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ck in the Tower RAW novel - Chapter 813
812화 뒤엎기
베드록 바알루제와 숭배자들을 상대로 싸우는 사이,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당장이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칼날에 목이 날아갈 지경이라 두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츠즈즈즈.
권능과 함께 영혼 세계가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까지.
-쿠구구궁!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착지했다.
정체는 볼 것도 없이 듀마고스.
“때맞춰서 왔네.”
안 그래도 밀리고 있어서 지원군이 절실했다.
[칭호, 잊혀진 세계의 왕이 위엄을 드러냅니다!]그와 함께 폭발적인 기세가 사방에서 올라왔다.
[잊혀진 자, 듀마고스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잊혀진 자, 세루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잊혀진 자, 가디네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
.
그 수가 많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했더니만 상징체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존재들도 다 끌고 온 건가.
[잊혀진 자들이 왕을 호위합니다.]-우우우웅!
강력한 힘이 나를 에워싼다.
이전에 한번 느꼈던 감각.
영혼 세계에서 베드록 바알루제와 싸울 때 나를 감쌌던 수많은 손길과 같았다.
-콰아아앙!
폭발을 일으키며 숭배자들과 거리를 벌렸다.
놈들 또한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며 뒤로 물러선다.
잠깐이지만 생긴 여유.
옆을 봐 보니 저마다의 상징체를 받아들인 잊혀진 자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잠깐이지만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이들.
여전히 불안하게 몸이 일렁거렸으나 그것을 압도하는 존재감이 있었다.
“세루투, 잘 왔다.”
산맥 너머에서 가장 먼저 받아들인 잊혀진 자.
종이비행기 모양의 상징체를 지닌 녀석이었고.
“약속에 응답하러 왔다, 우리들의 왕이여.”
영혼 상태로 웅크리고 있던 모습과는 달리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정령 출신이었던 건가.
푸른 불길로 이루어진 새의 형상에서는 고고함이 느껴졌다.
다른 녀석들도 다르지 않다.
한 세계의 정점에 올라 100층까지 향했던 존재들.
비록 혼돈의 파편이 되었고 이내 산맥 너머에서 사냥당하는 처지로 추락했으나 근본은 어딜 가지 않았다.
‘애초에 강력한 존재가 아니었다면 사냥당하지 않았겠지.’
베드록 바알루제는 욕심이 많은 자였고 자신이 탐내는 개념들을 수집했으니까.
내 옆에 선 이들만 넷.
나머지는 동료들을 도와 곧장 전투에 돌입했다.
그 와중에도 그들의 살기는 베드록 바알루제에게 향하고 있었다.
“가증스러운 얼굴을 오랜만에 보는구나.”
“추악한 왕은 변한 게 없군.”
숭배자의 왕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있나.
놈만 아니었다면 이런 꼴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아무튼.
“이제 좀 할 만하겠는데?”
티잉.
머리에 쓴 댄싱 마스터의 왕관을 튕겼다.
왕 대 왕.
놈이 말했던가.
진정한 왕은 따르는 백성이 있어야 한다고.
비록 숫자는 많지 않았으나 나도 생겼다. 나를 따르는 존재들이.
“이미 내게 영혼이 뜯겨 나간 떨거지들이군.”
숭배자의 왕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다지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내 눈에는 보였으니까.
놈의 영혼이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쫄리는 건 저 녀석도 마찬가지라는 뜻.
“일단 정리부터. 다 죽여!”
검을 위로 뻗으며 명령했다.
대단한 전략도, 준비한 함정도 없다.
이미 그런 것을 쓰기에는 너무 멀리 왔으며 서로의 후퇴라는 단어는 사라진 지 오래니까.
-쿠구구구구궁!
잊혀진 자들이 일제히 움직인다.
그저 진격하는 것만으로도 땅이 울리고 하늘에서 우레가 친다.
그동안 쌓여 왔던 감정을 터트리며 숨겨 왔던 난폭성을 드러냈다.
“밀리지 마라! 이미 잡았던 놈들이다!”
“패배자들은 패배자일 뿐!”
숭배자들 역시 지지 않고 기세를 올린다.
좋다. 그런 자세라도 있어야지.
-쿵! 쿵! 쿵!
거대한 발소리를 내며 바위로 이루어진 잊혀진 자가 앞으로 돌격했다.
정령 출신인지 내가 모르는 종족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거인이랑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
그 덩치와 파괴력이 굉장하다는 것을.
절대적인 물리력의 우위.
방패를 내민 숭배자들이 쓸려 나갔다.
그에 끝나지 않고 온몸으로 바닥을 굴렀으니.
-쿠과과광!
“크하아악!”
“내 팔! 제기랄!”
난동 부리기 한 번에 진형이 깨졌다.
속이 다 시원하다.
“내가 너희 때문에 고생한 것만 생각하면 열불이 터져!”
“그에에엑!”
뻐걱!
얼떨결에 내 앞으로 굴러온 녀석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투구 덕분에 즉사하지는 않은 것 같다만 기절해서 축 늘어진 녀석.
당연한 말이지만 전장에서 의식을 잃는 건 죽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그냥 내버려 둬도 다른 이들에게 짓밟혀 죽게 될 거다.
“히히히.”
-콰직.
저렇게.
인간의 모습을 한 잊혀진 자가 놈의 머리를 밟았다.
두건으로 눈을 가린 채 손가락뼈를 맞춘 놈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잊혀진 자, 사각(死角)과 ■■의 헤몬이 사냥 대상을 지정합니다.]순간이동?
모습이 사라졌던 녀석이 나타난 공간에서 피보라가 휘몰아친다.
손날로 그어 버린 범위에 남은 거라고는 신체 일부가 잘린 숭배자들뿐.
“살벌하네.”
“그에에.”
얘네도 기본적으로 미친놈들이었지.
몇몇 인격을 유지한 놈들을 제외하면 죄다 혼돈의 파편이 되면서 인격이 바뀌어 버렸으니까.
보통 괴팍하고 파괴적인 성향으로 바뀐다.
원래도 통제할 생각이 없었지만 더더욱 사라졌다.
일일이 지시 내리는 것보다 날뛰게 두는 편이 나을 거 같으니.
“나도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싸우기는 뭐하거든.”
-서걱.
옆으로 찔러 들어오는 손톱을 피해 몸을 돌리며 손목을 잘라 냈다.
숭배자 놈들도 어정쩡한 놈들은 거의 다 죽었다.
이제 남은 건 개념을 제대로 다룰 수 있거나 경험이 많은 녀석들뿐.
-카아앙!
손목을 잃었음에도 덤벼드는 녀석의 목을 날리려 할 때 숭배자의 왕이 난입했다.
여유롭게 검을 쳐 냈다.
녀석의 미간이 좁혀지는 게 보인다.
“왜? 계속 당할 거 같았어?”
“건방지군. 인성 교육도 같이 하겠다.”
“할 수 있으면 해 보든가.”
착각하지 마라.
내가 계속 당한 건 주변에서 방해하는 놈들이 많아서니까.
-촤자자장!
한 호흡에 십여 번이 넘는 검격이 오간다.
눈으로 좇기도 어려운 속도.
허공으로 튀어 오르는 불똥만이 교전이 있었다는 걸 증명한다.
[개념, 오르막길이 경사를 만듭니다.]기우뚱.
몸이 흔들렸다.
강제적으로 만들어진 경사로에 따라 아래로 미끄러진다.
고점을 차지한 녀석의 무차별 공격이 이어지는 건 덤.
슬슬 놈도 개념을 아낄 여유가 사라졌다는 거겠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왜 너랑 놀아 줘야 돼?”
“무어라?”
아까까지야 내가 녀석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전력 차이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비등한 상태라고는 볼 수 있다.
지금부터 중요한 건.
‘뒤엎기.’
놈이 자랑하는 설계자와 숭배자들을 쓸어버릴 생각이다.
녀석을 지원할 수 없도록.
-콰앙!
발을 박차고 옆으로 빠졌다.
아까부터 눈에 걸리는 놈이 있었다.
팔 4개 달린 설계자 녀석.
‘하문은 박재경이랑 츠므라가 잘 상대하고 있어.’
놈이 아무리 각성했다지만 잊혀진 자들까지 달라붙은 이상 쓰러지는 건 시간문제다.
진짜 문제가 되는 건 다른 설계자 놈들이지.
분명히 봤다.
탈모맨이 날아가는 모습을.
듀마고스가 타이밍 좋게 등장하지 않았다면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거다.
지금도 그렇다.
-두두두두두!
듀마고스가 합류했음에도 저 녀석은 밀리지 않고 있다.
그만큼 강력한 적이다.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촤아아악!
놈의 등짝에 길게 검을 휘둘렀다.
설계자가 곧장 무기를 들어 반격했지만 빠져나간 지 오래.
팔이 4개라서 그런가. 대응이 빠르다.
권능으로 놈을 살폈다.
-99층의 NPC!
-설계자입니다.
-능히 혼돈의 파편에 들어설 수 있는 존재!
-초월에 가까운 대상입니다.
초월에 가까운 대상이라.
저거 완전 혼돈의 파편이랑 다를 게 없다.
오히려 더 까다롭지.
놈들 특유의 마공학과 기술로 수없이 많은 개념까지 빨아들인 상태니까.
영혼 세계로 보이는 놈의 영혼.
그곳에는 억지로 붙잡아 둔 개념들이 사슬에 묶여 엮여 있었다.
그 수가 무려 40여 개.
지금까지 봐 왔던 놈들보다 2배는 더 많다.
“저러니까 애들이 고생하지.”
콰앙!
놈의 발치에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의 여파로 몸이 밀리는 타이밍 듀마고스가 거대한 꼬리를 휘둘렀다.
-쿠구구궁!
왼쪽의 두 팔로 꼬리를 막고는 남은 두 손으로는 내게 무기를 내리치는 녀석.
덩치만 4m는 족히 되는 녀석이라 그런가 위력이 굉장하다.
-찌릿.
막았지만 충격이 상당하다.
숭배자의 왕보다는 못하지만 그에 근접한 수준의 힘.
‘무기도 제각각이군.’
타고난 무력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지만 다루는 무기가 다양하다.
검, 창, 부채, 도끼.
-후와아아악!
거세게 부채를 휘두르자 가공할 만한 위력의 돌풍이 분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공블아이, 피해! 영혼까지 같이 날아가!”
육체를 통과해 영혼까지 육신에서 밀어내는 신물!
흔들리는 영혼이 육체에 대미지를 준다.
[개념, 반골이 바람에 저항합니다!] [개념, 폭발이 몸집을 부풀립니다!] [개념, 부끄러움이 두 개념을 꼭 잡습니다!]영혼에 깃든 개념이 하나로 뭉쳐 공격에 대응한다.
흔들림이 멎으며 육체에서 떨어져 나가려던 영혼이 제자리를 되찾았다.
‘광범위 영혼 공격이라. 정신 나갔군.’
멤버들이 쉽사리 제압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차라리 개념 무구라면 어떻게 해 보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다.
특수한 힘을 지닌 아이템에 가까운 물건이지.
섹시가이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은데.
“우오오! 형님! 도움! 도우우움!”
놈들도 그걸 아는지 섹시가이를 전담 마크 하고 있었다.
설계자를 붙일 필요도 없다.
숭배자들을 잔뜩 보내면 되니까.
기본적으로 범위 내 대상을 본인과 같은 수준으로 스펙을 맞춰 싸우는 만큼 머릿수가 많으면 곤란해지는 건 섹시가이였다.
그나마 개념, 노출증 덕분에 버티고는 있었지만.
“버티는 게 아니라 처맞고 있는 건가.”
정작 머릿수로 우세한 숭배자들도 무기와 스킬 없이 때려잡느라 마무리를 못 하는 거 같다.
“…듀마고스, 쟤 좀 도와줘.”
“이상한 놈 같아서 피하려 했는데. 어쩔 수 없군.”
쯧. 혀를 찬 녀석이 섹시가이 쪽으로 간다.
스킬이 아닌 마법을 쓰고 무기 대신 개념을 사용하니 섹시가이 옆에 있어도 문제없을 거다.
아무튼.
“이거. 좋지 않아 보이는군.”
섹시가이 쪽은 어떻게 해결될 거 같은데 당장이 문제다.
앞에 서 있는 건 설계자와 베드록 바알루제.
멤버들 또한 내 곁에 섰다.
“다들 몸은 괜찮냐?”
“괜찮기는. 골병 들게 생겼는데.”
“하하하! 난 멀쩡하지!”
“네가 제일 안 좋아, 멍청앙.”
오케이. 괜찮은 거 같군.
최종 보스에 중간 보스.
두 녀석을 잡고 있으면 나머지는 알아서 정리해 주겠지.
그거면 충분하다.
우리가 당할 가능성도 크다만.
-오오오오오!
우리끼리만 상대할 필요는 없으니까.
창공을 날아다니는 푸른 불길의 새. 세루투가 하늘 위를 날며 기회를 엿본다.
어느새 굴러온 바위 정령, 가디네엄이 자세를 잡고.
“히. 히히. 히히히.”
맛탱이 간 암살자 계열의 잊혀진 자, 헤몬도 몸을 떨며 다가오고 있다.
“……??”
거기 아니야, 미친놈아.
눈을 가려서 그런가. 우리를 지나쳐 다른 쪽으로 가는 녀석을 붙잡고 앞에 세웠다.
시무룩해진 녀석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숨을 들이켰다.
“자. 출발.”
놈들과 맞부딪치는 순간.
천지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