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56
56화 마시장
***
난마 마시장.
좁아터진 거리엔 말 반, 사람 반이었다.
히이잉-!
히이잉-!
“뭐, 나쁘지 않네.”
마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신수의 존재유무와는 별개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보고만 있어도 활달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얼굴 근처까지 말의 혓바닥이 오가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반복되고, 똥이 없는 바닥을 피해 걷는 걸 결국 포기하게 되었을 정도로 더러운 거리였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썩 괜찮았다.
실은 그간 배에서의 생활에 약간 지쳐있었던 것이다. 물론 vip객실을 받은 이후 생활의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지만, 솔직히 조금 답답하다 생각된 게 사실이었으니.
연신 투레질 하는 말들과 시장상인들의 고성들, 놀란 구경꾼들의 다급한 비명까지. 모든 소음들이 내게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해 주고 있었다.
물론,
“윽, 냄새가······ 형님, 죄송하지만 저는 여기까지인 듯······.”
“우욱······ 내가 길을 잘못 봤나봐. 나도 갈래.”
다소 과한 요소도 없잖아 있긴 했지만.
치누아비는 애당초 시장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우는 소리를 했고, 코코아 또한 언제 본인이 오자고 했냐는 듯 울상을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는 솔직히 예상외의 모습들이었다.
얘네도 기본적으로는 어린 애들이다 보니, 그냥 다 좋아할 줄 알았던 것이다. 동물원에 온 느낌이지 않을까 싶어서.
‘나 때는 동물원 간다 그러면 그냥 막 좋아 죽었는데······ 뭐, 거기 말들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더 좋아 날뛰는 건 왕녀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본인의 신남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혹시 따로 움직여도 될까!? 만나보고 싶은 녀석들이 너무 많은데!”
이미 전사의 길이니, 1황자니 하는 건 다 까맣게 잊은 게 틀림없었다.
“웃기네, 뭔 일이 일어날 줄 알고.”
나는 실제로 그제까지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현재 연회 자리에 있었던 모든 이들은 왕녀가 마침내 혼례를 마음먹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게다가 곧바로 제국수도로 갈 거라고 말해둔 상태이니, 전쟁을 벌이려 왕녀를 암살코자 한 녀석들에겐 이제 확실한 시간제한이 생긴 상황이었다.
즉, 급해진 녀석들이 뭔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다는 것.
그 4황자 녀석도 녀석이지만, 혹 ‘전쟁파’라는 타마르 대신이 이번엔 직접 나설지도 모르고, 또는 제국과 왕국의 우호적 관계형성을 경계하는 다른 세력에서 새로이 암살조가 투입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뚱뚱이와 홀쭉이 암살자 녀석들.
배에서 하선할 당시, 녀석들은 일부러 모습을 드러낸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는 우리를 계속해서 쫓겠다는 걸 암시하는 행위였다.
물론 그게 실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압박용일 수도 있고.
다만, 약간이나마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분명 도망간 줄 알았던 녀석들이 다시금 나타난 건, 그에 걸맞은 준비를 갖췄다는 뜻일 테니.
“됐고, 일단 여기 서봐. 그리고 코코아도.”
나는 신나선 방방 뛰는 왕녀를 자제시킨 후, 코코아와 그녀를 번갈아 쳐다봤다.
사실 이곳에선 코코아를 앞세워야 할지, 왕녀를 앞세워야 할지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만약 코코아가 언급한 보물이 정말 신수라면? 혹은 신수가 아니더라도 정말 이곳에서 보물을 얻을 수 있다면? 녀석이 길 안내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게 아닐 것 같으면 말 전문가라고 볼 수 있는 왕녀를 앞세우는 게 시간적으로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답은 금방 나왔다.
“일단 저쪽으로 이동하자. 저기는 그래도 다른 것들도 있는 것 같아.”
“어디든 좋아! 말이 없으면 안 되지만!”
“······.”
나는 코코아가 가리킨 쪽을 돌아봤다.
코코아의 말 대로였다.
그쪽 역시도 말을 파는 상인들로 가득했긴 하나, 자그마한 동물들도 함께 팔았다. 강아지, 새끼돼지, 원숭이, 앵무새, 매······.
“놀러왔냐? 말부터 골라야지.”
“말은 됐어. 왕녀더러 고르라고 해.”
다소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다른 건 뭐가 있는데.”
“나도 몰라. 그냥 커다란 거 말고 작고 귀여운 거 보러 가자.”
“······.”
별 의미 없는 소리였을지도.
어쨌거나 우리는 앞장선 코코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에, 에잇! 이, 이 빌어먹을 녀석이!”
어디선가 악다구니에 찬 욕설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웬 소란이 일고 있었다.
“누, 누가 좀 도와줘!”
“위험!”
우리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놀라 소리치고 있는 이 옆에, 웬 거대한 흑색의 말 한 마리가 성난 투레질을 반복하고 있었다.
기묘했다.
분명 말은 상인이 저렇게까지 놀랄 정도로 날뛰고 있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 가만 멈춘 채로 콧김만 세차게 불어대고 있을 뿐.
헌데 주인과 주위 반응이 요상했다. 당장 가서 안정시켜도 모자를 판에, 말에게 섣불리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는 필시 말의 과거 행적을 알려주는 것으로, 저와 같은 상태가 되었을 때 저 녀석은 얼마 뒤 통제되지 않는 폭군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뜻과 같았다.
그리고 이는,
‘······이런 곳에 클리셰가?’
내겐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되었다.
틀림없었다. 주인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거대한 말. 다른 말에 비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녀석일 것이나, 성질이 사나워 누구도 데려가지 못하고 있다는 설정.
느낌이 왔다. 저 녀석 저거, 평범한 말 아니다.
“후후······ 내가 한 번 가볼까?”
나는 그러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어엇, 괜찮겠어?”
왕녀가 다가와 말리려 했지만 나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오히려 다른 이들보다 왕녀가 더욱 위험했다. 내가 나서지 않는다면 분명 왕녀가 저 녀석에게 먼저달려갔을 테니까. 가장 위협적인 경쟁상대라고나 할까.
나는 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 즈음엔 주인도, 구경꾼들도, 또한 말도 나를 의식했다.
“다, 당신······? 위험하니 물러서는 게······.”
“괜찮습니다. 제가 한 번 맡아보도록 하죠.”
이어, 나는 녀석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딱히 신수라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보통의 말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평범한 말이 저토록 적의에 찬 시선을 드리울 리가 없으니.
흐음.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나는 말에 대해 아는 게 쥐뿔만큼도 없었다. 기분을 달래주기는커녕, 더 나쁘게 하지 않으리란 보장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믿는 구석이 하나 있긴 했다.
바로 [사우스랜드 국립공원 동물원 사육사]란 배경 속에 포함되어 있던 히든 특성, ‘동물친화.’
그나마 이 녀석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특성 때문일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녀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일단 이마부터 시작해 살포시 쓰다듬어준 다음, 말갈기 쪽으로 슥 내려가면 괜찮지 않을까······.
그때였다.
“위, 위험!”
“응?”
히이잉-!
퍽-.
“······.”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옆을 돌아보니 어느새 사색이 된 말 상인이 내 곁에 있었다.
“사, 살아 있나?”
“······.”
“미, 미안하지만 치료비는 없어. 내가 물러서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그제야 조금 전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저 말이 말발굽으로 내 정수리를 찍었다.
“······.”
때마침 한줄기 핏방울이 이마를 타고 스르르 내려왔다.
“주, 주걱턱! 피! 피야!”
“혀, 형님 피가······!”
“······.”
딱히 통증은 없었다. 그냥 피부가 아주 살짝 찢어진 것에 불과했다.
내 신체는 고작해야 말발굽에 한 번 채였다고 해서 어디가 막 부서지고 할 만큼 약하지 않았으니. 물론 이 또한 저 말의 힘이 어마어마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고.
하지만 그럼에도,
“저놈의 말 새끼를······.”
놈을 가만 둘 순 없었다. 저거 궁둥짝이라도 한 번 차줘야지.
희한하게도, 녀석의 눈에서 더 이상 적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보이는 건,
히, 히이잉-!
웃음기뿐이었다.
웃고 있었다. 저 말이 내 정수리를 찍은 뒤, 웃고 있었다.
분노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래, 언제까지 웃을 수 있나 보······.”
그때였다.
“그래, 그래 착하지?”
“······?”
언제 또 달려갔는지, 왕녀가 녀석의 곁에 붙은 채 갈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녀석은 좋다는 듯 푸르릉- 콧소리를 내고 있었고.
게다가,
“아니, 저 여인은 대체······.”
“저 검은 악마를 길들이고 있어!”
“대, 대단하다!”
주위의 반응 또한 심상치가 않았다.
어느새 맞고 나가떨어진 나보다 왕녀 쪽이 모든 관심을 독차지 하고 있었다.
심지어 본래의 내가 노리던 반응, 바로 그것이었다.
······.
그즈음,
“자, 주걱턱. 울지 말고 일어나.”
“형님, 말이랑 저희는 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냥 이쯤 하고 여기서 나가시죠?”
코코아와 치누아비가 곁으로 다가와 위로한답시고 나를 부축했다.
“······됐어, 너희들도 한 마리씩 골라. 왕녀는 이미 고른 듯 보이니까.”
뭐, 별 수 없지 않나.
실은 아주 예상 못한 상황도 아니었다.
히든 특성들 중엔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지 않는 이상엔, 결코 강화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 아마 ‘동물 친화’도 그쪽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제아무리 내 캐릭터로서의 ‘격’이 높아졌다곤 하나, 동물과의 접촉 한 번 없이 동물친화력이 올라간다는 건 아무래도 말이 안 되긴 했으니.
“후······.”
어째 다시금 칼 자이드의 고유능력이 탐이 나는 순간이었다. 녀석의 능력은 이 또한 예외를 두지 않으니.
‘······기다리라고.’
잠시 후,
“자, 괜찮은 녀석들로 데려왔어.”
왕녀가 자신의 말(아까 그 녀석)을 포함하여, 우리의 것들까지 다 골라왔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썩 괜찮아 보이는 녀석들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왕녀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저 건방진 녀석이 가장 우람해 보이긴 했지만.
이어,
“헤헤······ 그럼 계산은 어떻게?”
왕녀를 따라온 말 상인이 손을 비비며 슬쩍 물어왔다.
이에 왕녀가 말없이 슬쩍 나를 바라봤다.
“뭐, 돈?”
“나중에 왕국가면 줄게. 당장은······.”
뭐, 알만 했다. 애당초 왕녀 본인이 돈을 들고 다니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나는 곧장 상인에게 다가갔다.
“저 검은 말 내 정수리를 찍은 거 알죠? 좀 깎아줘요.”
그러자,
“아, 저 녀석 값은 받지 않겠네. 실은 우리 쪽에서도 골칫덩이였던 녀석이라. 데려가주는 거에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지.”
상인이 씩 웃으며 말을 받았다.
“······.”
참나, 무슨 그런 것까지 클리셰냐.
“그래서 다 하면 얼마죠?”
“팔백만 골드만 주게. 싸게 주는 거야.”
응?
본래 말의 시세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좀 싸게 느껴졌다.
게다가 왕녀의 동그래진 눈을 보니, 확실히 싼값이긴 한 모양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자, 코코아 출동.”
그때였다.
“돈 없는데.”
“뭐?”
“돈 없어. 부족해.”
부족할 리가 있나.
“말이 돼?”
“우리 돈 없어. 텅텅 비었어. 거지야.”
“뭔 소리야. 지금 안에 들은 게 얼만데······ 너 또 삥땅쳤냐?”
“아니.”
“근데 왜 없어. 대체 언제 다 빼돌린 거야?”
“아냐, 억울해. 실은······.”
이어진 코코아의 설명은 실로 기묘한 것이었다.
피르미노의 네오 아카이브에서 바주카포를 꺼내 쏠 당시, 주머니가 알아서 바주카포의 값을 가져가버렸다는 것이다. 아무리 뒤져도 뭐 하나 남은 게 없었다고.
“그래도 바이킹은 아직 있어. 그건 남겨뒀더라고.”
“······.”
이게 대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설정인지.
고유능력인 주머니가 저 스스로 ‘내어준 것’과 ‘들어 있던 것’들의 가치를 매기고, 이를 청구한 뒤 수거해버렸다고?
“······.”
원작에서도 본 적이 없는 능력이라 그런지, 쉬이 이해되지가 않았다. 사실 ‘있지도 않은 것’을 꺼내준 것부터가 희한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당장엔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 뭐, 혹시 돈이 없으쇼?”
어느새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상인이 물어왔다.
“아, 그런 건 아니고. 지금 현금이 다 떨어져서. 기다려 봐요. 금방 구해올 테니까.”
나는 이어 코코아와 왕녀에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 말한 뒤, 치누아비를 불렀다.
“가자.”
“예? 어디를······.”
“어디긴, 돈 구하러 가야지.”
“······돈이요? 어디서?”
“어디긴.”
말이 이렇게나 많은데, 경마장 하나 없겠냐고.
*
“오랜만에 내기나 한 번 할까?”
치누아비는 금세 불타오르는 표정이 되었다.
“좋지요.”
“알지? 누가 더 많이 벌어 오냐 하는 거야.”
“기한은?”
“시간이 많진 않으니까······ 딱 30분. 그 안에 벌어와. 벌 수 있을 만큼. 대신 종목은 겹치지 말자고.”
“좋습니다. 이번엔 지지 않겠습니다.”
“알지? 소원권이다. 이기는 사람한테 원하는 거 하나 들어주는 거야.”
“옙!”
나는 그러고 달려가는 치누아비를 보다, 이내 하나의 고유능력을 흉내 냈다.
[공평을 싫어하는 확률조정자]“여어, 오랜만이야.”
간만에 본 주걱턱 요정은 여전히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또 너니? 미안한데, 못생긴 얼굴은 제발 좀 치워줬으면 좋겠어.”
“내면을 좀 봐주면 안 될까? 알다시피 미소년이 잠들어 있다고.”
“흥, 웃기지도 않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은근슬쩍 내게로 날아오는 녀석이었다. 그래도 한 번 본 얼굴이라 친근감이 생겼던 걸까.
이어,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경마 경기 시간대를 확인했다.
5분 뒤 한 경기. 15분 뒤 또 한 경기. 그리고 25분 뒤 한 경기.
“오케이.”
물론 저 세 경기에 다 참가할 생각은 없었다. 단 한 경기면 충분했다. 여기 경마장 내의 돈을 몽땅 쓸어오기에.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못생긴 녀석이 바라는 것도 많구나? 뭔데?”
나는 녀석을 보며 씩 웃었다.
“별 건 아니고······.”
나는 현재 레오 일행의 모든 능력을 흉내 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만한 숙련도가 있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설사 내가 더 상위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다만, 시아나의 능력만은 달랐다. 나는 이 능력을 적어도 어느 방편으로는 그녀보다 더 잘 활용할 자신이 있었다.
이유야 간단한데, 아직은 시아나조차 알지 못하는 이 능력의 ‘본질’에 대하여 이미 일찍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공평을 싫어하는 확률 조정자]의 능력은 단순히 어느 한 게임 내에서 내가 이길 수 있도록 확률을 조정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 능력의 가장 사기적인 부분은 바로, 상황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전광판을 가리켰다.
“지금 저 마지막 경기 보여?”
“응.”
“저 중에서 어느 한 말이 경기 시작 20분을 앞두고 갑자기 교체될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응? 바꾸고 싶다는 소리야?”
이어, 나는 그즈음 곁을 지나쳐가고 있던 골골대는 말 한 마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교체될 말이······ 저렇게 늙고 병든 데다, 약해빠진 말일 확률은?”
“뭐, 그리 높진 않겠지. 당장은.”
“그럼 마지막으로······ 그 말이 출전해서 우승할 확률은?”
그즈음 요정은 내 말뜻을 다 알아차린 듯했다.
“못생긴 녀석이 바라는 것도 많지! 욕심쟁이 같으니라고!”
“할 수 있지?”
“흥!”
다행히 싫다거나 못한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이 ‘상황 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조정코자 하는 상황의 실현가능성 유무인데, 그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나의 ‘힘’과 ‘격’이었다.
물론 나도 내 힘을 토대로 이 실현가능성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떠한 방식으로 산출되는지 까진 알지 못했다.
다만 내가 원작을 보며 이해한 바로는, 상황을 조정하는데 있어 내 능력을 벗어나는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 한, 그 상황이 그대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20분이라······ 뭐하지.”
앉아서 경마 구경이나 할까 하다 그냥 좀 더 돌아보기로 했다. 코만 좀 막으면, 어쨌거나 구경할 맛은 나는 곳이었으니.
그리고 혹시 또 모르지 않나. 코코아가 말한 ‘보물’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그렇게 5분간 주변을 슬쩍 돌아다니고 있을 즈음이었다.
문득, 그야말로 문득, 오른 쪽 시야 끝 부근에서 갑작스레 환히 빛이 났다.
‘뭐야······ 설마 길눈이 작용한 건가?’
나는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고, 거기서 ‘그것’을 발견했다.
순백의 새 한 마리.
녀석은 자그마한 새장 속에 갇힌 채 처연히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으나, 오히려 그 슬픔이 그 영롱하고도 찬란한 자태를 부각시켜주는 듯했다.
보는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