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134)
0살부터 슈퍼스타 1134화
그렇게 의욕이 불타올라 버린 단원들은 다른 사람들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 빽빽하게 메모되어 있는 악보를 보거나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한 자신의 연주 영상을 보았다.
마치 콩쿠르나 대학 실기시험을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 이제 무대에 올라가 봅시다./”
마지막 차례였던 단원들까지 모두 준비를 끝내자, 대기실에서 단원들의 질문에 답해주던 벤자민 교수가 말했다.
그에 후우, 하고 가볍게 한숨을 내쉰 단원들이 악기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촬영인 거 아는데도 떨리네.”
“그러게.”
정말로 눈앞에 관객이 있어서 실수 한 번 하면 큰일 나는 실연보다 난이도가 낮은 촬영 무대인데도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샘솟은 의욕 아래로 옅게 긴장감이 깔렸다.
무대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의자도 악보대도 그대로였다. 그래서 그런지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단원들은 지난 한 달 동안 그랬듯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제이슨 무어와 최유성은 제1바이올린 자리로, 드미트리와 김수빈은 제2바이올린 자리로 이동했다.
“/긴장했어, 빈?/”
“/네. 근데 기대도 돼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드미트리의 물음에 김수빈이 상기된 얼굴로 대답했다.
평상시 연습 때는 일상복을 입었는데, 이렇게 정장을 입고 여기 앉아있으려니 긴장이 됐다. 그리고 그만큼 설레기도 했다.
김수빈의 말을 들은 단원들도 동의하듯 웃었다.
무려 이서준과 벤자민 교수, 그리고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들과 함께 준비한 무대였다.
연습 때도 점점 나아지는 자신의 실력이 보였지만, 실전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 기대도 되었다.
‘잘하자!’
모두 그렇게 다짐하며 자신의 악기를 다시금 점검했다.
단원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다음으로 지휘자 벤자민 모튼 교수가 지휘대에 섰다. 그리고 그 옆에 솔로 바이올린을 맡은 서준이 홀로 서 있었다.
단원들이 조용히 감탄했다.
조명이 무대 위 전부를 밝게 비추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서준이 있는 곳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디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연주자들이 모두 자리를 잡자 다음으로는 스태프들이 무대 아래에서 움직였다. 미리 설치해 둔 카메라 앵글에 단원들의 모습이 잘 잡히도록 조정하고, 조명도 좀 더 잘 비추게끔 조절했다.
안다호 이사와 최태우가 모니터와 무대를 번갈아 바라보며 그 모습을 확인했다.
서준이 이번 연주의 주인공인 만큼 서준만 찍는 카메라도 따로 있었다. 나중에 이것만 따로 올려도 좋을 것 같았다.
빠르게 촬영 준비가 끝나고 촬영감독이 벤자민 교수에게 신호를 보냈다. 다음으로는 음향을 확인할 차례였다.
“/그럼 음향 확인 겸 먼저 가볍게 연습해 보기로 하죠./”
벤자민 교수가 긴 지휘봉을 허공으로 들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실전처럼 가겠습니다./”
그 단단한 목소리에 단원들은 바짝 굳은 어깨를 풀려고 노력하며 자세를 잡았다. 김수빈도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바이올린에 턱을 괬다.
그런 단원들과 달리 경험이 많은 제이슨 무어나 드미트리, 최유성은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다.
서준도 그랬다.
처음부터 끝까지 곡의 중심이 되는 주선율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입가에 미소까지 띤 편안한 모습으로 제이슨 무어가 빌려준 스트라디바리우스에 턱을 올리고 활을 들어 올렸다.
지휘자 벤자민 교수가 서준과 단원들을 살펴보고 이내 웃으며 지휘봉을 가볍게 아래로 내리그었다.
–!
가장 먼저 서준의 솔로 바이올린이 들려왔다.
혼자서도 연주회장 전체를 울리는 선율에 모두 소리를 죽이고 감탄했다. 스태프에게 지시를 내리려던 음향감독도 일순 탄성을 흘리며 연주에 빠질 뻔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 이 느낌을 고스란히 녹음해야 한다는 무겁고도 중요한 임무를 맡은 음향감독이 얼른 지시를 내렸다. 미리 곡을 들어두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이 멋진 곳에 정신을 빼앗길 뻔했다.
서준의 뒤를 이어 오케스트라의 선율도 들려왔다.
여기가 중요했다.
여러 개의 악기가 있는 만큼 무엇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됐다.
소리가 너무 약하면 곡에서 어느 한 부분이 빈 것처럼 들릴 수 있었고 소리가 너무 강하면 혼자 튀어버리기 때문이었다.
“더블베이스 쪽 볼륨 조절해. 좀 더 약하게.”
음향감독의 지시에 따라 마이크의 위치가 바뀌고 볼륨이 조절됐다.
그렇게 음향 확인 겸 몸풀기가 끝나고, 서준과 벤자민 교수도 헤드폰을 통해 녹음된 연주를 들었다.
곡을 가장 잘 아는 작곡가와 편곡가인 만큼 어느 악기의 소리가 부족한지 과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딱 좋네요.”
“/같은 생각입니다./”
서준과 벤자민 교수의 말에 음향감독이 활짝 웃었다.
마지막 음향 체크까지 끝나자, 정말로 본격적으로 촬영할 시간이 되었다.
무대 아래에 있는 스태프들이 모두 입을 꾹 다물고, 무대 위에 있는 단원들이 가볍게 손을 풀었다. 그래도 한 번 연주해서 그런지 어깨가 많이 가벼워졌다.
“느낌도 좋은 것 같고.”
“그쵸?”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런 단원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되고자, 서준은 연습 때도 종종 사용했던 생의 도서관에서 찾은 능력을 발동했다.
[(선)만시오트의 대화수단(하급)이 발동됩니다.] [(선)만시오트의 대화수단-하급]마음과 마음으로 대화하는 만시오트족입니다.
일정 범위에 있는 존재들은 서로의 생각을 조금 느낄 수 있습니다.
텔레파시와 비슷한 능력이지만, 단어나 말이 아니라 ‘느낌’ 정도밖에 전달하지 못하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일정 범위, 그러니까 무대 위 단원들이 서로의 생각이나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면 곡의 표현력이 좀 더 좋아질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그중에는 작곡가인 서준도 있고, 지휘자인 벤자민 교수도 있으니 더욱 효과적일 터였다.
물론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만큼의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겠지만, 이것만으로도 꽤 도움이 될 터였다.
‘아쉽긴 하네.’
매번 깜짝 놀라게 하는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이었지만, 막상 사라지고 나니 아쉬워졌다.
왠지 정령의 나무도 많이 아쉬워할 것 같았다. 더는 등급 상승을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작게 웃은 서준이 집중했다.
이제 촬영을 할 시간이었다.
“/그럼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벤자민 교수가 잠시 단원들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서준과 눈을 마주쳤다. 서준이 빙그레 웃자 벤자민 교수도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휘봉을 위에서 아래로 가볍게 움직였다.
그에 서준의 손끝에서 바이올린 선율이 흘러나왔다.
♪-♬-
뜬금없이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홀로 들려오는 바이올린 선율은 의아하고 당황하는 느낌이 스며들어 있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낮은음들은 막막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
둥-
하고 약하디약한 소리가 들려왔다. 솔로 바이올린의 선율 속에 섞인 그 소리는 마치 연약한 심장 소리 같기도 했고 마치 여기로 오라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 ‘탈출구’는 너무 멀리 있었다.
그렇지만 솔로 바이올린은 가 보기로 했다.
그 의지를 표현하듯 당황이 사라지고 강렬한 선율이 서준의 손끝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지휘자가 크게 두 손을 휘저었다.
동시에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 시작했다.
대지를 달려가는 듯한 솔로 바이올린에게로 ‘적’의 선율이 침범했다. 심장을 조이는 무겁고 낮은 선율에 솔로 바이올린의 선율은 점점 약해져 갔다.
둥- 둥-
그보다 더 약한 팀파니 소리가 마치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들려왔다.
그때.
—!
봄날의 바람처럼 따뜻하고 밝은 선율들이 새롭게 들려왔다. 그리고 마치 적들을 물리치듯 곡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때로는 묵직하고 격렬한 적의 선율이, 때로는 따뜻하고 강렬한 아군의 선율이 이어졌는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솔로 바이올린이 있었다.
적의 선율이 들려올 때는 약하게, 아군의 선율이 들려올 때는 강하게.
지휘자의 손짓과 솔로 바이올린의 연주에 오케스트라 전체가 하나의 악기처럼 움직였다.
실수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실전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연습 때보다 잘하는 것 같았다.
‘나 왜 이렇게 잘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다들 연주에 집중하느라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다.
넋 놓고 하게 되는 리듬게임 같은 느낌이랄까.
거기에는 제이슨 무어와 최유성, 드미트리의 영향도 있었다.
세 사람은 파리 연주회에서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로 ‘완벽한 오케스트라’가 되는 경험을 겪었고, 감독의 어그로 아닌 어그로에 의욕이 가득하다 못해 넘치고 있었다.
게다가 서준이 [(선)만시오트의 대화수단]까지 사용한 상태였다.
물론 이 능력은 서준과 벤자민 교수의 생각이 조금이나마 전해졌으면 해서 사용한 거지만, 솔로 바이올린과 지휘자 한 걸음 떨어져 있는 것과 달리, 세 바이올리니스트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고 있었던 것이 주요했다.
일정 범위 내에 있던, 어그로가 끌린 세 사람(특히 제이슨 무어)의 강력한 의지가 오케스트라에게 전해진 것이었다.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 때 느꼈던 일체감과 함께.
물론 하급이라서 그렇게 효과가 강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조금이나마 마음과 마음이 통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대단했다.
딴 생각할 여유가 없는 단원들은 무아지경에 빠졌고 여유가 있는 제이슨 무어와 드미트리, 최유성은 이 일체감을 즐겁게 연주했으며,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벤자민 교수와 서준은 작게 웃으며 지휘와 연주를 이어나갔다.
적의 선율이 점차 약해져 가고, 아군의 선율 또한 마치 하나씩 공격당해 사라지듯 중심이 되는 악기가 변해갔다.
둥둥-
그리고 마침내 심장 소리와도 같은 팀파니 소리가 가까워진 것처럼 제법 크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에 기뻐하는 솔로 바이올린과 아군의 선율이 뒤섞여 들려왔다.
그렇게 [파트1]이 끝을 맺었다.
지휘봉이 멈추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와아!
곧 코코아엔터 직원들과 스태프들의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들려왔다.
몇십 명도 채 되지 않아 연주회장을 떠나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오케스트라는 만족했다.
“내가 생각해도 잘했어.”
“와! 저 실수 하나도 안 했어요!”
“……나 어떻게 했지?”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집중해서 그런지, 잘해냈다고 생각하니까 몸이 확 풀어지면서 긴장도 풀리는 것 같았다.
“/아직 남은 곡들이 많으니 너무 긴장 풀지는 마세요./”
벤자민 교수의 말에 바로 다시 긴장줄을 잡았지만.
단원들이 잠시 쉬는 사이, 서준과 벤자민 교수가 녹음된 곡을 들었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연주해야 할지도 몰랐다.
“근데 한 번 더 연주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체력이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보다 더 ‘일체감’을 느껴보고 싶은 단원들이었다.
그런 단원들의 바람대로.
“/한 번 더 촬영해야겠지?/”
“/네. 곡 초반이랑 후반이랑 차이가 좀 나네요./”
‘일체감’이 조금 늦게 작동하다 보니, 초반부랑 후반부에서 차이가 보였다.
그래도 한 번 느껴봤으니 다시 연주하면 초반부부터 멋진 일체감을 보여줄 터였다.
그렇게 다시 [파트1]을 촬영하고.
곧바로 [파트2]도 촬영을 시작했다.
둥둥- 둥둥-
점차 가까워지는 팀파니 소리.
기뻐하던 솔로 바이올린과 아군의 선율은 다시금 목적지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다만 땅을 힘껏 내딛는 듯한 소리가 들리던 [파트1]과 달리, [파트2]는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시원한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아군의 선율과 함께 새로운 느낌이 담긴 소리가 있었다. 현실 사람들의 기도를 표현한 선율이었다.
그 선율은 때로는 연약하게, 때로는 거대하게 솔로 바이올린과 아군의 선율을 도왔다.
[파트2]에도 적의 선율이 있었다. 아군의 선율과 함께 차례차례로 떨어져 나갔다.솔로 바이올린은 그 사이에서도 빛을 발했다.
몇 번 추락하는 듯한 불안하고 아찔한 음들을 뱉어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다시금 앞으로 나아갔다.
서준이 적들의 등을 밟고 핵을 향해 나아갔던 것처럼.
때문에 [파트1]이 아군과 함께하는 합주 느낌이었다면, [파트2]는 솔로 바이올린의 비중이 컸다.
그리고 드디어.
둥! 둥!
심장 고동 같은 팀파니 소리가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다른 악기가 모두 사라지고 솔로 바이올린만 들려왔다.
단둘만 남은 팀파니와 솔로 바이올린은 어우러질 것 같으면서도 어우러지지 않았다.
솔로 바이올린은 노력했으나 닿지 않았다. 마치 물과 기름 같았다.
그때.
그 사이에 또 하나의 선율이 스며들었다. 현실 사람들의 기도였다.
그 기도가 서준을 핵에 닿게 종이길을 만들어 도왔던 것처럼, 팀파니와 솔로 바이올린이 서로 섞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불협화음이던 팀파니와 솔로 바이올린, 또 하나의 선율이 하나로 합쳐졌다.
—-!
솔로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오케스트라가 힘껏 연주했다.
그건 정말로 굉장했다.
마치 축제에서 색색의 꽃잎을 뿌리고 폭죽을 터뜨리는 것처럼 화려하고 거대했으며, 심장이 저절로 뛸 정도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서준도 벤자민 교수도 단원들도 온 힘을 다해 연주했다.
물론 악보 내에서.
—!
클라이맥스를 장식한 오케스트라가 멈추었다.
그리고 솔로 바이올린만이 생생하고 활기찬 선율을 흘려보내다가 이내 마지막 음표를 연주했다.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홀로 깨어난 서준처럼.
잠시의 침묵 후.
다시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까보다도 강렬한 함성이었다.
그에 순식간에 호흡을 정리한 서준과 가볍게 몸을 움직이던 제이슨 무어, 드미트리와 최유성이 만족스럽게 웃었고, 송골송골 땀이 조금 맺힌 김수빈과 단원들이 벅차고 감격한 얼굴로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귀로歸路]의 촬영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