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ck in the Tower RAW novel - Chapter 752
751화 컨설팅
밖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생각보다 위험한 일이다.
탑 안이라면 더 그렇고 그게 99층이라면 난이도가 몇 배나 뛴다.
몬스터와 재앙을 넘어 괴이체가 반겨 주기 때문.
“와. 징글징글한 것들.”
“별수 있나. 감당해야지.”
이미 겪지 않았던가.
마을에서 수도로 가는 길만 해도 괴이체를 여럿 만났었다.
괴이체라도 저급한 놈들은 그냥 칼질 몇 번이면 해결되었으나 개념을 제대로 품기 시작한 놈들이 나타나면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반쯤 무시하며 빠르게 이동하면 조금은 나았으나.
“좀 쉬세나. 하루 이틀 탐사하고 끝날 것은 아니니.”
그것도 무한정 지속할 수는 없었다.
특정한 목적지가 있으면 차라리 낫지.
거기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빠르게 움직일수록 유리하다만 우리는 아니다.
숭배자의 왕이 반응할 때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니까.
‘뭐, 사실 별 의미 없을 수도 있지만.’
꼭 나타나라는 법도 없었고 나 말고 다른 곳을 노릴 수도 있었으니.
그래서 우리도 다른 임무를 같이 가지고 있다.
위험한 괴이체가 있으면 가능한 처리할 것.
개념을 지닌 괴이체는 죽여도 완전히 죽지 않는다.
육체는 죽어도 개념은 살아 다시금 나타나니까.
그래도 그 과정에는 시간이 걸렸고, 한번 잡아 두면 한동안은 마주칠 일이 없었다.
운 좋게 놈이 가지고 있던 개념을 회수할 수 있으면 완전히 없앨 수도 있고.
괴이체 사냥 외에도 할 일이 있었다.
“개척할 만한 곳에 이거 꽂으면 된다 했지?”
탐지 신호용 말뚝을 박았다.
“맞아요. 신호를 받으면 사람들이 올 거예요. 안전하다 싶으면 이주민도 데리고 오겠죠.”
왕 없는 왕국의 영토를 넓히는 것.
왕국으로 인정받으려면 왕과 영토, 국민이 있어야 한다.
국민은 이미 있고.
왕도 때가 되면 생긴다.
‘내가 왕이 될 줄은 몰랐지만.’
별다른 의미 없는 명목상의 왕이긴 하다.
아무튼 3가지 조건 중에 2개는 채울 수 있으니 영토가 문제.
지금까지 여러 번 영토 확장을 시도했다고 들었다.
다만 그다지 유의미한 성과는 없었는데.
“이번에는 되려나.”
“괴이체를 대규모 소탕하는 게 아니면 힘들긴 하죠.”
일단 괴이체라는 놈들이 자꾸 나타나 방해를 해 댄다.
대부분 하급이다만 중급 이상이 튀어나오면 해결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작정하고 중급 이상 괴이체를 토벌해 반강제적으로 안전한 시기를 만들거나 해야 하는데.
‘솔직히 어렵지.’
오랜 시간 99층에 누적된 개념이 너무 많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객체도 있을 거고.
중급 이상으로만 따져도 이미 알려진 놈들만 80종은 된다.
달리 말하면 80마리만 잡으면 된다는 거지만.
언제 어디서 나타날 줄 알고 그럴까.
잡아 봐야 다른 녀석을 보낼 수도 있고.
그래. 출현하는 게 아니라 보내는 거다.
숭배자들의 왕국.
그곳에도 괴이체가 있으니까.
관리하고 있는 것 중 몇 개만 뿌려도 난리가 나지 않을까.
설사 어떻게 해결한다 치더라도.
“아예 남쪽으로 뻗어 버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번에도 다른 다 만들어 둔 건 놈들이 습격했잖아요.”
적은 괴이체만 있는 게 아니다.
숭배자들도 있지.
이곳에 있는 놈들은 기본적으로 골드 등급이었는데.
‘말이 골드 등급이지 밑에 있던 놈들이랑은 다를 거야.’
플래티넘보다는 못해서 골드일 뿐이다.
대충 이곳에 있는 NPC들 수준은 된다고 보면 됐다.
우습게 볼 이야기는 아니었다.
우리 쪽에 있는 NPC들도 괴이체를 못 잡는다 뿐이지 같은 사람을 상대로는 꿇릴 게 없다.
그런 놈들이 영토를 침범해 엉망진창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다.
이번에 영역을 넓히기 위한 개척자들이 남쪽으로 이동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숭배자들의 왕국은 북쪽에 위치해 있으니 멀리 떨어진 남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것.
“탈모맨도 고생깨나 하겠군.”
우리를 포함해 모든 탐사대는 개척자이기도 하니까.
탈모맨은 더하지.
오필리아가 말한 개념을 찾으려고 온갖 곳을 다 돌아다녀야 하니.
녀석이랑 함께 움직여야 하는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하며 지도를 살폈다.
“박물관인지 뭔지 그거 영역에 거의 다 왔네.”
제법 구체적으로 그려진 지도, 그곳에는 각종 괴이체의 영역도 표시되어 있었다.
모든 종류는 아니다.
활동 범위가 넓거나 꽤나 자주 나타나는 놈들도 있었으니.
지금도 지도 위에 표시된 이름과 그들의 영역이 꾸물거리면서 움직이고 있다.
처리하지 못했거나 네임드인 놈들은 이렇게 따로 탐사대가 관측해 추격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비한 박물관은.
“정주형 괴이체니까 별다른 일 없으면 나오겠지.”
켈런의 말대로다.
뿌리내리듯 한 지역에 고정되어 있는 놈들이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이라도 도착할 수 있었으나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박물관의 폐관은 해가 저물고 나서예요.”
“노을이 질 때쯤 들어가면 되네.”
“저, 저는 이곳에 있으면 됩니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보험.
박물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는 폐관 시간이 되어 쫓겨났다.
그 시간대는 밤이었으니 폐관 직전에 들어가 냥펀이 있는지만 확인해 볼 생각.
굳이 모든 위험을 감당할 필요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몸을 풀었다.
-스으으으.
조금씩 해가 기울고 있다.
때가 되었다.
“우리는 정면까지야.”
“조심하세요.”
켈런과 레베카가 다른 괴이체가 덤벼들지 않게 박물관의 영역 근처까지 호위해 준다.
안으로 들어가는 건 나 혼자.
나머지는 임시 캠프를 구축해 그곳에서 대기한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마.”
“3시간 뒤에도 나오지 않으면 후퇴할 거예요.”
고개를 끄덕였다.
폐관 시간이 됐는데도 나오지 못한다면 당했다는 뜻이니.
“이따 보자고.”
가볍게 손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별다른 거 없는 길거리.
잡초가 자라고 간혹 몇 그루의 나무가 우거진 평범한 필드다.
새소리를 포함해 짐승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게 좀 다를 뿐.
얼마나 걸었을까.
-타박.
돌을 깎아 만든 보도블록이 발에 밟혔다.
방치되었는지 이리저리 깨지고 흙에 덮여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변화다.
과거 사람이 살았던 동네였을까.
아니면.
‘슬슬 나오는 건가.’
아마 후자가 아닐까 싶다.
어두워지는 거리.
-파앗.
가스등이 켜진다.
노후되었던 길이 점점 멀끔해지며 쭉 이어진 길을 따라 밝혀지는 가로등 끝에는.
“나왔네.”
박물관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서 오라는 듯 반쯤 열린 문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주머니에는 어느 순간 티켓이 들어와 있다.
이질적인 감각에 주머니를 뒤져 꺼내 보니 보이는 건 자주색 종이 표.
[신비한 박물관 티켓]-신비롭고 재미있는 것들이 전시된 박물관!
-가족끼리 놀러 와도 OK~!
-연인끼리 구경 와도 OK~!
-혼자 느긋이 감상하는 것도 Good!
-즐겨 봐요! 즐겨 봐요!
약간 정신없지만 별다를 건 없다.
그 아래, 아주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부분만 뺀다면 말이지.
-티켓값은 후불입니다!
-당신의 뼈와 살, 영혼!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값을 매길 겁니다!
“하여간 양심 없는 놈 같으니. 제일 중요한 걸 이렇게 적어 놔.”
쯧쯧. 혀를 차고 티켓을 사진 스킬로 찍었다.
알려진 게 많이 없는 괴이체다.
이번 기회에 정보를 모을 수 있으면 좋겠지.
겸사겸사 박물관 모습도 찍어 두고.
“그래도 펫 동반은 되는 거 같네.”
“궤에에.”
덕춘이의 코를 토닥이고 정문으로 향했다.
이상이 생긴 건 그쯤이었는데.
-끼이이.
“뭐야! 왜 닫혀! 아직 해 안 떨어졌잖아!”
반쯤 열려 있던 문이 닫히고 있었다.
처음부터 반쯤 열렸던 게 아니었다.
활짝 열려 있던 문이 계속 닫히고 있던 거지.
도대체 왜?
티켓까지 발부해 두고 문을 닫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은 달렸다.
안에 볼일이 있으니 어떻게든 들어갈 생각이었고.
-쿠우우웅.
문이 닫히기 직전, 간신히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는 찰나 정문에 세워진 팻말을 확인하는 건 덤.
팻말에 뭐라 적혀 있었더라.
“개인 사정으로 휴관?”
아마 그런 내용이었다.
개인 사정이라.
개인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은.
“박물관 주인이 있다는 거군.”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
박물관도 관리자는 있기 마련이니까.
물론 여긴 평범한 박물관이 아니었고 이름도 박물관이었으나.
‘따지고 보면 내가 만났던 피나에도 비슷했지.’
안락한 밤의 오두막.
그게 피나에를 포함한 괴이체의 이름이었으니.
아무튼.
“지랄 맞은 풍경이군.”
박물관 안에 들어선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생존자의 증언대로 박물관 내부는 입구부터 온갖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을 찾아 준 이를 반기기라도 하는 걸까.
로비를 따라 양팔을 크게 벌린 채 서 있는 인체 모형이 이어져 있었는데.
-데굴데굴.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다.
살아 있다.
근처에 있는 전시물에 손을 댔다.
미약한 온기가 느껴졌으나.
“심장이 안 뛰는데?”
“그에에.”
살아 있는 생명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맥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이런 케이스는 양반이라고 해야 하나.
샹들리에 대신 천장에 매달린 사람은 온몸이 조각난 채 난해한 궤도를 그리며 돌고 있었다.
그에 따라 조명 빛이 바뀌는 건 물론이었으며.
그 아래에는.
[먹구름과 뜬구름]-해를 가리는 구름과 뜬금없는 부정확성을 표현한 예술품.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적혀 있었다.
미친놈이다.
천장에 매달린 녀석이 뭐라 뭐라 입을 벙긋거렸지만 폐가 연결되지 않은 입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로비를 지나쳐 위로 올라갔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명확하다.
냥펀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
나머지는 후순위다.
-끼이이익.
-으그그극.
기묘한 비틀림과 뭉그러진 비명.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는 공간을 돌아다녔다.
피부가 벗겨지거나 뼈가 드러난 사람.
방법은 모르겠지만 투명해진 몸으로 피가 흐르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경우도 있었으며 서로의 몸이 뒤섞인 경우도 있었다.
“취향 한번 고약하군.”
박물관에는 테마가 있다.
역사 박물관, 공룡 박물관, 하다못해 커피 박물관이라도 하나의 주제가 있기 마련이니까.
이곳은 뭐가 메인인가.
그건 명백했다.
“인체.”
사람의 몸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다.
피부와 근육, 관절, 신경과 혈관 장기까지.
그 모든 것을 집대성해 보여 주는 전시관이자 박물관.
어째서 티켓에 그런 문구가 적혀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고.
“덕춘아, 뭐 없어?”
“그에에.”
좀 더 서둘러 냥펀을 찾아 움직였지만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전시된 사람 중 냥펀은 없다는 이야기.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불안감이 들어찼다.
험한 꼴을 보지 않은 건 좋은데 그럼 어디에 있다는 걸까.
진짜 죽어서 탑 밖으로 나간 건가?
복잡한 심경에 신경질적으로 발을 차고 있던 그때.
“그엑? 궤에에.”
덕춘이가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한쪽을 가리키자 보이는 건.
[관계자 외 출입 금지.]박물관이면 꼭 보이는 문구.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공간과 전시하지 않고 보관해 두는 것들이 있는 장소.
남은 건 저기뿐이다.
난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고.
“음?”
오래지 않아 어두컴컴한 복도 끝, 희미하게 비치는 빛을 볼 수 있었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
당당히 박물관장 사무실이라 적힌 곳.
-끼이익.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지어 익숙한 목소리다.
“그러니까, 박물관 운영을 이렇게 하는 게 말이 되냥!”
“아, 아니. 지금까지 잘 운영하고 있었는…….”
“잘하기는! 티켓값을 후불로 받는 곳이 어딨다구! 자금 운용도 그렇고 이래서 유지가 되겠냥!”
“…어차피 유지하는 데 드는 것도 없고. 크게 문제 될 것도.”
“뭐어어? 드는 게 없다구?”
-쾅!
테이블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냥펀이 속사포처럼 말을 뱉어 낸다.
“왜 소모되는 게 없엉! 사람을 부르고 전시하고 어? 무작정 사람 몸만 가져다가 쌓아 두면 배치는 어떻게 할 거고 관리는 누가 할 거야. 박물관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이건 한정 자원 아니냥? 아니냐공! 그렇게 안일하게 대처해서 박물관을 유지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냥! 안 그래도 고객도 없는데 국가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홍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장부는 또 왜 이런데. 책임자면 책임감 있게 관리를 해야 할 거 아니양!”
“우우. 우우우!”
호통을 치는 냥펀과 모자로 귀를 막은 채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덩치의 괴한.
그 기묘한 조합에 난 눈을 가늘게 떴다.
“…냥펀?”
“엣? 공블아이?”
냥펀이 눈을 깜빡인다.
뭔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멀쩡해 보여서 다행이다.
그런 나를 보며 화색을 짓는 건 냥펀뿐만이 아니었으니.
“오오! 고객이다. 아무래도 난 티켓값을 받아야 해서 바쁠 거 같아!”
바로 흉흉한 기세를 뿜으며 내게 다가오려 한다.
어떻게든 냥펀 앞에서 벗어나려는 간절함이 보였으나.
“응, 아니얌. 앉아.”
냥펀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 어깨를 두드리며 근엄한 표정을 지었으니.
“여긴 내 파트너. 컨설팅을 하기 위해 불렀당. 화조국의 공급자이자 헬다잉 키친의 파트너, 프램 버그라는 대형 생산 조합의 일원인 동시에 차원 상인 자격까지 있는 훌륭한 상인이자, 장비와 영약까지 만드는 사업에 대단한 소질이 있는 전문가가 왔으니 본격적으로 대화를 이어 나갈 거당.”
“우우우우. 우우우우.”
녀석의 표정이 시커멓게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