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37)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38화(137/280)
전화위복 1
1월 말.
춥다.
눈도 많이 쌓였다.
원래라면 10월 말부터 와야 할 눈이 요즘엔 12월이나 되어서야 시작한다.
대신 1월 중순부터 2월은 거의 매일같이 눈이 쏟아진다.
정말 하늘에서 똥이 내린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다.
예전에는 눈이 5인치 정도 쌓이거나 기온이 화씨 0도, 섭씨로는 영하 17도 정도면 학교 문을 닫았었다.
이메일이나 전화로도 알림이 오지만 텔레비전 뉴스 하단에 어느 학교가 문을 닫는지, 2시간 딜레이(delay, 2시간 늦게 등교하는 것) 하는지 등이 오전 내내 광고된다.
그래서 눈이 좀 많이 오거나 추운 날 아침엔 눈 뜨자마자 제일 먼저 뉴스를 틀곤 했었다.
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광고 한 줄이 보이면 그게 그렇게 좋더라.
하루 종일 뒹굴거리면서 영화도 보고, 게임도 했었지.
그런데 요즘엔 학교를 안 가도 줌으로 클래스를 다 한다.
겨울의 낭만이란 게 없어진 거다.
뭐, 선생님들 중에는 온라인 클래스 때 학생들이 전혀 집중을 못 한다며 아예 공강을 해 버리는 분들도 있다.
창밖으론 학교를 닫을 만큼의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데…. 젠장 토요일이다.
이번 주 디베이트 대회는 다른 주에서 열린다.
참가하겠다고 사인한 디베이트 클럽 멤버들은 오전 7시에 모여 스쿨버스를 탔다고.
제법 짜증이 났을 거다.
안 가기 잘한 거 같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는데, 삼촌이 들어온다.
“어? 제이든, 어디 가?”
“네, 라이언 집에요. 삼촌은요?”
“나? 엘리 기저귀가 다 써서 사러 가는 길. 너네 집엔 뭐 필요한 거 없어? 엄마는?”
“2층에요. 저 데려다준다고 옷 갈아입는 중이에요.”
“내가 데려다줄게. 조금만 돌아가면 되는데, 뭐.”
“저야 좋죠, 엄마!”
삼촌은 엄마에게 우리 집에 필요한 물건들 목록을 받아 차에 시동을 걸었다.
삼촌과 둘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숙모는 좀 어떠세요?”
“어우, 말도 마라. 엘리 때는 안 그랬는데 이번엔 입덧이 너무 심해서 뭘 먹지를 못해. 하루가 다르게 말라간다.”
“잘해 드리세요. 임신 때 서운한 건 평생 간다던데.”
“하하하, 오냐. 가끔 널 보면 참 신기하단 말야. 그런 건 어디서 본 거야?”
“숏츠 이것저것 보다 보면 나와요. 엘리는 괜찮아요? 엘리도 아직 아긴데 엄마가 힘들어서 어쩐대요. 좀만 더 컸어도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도 되는데요.”
“하하,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중에 둘째 태어나면 가끔 맡기마. 연년생이라 진짜 감당이 안 될 거 같아.”
“넵, 걱정 마세요.”
“든든하네. 근데 라이언 집에는 왜 가는 거야?”
“아, 그게요. 라이언 아빠가요….”
.
.
.
삼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라이언 집 앞이다.
라이언이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다.
“추운데 뭐 하러 나와 있어?”
“나도 차 소리 듣고 나온 거야. 리암 삼촌, 안녕하세요?”
“어. 라이언, 너희 둘 다 집일이라고 띄엄띄엄하지 말고 꼼꼼히 해라. 원래 돈 받고 하는 일은 잘 해야 해.”
“하하, 네, 걱정 마세요. 참, 제이든 집에 갈 때는 제가 라이드할게요.”
“그럴래?”
“네, 운전 조심하세요.”
“그래, 수고.”
나는 언제 면허 따냐고.
이렇게 추운 날씨나 더운 여름에는 그냥 무면허라도 운전대를 잡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많다.
내가 또 운전은 얼마나 기가 막히게 잘 하는지….
인생 망치고 싶지 않으면 자제해야지.
“일단 들어와. 들어와서 좀 쉬었다가 하자.”
“아냐, 일부터 하고 쉬자. 그래야 마음이 편해. 염색은 또 왜 했냐? 그냥 네 머리 색이 예쁘다니까.”
“내 맘이다!”
“어쭈?”
“헤헤, 눈부터 치울까?”
“오케이!”
― 드르르를를. 촤라라락!
눈 기계가 돌아간다.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 눈이 잔디밭으로 휙휙 빠져나간다.
우리 집은 눈삽으로 퍼냈는데.
드라이브 웨이가 라이언 집만큼 길지 않기 때문에 한 20분 삽질하면 끝나기는 하지만 기계가 있으니 편하기는 하다.
내가 눈을 퍼내는 동안 라이언은 눈이 너무 쌓여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정리하고, 벽난로에 넣을 땔감들을 정리했다.
이곳에서 벽난로는 필수다.
한동안 전기나 가스로 하는 벽난로가 유행했지만, 다시 나무를 태우는 벽난로로 돌아오는 추세다.
겨울에 전기 나가면 벽난로를 피울 수도 없고, 무지하게 춥다.
그리고 생각보다 전기가 자주 나간다.
전기가 나가면 인터넷도, 텔레비전도 모두 먹통이 되는지라 심심한 데다 책이라도 읽을라치면 촛불에 의지해야 한다.
손전등은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
그리고 배터리는 비싸다.
온기로 몸도 데워 주고, 밝기로 책도 읽게 해 주는 벽난로는 생각보다 아주 유용하다.
“와, 역시. 너랑 하니까 금방이네. 대충 된 거 같다.”
“그러게. 근데 눈이 계속 와서 금방 또 쌓이겠는데. 가기 전에 한 번 더 치워 줄게.”
“됐어요. 내가 하면 돼. 어차피 주말이라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도 되고. 요즘 진짜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오긴 해, 그치?”
“그러게. 시간 좀 남았는데 눈사람이나 만들까?”
“…춥다. 들어가자.”
짜식이 낭만이 없네.
눈사람 만들기 딱 좋은 폭신한 눈이구만.
집 안으로 들어가니 라이언의 엄마가 따뜻한 코코아와 케이크 한 조각을 건네준다.
안 그래도 다디단 코코아에 미니 마시멜로와 초코 시럽이 잔뜩 뿌려져 있다.
가끔 이 사람들의 입맛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춥다.
입을 갖다 대니 마시멜로가 사르륵 녹는다.
머리가 띵할 정도로 달지만 한 모금 마시니 곧바로 당이 충전된다.
그래도 두 모금은 무리다.
살짝 옆으로 내려놓고, 케이크를 들었다.
역시 달다.
“왜, 입맛에 안 맞니?”
“아, 좀 달아서요. 그래도 당 충전 바로 됐습니다.”
귀가 밝으신가.
한 모금 먹고 내려놓은 걸 바로 인지하신다.
라이언이 자신의 코코아를 쭈욱 들이켜고는 소매로 입가를 스윽― 닦는다.
“제이든, 저녁 먹고 가라.”
“뭐 해 줄 건데?”
“와, 안 물어봤으면 어쩔 뻔? 아빠가 며칠 전에 고기 좋은 거 있다고 주시고 갔어. 스테이크 해 먹자. 내가 또 고기 요리는 기가 막히게 하거든. 엄마도 좋지?”
“당연하지. 아들이 해 주는 건 다 맛있어.”
“오호, 진짜예요?”
“그러엄, 라이언이 고기 요리는 잘해.”
“흠, 그럼 먹어 줘야지. 미리 고맙다. 근데 아버지는 일 할 만하시대? 못 뵌 지 좀 됐네.”
“일이 좀 힘에 부치나 봐. 하긴 운전만 10년을 했는데 지칠 때 됐지. 밥스가든 아저씨한테 이제 우리랑 같이 살면서 다른 일 알아볼까 했다더라고. 음, 마침 오늘 이 근처 지날 거라고 했는데…. 날씨 때문에 들르지는 못할 거 같아.”
“아저씨가 큰 결심 하셨네.”
“내 말이. 우리 돈 필요 없으니까 그냥 세 식구 같이 살면 안 되냐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안 듣더니. 전에 2달 쉬었잖아. 그때 진짜 마음이 편했나 봐. 이제 바쁜 연말 시즌도 지났고 하니까 본격적으로 마무리할 거 같아.”
“다행이다.”
― 따르르르릉.
요란하게 울리는 라이언의 전화기.
“하하. 라이언, 전화벨 소리가 그게 뭐야?”
“왜? 고전적이고 좋잖아. 근데 누구지?”
“왜? 모르는 번호야?”
“어. 스팸인가? 에잇! 안 받아야겠다. 보자. 고기가 좀 해동돼야 하니까….”
― 띠리리링.
미세스 해밀턴의 전화기.
번호를 본 라이언의 표정에 물음표가 떴다.
“뭐야? 왜 같은 번호로…. 엄마, 일단 내가 받아 볼게.”
“어. 그럴래?”
라이언이 엄마도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폰으로 바꾼다.
“여보세요?”
― 미스터 해밀턴의 가족 되십니까?
“네, 제가 아들입니다. 누구시죠?”
― 다행입니다. 연락이 안 돼서. 여긴 병원 응급실입니다. 고속도로 5중 추돌 사고가 있었는데, 미스터 해밀턴 씨가 몰던 화물 트럭이 전복되면서….
순간적으로 스피커를 끄는 라이언.
라이언의 엄마가 새파랗게 질린 채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다.
라이언이 굳은 얼굴로 휴대폰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저, 저기. 제이든.”
“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야? 우리 남편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거야? 저, 전복?”
“…네, 라이언이 병원 관계자랑 통화하고 있으니까 기다려 봐야 될 거 같아요.”
“벼, 별일 없겠지?”
“…….”
“왜 대답이 없어?”
“그러길 바라야죠.”
떨고 있는 미세스 해밀턴이 안쓰럽긴 하지만 빈말이라도 괜찮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큰일이 일어난 거라면 난 그 대답에 책임을 질 수 없으니까.
잠시 기다리자 라이언이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라이언, 어떻게 된 거야?”
“엄마, 놀라지 말고 잘 들어. 일단 아빠 생명에는 지장이 없대.”
“그게 무슨 소리야?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면? 다른 거엔 지장이 있단 소리야?”
“아빠가 어제 그랬잖아, 오늘 새벽쯤 이 동네 앞 고속 도로 지날 거라고. 요즘 계속 눈이 많이 왔잖아. 새벽엔 앞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보라가 몰아쳤었나 봐. 앞 트럭이 미끄러졌고, 아빠가 급하게 브레이크 밟았는데 결국 그 차 뒤를 치고 미끄러졌대. 그 뒤로 줄줄이 3대가 더 미끄러지고.”
“…….”
“겉보기에 아빠랑 앞차 운전자 상태가 심각해서 바로 수술 들어갔대. 다른 데는 생각보다 중상은 아니었는데…. 다리가 보드에 끼어서…. 결국, 후우, 수술 중에 오른쪽 다리를 잘라냈대.”
“크허허허헉.”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아빠는 지금 중환자실이래. 경찰에서 아빠 차 조회해서 회사에 연락했고, 회사에서 내 전화번호를 알려 줬다는데, 아까도 전화했는데…. 내가 밖에서 일하느라 못 받았어. 미안해, 엄마.”
“네, 네가 왜 미안해. 그러지 마. 아빠 병원이 어디지?”
“1시간 거리에 있는 응급실. 내가 혼자서는 무리일 거 같아서 좀 전에 밥 아저씨한테 연락했어. 아저씨가 같이 가 준대. 지금 오고 있을 거야.”
“미안하다, 아들. 내가… 내가 앞을 못 봐서…. 흑흑, 너한테… 짐을…. 흑흐흑.”
“엄마, 울지 마. 우리 이제 강해져야 해. 아빠가 빨리 깨어나게 엄마는 기도하고 있어.”
“그래, 그럴게.”
담담하게 말을 전하는 라이언.
라이언의 엄마는 볼 수 없겠지만 지금 라이언의 상태는 아주 안 좋다.
애써 의연한 척을 하고 있지만, 피가 안 통할 정도로 두 주먹을 꽉 쥐고 있다.
괜히 검은 머리로 염색을 해서 하얀 얼굴은 아예 하얗게 질리다 못해 새파랗게 보일 정도.
밥 아저씨가 온다고 해도 같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라이언, 같이 갈까?”
“제이든, 너 괜찮으면 우리 엄마 좀 부탁해도 될까?”
“어머니는…. 잠깐만 기다려 봐.”
엄마한테 연락을 했다.
라이언 아빠의 일을 설명했고, 엄마는 바로 출발하겠단다.
이 상황에선 나보다 엄마가 훨씬 낫다.
“엄마가 온대.”
“고맙다.”
잠시 후,
― 벌컥!
“라이언!”
밥 아저씨가 들어왔다.
거의 동시에 엄마와 마커슨 엄마가 함께 들어왔다.
급하게 집에서 나오는데 집 앞에서 마주쳤다고.
큰 설명은 필요 없었다.
어쩌다 보니 지난 땡스기빙데이에 함께 모였던 사람들이다.
미세스 라이언이 엄마의 손길에 진정하는 모습을 눈에 담고는 그대로 출발했다.
밥 아저씨의 차를 탄 후 얼마 안 있어 라이언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숙인 얼굴 아래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의연하게 대처하다가 기댈 수 있는 어른을 만나니 그제야 긴장이 풀어진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라이언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뿐.
한참을 그대로 두던 밥 아저씨가 화장지를 건넨다.
“라이언, 너도 씩씩하지만 내 친구 라이언도 아주 강한 사람이야. 알지?”
“흑흑, 네.”
“마음 단단히 먹자. 라이언이 의식을 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만나면 무조건 웃어. 자존심도 강하고, 책임감도 강한 내 친구 라이언이…. 후우…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네가 옆에서 잘 보살펴야 한다.”
“흐흐흑, 그럴게요. 그럴 거예요.”
“그래, 이제 진정해. 거의 다 왔어. 어휴, 이제 좀 살만하다 싶었더니….”
“…….”
“좋게 생각하자. 저기 캘리포니아 같은 데 있다가 사고 났으면, 으휴. 날씨 때문에 비행기도 안 뜨는데 어떻게 갔겠어? 그래, 5중 추돌에 다리 한 짝이면 괜찮은 거야. 어차피 그 일도 그만두려고 했고, 물류 트럭이라 보험도 좋고, 보상금도 두둑할 테고. 이젠 좀 편하게 살면 돼. 비 올 때 다리는 좀 욱신거리겠지만, 이제 달리기는 다 했네, 끌끌.”
가끔 미국인들의 자조적인 농담이 적응이 안 될 때가 있다.
슬픔 속에서도 애써 웃음을 찾는다고 해야 하나?
가끔 그 포인트가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할 때가 있지만 그게 또 묘하게 위안이 된다.
어른은 어른인가?
20대 후반에 죽어 버렸던지라 40대 후반 어른들의 여유는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잠시 후, 라이언이 완벽히 진정이 되었을 때 우리는 병원 앞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