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28)
하지만 이곳에선 아니다.
신성영역의 주인들과 갖은 종주들이 모여있는 자리.
하물며 드루이드가 출현하고 그들의 신이 위치했으니.
이제야 목소리를 높이고 주장을 펼칠 입장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태초의 숲에서 하던대로 행한다면 풀 한포기 남지 않고 멸절하리란 사실을 마침내 알게 된 것이었다.
“허락하마.”
“··· 감사합니다, 황금률의 드루이드시여.”
내 허락을 듣고 엘프여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까다로우리라 여긴 여왕이 굴하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더 이상 내 선택과 의견에 토를 다는 자는 없을 터이므로.
또한, 자비를 베풀었으니 여왕은 더욱 나를 어려워할 것이다.
“그런데 13명씩 나누면 일곱 그룹으로 나뉘지 않소? 나머지 한 그룹의 대장 역할은 누가 맡을 생각이오?”
멸악의 거인이 다시 한번 말했다.
알비노를 염두에 두었느냐, 혹은 다른 자를 임명할 것이냐 묻는 것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답해주었다.
“나다.”
“······ 12명은 직접 선택하는 것이오?”
“아니.”
“그럼?”
“선택을 받는다.”
“······?”
“나를 포함한 일곱 명 중, 따르길 원하는 자의 앞에 서라. 이후 모두가 정원을 채우면 출발할 것이다.”
“13명을 넘으면 어떻게 해야 하오?”
“쳐내야겠지. 그리고 쳐낼 자는 대장이 선택한다.”
“과연. 알겠소.”
멸악의 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나는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따르길 원하는 자의 주변으로 모이도록.”
“예. 그리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대답하고 나선건 역시나 알비노다.
“음, 뭔가 모양새가 이상하긴 하다만······.”
알비노를 이어 라이가가 섰다.
머지않아 일곱 그룹으로 속속들이 나뉘기 시작했다.
멸악의 거인을 따르는 별 수호자 그룹.
백왕을 따르는 괴수그룹.
광휘의 초인 카심을 따르는 인간그룹.
아우릴을 따르는 엘프 그룹.
그 외의 대부분이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알비노, 라이가, 일각주와 이각주, 세렝게티, 세아 성녀, 허드슨, 아이작, 발테, 앤드류 사제까지. 이상 열 명은 고정이다.’
나를 포함하면 벌써 열한 명.
남은 공백은 겨우 두 명.
하지만 내 앞으로 모여든 건 스물에 가까웠다.
‘에이션트 피닉스 알 라움, 빛의 수호자는 정체가 모호해서 그런지 따르려는 이가 없나보군.’
하기야 나라도 저 둘의 주변으로 모이진 않을 것 같다.
나는 고민했다.
둘을 누구로 채워넣을지.
대장의 자격으로 호명하진 않았으나, 그들과 비견할만한 자들이 대거 모여있었으니.
대장을 나눈 기준은 단순히 강함과 명예만이 아닌 ‘나와 섞일 수 있는가, 없는가’가 보다 중요하게 작용했다.
‘저 둘이 좋겠군.’
나머지는 알아서 에이션트 피닉스과 빛의 수호자를 따를 수밖에 없는 운명.
나는 그중 가장 뛰어난 둘을 선택했고,
······ 마침내 던전에 입장할 준비를 끝마쳤다.
*
《‘잊힌 명예의 던전’에 입장합니다.》
《‘황금률의 기사단(13)’이 전원 입장에 동의했습니다.》
《91명의 정원을 모두 채웠습니다.》
《던전 보너스 계수 200%+》
《주의하십시오. ‘잊힌 신들’이 등장합니다.》
《일곱 개의 기사단은 ‘잊힌 신들’을 마주하며, 던전 내에 존재하는 ‘불가사의 업적’을 채워야 합니다.》
《‘잊힌 명예의 던전’에는 도합 370개의 ‘불가사의 업적’이 존재합니다.》
《‘불가사의 업적’을 달성하면 ‘잊힌 기사의 영혼’이 깨어납니다.》
《‘잊힌 기사의 영혼’으로 ‘기사단’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도달한 ‘불가사의 업적’의 숫자에 따라 ‘세계수의 뿌리’에 도달했을 때 받게 되는 보상의 규모가 커집니다(보너스 계수 적용).》
《가장 많은 ‘불가사의 업적’을 달성한 기사단은 ‘가장 찬란한 기사단’의 추가업적을 완료하고 추가보상과 효과를 받습니다.》
《기사단장의 경우 ‘잊힌 자들의 왕(신성)’ 타이틀을 획득합니다.》
······.
《Tip. 세계수의 ‘잊힌 신들’은 ‘악성향’을 혐오합니다. 만약 ‘악성향’을 보유하고 있다면, 철저하게 숨겨야만 할 것입니다.》
《Tip. 세계수의 뿌리로 향하는 길은 상상 이상으로 복잡합니다. ‘잊힌 기사의 영혼’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십시오.》
《Tip. 봉인된 구역은 그에 걸맞는 ‘신의 상징물’을 사용해 입장할 수 있습니다.》
《Tip. 기사단은 명예로운 경쟁을 해야할 것입니다.》
······.
······.
‘규격외’가 무엇인지 보여주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몇 번을 보고 또 보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악의 속성’을 수치화하여 합산하는 것.
잊힌 신이 내건 조건은 본래 달성하는 게 불가한 시련이었으니.
드루이드 알비노의 말마따나 오로지 선한 힘만을 보유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또한, 힘과 무력이란 자고로 파괴를 위해 존재하며 더욱이 강력할수록 ‘악의 속성’을 띠기 마련이었다.
설령 건실한 신성 사제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악의 성향은 누구나 지니고 있기 마련이며, 0에 가까울 수는 있을지언정 0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건 명예의 수치와는 관계가 없다.
‘단지 명예롭다고 악의 성향이 없을 수는 없으니.’
예컨대 명예가 높으면 악업을 지울 수 있다.
면죄부를 사용해도 악업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성향과 속성은 따로 구분되며 지워지지 않는다.
선의 성향이 100이라고 악의 성향 100을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저 선의 성향이 100이고 악의 성향도 똑같이 100일뿐.
서로 비슷하게 올려 균형은 맞출 수 있으나 그뿐인 게다.
또한 ‘명예’의 수치가 높다는 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
클래스, 스킬, 장비, 신비나 재능, 특성, 혹은 보유한 도구 따위로도 오를 수 있는 게 ‘악의 성향’이었고, 그것들을 통틀어 얻어낸 무력으로 명예를 쌓았을 테니 말이다.
하여, 모든 존재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명예와는 다르다는 게 이러한 뜻이다.
명예와 악업은 서로 보완되지만, 선과 악의 성향은 서로 보완되지 않는다.
각기 따로 계산해야 한다는 의미다.
설령 그것이 ‘신’이라 할지라도 이 틀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 합은 500을 한참 넘겼을 터인데.’
그러니까 당연히 모든 존재는 ‘악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신조차 벗어날 수 없는 틀.
절대적인 규칙인 셈이다.
그리고 잊힌 신의 눈앞에 있는 놈들의 ‘악 성향’은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모두 합쳐 925.
평균적으로 70이 넘는 ‘악 성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악의 종주’라 불리는 ‘마족’의 평균보다도 높은 수치.
물론 그만큼 이들이 강하다는 방증이겠지만.
··· 딱 한 놈.
잊힌 신의 기준으로도 이해가 안 되는 놈이 있었다.
‘악성향이······ 0도 아닌 마이너스라고?’
0에 가까울 순 있으나, 0일 수는 없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존재가 아닌 이상.
하물며 마이너스일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럴진대.
지금, 잊힌 신의 눈앞에, ‘악의 성향’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놈이 있었다.
심지어 그 수치는 도저히 이해도, 납득도 안 될 수준이었다.
【-2,000】
······ 대체 뭐 하는 놈이란 말인가?
이천에 다다른 악의 성향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그냥 악의 성향이 이천이었어도 말도 안 된다 했을 텐데.
어떻게 해야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 있는 걸까?
‘지워졌다?’
마치 억지로 지워낸 것마냥.
허나 절대로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갖고 있는 걸 전부 버린다고 해도 성향의 수치는 0을 기록할 따름이다.
그럼 저건 뭔가.
지금 잊힌 신의 눈에 보이는 저 수치는.
신의 권능이 잘못되었을 리 없다.
이곳 세계수의 안에서는 특히!
-아, 안 돼······!
잘못 본 게 아니다.
꿈도, 허상도 아닌 현실.
자신의 패배를 깨달은 ‘잊힌 신’이 비명을 내질렀다.
절대로 질 수 없는 조건에서 졌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당했다.
-너는 뭐냐. 어떻게 ‘진리’의 바깥에 존재할 수 있는 거냐?
태초부터 존재해온 ‘진리’가 있었다.
모든 존재는 ‘진리’에 속해있으며, 거부할 수도 거역할 수도 없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진리의 바깥에 있는 게 있다.
진리의 입장에서도 규격을 정할 수 없는 것.
흔히 ‘규격외’라 부르는 것들.
허나 ‘규격외’는 존재해선 안 되기에 언젠가 ‘진리’에게 잡아먹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놈은 틀림없이 ‘규격외’라 할 수 있는 존재임에도.
그 바깥에서 멀쩡히 살아있었다.
예외를 두지 않는 ‘진리’가, 이런 놈을 가만히 둘 리 없을 텐데도.
태초로부터 단 한 번을 제외하면 예외는 없었건만.
-그놈 같은 놈이 또 나타났다고······!
부럽다는 듯.
혹은 원망스럽다는 듯.
거칠게 말을 뱉어냈다.
허나 ‘그놈’조차 모습을 숨기며 다니고 있다.
절대로 드러나지 않으며, 세계의 뒤에서만 흑막으로 존재하고 있을 터이다.
그런데 이놈은 뭔가.
어떻게 이토록 당당히 ‘태초의 세계’에까지 발을 들일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잊힌 신의 사고는 거기서 멈췄다.
이곳에서의 패배는, 그냥 패배가 아니었으므로.
-나, 나는 이렇게 ‘끝’날 수 없다. 다시금, 찬란하던 그때로······!
먹구름의 형태가, 엉망진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없이 축소되며 존재감을 잃어간다.
비명 소리도 점차 수그러들었다.
이윽고.
《합계 ‘-1,075’로 ‘황금률의 기사단’이 ‘잊힌 신’을 상대하여 승리했습니다.》
《불가사의 업적(3) – ‘잊힌 신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달성했습니다!》
《불가사의 업적(4) – ‘반박 못 할, 압도적 승리’를 달성했습니다!》
《불가사의 업적(5) – ‘잊힌 신의 상징물 획득’을 달성했습니다!》
《모든 기사단을 통틀어 현재 해결된 불가사의 업적은 6개입니다.》
《달성한 불가사의 업적은 중복하여 다른 기사단이 달성할 수 없습니다.》
《‘잊힌 기사의 영혼’을 추가로 3개 획득합니다.》
《‘잊힌 신의 상징물’을 획득했습니다.》
······.
······.
*
한꺼번에 3개의 ‘불가사의 업적’이 완료되었다는 문구.
이로써 총 다섯 개의 업적을 달성했다.
다른 기사단에서도 한 개의 불가사의 업적을 달성한 듯싶지만, 이 정도면 비교가 불가한 수준의 속도일 터.
꽈릉!
그 순간 내 앞에 번개가 쳤다.
이후 검게 그을린, 먹구름 모양의 작은 액세서리 하나가 놓였다.
‘이게 신의 상징물인가 보군.’
나는 손을 뻗어 상징물을 손에 넣었다.
그러자.
《현재 ‘비활성 상징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비활성 상징물’에 5의 ‘성화’를 부여하면 ‘잊힌 신’ 되살릴 수 있습니다.》
《‘잊힌 신’을 되살릴 경우 ‘신성 성향’이 200 상승하며, 상징물이 활성화됩니다.》
《활성화 된 상징물을 땅에 심을 경우 ‘세계수’가 자라납니다.》
《활성화 된 상징물을 연관된 ‘잊힌 신의 터’에 놓을 경우 ‘잊힌 신’이 이름을 되찾으며, 세계 각지에서 ‘이름을 되찾은 신’과 관련된 생명들이 잉태하기 시작합니다.》
《만약 ‘잊힌 신의 터’에 ‘활성화 된 잊힌 신의 상징물’을 놓아 이름을 되찾아주면, ‘이름을 되찾은 신’은 당신에게 엄청난 호감도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름을 되찾은 신’과 긴밀하게 교감하며 교황의 직위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혹은 이미 존재하는 ‘활성화 된 상징물’에 성화를 부여하여 그 즉시 신과 소통하는 ‘교황’의 직위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신과의 호감도가 낮다면 ‘신의 저주’를 받을 가능성도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십시오.》
상징물과 관련된 내용들이 수도 없이 수놓아진다.
그리고 그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 활성화된 상징물을 땅에 심으면 세계수가 된다고?’
그렇다면 모든 ‘세계수’는 결국 신이라는 것이다.
신 그 자체가 상징물이었고, 신격을 지닌 상징물로 말미암아 세계수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명예의 세계수도 한때는 어떠한 신이었다는 뜻.
‘잊힌 신이란 것도 결국 이름을 잃은 신들이라는 건데.’
먹구름 모양의 액세서리.
이 녀석도 이름을 잃은 신이었을 것이다.
활성화 시켜서 땅에 심으면 세계수가 되고, 이 녀석과 관련된 ‘잊힌 신의 터’에 놓으면 이름을 되찾는다는 의미.
‘··· 딱히 이름을 되찾아주고 싶진 않군.’
이놈은 악질이다.
저질이고, 스스로 자비로운 놈인 줄 아는 괴짜였다.
이름을 되찾아줄 마음을 터럭만큼도 없었다.
아무래도 심어서 ‘온전한 황금률 셔틀’로 만드는 게 나을 듯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또 다른 용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신의 상징물에 관한 용도는 이게 전부가 아닐 거다.’
이곳 던전에서 ‘봉인된 구역’의 문을 여는 용도라고도 했다.
그 외에도 아직 내가 모를 뿐인 용도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나는 신의 상징물을 주머니에 넣었다.
‘남은 건······.’
이제 남은 건 한 가지.
‘잊힌 기사의 영혼.’
무려 다섯에 해당하는 영혼들.
이것들로 기사단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영혼마다 이름이 있고, 어떤 방식으로 강화되는지가 궁금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느덧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작은 ‘빛’들.
저게 바로 ‘잊힌 기사의 영혼’일 테니.
곧이어 영혼들이 내게 조잘거렸다.
「답답하다.」
「사라지고 싶다.」
「······ 나는 누구지.」
「여긴 어디지?」
「······.」
각기 다른 말들을 중얼대는 영혼들.
모두 나가사 하나씩 빠진 듯했다.
그중 하나, ‘반얀’은 유일하게 말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말만 없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