타깃은 역시나 이슬기였다.
“슬기야~!”
“어…… 어어?”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점심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던 이슬기는 안수진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고, 안수진은 햄버거를 한 입 더 베어 물고서 이슬기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이제 보니 너 되게 귀엽게 생겼다! 화장해 봤어?”
“어……? 아니. 그런 거 몰라…….”
“그래? 그럼 다음에 내가 화장해 줄게!”
“어……? 아니…… 난 괜찮…….”
“완전 예쁠 거 같아! 지금도 귀엽지만! 엄청 기대된다!”
“어……? 어…….”
안수진의 밝은 에너지는 이슬기의 우중충함을 다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력했고, 덕분에 숨 막힐 것만 같았던 친구들과의 점심시간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서로 어색하기만 했던 우리 특별반 네 명은 서서히 각자의 일상과 서로에 대해 궁금한 점을 터놓기 시작했고, 어색하기만 할 줄 알았던 특별반 학생들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혹시 김대호랑 안수진. 너희 남매인 거야?”
“야! 나랑 쟤랑 닮았어!?”
“어. 조금.”
“완전 기분 나빠!”
“야, 기분은 나도 나쁘거든.”
내 질문을 들은 안수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김대호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고, 김대호는 익숙하다는 듯이 묵묵히 닭 가슴살을 집어 먹을 뿐이었다.
“친남매는 아니고 그냥 친구야.”
“아 그렇구나.”
김대호와 안수진.
왜인지 모르게 닮은 구석이 많길래 남매일까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구나.
또 한 가지 알았네.
(성은 다르지만 배다른 남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서.)
그렇게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던 점심시간이 거의 마무리될 무렵.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치우고 있던 우리에게 안수진이 갑자기 비장해진 표정으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희 혹시 그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 제44편 친구 (2) □
“무슨 소문.”
“헉 몰랐구나? 그게 있잖아…….”
안수진은 갑자기 비장해진 얼굴과 함께 나와 학생들을 주목시키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문이라니.
내가 학교생활에 관심이 없었던 탓일까.
큰 소문이 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우리도 지금 애들 사이에서 완전 스타야!”
“뭐라는 거야.”
“우리 지금 학생들 사이에서 완전 인기 폭발이라고!”
안수진은 우리를 놀래 주려고 했던 것인지 비장했던 표정을 한순간에 익살스럽게 바꾸기 시작했다.
“아…… 그래.”
“뭐가 ‘아 그래’야! 완전 대박인데!”
하지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은 안수진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별로 그 소문에 대해 큰 감흥이 없어 보였다.
그러자 안수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먼저 김대호에게 다가가 묻기 시작했다.
“야! 너도 감흥 없어? 진짜?”
“인기는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거니까. 상관없어.”
김대호는 인기라는 것에 대해 별다른 깊은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래…… 넌 사실 그럴 줄 알았고……. 강호 너는? 너도 그래?”
“뭐…… 좋아해야 하는 거겠지.”
“야! 너도 반응이 왜 그래!”
사실 김대호와는 달리 나는 인기라는 것에 대해 전부터 꽤 깊게 생각해 오고 있었다.
헌터라는 직업의 근본적인 역할은 게이트를 닫고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이지만, 사실 지금 헌터의 사회적 위치는 연예인과 비교해도 별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연예인 대신 헌터가 광고도 찍고 TV에도 출연하는 상황이니, 절대 인기라는 것을 쉽게 여겨서는 안 됐다.
이 말인즉슨 헌터에겐 강함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기도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야 강호! 진짜 안 좋아? 응? 네가 우리 중에서도 제일 인기 많다고!”
“좋지.”
“아! 진짜 하나같이 반응이 재미없어!”
그렇다.
현재 헌터를 꿈꾸는 예비 헌터들 중 직업에 대한 사명감보다 인기와 부, 그리고 명예를 목적으로 헌터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도 인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니까.
나 또한 헌터 학교 입학식 자기소개 시간에 인기를 얻어 보겠다는 마음가짐을 굳게 불태웠었지만, 막상 실제로 인기를 얻어도 내 몸에 밴 진한 외톨이의 기운은 어쩔 수 없는 법인지 인기라는 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니들 반응 진짜 재미없어.”
안수진은 재미없다는 듯이 입을 삐쭉 내밀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와 다른 학생들도 그녀를 따라 자리를 치운 뒤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내가 먹은 도시락 용기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니아이스와 플레임이 마셨던 주스병을 분리수거를 했다.
“역시 안 남기고 다 마셨네. 맛있었어?”
-호야! 진짜 최고야! 주스 또 마시고 싶어!
-인간…… 이렇게 달콤한 건 빨리 알려 주지 그랬어!
‘좋아해서 다행이다.’
플레임과 니아이스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은은한 주스의 여운을 느끼고 있었고, 나는 그런 두 정령의 볼을 어루만져 준 다음 내 어깨 위에 올렸다.
“그럼 이제 내려가자.”
생각보다 즐거웠던 점심시간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나와 학생들은 든든해진 배와 함께 다시 특별 교실로 향하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 친구』인 건가.’
* * *
“다음에는 우리 다 같이 바비큐도 먹자! 응? 응?”
“난 닭 가슴살 먹어야 돼.”
“진짜 김대호 너 재미없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특별 교실로 돌아온 학생들은 전처럼 의자에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고, 나는 가만히 앉아 다른 애들의 얘기를 듣다가 선생님이 들어가셨던 교실을 살짝 훑어보았다.
“그래서…… 해야 ……니까요?”
‘아직 안 끝나셨구나.’
꽤 점심에 오랜 시간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의 열띤 회의는 아직 한창 진행 중이었고, 벽에 막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로 봤을 때 꽤 심각한 사안 같아 보였다.
“나는 이제 훈련하러 갈게.”
“개인 훈련? 하긴, 먹었으면 움직여야지! 그럼 오늘은 여기서 다들 바이바이 할까?”
“그러자.”
“그래! 그럼 언젠가 또 보자!”
나는 점심을 먹고 나서 둔해진 몸을 풀기 위해 개인 훈련을 하러 내 교실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내 얘기를 들은 다른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개인 훈련을 위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언제 다시 볼지는 알 수 없지만 자주 보고 싶은 이런 기분.
이게 친구라는 건가.
나는 처음 느껴 보는 미묘한 감정과 함께 자리를 떴고, 곧이어 지하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내 전용 교실의 문을 열었다.
“역시 여기는 그대로네.”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던 특별 교실과는 달리 내 전용 교실은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고, 나는 한쪽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대로 주르륵 미끄러지듯이 바닥에 앉았다.
“니아이스, 플레임.”
-응? 호야 왜?
-인간. 무슨 일이야?
“그게 아니라. 그냥 너희 의견이 궁금해서.”
-뭐가? 뭐가 궁금한데?
-얘기해. 인간.
사실 개인 훈련을 하기 위해 자리를 뜬 것도 거짓은 아니지만, 사실 나는 생각이 많아진 내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어서 서둘러 자리를 뜬 것이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나는 왜 헌……. 아니야.”
-뭐야! 얘기해 줘!
-궁금하게 만들지 마!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둘, 슬슬 졸릴 텐데.”
-왜 갑자기 말을 돌……. 하암…….
‘역시 지금이 딱 졸릴 시간이지.’
“이리 와서 한숨 자.”
-흐아암…… 일어나서 꼭 말해 줘야 해…….
니아이스와 플레임에게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복잡한 생각에 관해 의견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재빨리 관뒀다.
지금 복잡해진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면 할 말 안 할 말을 다 할 것 같았으니까.
다행히 지금은 점심시간이 지나 정령들의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였고, 나는 하품을 하며 졸린 눈을 비비는 니아이스와 플레임을 내 품 안에 넣은 뒤 서서히 재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