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36)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37화(136/280)
새해의 시작은 다사다난 2
사람이 눈에서 레이저를 쏘면 딱 저런 모양일 듯하다.
매튜가 애슐리 앞에 섰다.
“애슐리.”
“어? 왜? 매튜?”
딱 봐도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 오히려 차분해진 목소리인데 애슐리는 상황 파악이 안 된 모양이다.
방금까지 스칼렛의 머리통에 잽을 날리던 우악스런 손길은 어디 가고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혀가 내둘러질 정도.
반면 스칼렛의 눈에는 물기가 차오른다.
뒤돌아서는 스칼렛의 손목을 잡아챈 매튜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너를 만난 게 내 인생 최대 실수야. 우리는 이미 헤어졌고, 지금 내 여친은 스칼렛이야. 한 번만 더 스칼렛한테 그따위 소리 지껄이면 나도 더는 가만 안 있어.”
“매, 매튜! 내가 빌었잖아! 잘못했다고 그랬잖아!”
“꺼져.”
“싫어! 매튜, 너 나 사랑한다며? 첫사랑이라며?”
“…말이 안 통하는군. 애슐리, 지금 내 경고 무시하면 진짜 사달 난다. 조심해라. 스칼렛, 가자.”
“응.”
― 피유우우~
― 애슐리, 그러게 적당히 하지 그랬어.
― 매튜, 남자다!
.
.
.
매튜가 스칼렛의 손목을 잡고 움직이자 홍해가 갈라지듯 아이들이 길을 만든다.
매튜와 눈이 마주쳤다.
눈짓으로 저기 정리 좀 해 달란다.
내가 뭐 할 게 있을까 싶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여 있던 아이들도 사사삭― 흩어졌다.
애슐리와 스칼렛의 싸움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 튀어왔던 학교 경찰들과 선생님들을 의식한 것이다.
그들이 막 도착하자마자 매튜의 등장과 함께 싸움이 소강상태에 빠지니 일단 해결부터 보라고 잠시 기다려 준 것이다.
누구 하나 흉기를 들거나 교사에게 덤빈 거였다면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갔을 거다.
팔짱을 끼고 구경하던 군인들도 부스 뒤로 숨어 버렸다.
크리스틴의 말로는 1년에 한 번 정도는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라고 했었다.
올해는 학기 초에 있었던 베티와 엠마가 그 주인공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거랑은 쨉도 안 되네.
학군 점수를 7점으로 올린 건 교육청의 실수가 아니었을까?
제이콥이 뻘쭘하게 서 있다가 정리를 시작했다.
나와 같이 튀어왔던 ACC 멤버들도 같이 도왔다.
일이야 금방 끝났다.
육탄전을 벌이긴 했지만 그래 봤자 백인 여자들 간의 싸움이다.
물론 그래도 동양계 여자들에 비하면 월등한 힘을 자랑하지만, 남학생들, 특히 흑인들끼리 붙으면 이렇게 안 끝난다.
벽 하나 뚫리는 건 기본이다.
모두들 말없이 조용히 잔해들을 치우고 있는데, 예상외로 미아가 먼저 입을 연다.
“근데 애슐리랑 스칼렛이 진짜 매튜 두고 싸운 거야? 말로 하면 될 걸 왜 저랬대?”
“미아야, 잘 들어 봐. 처음엔 말로 했겠지. 그런데 안 통했겠지? 딱 봐도 애슐리가 먼저 스칼렛의 뺨을 날렸겠지. 열받은 스칼렛이 애슐리의 머리카락을 잡아챘겠지. 애슐리가 열받아서 주먹을 날렸지. 그래도 스칼렛은 절대 놓지 않았지.”
“알렉스, 너 다 봤구나?”
“눈치하고는. 저기 화장실 갔다 오는데 둘이 말싸움을 하고 있더라고. 딱 봐도 사달이 나겠다 싶어서 잠깐 대기했지.”
“매튜한테 먼저 말하지.”
“제이콥한테 말했어. 그리고 제이콥이 매튜 찾아 온 거잖아. 매튜는 수업이었을걸?”
“…….”
“그나저나 저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딱 봐도 3일 정학이지. 베티랑 엠마 때와는 수준이 달라.”
알렉스의 짐작이 맞았다.
애슐리와 스칼렛은 일주일간의 정학을 당했다.
11학년이라는 걸 감안하면 좀 큰 징계라고 할 수 있다.
정학은 기록에 남고, 특히 기간이 길수록 위험도가 높다.
사실 우리는 몰랐지만, 그날 시 교육부에서 감찰이 있었다고.
겨우 끌어올려 놓은 학교 점수를 도로 까먹게 생겼다며 할머니 교장 선생님이 엄청나게 분노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학교 점수가 낮아지는 건 옳지 않다.
‘아무래도 AMC 10 테스트를 쳐야겠군.’
AMC는 학교 밖 시험이긴 하지만 AMIE에 퀄리파이드(시험칠 자격이 되는 것)된 학생이 많다는 건 학교 수업의 질이 높다는 뜻과 같다.
학교 이미지 역시 좋아진다.
그러면 대학에서도 이 학교 출신들은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버릴 원서를 한 번쯤은 봐 주기도 하는 거다.
누구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왠지 이 학교를 끌고 가야 할 느낌이 든다.
이거 너무 과한 망상적 책임감인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까나.
한낮의 소동이 그렇게 사라졌다.
* * *
헬스 시간.
헬스라고 헬스장에서 하는 것처럼 육체 운동을 하는 건 아니다.
약간 생물과 체육, 상식(?)에 관한 것들이다.
인체의 기본 구조부터 장기와 같은 신체 요소들과 중요 영양소와 건강을 지키는 요인들, 그리고 마약이나 알코올을 미리 접했을 때의 증상이나 질병들, 성관계부터 그에 따른 책임과 질병 등등.
그냥 건강과 관련된 여러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배운다고 보면 된다.
성에 대한 일반적인 건 6학년 때부터 배우는데 동성 간의 관계 시 어디로 삽입하는 지까지 다 배운다.
이는 부모들의 동의서가 필요한데 몇몇 빼고는 그냥 다 듣는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봤는데 그런 관계를 슬라이드 문서로 보는 건 별로 재미가 없었다.
거기에 각종 질병이나 책임에 대한 설명이 뒤따라오기 때문에 교육을 받고 나면 ‘차라리 하지 말자.’ 하는 느낌이 더 들 뿐이다.
지금 우리 학교에서는 없앴지만 헤일리와 클로이가 11학년이었을 때만 해도 ‘아기 인형으로 아이 키우는 실습’ 수업이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 대는 아기의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고 하는 걸 진짜로 해야 하는 거다.
딱 2주일만 하면 크레딧이 나오는 거라 많이들 신청했다가 밤낮으로 요구해 대는 아기 인형을 부숴 버린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고.
킨더 때 엄마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어떤 남자 고등학생이 밥 먹다가 갑자기 일어나 아기 인형을 안고 흔들면서 달래던 모습을 보았다.
그땐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다.
나머지 가족들이 모두 킬킬거리며 식사를 하고, 본인은 얼굴이 빨개져서 인형을 달래던 모습.
나중에 알고 보니 수업의 일부였던 거다.
아무튼 각설하고, 평소에도 진지충이라 할 수 있는 헬스 선생님이 수업이 끝나갈 때쯤 잠시간 입을 다물었다.
자연스레 부산스러웠던 아이들의 시선이 교사에게 모여들었다.
“학기 중간에 휴직을 하게 되어 유감이다. 오늘 이 시간이 너희들을 가르치는 마지막 시간이다. 나는 곧 이스라엘로 출국한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스라엘 예비군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들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란다.”
― 흐억.
― 헙.
.
.
.
여기저기서 헛숨을 들이킨다.
벌써 3번째다.
이스라엘로 떠나기 위해 휴직계를 내는 선생님이.
학교 전체를 보면 쥬이시(Jewish, 유대인)가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가끔 전혀 뜬금없는 날에 학교가 문 닫을 때가 있는데, 대부분 유대인 휴일이라서다.
학교가 쉬니 좋기는 하지만 우리 ‘한글날’ 같은 때에 미국 학교가 그걸 기념해 쉬는 것 같은 느낌이라 의아할 때가 있긴 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누군가 손을 들었다.
“뭔가?”
“선생님은 미국 시민 아닌가요?”
“듀얼 시티즌(dual citizenship)이다. 미국 시민이기도 하지만 유대인이기도 하고, 이스라엘 시민이기도 하지. 이스라엘은 다국적을 허용한다.”
“다른 가족들도 같이 가시나요?”
“나와 여동생, 사촌 동생이 함께 간다.”
“…….”
“이상이다. 그럼 다들 잘들 지내거라.”
헬스 선생님이 교실을 나갔다.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이 다른 수업을 위해 교실을 나가야 하는데, 오늘은 선생이 먼저 나간다.
진짜 떠나나 보네.
‘대박!’
속으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그는 이제까지 보던 말라깽이에 매사 진지하던 선생이 아닌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나만 느낀 건 아닌 모양이다.
충격받은 아이들이 이쪽저쪽에서 웅성거린다.
“와, 대박. 저 선생님, 쥬이시였어?”
“야, 너는 다른 나라 살다가 미국 전쟁 난다고, 오라고 하면 오겠냐?”
“전에 우크라이나에 전쟁 났을 때도 몇몇 돌아갔잖아? 우리 엄마 회사에서도 몇 명 갔다던데?”
.
.
.
간혹 그럴 때가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미국이다 보니 같은 반에 전쟁 중인 나라 국적자들이 함께 있는 경우가 있다.
8학년 때도 완전 베프로 지내던 우크라이나 출신 아이와 러시아 출신 아이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에 전쟁이 터졌었다.
처음엔 신경도 안 쓰던 두 사람은 전쟁이 길어지면서 각자의 친척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하니 결국 서먹한 관계가 되어 버렸다.
어른들의 세계는 좀 더 은밀하다.
교사들부터 행정 직원들까지 다양한 나라 출신들이 있다.
겉으로는 평소와 똑같은 상태로 지낸다.
어느 순간, 피해 국가 출신들은 자신들의 국기를 자동차에 매단 채 출근하기 시작했다.
피해국인 본인 나라에 격려를 보냄과 동시에 해당 국가 출신들에게 보내는 무언의 항의다.
당연하게도 가해 국가 사람들은 국기를 내걸지 않는다.
그저 몸을 사리며 조용히 사태가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거다.
우리 동네 패트릭 아저씨도 러시아 이민 2세라고 그랬다.
친척 중에 우크라이나 사람도 있고, 러시아 사람도 있다고.
양쪽에서 친척들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한참을 슬퍼했었다.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싸움.
대도시에서는 시위도 한다지만 여기는 시골이다.
대부분은 두 나라 간의 전쟁에 관심도 없고, 학교에서도 무관심으로 대응한다.
어찌 됐든 미국 밖의 일이니까.
일부 대학이나 단체에선 성명서도 낸다지만 여긴 그냥 자신의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쥬이시들이 짐을 싸기 시작한 것이다.
벌써 이 학군에만 3명이란다.
유대인들이 똑똑해서 사회 지도층에 많이 깔려 있고, 언론도 장악하고, 회사에서도 윗줄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그 동네 전쟁 나면 유대인들 다 자기 나라 돌아가서 미국 대기업들 망한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당연히 그럴 일은 없다.
유대인들의 결속력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때도 자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긴 했다지만 내 주변에선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헬스 선생이 여동생부터 사촌 동생까지 다 같이 휴직계를 내고 간다는 걸 직접 들으니 놀랍기는 하다.
이런 일은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헬스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엄마와 삼촌, 숙모 역시 말을 거든다.
“병원도 비상이야. 의사 2명이랑 간호사 2명 휴직계 냈어. 지금 바로 떠나지는 않고 잠시 대기한다고 하더라고. 요청 오면 바로 떠난다고 휴직계 낸 거고.”
“제가 전에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일한 적이 있거든요. 유대인이라고 다 잘난 거 아니고, 다 잘사는 거 아니잖아요. 근데 그 사람들은 절대 자기 식구들을 버리지 않아요. 못나고 부족해도 끝까지 끌어안고 가더라고요. 좀 놀랐어요.”
“미국도 잘난 1%가 나머지 다 끌고 간다고 하잖아. 그런 건가?”
“암튼 지금 우리 회사 본사 쪽은 좀 심각한 모양이더라고, 매일 점심때마다 유대인들 모여서 미팅하고, 기도하고 그런다던데. CEO가 인도인인데도 단 한마디도 안 했대. 유대인 파워 무시 못 하는 거지. 평소엔 쥐어짜는 게 일인데 말야.”
“종교가 진짜 무섭긴 하네.”
“근데 이러다 진짜 3차 대전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분위기가 심각해진다.
리암 삼촌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든다.
“아! 제이든, 너 혹시 그거 사인했니? 그거 있잖아, 그거. 남자들 사인하는 거.”
“네? 아, Selective Service System이요? 아직 나이가 안돼서 안 했어요.”
“리암, 그게 뭔데?”
“아, 메디슨은 여자라서 모르겠네. 남자들 18세 되면 등록하는 거야. 미국에 전쟁 나면 지금처럼 모병제가 아니라 징병제로 바뀌거든. 거기 사인하는 거야. 의무 사항이라 반드시 해야 돼.”
“저 아직 14살이에요. 대학 입학하기 전에 나올 거예요.”
“아, 그런가? 휴, 다행이다. 그래도 몇 년 안 남았네. 세월 참… 빠르다.”
미국에서 자라면서 나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전쟁이 난다면 나는 돌아가서 싸워야 할까?
모르겠다.
마음 같아서는 가야지 싶으면서도 실제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지면 어떤 선택을 할지….
그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 *
토요일.
디베이트 대회가 있었지만, 오늘은 빠지기로 했다.
어차피 스테이트 챔피언십 출전 자격을 얻었기에 다른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주기로 한 거다.
대신 라이언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라이언의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