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16)
-고오오오오!
그것은 목경운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목각인형 속에 들어가 있는 청령에게마저 보일 정도로 기운은 너무도 두드러지게 형상화되었다.
하얀 백안(白眼).
사슴처럼 솟은 검은 뿔과 타오를 듯이 출렁이는 붉은 등 깃.
뱀처럼 길게 이어지는 비늘의 거체.
-······교룡이라니.
청령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에 목경운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보이는 건가요?
-보인다. 이 안에 있는데 이렇게까지 기운이 두드러지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구나.
청령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교룡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는 거였군요.
-본좌도 교룡에 대해선 듣기만 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영물 중에서 용(龍)이야 말로 가장 희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네요. 한데 저건 교룡 자체라기보다는······.
-잔류 사념처럼 보이는구나.
-네.
목경운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기운 자체가 워낙 강해서 형상화되었기는 하지만 저건 요력에 남아있는 잔류 사념이었다.
생전의 의지가 얼마나 세면 저렇게까지 사념이 구체화되는 것일까?
어쨌거나 잔류 사념도 그렇고 치솟는 요력을 보면 이광의 변화는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
-그냥 내버려둬선 안 될 것 같구나.
청령의 의견에 목경운이 입맛을 다셨다.
‘지금 딱 죽이면 되는데.’
워낙 흉흉한 기운이 퍼져 나와서 위압감과 경계심을 주고 있었으나, 변화를 하고 있는 지금이 처리하기에 적기였다.
딱히 물어볼 게 없었다면 곧장 목을 베어버렸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떨림이 멈췄어.’
전신의 피부가 비늘로 뒤덮인 이광은 변화를 마쳤는지 떨림이 사라졌다.
급격히 치솟은 요력 역시도 점점 안정화되고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복부에 꽂혀 있는 흑색 검이 마치 한 몸이 된 것처럼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체 이게 무슨······.”
그는 구양가의 가주인 팔독사장 구양소였다.
자결을 할 것처럼 스스로의 복부에 검을 박아넣더니 인간이 아닌 반 괴이의 형태가 되어버린 이광의 모습에 당혹스러운 듯했다.
바로 그때였다.
-슥!
변화하여 반인반괴(半人半怪)의 형태가 된 이광이 고개를 들더니 이내 섬뜩한 백안으로 구양소를 노려보았다.
-흠칫!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백안과 눈이 마주치자 구양소는 강한 위협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저것은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이광이 아니었다.
그러던 찰나였다.
-스륵!
‘헛?’
구양소의 시야에 있던 반인반괴의 이광이 사라졌다.
본능적으로 그가 빠르게 경공을 펼치며 초고속 이동을 하고 있다고 확신한 구양소가 황급히 팔독의 독기를 사방으로 뿜어댔다.
독은 그에게 있어서 수족과도 같았다.
누군가 근접하여 퍼져나가는 독과 접촉하게 된다면 그 위치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슥!
바로 우측 세 보 간격으로 누군가 접근해왔다.
‘역시로군.’
오른팔이 부러졌으니 당연히 우측이나 뒤를 노릴 거라 짐작했다.
이에 구양소가 왼손 하나로 합마독공의 절초 중 하나인 구행역리(構行滿利)를 펼쳤다.
한 손으로 펼치며 초식의 위력이 감소했다고는 하나, 화경과 독인의 경지에 오른 그답게 쾌속함을 더해 어떻게든 그것을 채워나갔다.
-촤촤촤촤촤!
구양소가 그리는 구행역리 장초의 궤적이 기척을 감지한 누군가의 상체 요혈들로 쇄도했다.
그런데 그 누군가,
반인반괴가 된 이광이 상체를 가볍게 젖히며 장초의 궤적을 피해냈다.
‘!?’
고작 상반신만을 움직여 쉽게 초식을 피해내자 구양소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엄밀히 이광의 무위는 자신과 비슷하거나 약간 아래라 여겼던 차였다.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아아아.’
당황해하는 그와 달리 이광의 하얀 눈동자는 희열에 차고 있었다.
벽을 넘어선 구양소의 절초가 느리게 느껴진다.
굳이 경신법을 펼칠 필요도 없이 상체를 조금만 움직여도 피할 수 있을 만큼 궤적 하나하나가 다 파악된다.
-촥! 슥!
초식의 결이 보이니 어디를 공략해야 할지도 당연히 알 수 있었다.
뒤로 고개를 젖혔던 이광이 전광석화와 같은 일격으로 구양소의 왼쪽 어깨에 주먹을 찔러넣었다.
-퍽!
“큭!”
어깨를 맞은 구양소의 신형이 일순간에 틀어졌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서 이광이 그의 가슴에 날카로워진 손톱을 찔러넣으려 했다.
그러자 구양소는 신형이 틀어진 상황에도 입에서 녹색 독을 뿜어댔다.
“푸우우우우!”
-팟!
입으로 뿜어대는 녹색 독기에 이광이 황급히 손을 휘저으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워낙 가까웠기에 팔과 일부 신체에 독기가 닿았다.
-파스스스스!
독기가 닿은 옷 부위가 그대로 산화되어버렸다.
심지어 닿은 부위만이 아니라 독이 퍼져나가며 순식간에 상의 대부분이 녹아버릴 만큼 지독한 독기였다.
이런 지독한 독기라면 체내로 파고들거라 여겼는데,
-스스스스스!
독기는 피부의 비늘이 타들어 가는 느낌을 주었으나, 금방 회복되더니 오히려 체내에서 용솟음치는 흉흉한 기운이 이를 밀어냈다.
피어오르는 녹색 아지랑이가 그 증거였다.
“하하하핫!”
이광이 광소를 터뜨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공과는 다른 이 기운과 변화한 몸에는 독기마저 통하지 않자 급격히 자신감이 올라갔다.
‘최고다.’
-꽉!
체내를 가득 메운 흉흉한 기운은 기존의 내공을 압도하고 있었다.
아니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이 힘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설령 대종사급이라 불리는 육천(六天)이라고 할지라도 지금이라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어리석은 짓은 금물.’
이광은 금방 냉정을 되찾았다.
급격히 치솟은 이 힘이 굉장하다고는 하나, 단련하지 않은 힘은 완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힘이 생겼다고 괜한 호승심에 겸살귀 놈과 싸우기보다는 구양소 저 늙은이를 죽이고 나서 훗날을 기약하는 게 나았다.
-팟!
결정을 내린 이광이 구양소를 죽이기 위해 신형을 날렸다.
그만 죽이면 정보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순식간에 이광의 신형이 거리를 벌리기 위해 경신법을 펼치는 구양소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이광이 구양소를 향해 흉흉한 기운을 담은 일검을 날리려 했다.
‘죽어라. 늙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륵!
흐릿한 그림자가 앞을 가로막더니,
-퍽!
일검을 날리려는 그의 팔을 위로 차올렸다.
그와 함께 몸을 회전하며 연달아 발차기를 날리는데,
-파팍!
그것이 정확하게 안면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 이광이 황급히 왼쪽 손목을 들어 올려 이를 막아냈다.
-촤르르르르르르르르!
정확하게 막았는데도 이광의 신형은 그대로 뒤로 십여 보 가까이 밀려났다.
발차기를 막아낸 손목이 욱씬거리며 울렸다.
그러나 버티지 못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슥!
이광이 손을 내리며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리곤 목경운에게 말했다.
“아까만큼 위협적이지 않군.”
“뭐가요? 방금 전 그 발차기요?”
“그래. 묘하게도 더 이상 네놈이 두렵지 않구나. 힘의 격차가 아까만큼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겠지.”
“그런가요? 생각보다 요력에 금방 적응하시네요.”
“요력?”
“당신 그 힘 말이죠.”
“······.”
목경운의 그 말에 이광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힘이 급격하게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목경운은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심지어 그분이 주신 이 힘이 무엇인지조차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대체 이놈은 진짜 정체가 뭐지?
“후우.”
이광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쓸데없는 고민을 버리자.
힘이 비슷해졌다고 해도 놈과 달리 자신은 아직 적응 단계이다.
힘에 취해서 괜히 놈과 겨룰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고 무리해서 덤비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지금 목적은 오직 하나.
‘구양소.’
저 늙은이만 죽이면 된다.
성화령주는 당장에 아니더라도 노릴 수 있지만, 저 늙은이가 조직에 관한 자신이 아는 것을 전부 불어버리면 상당히 성가셔질 것이다.
이에 이광이 머리를 굴렸다.
‘놈의 동료들과 성화령주를 노리는 척했다가 구양소 저 늙은이를 죽이자.’
예전에 봤을 때와 다르게 동료들과 꽤 유대관계가 있어 보였다.
그렇다면 아무리 냉철한 놈이더라도 동료들이 위험에 처하면 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잠시라도 구양소 늙은이에게서 신경을 뗄 수밖에 없으리라.
‘일단은······.’
-팟!
이광이 목경운을 향해 검결지를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요력으로 이루어진 회색빛의 탄검강(彈劍罡)이 일어나, 구양소를 향해 강맹한 기세로 쇄도했다.
-촤아아아아!
“귀찮게 하시네요.”
-파아아앙!
이에 목경운이 빠르게 그것을 가로막고서 이기진경의 묘리로 튕겨냈다.
물론 그러기도 전에 이광은 신형을 틀고서 일부 남아있는 복면인들과 싸우고 있는 목경운의 일행들에게로 신형을 날렸다.
저들 역시도 제법이긴 했지만 지금의 자신이라면 목경운이 자신을 따라잡기도 전에 한두 명은 처리하고서 인질을 잡을 수도 있을 듯했다.
-스스스스!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그의 눈에는 복면인들과 목경운의 수하들이 다투는 모습이 현저히 느려졌다.
마치 서로의 시간 흐름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촥!
그의 앞으로 허공에 검은 선이 생겨나며 흐릿하게 무언가가 열 보 앞에 안착하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겸살귀?’
놈이었다.
이광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이 흉흉한 힘 덕분에 자신이 움직이는 속도는 원래보다 배가 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놈이 자신보다 앞질러 온 거지?
게다가 멈춰서는 놈의 오른손에는 악즉검이 들려 있는 것은 알겠는데, 왼손에 들려 있는 저건······.
‘!?’
이광의 두 눈이 점차 커져갔다.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것은 분명 잘린 팔이었다.
초고속 이동을 하는 흐름에 있었기에 목경운의 왼손에 들려 있는 잘린 팔의 진동이 심해서 누구의 것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푸슉!
무언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오른쪽 팔목이 불타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와 함께 경공을 펼치며 달리던 이광은 이내 균형이 무너지며,
-솨아아아아아!
날카로운 예기가 형성하는 기류로 인해 몸이 솟구쳤다.
“흐헉!”
-촤촤촤촤촤촤촤촤!
그렇게 솟구친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자 날카로운 예기가 그의 전신을 난도질했다.
비늘이 돋아나며 독기조차 통하지 않기에 신체가 금강불괴에 가까워졌다고 확신했던 그였다.
그런데도 비늘이 베이는 것이 아주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전신이 피로 젖어가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쿵! 첨벙!
이윽고 이광이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이광이 넋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
‘이게······. 대체······.’
오른팔에 아무런 감각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것은 자신이 팔이 맞는 모양이었다.
전신이 예기에 베여나갔는지 화끈거리는 고통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쏴아아아아아!
-첨벙! 첨벙!
그러는데 빗물이 고인 바닥을 가로질러 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이광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어둠과 하나가 된 것처럼 전신에서 흉폭한 흑색 아지랑이를 흘리고 있는 목경운의 모습은 그야말로 마귀처럼 보였다.
이광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그와 두 수가량을 공수를 나누며 더는 공력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지금 이건 뭐지?
“어······어째서?”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그에게 목경운이 입을 열었다.
“왜 놀라죠? 아까 분명히 3성 공력으로 했었다고 말했었는데.”
‘!?’
삼성 공력?
이광은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럼 아까 전에 수를 나눴던 게 고작 전력의 3할 정도로 상대했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