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13)
413화. 부활.
팬텀의 아바타들.
잃어버린 기억을 각성한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미궁으로 모여들었다.
팬텀의 부활을 위해.
그의 ‘생존’을 위해서!
하지만 모인 숫자는 오백 명뿐이었다.
고작해야 절반.
심지어 ‘최강’의 아바타라 불리던 3명 중 ‘살귀’ 한 명만이 도달한 상태.
······ 부족하다.
팬텀의 영혼을 일깨우기엔, 턱없이 부족할 터였다.
그러나.
‘팬텀’은 스스로 일어났다.
자신의 미련을, 대원정을 홀로 완성했다.
그 과정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으며.
‘격이 다르다.’
······ 격이, 달랐다.
그제야 그들은 깨닫게 되었다.
자신들을 ‘생존’시킨 팬텀의 저력을.
틀림없이 같은 조건이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는 마왕을 쓰러트렸다.
그것도 단 한 번의 도전으로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을 포기했었지.’
‘팬텀이 아니었다면··· 어차피 죽었을 목숨이다.’
그들은 죽음이 확정된 자들이었다.
도저히 혼자의 힘만으로는 살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하여, 파랑새와의 계약한 것이다.
오직 살기 위해 모든 걸 잊고, 잃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팬텀’이 아니었다면, 그들 중 대부분은 결국 죽었을 테다.
그러니.
“버텨!”
“빌어먹을 괴물 새끼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네···!”
이번에는 그들이 ‘팬텀’을 지킬 차례였다.
비록, 다시금 죽는다 하여도.
어차피 죽었을 목숨, 이제 미련은 없으니까.
팬텀을 악의 화신으로, 죄인으로 여기며 증오했으나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 강하군. 후욱!”
‘천둥 사자’가 피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이곳에 모인 집행자들도, 다른 ‘팬텀의 아바타들’ 역시도 충분히 ‘강자’의 조건에 들어맞는 이들이었다.
초월자이거나, 초월자에 버금가는 무력을 지녔으니.
아마도 ‘팬텀’이 기초를 다졌기 때문일 터.
이곳에 모인 자들만으로도 이름난 대도시 몇 개쯤은 쉬이 무너트릴 것이다.
······ 허나, ‘궤멸’의 군단은 더 강했다.
육안으로 보이는 숫자만 천이 넘는다.
병사 하나하나가 2성 초월자에 버금가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기술’이다.
궤멸의 병사들에겐 기술의 정교함이 없다.
만약 무기를 다루는 실력도 2성 초월자에 버금갔다면, 이미 미궁은 정복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너무 많다.’
궤멸의 군단은 물밀 듯이 쏟아지며 그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이대로면 머지않아 ‘최초의 불’에 닿으리라.
“여기가··· 나의 무덤이다.”
쿠르릉!
‘천둥 사자’가 자신의 몸에 벼락을 불러냈다.
필사의 각오다.
마지막 마력까지 짜내며 스스로를 불태울 작정이었다.
······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알면서도 도망칠 수 없기에.
“아아악!”
“꺼헉!”
그리고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을 불사하고 궤멸의 병사를 막는 것.
그리하여 최초의 불을, 팬텀의 영혼을 지키는 것만이, 그들이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성의였다.
허나, 그러한 의지도 궤멸적인 격차에는 사라지기 마련.
쿠우우우우우웅-!
고막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미궁 도시’ 99%가 파괴되었습니다!》
《‘최초의 불’을 지키십시오!》
《‘최초의 불’이 꺼지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최초의 불’이 억제하고 있는 ‘멸망(궤멸)’의 기운이 판게니아를 잠식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 미궁의 천장이 날아갔다.
벽이 무너지고, 사방에서 궤멸의 병사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게 물든 하늘.
“저, 저게······ 뭐야?”
“아인하사르! 용신 아인하사르다!”
“옆에 있는 건 투신 카라스야!”
그곳에서 투신 카라스와 용신 아인하사르가 궤멸을 상대하고 있었으므로.
아아.
신들이 출현한 것이다.
판게니아를 수호하는 그들이 참전했다면 희망이 있다.
아무리 강력한 괴물이라 할지라도 어찌하여 신을 이기겠는가.
하나만으로도 하늘을 울리고 땅을 떨게 만드는 존재들이 무려 둘이다.
하지만.
“······.”
“뭐······ 저딴 괴물이 다 있어?”
이미 두 신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용신 아인하사르의 비늘은 곳곳이 뜯어졌고, 투신 카라스의 몸도 성한 곳이 없었다.
반면에 ‘궤멸’은 너무나도 멀쩡하다.
너무나도 쉽게 둘을 압도하고 있었다.
켜졌던 희망의 불씨가 순식간에 사그러들었다.
“미친.”
“너무 강하잖아······.”
“저딴걸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궤멸’의 힘은 대원정 당시의 마왕보다도 강했으니까.
그들을 보았던 그 어떤 존재보다도 우위에 서 있는 괴물이었다.
격이 다름을 넘어, 보이지도 않는 아득한 경지.
설령 팬텀이, 빌헬름이 살아돌아온다고 하여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저건 이길 수 있도록 설계된 존재가 아니다.
하물며 ‘최초의 불’로 억제되고 있는 게 저정도라니.
이곳에서 막지 못하면 세계는 파괴될 것이다.
-나약한 신들이여.
‘궤멸’은 실망했다.
-고작 이 정도가 세계의 최강이라 불리는 족속들인가.
용신 아인하사르도, 투신 카라스도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그만큼 그의 힘이 강해서이겠지만.
마력이 흘러 넘친다.
도저히 자신의 패배가 그려지지 않았다.
“유난··· 떨지마라. 네놈은 ‘멸망’보다 약하다.”
하지만 투신 카라스는 그런 궤멸을 조롱했다.
그는 이미 ‘멸망’을 겪어본 신이다.
‘멸망’에 비하면, 궤멸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막지 못하는 건 그 정도로 판게니아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신이 사라진 세계.
‘종주’라 불리던, 종족의 최강자들이 심연 속에 가라앉아 변질되어버린 곳이 바로 이곳, 판게니아인 탓이었다.
만약 ‘멸망’이 출현해 세계가 파괴되지 않았다면, ‘궤멸’이 지금처럼 여유를 부리진 못했으리라.
-··· 걱정마라. 곧 넘어설 테니.
그럼에도 ‘궤멸’은 미소지었다.
이제 막 태어난 그가 ‘멸망’에 닿기란 요원한 일이다.
그러나 이 세계는 가능성과 기적으로 넘쳐난다.
‘멸망’에 의해 한 번 멸망했기에 더 많은 근원적 마력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한 번 타버린 땅에 지력(地力)이 넘쳐나듯이.
또한, 이 세계는 ‘연결’되어있다.
심연, 마계, 그리고 지구.
그곳들을 모조리 궤멸시키거든 그는 멸망조차 넘어설 것이다.
-이제 죽어라.
툭!
궤멸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후우우우우우우우웅!
압축되듯 거센 돌풍이 그에게로 몰려들었고.
쉬이이이익-.
찰나, 세계가 조용해졌다.
모든 소리가 빨려들어간 것처럼.
그야말로 폭풍전야와 같이.
동시에.
쿠아아아아아아아앙!
궤멸을 중심으로 거대한 파장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가히 초신성(超新星)과 같았다.
별이 죽을 때 대량의 에너지가 방출되듯, 무한한 마력이 퍼져나가자 닿는 모든 게 불타오르고 사라지는 것이다.
파장은 끝도 없이 퍼져나갔으며, 이내 미궁 주변의 모든 땅들이 초토화됐다.
풀 한포기 남지 않은 죽음의 땅으로 변모했다.
용신 아인하사르도, 투신 카라스도 휩쓸려나갈 정도로 강력하기 그지없었으나.
··· 허나, 단 한 곳.
사라지지 않은 곳이 있었다.
-최초의 불··· 태고의 작품인가.
‘최초의 불’이 지키는 영역만은 멀쩡하다.
아마도 저건 단순한 불이 아닌, ‘태고’와 관계된 것일 테다.
멸망의 힘을 감당할 수 있는 건 그밖에 없으므로.
하지만 묘하다.
처음부터 느꼈지만, 저 ‘불’에서 발생하는 존재감은 그 이상이었다.
-저게 너희의 희망인가.
이들이 모두 미궁에 모여있는 이유.
최초의 불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초의 불과 연결된 누군가가 있다.
아마도, 팬텀이겠지.
팬텀이 저들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팬텀도 고작해야 인간이다.
신이 되지 못한, 될 수 없는.
한낱 필멸자 따위를 희망으로 여긴들, 결국 죽고 말 것을.
······ 궤멸은 자신의 병사들이 저들을 학살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가 구태여 나설 필요도 없었다.
곧이어 불은 꺼지고, 저들의 희망 또한 사라지겠지.
최초의 불만 사라지면 그를 구속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팬텀?
‘처음부터 그랬지. 놈은 그저 겁쟁이일 뿐이다.’
그래. 놈은 겁쟁이다.
자신을 숨기고, 정체를 바꾸고, 본모습은 일절 드러내지 않았다.
이지경이 됐음에도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잔뜩 겁을 먹고 뒤로 내뺀 것이리라.
우습지 않나.
웃기지 않은가.
자신을 지키고자 저토록 많은 인간들이 필사의 노력을 하는데도, 모습을 드러내긴커녕 숨어만 있다는 게.
‘나만이 유일하다.’
궤멸은 생각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였는지는 이제 더는 중요하지 않다고.
항상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분노를 키웠으나, 그러한 고민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는지 깨달았다.
지금은 그저, 힘이 필요할 뿐이다.
더 강한 힘.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힘!
빌헬름도, 팬텀도, 이제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는 도망자이자 패배자들일 따름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12번째 정통을 지녔다고한들 황제처럼 겁먹은 채 도망간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힘이 있어도 사용하지 못한다면 무능한 것이다.
툭-
-······?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렸다.
그저 누군가의 발소리였다면 이토록 신경이 거슬리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발소리의 진원지가 ‘최초의 불’이라는 것.
게다가 절로 손이 쥐어질만큼, 그를 긴장케하는 존재라는 것.
전설의 드루이드 알비노도, 흑왕과 멸왕 모크도, 두 신들마저도 그를 이토록 긴장케하지는 못했건만.
오직 발소리만으로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누굴까.
그런 존재가, 이 세계에 남아있던가?
마계에 있는 마왕은 아닐 테고, 그나마 자신이 상대가 될 수 있는건 투신의 탑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흉과 재’의 주신들뿐일 터.
허나 그들은 직접적으로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그들의 출현조건은 투신 카라스보다도 훨씬 까다롭다.
아니, 아니다.
‘황금 정령’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정령계의 태초신인 황금 정령은 확실히 멸망을 상대할 수 있을 터이니.
허나, 정령계는 사라졌고 정령탑만이 남은 지금, 황금 정령의 위상은 태초보다 떨어졌을 터이며, 무엇보다도 ‘최초의 불’을 통해 모습을 보일 리가 만무했다.
궤멸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최초의 불’을 바라보았다.
투욱-
발소리는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그만큼 존재감도 커지는 중이다.
······ 궤멸은 자신이 긴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세계 전체를 보는 눈을 지녔음에도 파악할 수가 없는 존재.
‘진리’에도 등록되지 않은 무언가가 지금 저 불의 안쪽에서 나오고 있었으니까.
어둠도, 빛도 아닌.
그렇다고 혼돈조차 아닌 무언가다.
다수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하나로 보이기도 하지만.
-······ 그렇군.
아아.
궤멸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최초의 불’에서 걸어나온 자.
여전히 이해할 수 없으나, 저 모습을 보고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을 터이니.
그를 보며 궤멸이 말했다.
-네가 ‘팬텀’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