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13)
“아까 전 노부를 보았던 게 그저 우연은 아니었군.”
‘!?’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목경운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아까 전?’
목경운은 마을에 들어가기 전을 떠올렸다.
눈을 떼는 찰나의 순간에 사라졌던 노인의 모습을 말이다.
‘…….그때도 분명 강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쳐다보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건가?’
이를 인지하자 목경운의 사고는 여태까지와 다르게 복잡하게 돌아갔다.
아무래도 등 뒤에 있는 이 노인은 그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괴물인 듯 했다.
그런 목경운의 귓가로 청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생.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한 거냐?
‘……..’
알아차리지 못했다.
육안, 기감 둘 모두 말이다.
-꽉!
목경운은 어느새 손에 힘이 들어간 자신을 발견했다.
현 무림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육천(六天) 일인인 천지회의 회주를 만났을 때조차 이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았었다.
물론 회주가 오랜 병상으로 약해졌다고는 하나 그것과는 뭔가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수를 그리는데 그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만큼 격차가 압도적이었다.
‘대체 이 노인은 뭐지?’
청령 또한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여태까지 지켜봤던 목경운은 어떤 강자를 만나더라도 크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죽음이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 때문일 것이다.
한데 중생 이 녀석이 이렇게 긴장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
대체 이 늙은 중생의 정체가 뭐지?
의아해하던 차에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저 고마움을 표할까 하려 했는데 흥미롭군.”
“…….무엇이 흥미롭다는 겁니까?”
“노부를 어찌 보았나 싶었는데 기운이 남다르네 그려.”
“대체 무슨 말씀을…..”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부조차도 젊은이 자네 같이 죽은 자들이나 괴이들이 가질 법한 기운을 지닌 자는 본 적이 없네.”
‘!!!!!’
이런 노인의 말에 목경운의 왼쪽 눈동자가 떨려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원혼도 아니고 살아있는 자가 자신의 사기(死氣)를 정확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체내에 요기(妖氣)마저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분명 영체가 아닌 살아있는 존재인데 어떻게 자신의 기운을 알아차린 거지?
놀라워하고 있는데 노인이 말했다.
“흐음. 한데 이게 다가 아니군. 죽은 자의 기운과 한기(寒氣)와 독기(毒氣)…..괴이의 요기까지 온갖 위험한 기운들을 지녔어.”
‘하?’
목경운은 진심으로 기가 막혔다.
이 노인 대체 정체가 뭐지?
자신의 몸에 접촉을 하지도 않고서 기운의 대부분을 읽어내고 있었다.
다만 이 모든 기운을 하나로 귀결시킨 마기(魔氣)를 거론하지 않는 걸로 보아 이것은 감지하지 못한 듯 했다.
하나 이미 사기를 읽은 시점에서 대부분의 기운을 알아차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목경운이 대놓고 말했다.
“…….어르신. 대체 누구십니까? 어찌 하여 이 배에 타신 겁니까?”
과연 답변을 해줄까는 의문이었지만 이렇게 물으며 발바닥으로 진기를 집중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였다.
바로 그때였다.
“젊은이. 그대를 해할 생각은 없으니 긴장 풀게.”
-등으로 손을 뻗는다!
-파파파파팍!
청령의 그 말에 목경운은 반사적으로 명현수월보(明顯水越步)를 펼치며 고속이동으로 노인과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목경운이 몸을 돌렸다.
그런데 자신을 뒤쫓거나 뭔가 대응을 할 거라 여겼던 노인이 뒷짐을 지고 가만히 서있었다.
‘!?’
노인의 얼굴을 똑바로 보게 된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대나무 낚시대를 들고 있고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떠올린 인상이 있었는데, 그와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노인의 얼굴은 까무잡잡하기 보다는 새하얗기 그지없었으며 하얀 수염도 관리를 했는지 정갈했다.
마치 소싯적에 학사였을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이런 분위기와 유일하게 어울리지 않는 곳이 있었으니, 눈매가 굉장히 매서웠다.
그때 노인이 입을 열었다.
“냉철한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호기로운 면도 있군.”
“뒤를 잡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런가? 한데 자네 정도의 공부라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무의미한 상대라는 것은 이미 짐작했을 텐데 말이야.”
“…….”
목경운은 그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노인이 뒷짐을 들면서 들고 있는 대나무 낚시대.
저 낚시대가 어느 순간부터 날카로운 검(劍)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저것이 움직이며 자신을 향해 날아와 스치는 순간 몸이 반으로 갈라질 것만 같았다.
그런 긴장감 때문인지 목경운의 모든 신경은 오직 노인에게로 곤두서있었다.
그때 노인이 목경운의 얼굴을 보고선 이채가 띤 눈으로 말했다.
“아무리 젊어도 이립(而立-서른)은 넘겼을 거라 여겼는데 의외군.”
“성숙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아직 약관도 못 넘겨서요.”
“약관도 못 넘겨? 허허허허.”
노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에 목경운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웃으시는 거죠?”
“참으로 공교롭고도 묘한 일이로군. 이런 재능을 또 다시 이런 선상(船上) 위에서 보게 될 줄이야.”
“네?”
“아무 것도 아닐세. 그저 옛날 일이 떠올라서 말이지.”
추억을 떠올렸다는 듯한 노인의 말투에 목경운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목경운의 관심사는 오직 단 하나였다.
이 정체 모를 노인이 어째서 이 배에 탔고 자신에게 접근했냐는 것이었다.
그때 노인이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말했다.
“긴장 풀게. 노부가 자네에게 해코지를 저지르려 했다면 이미 옛적에 했을 걸세.”
“……..송구하군요. 제가 의심이 많아서요.”
“그런가? 솔직해서 좋군.”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한데 어르신께서는 제게 해코지를 저지르려는 게 아니라면 어찌 이 배에 오르신 겁니까?”
“아아아. 그래그래. 그걸 물었지. 세수가 백을 넘기고 나서부터는 기억이 예전 같지 않네. 그려.”
‘백?’
이런 노인의 말에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수염과 머리가 새하얗기는 했으나 주름은 생각보다 적었다.
이런 외양만 본다면 심후한 내가고수임을 감안해도 예순에서 일흔 사이 정도일 거라 여겼었다.
한데 이렇게나 나이가 많다고?
내심 놀라워하고 있는데 노인이 말했다.
“본의 아니게 경계심을 준 것 같다만, 노부는 그저 감사를 표하려는 것뿐일세.”
“감사…..요?”
“그렇네.”
목경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인과 자신은 별다른 접촉도 없었고 아무런 연도 없었는데, 대체 무엇을 감사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의아해하는데 노인이 떠나온 뭍, 마을이 있는 방향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에 목경운이 따라서 그곳을 쳐다보자 노인이 입술을 뗐다.
“오랜만에 소하촌에 왔더니 누군가 옛 지인의 무덤과 사당을 파헤쳤더군.”
“옛 지인?”
“그렇네. 참으로 우직하고 충심이 깊은 자였지.”
이런 노인의 말에 목경운이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설마 이 노인…..원혼 하윤가 알고 있던 사이였던가?
-하!
청령 역시도 놀라웠는지 탄성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혼 하윤은 격이 청령(靑靈) 급에 달한 고위 원혼이었다.
격이 이 정도에 이르려면 한(恨)을 품고서 백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상에 남아있어야 했다.
그렇다는 건 노인이 정말로 세수가 백을 넘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때 목경운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백 세를 넘겼다는 건 청령이 알 수도 있겠네요?
청령이 시해왕의 요기(妖氣)를 흡수하고서 격이 남령(藍靈)에 이르긴 했으나 실제로는 백 년의 세월 정도를 원혼으로 지내왔다.
그랬다는 건 이 노인은 청령과 같은 시대에 무림을 활보했다는 게 될 수도 있었다.
한데,
-모르겠다.
-모르겠다뇨?
-저 자는 본좌의 기억 속에 없다.
-확실한 건가요?
이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그 한계를 짐작할 수 없는 강함을 지녔다면 소싯적에도 분명 명성을 날렸을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청령은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다.
-혹시 외양이 연로해져서 못 알아보는 게 아닐까요?
-연로? 흐음.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면 늙은 중생 놈의 이름을 캐보거라. 본좌가 들어본 자일 수도 있으니.
외양이나 목소리는 세월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어서 몰라볼 수 있었다.
자그마치 백 년을 넘게 산 자라면 더욱 그랬다.
이에 목경운은 대화를 통해 노인의 이름을 알아내기로 마음먹었다.
“…….혹 어르신이 말씀하는 게 하윤 이라는 분입니까?”
“그래 그 자가 맞다네. 사실 노부가 낚시라도 하면서 어찌 할까 고민하던 차에 자네가 그 장원을 부쉈더군. 덕분에 죽은 그 친구의 한이 조금이라도 가신 듯 하여 다행일세.”
“………”
이 말에 목경운은 의아해했다.
뭔가 헷갈린다.
노인이 혹시나 원혼을 볼 수 있는 건지 아닌지를 말이다.
죽은 자의 기운이라 할 수 있는 사기(死氣)마저도 감지할 수 있는 자인데 뭔들 못하겠는가 싶었지만 묘하다.
지금 하는 말투를 봐서는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아리송했다.
목경운은 이런 의문을 내색하지 않고서 말했다.
“그건 의도하고 한 게 아닙니다.”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노부가 하려던 일은 대신 해준 것에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네.”
노인의 말을 들어보니 우인염과 그 일족은 어떤 식으로든 벌을 받을 운명이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다행스럽게도 이 괴물 같은 노인은 정말로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던 것은 아닌 듯 했다.
그런 거라면 안심하고 물어봐도 될 듯 했다.
목경운이 공손히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송구한데 이렇게 뵙게 된 것도 연(緣)인데, 후배 어르신의 존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노부의 이름말인가?”
“네.”
그 물음에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이미 오래 전에 잊혀진 이름일세. 그런 이름을 들어서 무엇 하겠나?”
“하오나…..”
“허허허. 연이라는 게 굳이 이름을 안다고 모른다고 해서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가? 연은 어떤 식으로든 그 형태를 이루기 마련일세.”
“…….그리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보아하니 노인은 자신의 이름도 정체도 알려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자신보다 약자라면 모를까 압도적으로 강한 자를 상대로 더 캐물어봐야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목경운은 빠르게 단념했다.
그저 이런 괴물 같은 자와 악연이 아닌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그때 노인이 말했다.
“해서 노부가 감사와 이 연(緣)에 대해 작은 보답을 하려하네.”
“보답이라뇨?”
“보아하니 검을 익힌 것 같군.”
노인이 갑자기 목경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팍!
‘어?’
목경운의 허리춤에 있던 악즉검의 검집이 검 채 통째로 날아갔다.
그러더니 이내 노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대체 무슨 의도인가 싶어 의아해하던 차에 노인이 말했다.
“이게 충분한 보답이 되었으면 하는군.”
-스릉!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악즉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오며 그 검신을 드러냈다.
이에 목경운이 놀라서 외쳤다.
“어르신 그 검은…..”
요검(妖劍)이기에 함부로 쥐면 위험하다고 하려고 했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노인이 검집에서 뽑혀져 나온 악즉검의 검병을 움켜쥐는 순간,
-우우우우웅!
악즉검에서 강한 공명음이 쏟아져 나오더니, 검신이 빠르게 흔들리다가 이내 얼마 가지 않아 그것이 멎었다.
‘검을 제압했어?’
이를 본 목경운이 내심 진심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악즉검을 쥔 자는 그 요성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게 되어있다.
한데 악즉검이 공명음까지 내며 그 요성을 드러냈는데, 오히려 얼마 있지 않아 그 검심(劍心)이 제압되고 말았다.
그렇게 놀라워하고 있는데 노인이 중얼거렸다.
“참으로 공교롭군. 구야자의 요검이라……”
노인은 검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했다.
역시 보통 노인이 아니었다.
“어르신. 괜찮으신 겁니까?”
당연히 괜찮아 보였지만 목경운이 예의상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검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젊은이는 노부로 하여금 잊혀지려 하는 옛 일들을 많이 떠오르게 하는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아니. 됐네. 그보다 이걸 보게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인이 이내 들고 있던 악즉검으로 검무(劍舞)를 펼치듯이 화려한 궤적을 그렸다.
-촥! 촤촤촤촥!
이를 바라보는 목경운의 두 눈이 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밤하늘의 만월(滿月)을 그리는 듯한 깨끗한 궤적은 너무도 충격적이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검식(劍式)에 흠결 하나 보이지 않는 거지?
-촤촤촤촤촥!
검결이 너무도 뛰어나고 무결이기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놀라기는 청령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도 살아생전에 뛰어난 검수였기에 노인이 휘두르는 일식 하나하나가 단순한 검식을 넘어서 절세검초로 이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데 노인이 악즉검으로 펼치는 검초가 상당히 낯이 익었다.
‘검이 어째서 이리 익숙한 거지?’
이는 목경운도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 노인이 휘두르는 검식의 모든 게 굉장히 익숙하게 느껴졌다.
분명 처음 보는 검식인데 낯이 익다.
대체 이게 무슨 영문일까?
의구심으로 가득 차고 있는데 청령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럴 수가.
-왜 그러시죠?
-중생……
-네?
-……무월공검이다.
‘무월…..공검!?’
그 순간 목경운의 머릿속에 시혈곡의 보고에서 보았던 청령이 숨겨두었던 종이에 적혀 있던 초식의 구결이 떠올랐다.
숨겨놨던 구결을 보여주며 청령이 말했었다.
[행운으로 여기거라. 한때 구무림을 상징하던 오대 검법 중 하나인 무월공검의 유일하게 남은 검초들이니 말이다.]그와 함께 구결을 각인시키며 무아지경 속에서 보았던 그 절세검객과 노인이 점차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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