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232)
5.
만생(萬生)에서 눈을 뜨고 나서, 나는 자수정 씨—왕국에서 자작위를 내려 받은 귀족도 아니고, 만생에서 권능을 휘두르는 신이 아니라, 다만 [외전]에서 살아가는 신서중학생 자수정 씨에게 신세를 졌다.
“자수정 씨는 요리를 정말 잘 하시네요.”
“예. 정확히 만들어둔 레시피 덕분이에요.”
신서중학생인 자수정이 천천히 쟁반을 내려놓았다. 우부르카가 그녀를 도와 저녁에 먹을 반찬들을 서빙했다.
테이블을 내려다보면서 자수정이 말했다.
“원하는 바를 성취하고 오셨나요, 공자 씨?”
순간 경직이 걸린 것 같았다.
“예?”
“공자 씨가 원하시던 바요.”
“…….”
자수정의 목소리는 홀로 떨어진 민들레 잎이 땅에 떨어질 적에 내는 소리와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주의를 하지 않으면 곧잘 여름 바람에 잡혀 어디론가 사라졌다.
“저는 공자 씨께서 어찌 느끼고 계실지, 조금 걱정되어요.”
“……저를 염려하신 겁니까?”
“예, 걱정했어요. 집주인으로서. 손님을 맞는 입장에서. 하지만 거기에 더해, 순수히 김공자 씨에 대한 호기심도 느껴지네요.”
“……일단 식기 옮기는 걸 도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식탁을 정리했다. 쟁반에 올려진 국그릇과 생선구이를 이리저리, 세심하게, 테이블 위에 정렬시켰다.
찌개그릇을 정중앙에, 콩나물과 오이를 왼쪽으로. 계란찜을 뒤로.
곧 배 안으로 사라질 음식들이 가지런히 놓이는 와중에, 내 팔과 자수정의 팔이 스쳤다.
몇 번이나.
“공자 씨께서 원하시던 바.”
자수정이 말했다.
“…….”
“이곳의 제가 아닌, 또다른 저를 만났다고 하셨지요. 그 사람이 저의 원류라고. 어쩌면 신일지도 모른다고. 그리 들었어요, 공자 씨.”
“예.”
“공자께서 원하시던 바는 이루었나요?”
그것은 아까 전에 자수정 씨가 내게 건넨 최초의 질문.
그러나 이번에는, 질문이 허물려 두 번째 바닥을 이루었다.
“제게 죽기까지 하면서 얻고자 한 것. 목적. 그걸, 얻으셨나요?”
나는 잠시 침묵했다.
“예.”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일단 목적은, 정상으로 올라가서는 만나지 못할 탑주를……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거였으니까요. 그렇게 보면, 전 정말로 목적을 잘 달성했습니다. 탑주라는 인간에 대해서 많은 걸 알게 되었거든요.”
“그렇군요.”
내 눈앞에서 옅은 미소를 지은 이 학생은, 어느 왕국의 표정이 다채로운 귀족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옅은 미소야말로 이 소녀가 가장 행복할 때 보이는 미소임을 알았다.
“참 잘하셨어요.”
“정말로 고생하셨어요, 공자 씨.”
어느덧 자수정은 내 양손을 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 손을 꾹 쥔 자수정의 체온을 느끼면서.
결론으로서 나는 심장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것이 당신의 본질이다.’
염려해주는 존재.
잘하면 칭찬해주고, 못 되면 슬퍼해주는 자.
단지 그것을 극단까지 올렸을 때 태어난 사람이다.
[당신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이 자에게 있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아직 아이들이다.
아이가 바깥에 나갈 때 괜히 위험해질까 봐, 혹시라도 위험한 찻길에서 떠돌까 봐, [차 조심하렴!] [오토바이 조심하렴!] 하고 말한다.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 동안 불안에 심장이 쿵쾅거린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는,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잘했어] [정말 잘했다] 하고 등을 감싸준다.
[당신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조심히 다녀오세요.
[당신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돌아오는 길에 오토바이 조심하세요.
[당신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층을 오를 때, 불운에 삼켜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무사히 돌아와주세요.
“…….”
모두의 보호자가 되려는 신.
그 신의 아바타를 눈앞에 두고, 나는 미소 지었다.
“탑주와 만나 얻은 것을 보여드릴까요?”
자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래.
이 말도 번역하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렴]이라는 말이지.
이 정도면 대충 신의 말씀을 해석하는 사제로서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인 거다.
“자, 그럼 잠깐만 따라와주십쇼. 제가 보여드릴 게…….”
“아. 죄송하지만 그 전에.”
자수정이 탁자를 가리켰다.
“식사부터 하세요.”
“…….”
“밥을 제때 챙겨먹지 않으면 건강이 상해요. 공자 씨.”
과연.
이것도 번역하자면 [밥은 먹고 하렴]이라는 말이리라.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신의 명령에 복종하였다.
6.
내가 향한 곳은 낡은 한옥의 뒷마당.
소위 [귀신들이 잠들어 있는 창고]였다.
나는 조심히, 조심히, 한 발짝만 창고의 문을 열었다.
“설마 내가 이 유령 소굴에 다시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문에 매달린 채 휙, 휙, 창고 안쪽을 확인했다.
다행히 뭔가 기괴한 악귀들의 페스티벌이라거나, 지켜보는 사람의 SAN치를 확 내려가게 만드는 광경은 없었다.
창고는 조용했다. 단지 잡동사니들이 평화롭게 먼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 없나?”
그 순간, 냐옹! 하고 내 발등에 뭔가 들러붙었다.
“히이익!?”
“냐옹이잖아요. 너무 놀라시네요, 공자 씨.”
자수정은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숙여, 내 발등에 찰싹 들러붙은 강아지 인형을 쥐었다. 강아지 인형은 옮겨가는 도중에도 계속 “냐앙! 냐앙!” 하고 자신의 존재적 문제를 상기시켰다.
“크흠.”
나는 되도록 강아지 인형한테 다가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 아이는 죽은 겁니까? 그러니까 가령, 죽은 원령이 인형에 씌인 거예요?”
“아니요, 공자 씨. 냐옹이는 그저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영원히 하는 아이예요. 단지 그뿐인 아이지요.”
강아지 인형을 껴안은 채 자수정이 조곤조곤 말했다.
“냐옹이는 그 고민이 멈춰서도 안 되고, 고민이 끝나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웹니까?”
그러자 강아지 인형이 방방 뛰었다.
-냐아! 냐오오옹, 냐옹! 냐오옹!
자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냐옹이가 말하기를, 자신이 고민을 멈추면 세상이 멸망한다네요.”
“…….”
과연.
아니, 도대체 어떤 부분이 [과연]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강아지 인형이 살아있다는 말씀이죠?”
“물론이에요. 냐옹이는 살아 있고, 살아 있을 것이며, 죽는다면 세계가 멸망할 때 죽을 것이에요.”
“…….”
나는 이 지구상에서 제일 위험할 게 분명한 강아지…… 고양이…… 고양이 소리를 내는 강아지 인형…… 아, 됐고, 냐옹이의 코앞에 스킬 카드를 불러들였다.
“카드 소환.”
파아앗!
+
[지골룡의 두개골]랭크: SSS+
효과: 살아있는 자의 기억을 보관합니다. 보관된 기억은 ‘상자’에 담깁니다. 이 상자는 오직 해당 스킬을 소유한 자에게만 파괴될 수 있습니다.
상자가 파괴되지 않는 이상, 당신은 똑같은 기억을 계승하는 인물의 육체를 몇 번이고 생산할 수 있습니다. 육체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기억을 쌓고, 이 경험을 다시 상자에 ‘업데이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신이 허락한다면 말입니다!
인물의 육체가 파괴되더라도 상자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사의 특권을 베푸십시오.
※단, 파괴된 육체의 기억은 상자에 업데이트할 수 없습니다.
※만생의 주인로부터 복사한 스킬입니다.
+
“수정 씨.”
“네?”
자수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시에 강아지 인형이 파닥파닥거리며, 냐아아앙, 길게 울었는데 아마도 하품을 한 것 같았다.
넌 뭔데 세계종말급 아이템 주제에 귀엽냐?
“저는 그 강아지 인형한테 [육체]를 줄 수 있게 됐어요.”
“…….”
자수정이 멈칫했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했으나 눈동자의 빛깔이 조금 더 진해졌다. 주의 깊게. 조용히, 나의 스킬 카드가 있는 자리를 바라보았다.
“육체라면……?”
“이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몸을 줄 수 있습니다.”
“…….”
“어떠세요? 수정 씨. 저를 믿고 한 번 아이들에게 스킬을 쓰는 걸 허락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자수정은 한동안 고민했다.
왕국의 귀족도 아니고, 태양왕의 애첩도 아니며, 탑주는 더더욱 아닌, 오직 신의 자비만을 간직하고 태어난 신서중학교 3학년 A반의 자수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 제안을 해주셔서 무척, 정말로 무척 감사드려요.”
그녀는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그건 이 아이들이 직접 생각해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역시.
“저는 이 아이들이 살아있는 육신을 얻어 지금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면, 기쁘겠지만…… 아이들은 생각이 다를 수 있어요.”
[왕국 귀족]이나 [영웅], [탑주]라는 껍질들을 하나씩 다 벗기고.벗기고 나서 남은 조각을 이렇게 눈앞에서 확인하면.
자수정이라는 인물이 가진 존재는 정말 한 줌뿐이었다.
“가능하다면 이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길 원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유령 창고]에 모인 괴생명체, 정말로 생명체인가 의심스럽긴 하나, 어쨌든 괴상한 아이들에게 일일이 묻고 다녔다.
가령, 나는 거울한테 물었다.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귀신이 목덜미를 싸하게 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울이었다.
“어….”
꾸우욱.
멀리서 거울을 보고 있는데 웬 기다란 손가락이 내 목을 좌우에서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착각이 아니다. 꾸욱, 꾸우욱! 진짜 손가락 한 마디 한 마디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오러를 발동해서 어떻게 지우려 해봤는데, 오러조차 안 먹혔다.
그런 거울 앞에 나는 스킬 카드를 내밀었다.
“너희가 원하기만 한다면… 육체를 줄 수 있는데….”
꾸우욱?
“물론 몇 가지 조건이 있어. 일단 네 기억이 상자에 저장된단다. 그리고 그 상자는 내 소유물이 되고… 네 몸이 죽어서 다시 몸을 만들어야 할 때는, 그, 상자를 가진 내 허락이 들어가야 돼.”
꾸우우우욱.
“아니! 하지만, 악용할 생각은 없어! 진짜로! 내가 뭐 너희를 살린 다음 요괴유령연합군단 같은 걸 만들어서 전세계를 정벌하고 그럴 인간이….”
꾸우우우욱! 꾸우우욱!
“수정 씨! 헬프! 이 새끼 농담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 살려!
공자님이 귀신한테 죽는다!
“굉장히 소통에 능숙하시네요. 공자 씨.”
자수정은 무표정 하게 감탄했다.
“저 이외에 거울이랑 그렇게 대화가 통하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잘하시고 계세요.”
“아니, 그렇게 멀리서 칭찬만 하지 말고! 좀! 뒈질 거 같으니까 도와주십쇼!”
“음.”
자수정이 거울에 다가가서 표면을 쓰다듬었다.
“거울 씨. 제가 본 공자 씨는 무척이나 착한 분이에요.”
자수정이 말을 시작하자 내 목덜미를 사로잡은 정체불명의 손길이 확! 사라졌다.
“그냥 겉으로 보면 기생오라비 아니냐고요? 아니에요. 무척 심지가 곧은 분이고, 곧은 심지를 꺼트리지 않을 정도로 강한 분이에요. 예? 나이 들었는데 액면가만 어린 것 같아서 기분 나쁘다고요? 그것은, 그래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
저 생명체에도 못 끼는 무기물질이 뭐라는 거야?
“하지만 거울 씨를 이용해먹을 분은 아니에요. 거울 씨의 육신은 어디까지나 거울 씨의 것. 되살릴 것인지, 파괴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 또한 전적으로 거울 씨의 판단이에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자 씨를 믿으셔도 될 거예요.”
거울이 바르르 떨었다.
“예? 제가 공자씨를 특별히 아끼는 거냐고요? 아니요. 저는 여러분 모두를 아끼고 있어요. [편애]라는 특수한 감정을, 안타깝게도 저는 가지고 있지 않아요.”
거울이 위이잉, 반짝였다.
“예.”
자수정이 나를 돌아보며 정중히 말했다.
“부활에 응하겠지만 앞으로 내 전속담당거울닦이 집사를 한명 구해서 상비해둘 것이며, 집사는 반드시 빅토리아풍에 외눈 안경을 낀 검은색 머리 청년이어야 한다고 해요.”
“…….”
“그리고 가능하다면 영어로 말할 때 영국식 억양이 강하길 바란대요. 또, 정말로 가능하다면 무언가 흥미로운 뒷배경이 추가되길 유구하겠다고 해요. 예를 들면 이미 멸문해버린 후작 가문의 차남 정도가 좋겠다네요.”
과연.
그래, 이것이야말로 과연이다.
“……저희 탑 좀만 올라가면, 외모로 모든 놈들 찜쪄먹는 카페 알바생이 두 명 있긴 있거든요? 한 명은 은발이고 다른 한 명은 흑발인데. 집사 코스프레는 개무리수니까 안 된다 해도, 카페 아르바이트생 복장이면 어떻습니까? 제가 댁을…… 그러니까 카페에 비치하는 거울로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잠깐.
나는 대체 왜 사람 뒷목 잡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거울을 필사적으로 설득하고 있지? 내가 갑이고 쟤가 을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탑주의 부담을 줄인다.’
그렇다.
나는 탑주가 짊어진 목숨들을 하나, 하나, 줄여나갈 것이다.
첫 번째로 우선은 그 화신 중 한 명인 자수정 씨,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유령 창고]의 미지생명체들을 살린다.
‘그것만이 탑주를 이길 수 있는 길이니까.’
각오를 되새기고 있자니, 인간과 괴생물체 사이의 통역을 맡은 자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 씨의 제안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겠다고 하네요.”
이후.
나는 [미지의 물체]를 하나씩 [지골룡의 두개골]로 거둬들였다.
기억이 담기는 [상자]는 작았다. 정육면체의 작고 새까만 상자.
그것을 보자마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그려졌고, 이미지가 인도하는 바에 따라, 나는 입을 벌려 상자를 삼켰다.
꿀꺽.
그러자 상자는 원래 아무런 형체도 없었다는 듯, 내 입안에서, 식도에서, 위장에서, 스르륵 녹아 내렸다.
“……..”
나의 심장이 조금은 더 새까매졌으며.
“지골룡의 두개골.”
내 앞에서는 환한 빛이 술렁거렸다.
[스킬을 발동합니다.]빛이 잦아든 곳.
그곳에는 아까 전과 다를 바 없어 보이던 거울이 서 있었다.
“…….”
“…….”
그렇다.
서 있었다.
[다리]로 [서] 있었다.“다리군요.”
내가
“다리네요.”
자수정이 무표정하게 답했다.
“아마도 저것이 본디 거울 씨가 가졌던 몸이었던 모양이에요.”
네 발이 달린 거울이 신나서 쪼르르르 창고 안을 돌아다녔다. 만생을 통틀어 수사력이 가장 뛰어난 시인을 데려 놓는다 해도 저런 광경을 보고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바퀴벌레].거울의 몸뚱이를 지닌 바퀴벌레가 활기차게 기어 다녔다.
“아니, 암만 그래도 저건…….”
“고마워요. 공자 씨.”
자수정이 진지하게 말했다.
“정말로 좋은 분이군요. 공자 씨는.”
“…….”
나머지에게도 하나씩 신체를 선물해주었다.
결과적으로 창고 안은, 겉보기엔 영락없는 푸들이지만 입을 열 때마다 “냐아아아!” 울부짖는 냐옹이, 초상화 속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신화 속에 나올 것처럼 우락부락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사이즈는 15cm 피규어 수준에 불과한 레드 드래곤 등등을 얻게 되었다.
-뭐여, 시벌.
결국 여태까지 잠자코 입 다물었던 배후령마저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완전 개판이구먼.
“좋게 보면 이매망량이고 백귀야행(百鬼夜行)인 거 아닐까요….”
-카레에서 똥맛이 난다고 그게 카레냐? 뭘 어떻게 불러봤자 똥이지. 이 똥장수야.
“제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꼬였는지 모르겠는데, 언제부터 꼬였는지는 잘 알 것 같거든요. 검제. 당신을 만나면서부터입니다. 당신 때문에 삼라만상의 또라이와 귀신, 정체불명의 잡것들이 죄다 끌려오기 시작한 겁니다. 알겠습니까?”
-웃기고 자빠졌네. 야. 니가 곁길로 안 새고 내 말에 따랐으면 벌써 탑 100층 찍었거든? 대충 1만명쯤 되는 사람들이 그 여정을 지켜 보면서 환호를 해줬겠지.
뭔 소리래.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백귀 환생(百鬼還生).”
내가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스킬을 발동합니다.]탑주의 화신이 짊어진 목숨들을 털어냈으니, 이제는 내 일을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부르셨나이까, 주군?”
물 빠진 금발.
머리 한쪽을 뼈 가면으로 가린 아귀(飯鬼). 한때 에스델이란 이름으로 추앙받았고, 한때 마왕으로 공포를 받은 나의 가신이 무릎을 꿇었다.
“아귀.”
“예.”
“살아라.”
아귀는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올려보았다.
눈을 보았다.
“……많은 사람을 죽인 몸입니다.”
“알고 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렇다.”
“저 같은 것이, 살아도 되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라. 살아서 너의 삶을 짊어져라.”
“…….”
“내가 너와 있겠다. 네가 너 자신을 짊어질 때, 무너질 것 같다면, 내가 너를 짊어지겠다.”
침묵이 흘렀다.
아귀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예.”
물에 젖은 목소리였다.
“살겠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23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