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 chapter (5)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화
시몬의 수중에는 딱 20골드가 있었다.
이것도 리처드가 무리했을 정도로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만약 모자라다면…….
“다름 아닌 로레인 아가씨의 손님이시니까, 에누리 없이 솔직하게 말씀드리지요.”
스테파니가 공손히 말했다.
“5,000골드입니다.”
“……네?”
시몬의 마음속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 정도면 레스힐 몇 년 치 예산인……
“계산할게.”
로레인이 지갑을 꺼냈다. 스테파니는 입가에 화사한 미소를 그렸고, 두 사람이 계산을 위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시몬이 외쳤다.
“왜 그래?”
“이, 이러시지 않아도 돼요! 5,000골드잖아요! 이렇게 큰 선물은 받을 수 없어요!”
로레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한테 이야기 못 들었어? 이거 우리 엄마가 사는 거야.”
“……네프티스 님이요?”
“응. 뭐라셨더라.”
로레인이 입술에 손을 올리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도 모르지만, 엄마가 너희 부모님께 큰 빚을 지셨대. 어른들끼리 이야기된 부분이니까 부담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
“아…….”
결국 계산을 하니 마니 이런저런 실랑이 끝에, 시몬은 아공간을 받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그리고 아가씨! 다음에 또 방문해 주십시오!”
시몬과 로레인이 가게를 나가는 뒤로, 스테파니와 점원들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다시 햇빛이 비치는 밖.
시몬은 자신의 손가락 사이의 빛나는 반지를 홀린 듯 바라보았다.
‘이게 내 거라니.’
너무 행복해서 표정관리를 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좋아?”
“……하하.”
시몬이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너무 큰 신세를 져버렸네요. 네프티스 님께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됐네요. 그래도 우리 엄마가 바라는 게 있다면 네가 키젠 생활을 잘 버텨주는 거라고 생각해.”
“넵! 정말 최선을 다할게요!”
이후로도 로레인과 함께하는 쇼핑은 계속됐다.
앞으로의 생활에 필요한 필기구나 노트, 조명 같은 필수품은 물론, 스켈레톤 세트나 각종 약물 재료들도 구매해서 아공간에 넣어두었다.
로레인이 말하길, 키젠 앞의 부속도시에서도 재료들을 살 수 있지만 그쪽은 훨씬 비싸다고 한다.
“시몬! 우리 저거 하러 가자!”
“……다트 던지기도 입학준비의 일환인가요?”
“그냥 노는 거야!”
가끔 딴 길로 새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유능한 가이드였다.
“그럼 이제 불붙이겠습니다.”
“응! 지금이야!”
랭거스틴 전망대에서, 시몬과 로레인이 동시에 손을 떼자 밤하늘을 향해 등불이 날아올랐다.
주위의 사람들도 등불을 올려보내고 있었다. 밤하늘이 황홀한 선홍빛으로 물들며 아름다운 불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이 환호성을 토해내거나 손뼉을 쳤으며, 커플들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여기가 바로 랭거스틴의 필수 관광명소인 천 개의 불빛이야.”
로레인이 허리에 손을 올리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감상이 어때? 시몬.”
“솔직히 말해도 돼요?”
“당연하지.”
시몬은 밤하늘을 수놓는 등불에 눈을 떼지 않고 답했다.
“그냥 불붙는 기름종이에 200실버나 쓰는 호갱들이 천 명이나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좀…….”
“…….”
그녀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넌 키젠에서 진짜 적응 잘하겠다.”
“고맙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칭찬 아니거든!”
그리고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었다.
천장에 달린 호화스러운 샹들리에, 하나같이 반짝거리는 식기, 그리고 넥타이와 유니폼을 차려입고 서빙하는 웨이터들까지.
시몬은 이런 식당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음식 맛은 두말할 필요 없었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스테이크가 입에 들어가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에 몸이 떨렸다.
게다가 고개를 돌리면 그림 같은 밤바다가 펼쳐져 있고, 귓가에는 쏴아아 하고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어려운 식기도 잘 다루네? 귀족은 귀족이구나.”
로레인이 턱을 괴며 웃었다.
“아버지가 예법에 엄격하셨거든요.”
“잘 배웠네. 아!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 거지만 키젠에 들어가면 30% 정도는 평민이거든?”
그녀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을 이었다.
“신분으로 찍어누르는 건 안 돼. 키젠은 무조건적인 실력주의 교풍이고, 공작 영애라고 해도 고학년 평민에게 고개를 숙여. 그냥 다 같이 평등한 1학년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
시몬은 명심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스힐에서도 남작이니 평민이니 할 것 없이 두루 잘 어울려 지냈으니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내일이면 입학이네. 궁금한 거 있으면 뭐든 물어봐.”
“음…… 아! 오늘 아침에 저랑 같은 입학생을 만났는데, 전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전공? 좋은 질문이야.”
로레인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1학년 1학기 때 듣는 과목은 아홉 가지거든? 2학기 때부터는 자기가 듣고 싶은 수업을 선택할 수 있고, 2학년으로 올라서면 전공을 골라야 해.”
“제가 잘하는 과목이 무엇인지 빠르게 캐치해야겠네요.”
“바로 그거야!”
그녀가 전략가처럼 눈을 빛내며 포크를 빙빙 돌렸다.
“1학기 때도 미리미리 자기가 잘하는 주 종목을 정하고, 그쪽 위주로 공부하는 편이 좋아. 조별수업을 진행하면 주 종목이 뚜렷한 애들이 인기가 많거든.”
“꼭 기억해 둘게요.”
“혹시 생각해 둔 전공은 있어?”
시몬은 잠시 아침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랐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빠져나온 뼛조각들이 척척 맞춰지며 언데드가 되는 그 광경.
워낙 인상적이어서 머릿속 깊게 박혀 있다.
“……소환학에 조금,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소환학 좋지! 정통파의 길을 가려는 거네.”
로레인은 여러 과목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고, 시몬은 눈을 빛내며 경청했다.
그녀와는 이야기가 잘 통했다. 물론 시몬은 주로 듣는 쪽이었지만, 말하는 그녀의 입장에서도 열심히 경청해 주는 시몬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도 아쉬웠던 두 사람은 근처의 주점에서 2차, 3차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몬은 술도 처음이었다.
미성년자라서 처음엔 망설였지만 로레인은 키젠 학생들은 음주가 허용된다고 했다. 그래도 내일은 입학식이기도 하니, 서로가 딱 기분 좋을 때까지만 마셨다.
이야기는 길어졌고, 자정을 조금 넘은 새벽이 돼서야 시몬은 숙소에 도착했다.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로레인 씨.”
“아냐, 이 정도야 뭘.”
“그…….”
시몬이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원래는 제가 데려다 드리는 게 맞는데…….”
“응?”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깜빡이던 로레인이 이내 묘한 미소를 흘렸다.
“자각은 있었구나?”
“……크흠.”
“마음만 고맙게 받을게. 랭거스틴은 복잡한 도시라서, 날 데려다주는 건 둘째치고 너 혼자서는 숙소로 못 돌아올 거야.”
부정할 수 없었다.
“들어가서 푹 쉬어. 너 술 먹고 지각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내가 엄마한테 맞아 죽을 거야.”
“네, 오늘 하루 감사했습니다! 정말 즐거웠어요.”
시몬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사실 즐거운 정도가 아니었다. 시몬은 랭거스틴에서의 첫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가던 로레인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시몬을 돌아보았다.
“아! 시몬. 실은 고백할 게 하나 있는데.”
“네?”
로레인이 평소답지 않게 쑥스러워하며 머리카락을 넘겼다.
“속이려고 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말할 타이밍을 놓쳤어. 그…….”
“……?”
시선이 마주하자, 그녀는 귀엽게 눈을 찡긋했다.
“사실 나도 1학년 입학생이야!”
“……네, 네?”
“그러니까 다음에 학교에서 만나면 말 놔. 안녕!”
그녀가 손을 흔들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멍한 얼굴로 그녀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시몬이 이내 피식 웃으며 숙소로 들어갔다.
* * *
아침이 밝았다.
로레인은 푹 쉬라고 했지만, 시몬은 새로운 생활에 대한 설렘과 기대 때문에 한숨도 제대로 못 잤다. 일찌감치 일어나서 준비를 마치고 숙소를 나섰다.
로레인은 다른 루트로 키젠에 가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시몬 혼자 집합장소를 찾아가야 했다.
물론 장소는 확실히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어제 로레인과 갔던 레스토랑에서 보이는 지점. 바다 쪽으로 돌출되어 나온 뾰족한 모양의 땅.
집합장소에 가까워질수록 길가에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대부분이 시몬의 또래 아이들이었는데, 하나같이 개성이 넘쳤다.
걸으면서 화장을 고치고 있는 페어리족 여학생, 온몸이 수납공간인 것처럼 스무 자루의 검을 찬 남학생, 그리고 등에 본인 덩치보다 더 큰 대형 케이스를 짊어진 채 여유롭게 걷고 있는 여학생까지.
‘역시 내가 제일 정상이네.’
시몬은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었지만, 사실 이곳에 있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 안 가 집합장소에 도착했다. 파견 나온 키젠의 하수인들이 주위를 통제하고 있었고, 돌출 지형의 끝에는 배가 한 대 정박해 있었다.
아마도 저걸 타고 키젠으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서둘러 주십시오. 곧 키젠으로 출발하겠습니다!”
시몬도 배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조금 특이한 점은 선체가 바다가 아닌 지상 쪽으로 향해 있는데, 왜 저렇게 해둔 건지 알 수 없었다.
“입학 증명서를 제시해 주십시오.”
이제 시몬의 차례. 미리 준비하고 있던 편지를 내밀었다.
하수인은 편지와 손에 든 리스트를 확인해 보더니, 깃펜으로 체크하고 돌려주었다.
“시몬 폴렌티아 님. 확인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사히 통과한 시몬이 배에 올라타려는데.
“이건 뭔가 잘못됐다니까!”
바로 옆줄에서 격한 항의 소리가 들렸다.
“내가 후보 1번인데 빠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죄송합니다. 루시우스 님은 입학 리스트에 들어가 있지 않으십니다.”
“X발 진짜 니들 일 처리 이따위로 할 거야? 키젠에 연락해 봐! 뭔가 착오가 있을 거라고!”
옆에서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몇몇 학생들이 배에 올라타며 수군거렸다.
“연례행사래.”
“꼭 결과를 못 받아들이는 애들이 있지.”
“후보 1번? 쫌 불쌍하긴 하네요. 크흪.”
학생들이 비웃음을 흘리며 배에 올라탔다.
쩍!
불안 불안하더니 결국 문제가 터졌다. 흥분한 루시우스가 급기야 하수인을 바닥에 넘어뜨린 것이다.
“난 드레스덴 왕국의 백작 후계자 루시우스 카롤이다! 이건 명령이야. 지금 당장 키젠 본부에 연락해!”
“돌아가 주십시오. 루시우스 님은 입학 리스트에 들어가 있지 않으십니다.”
하수인이 단호한 어조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얼굴이 시뻘게진 루시우스가 급기야 하수인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웅성웅성.
분위기가 점점 더 험악해졌다. 학생들도 걸음을 멈추며 이 광경을 주시했고 누군가는 칠흑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눈에 핏발이 선 루시우스가 오른팔을 들어 올리는 그때.
덥석.
“그만하세요.”
루시우스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느새 뒤로 돌아간 시몬이 그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너 뭐야? 이거 안 놔?”
“…….”
시몬이 빙긋 웃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
우드득!
“아아악!”
말도 안 되는 악력에, 루시우스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꽈배기처럼 비틀었다.
오랜 시간 궂은 영지 일로 단련해 온 시몬의 힘을 곱게 자란 귀족 소년이 버틸 리가 만무했다.
꾸욱. 꾹.
그의 몸이 점점 내려가더니 이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게 됐다. 결국 하수인의 머리채를 붙잡은 왼손에 힘이 풀렸고, 시몬도 루시우스의 오른손을 풀어주었다.
다급히 뒤로 도망치듯 물러난 루시우스가 이내 시뻘게진 얼굴로 손목을 매만지며 소리쳤다.
“너 뭐 하는 새끼야! X발 죽고 싶어?”
스릉!
시몬이 대답하지 않자 아예 허리춤의 검까지 뽑아 들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며 상황이 점점 극단적으로 흘러갔다.
“무슨 일이지?”
그때였다.
배 쪽에서 한 남자가 다가왔다.
병마와 싸우는 환자처럼 창백한 얼굴에, 볼살은 움푹 들어가 있었으며, 머리 군데군데에 새치가 보이고 손은 노란빛이었다.
그를 본 학생들은 숨죽인 감탄성을 흘렸다.
“시, 실라지 교수님이다!”
“……실라지가 교직원이라니! 역시 키젠은 키젠이네.”
그가 다가오자 기세등등하던 루시우스마저도 쭈뼛거리며 물러섰다.
실라지는 천천히 시선을 움직였다.
머리가 헝클어진 채 쓰러져 있는 하수인 하나. 말리려고 덤벼든 학생 하나. 그리고 후보 1위라고 소리치던 귀족 하나.
실라지가 감흥 없다는 표정으로 루시우스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