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65)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 465화
최후
모든 것의 끝.
그리하여 ‘종말’이라 이름 붙었다.
궤멸을 비롯한 모든 존재는 ‘종말’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도 예외를 맞이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예외가 생겼다.
종말은 ‘세계의 근원’을 상대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다.
근원적 존재는 ‘종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도리어 ‘종말’을 세계에서 몰아내고자 사력을 다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세계에 뻗치는 영향력이 적어서라고 하나, 이 정도로 밀리는 건 종말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종말은 처음이며, 끝인 존재여야만 했다.
그 상대가 설령 ‘세계’라 하여도 밀려선 안 되는 게다.
그러나 ‘세계의 근원’은 무참할 정도로 ‘종말’을 밀어냈다.
반격은커녕 제대로 된 맞상대도 할 수 없었다.
이만큼이나 자신을 대적하는 존재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세계를 지키는 자. 세계의 근원인 자. 세계의 모든 것인 자.
‘근원’은 말했다.
자신이야말로 세계이며 그 모든 것이라고.
―너는 그저 준비된 세계에 멸망을 흩뿌리는 ‘종말’일 뿐이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작조차 할 수 없는 무지한 존재가 너다.
반면에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무시하고 멸시했다.
종말은 반박할 수 없었다.
종말의 이름은 ‘끝’을 말할 뿐, 시작이 될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 보면 모든 게 철저하게 준비되어야만 종말을 흩뿌릴 수 있는 매우 수동적인 존재였다.
그렇기에, ‘세계’의 의지에 반박할 수 없었다.
넘어설 수 없고, 맞서 싸울 수도 없었다.
이 정도로 무력한 것은 종말에게 최초였으니, 혼란할 따름이었다.
―종말로서 태어났으나,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가련한 존재여. 너는 세계의 의지를 넘어설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세계에 종말을 불러올 수도 없노라. 그러니, 네 녀석을 진정 ‘종말’이라 부를 수 있을까?
맞다.
종말은 아직 단 한 번도 세계를 ‘종말’시킨 적이 없다.
천상의 멸망들은 세계 전역에 탑을 세워 영향력을 확장한 뒤 ‘세계의 근원’을 없애는 식으로 멸망을 흩뿌렸다.
하지만 종말은 아직 본인이 무엇을 ‘종말’시키고자 존재하는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끝내지 못하는 존재가, 과연 종말이라 불릴 수 있는 건가?
부족하다.
부족하다.
···부족하다.
종말은 처음으로 ‘절망’을 느꼈다.
세계의 근원은 스스로의 존재를 확립했다.
그러나 종말은 아직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지 못했다.
부족한 부분은 채워야만 한다.
그때, 종말이 맛본 ‘절망’이 ‘태고의 절망’과 연결되었다.
태초로부터 존재한 절망은 종말이 느끼는 ‘절망’조차도 정의해주었다.
「절망이야말로 시작이다.」
「‘절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태초로부터 모든 존재는 ‘절망’하며 진화해왔으니!」
「종말이여. 절망하거라. 더더욱 크게 절망하거라!」
태고의 절망은 종말을 부추겼다.
온전히 실망하고 절망토록 저주와 같은 말을 되뇌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종말은, 태고의 절망에게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것이라고 여겼다.
종말로서 오롯이 시작할 수 없다면, 시작할 수 있는 자가 되면 된다.
그렇게 종말은, ‘태고의 절망’을 자신에게 새겼다.
구아아아아아아!
즉시, 종말은 근원을 역공했다.
확연하게 달라진 종말의 태도에 세계의 근원은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진화할 줄이야.
스스로 부족함을 깨닫고 그것을 채워 넣을 줄이야!
진화야말로 절망의 진정한 힘이었다.
절망을 느끼고 극복한 자는 더 높이 올라가는 법이었으므로.
누군가는 절망을 죽음에 빗대곤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르다.
도리어 절망은 ‘시작’의 힘이다.
특히 태고의 절망은 세계를 일으키게 한 원동력이었다.
허나- ‘태고의 절망’은 ‘태고의 갑옷’과는 본래 상관이 없었다.
애초에 태고의 갑옷은 ‘최초의 불’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
「나는 ‘최초의 불’을 일으킨 존재이니라.」
태고의 절망은, 최초의 불보다도 먼저 존재했다.
본래 그는 모두가 절망토록 ‘최초의 불’을 만들었다.
모든 걸 태워 죽음이 만연케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태운 뒤 세상은 다시 재생됐다. 훨씬 강인하게 만들어졌으며, 아예 새로운 생명이 자리 잡기도 하였다.
그제야 태고의 절망은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야말로, ‘시작’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하지만 아무도 잠든 그의 의지를 깨우지 못했다.
태고용신조차도 ‘최초의 불’에 깃든 그를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저 ‘태고의 갑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우연히 새겨졌을 따름.
사용자가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하거든 더욱 큰 절망을 보이도록 기능할 뿐이었다.
「시작과 끝이 만났으니, 이야말로 진정한 ‘종말’ 아니겠는가.」
그러나 ‘종말’의 절망을 맛본 그는 마침내 깨어났다.
진정한 끝이 불러, 진정한 시작이 온 셈이다.
둘은 하나가 됐다.
이어, 완전한 종말로 완성된 존재가 선언했다.
「나는 ‘종말 그 자체인 자’. 근원이여, 너에게 종말을 선사하마.」
*
태고의 절망이 강제로 벗겨졌다.
그리곤 종말과 합체했다.
······나는 잠시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세계의 근원은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그만, 멈추어라, 세계를······ 끝장 낼 생각이더냐?”
“···그게 네가 바라는 거 아니었나?”
당황한 듯 내뱉는 룬드말의 목소리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혀를 찼다.
원래 세계를 멸망시키려던 건 룬드말이다.
그런데 인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세계의 근원’이 소멸하면 이 세계는 무(無)로 돌아간다. 내가 하려던 건 그저 진화를 나의 위해서였을 뿐 세계를 아예 없던 것으로 돌려버릴 생각은······.”
“어디서 개가 짖는군.”
“······ 뭐?”
“세계가 무로 돌아가는 걸 막고 싶나? 그럼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
“왜? 못하겠나? 자신이 너무 소중해서? 룬드말, 네놈이 벌인 짓을 봐라. 그리고 나는 수도 없이 네놈에게 기회를 주었다.”
점점 화가 치민다.
나는 놈에게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기회를 줬다.
그걸 전부 차버린 건 룬드말이다.
이미 싸우기 전부터, 우리 둘이 싸우면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걸 인지시켰다.
디트리히를 납치했음에도 사탄을 보내고, 겨울을 보내 설득하려 했다.
전투를 벌이고서도 멈출 기회를 계속해서, 내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퍼주었다.
뿐만인가?
사탄은 룬드말이 천상의 조종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고, 그래서 룬드말의 룬을 베어 본심을 끌어내려고 했다.
수호기사들이 멈춰달라고 빌고 또 빌었음에도.
룬드말은 멈추지 않았다.
하다못해 뒤에서 조종하는 ‘파멸’까지 끌어냈다.
그런데도, 룬드말은 끝끝내 모든 기회를 잡지 않았다.
내가 약해서, 룬드말에 비해 부족해서 그저 공격을 당해주고만 있던 게 아니란 소리다.
나 스스로가 위험을 무릅쓰며 어떻게든 멈추려 한 결과였다.
세계의 멸망을 나 혼자 결정할 순 없으니까.
룬드말을 죽이고, ‘창조자의 나무’를 심는 것도 고려해봤으나.
결국, 죽이지 않았다.
단지 놈의 뒤에 있는 파멸을 끌어냈을 뿐.
이게 얼마나 나 자신에게 위험한 행동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용신회의 비호가 없었다면 파멸과도 전투를 벌여야 했을 터.
그저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룬드말이 멈추길 바랐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세계의 근원과의 연결을 끊어내길 바랐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아, 안 돼······!”
세계의 근원이 종말에 물들어가는 걸 바라보며.
룬드말은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제는 멈출 수 없다, 룬드말.”
허나 아무리 후회해도 이제는 멈출 수 없다.
디트리히가 수호 성검으로 제단을 연 순간.
종말의 기운은 거세졌고, 더 나아가 ‘종말 그 자체인 자’로 진화까지 했다.
한번 시작한 종말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모를까, 시작한 이상 나도 손쓸 수가 없었다.
“네놈을 죽이면 저것도 멈출 테지······!”
“끝끝내 멍청한 선택만 하는군.”
질려버렸다.
왜 이토록 멍청한 건가.
나를 죽인다고 종말이 멈춰설 리 없었다.
확정된 종말을 불러온 뒤 사라질지언정.
그뿐만 아니라, 세계의 근원과의 연결을, 세계 전체를 뒤엎은 ‘영역’을 룬드말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미련이다.
도저히 놓을 수가 없는 게다.
세상이 무로 돌아간대도, 자신의 완성만을 부르짖는 자.
“···설득도 지친다. 이제는 진짜 네놈을 봐줄 이유가 없어.”
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여태까지 나는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저 막거나, 맞기만 했다.
차원 베기로 룬드말을 벤 건, 진정으로 녀석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룬을 베어 놈의 본심을 끌어내거나, 세계의 경계를 베어 뒤에 있을 천상의 존재를 끌어낸 게 전부다.
반면, 룬드말은 어땠나.
전력을 다해 나를 공격했다.
그 결과 태고의 절망이 일어날 만큼 수세에 몰렸다.
하마터면 역으로 내가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임에도······.
“태고의 창이여! 세계여! 내게 헌신하거라!”
룬드말은 모든 신력을 일으켰다.
내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던 그 공격보다 더 강력한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통으로 다시 맞았다간 뼈도 못 추릴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첫단추를 잘못 꿰인 결과라고 해야할까.
룬드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있을지도 모르겠다.
첫 공격에 나를 완전하게 소멸시켜야만 했다고 후회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예의 여유나 웃음기는 전부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멍청하다. 잘못된 선택만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태고의 검을 들었다.
진심으로, 베어버려야 했으니까.
《‘빌헬름의 별’을 불러옵니다.》
《‘란돌프의 별’을 불러옵니다.》
《‘하나의 별’을 불러옵니다.》
《세 개의 별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별자리에 새겨진 모든 권능이 발현됩니다.》
아무것도 없어야 할 하늘 위.
세 개의 별이 새겨지며, 빛나기 시작했다.
《‘별의 군주’가 강림합니다!》
《‘무신(武神)’이 헌신합니다!》
별의 군주, 그리고 무신.
둘 다 내가 지닌 히든 클래스다.
클래스가 지녀야 할 모습이 내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화아아아아악!
별빛과 황금률로 가득한.
어두운 세상을 단번에 밝힐 듯 환한 빛이 나로부터 퍼져나갔다.
“죽어라, 멸망!”
모든 신격을 내리 담아 다시 한번 룬드말은 태고의 창을 쏘아냈다.
태초신의 격을 포기하고 나만을 소멸시키겠다는 결심이다.
막대한 기운과 함께 쇄도하는 태고의 창을 바라보며.
“천(天).”
천지개벽의 천.
빌헬름의 검술.
이제는 완전히 나의 것으로 바뀌어버린, 새로이 창조된 기술.
나는 검을 휘둘러, 하늘을 열었다.
그 직후.
“······.”
세상은 조용해졌다.
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환하게 뚫린 공활한 하늘만이 존재할뿐.
오피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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