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56)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57화(156/280)
씨 뿌리기와 수확 1
― 드르륵.
제이콥이 손에 뭔가를 잔뜩 들고 공부방으로 들어섰다.
요즘엔 매번 전국 대학들의 홍보물을 들고 온다.
처음엔 대학들이 어떻게 자신의 주소를 알고 홍보물을 보내는지 모르겠다며 엄청 신기해하더니, 요즘엔 실망하는 날도 많다.
랭킹이 높은 대학들에서는 안 오고, 랭킹 100위권 내의 고만고만한 대학들에서만 홍보 자료를 보낸다고 했던가.
오늘도 그중 하나인 줄 알았다.
공부방으로 들어선 제이콥이 힘이 잔뜩 들어간 어색한 걸음걸이로 내 앞으로 직진하더니 뭔가를 내민다.
자세히 보니 얼마 전 지원했던 피츠버그 대학에서 온 우편물이다.
뭔가 일반 홍보물과는 다르다.
“어? 이거….”
“그치? 이거 그거 같지?”
“합격증인가?”
“리젝 받은 걸 수도 있어. 어떤 대학은 합격한 사람한테만 보내고, 어떤 대학은 리젝한 사람에게도 미안하다고 보낸대. 미안할 걸 뭐 하러 보내? 안 붙여 줄 거면 그냥 말지.”
“그래도 결과를 알면 좋지 않아? 미련을 접을 수 있잖아.”
“몰라, 몰라. 제이든, 나 지금 너무 떨려.”
우체통을 확인한 후 곧바로 공부방으로 직행한 거 같다.
제이콥의 부모님도 아직 확인하지 못했을 내용이다.
근데 분명 이메일이 먼저 왔을 텐데?
“제이콥, 너 이메일 체크 안 했어?”
“이메일은 매일 체크하지.”
“아니, 저번에 새로 판 이메일 말야. 입시 전용.”
“아, 맞다. 그게 있었지?”
“야! 휴대폰에 바로 연동시키라고 했지?”
“깜빡했다. 헤헤.”
Common App에 이름을 등록하면 그때부터 온갖 대학들에서 엄청난 홍보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메일로도 우편으로도.
그래서 입시를 치르기 직전 제일 먼저 할 일이 ‘입시 전용 이메일’ 하나를 따로 파는 거다.
집으로 오는 우편물이야 보고 그대로 버리면 되지만 이메일은 평소 쓰던 것과 섞이면 정말 난리가 난다.
지금은 많지 않지만, 좀만 지나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오기 때문에 나중에는 진짜 읽지 않은 메일만 몇백 통이 넘어간다.
자칫하면 중요한 이메일을 놓칠 수도 있다.
특히 대입 발표는 우편보다 이메일로 먼저 온다.
간혹 Common App이나 대학 자체의 포털에만 결과가 발표 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선 ‘너의 심사가 끝이 났으니, 포털에 들어가 확인해 보라’는 이메일을 따로 보내 준다.
제이콥이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라 제일 먼저 한 것이 그것이었는데.
아무튼 지금은 제이콥의 손에 들린 우편부터 뜯어 봐야 할 거 같다.
공부방 놈들이 몰려든다.
결과가 어떨지 모르니 조심은 하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빛들이다.
지들도 궁금하겠지.
마커슨은 입술까지 마르는지 연신 립밤을 발라 댄다.
“열어 봐.”
“후우, 후우. 안 되겠다. 그냥 네가 열어 보면 안 될까?”
“어. 안돼. 네가 직접 봐.”
“후우, 후우. 그럼 연다. 진짜 연다, 진짜….”
“내가 열어 줘?”
“크리스틴, 이건 제이콥이 하는 게 맞아.”
“기다리다 해 넘어가겠다. 어우, 답답해.”
― 부욱. 후두둑.
총 3장의 깨끗한 레터 용지.
제이콥이 얼마나 손을 떨어 대는지 종이들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진다.
후다닥 줍더니 읽는 제이콥.
바로 옆으로 붙어 읽었다.
Dear. Jacob.
Congratulations and welcome to the Class of 2028 at University of Pittsburgh. On behalf of Pittsburgh’s Faculty, Staff, Students…(하략).
“어?”
제이콥이 얼빠진 소리를 낸다.
“축하한다, 제이콥. 합격했네.”
― 와아! 축하해! 제이콥!
― 축하축하!
― 대박. 제이콥, 축하!
― 와아아아! 우리 공부방 첫 번째 대학 합격이네.
.
.
.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그냥 하나가 되어 얼싸안았다가 점프를 하고, 하늘을 향해 어퍼컷을 날려 댄다.
완전 난리 법석이다.
흥분의 시간이 지나갔음에도 다들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식을 줄 모른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첫 번째 수확이다.
피츠버그 대학은 결코 만만한 대학이 아니다.
GPA도 괜찮고, SAT 점수도 괜찮아서 대충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진짜 합격 소식을 들으니 엄청 기분이 좋다.
“와, 난 대학 합격증이 이렇게 오는 줄 몰랐어.”
“학교 포털에도 들어가 봐. 이메일부터 연동시키고. 지금 바로.”
“어어.”
제이콥이 휴대폰에 이메일을 입력하는 사이 나는 다른 편지 2장을 살폈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핀다.
“와, 제이콥. 이거 진짜 괜찮은데?”
“어?”
“이거 봐. 학점 3.6을 4년 내내 유지하면 해마다 25,000불을 학비에서 깎아 준다는 거야. 음. 그리고 이건. 네가 만약 4년 동안 3.6을 계속 유지했고, 그 후에 로스쿨 진학을 원하면 핏대 로스쿨 진학 보장도 해 주겠대.”
“허얼, 진짜? 아너는?”
“아너는 늦게 발표돼. 걱정 마. 이 정도면 정성이면 아너로도 가능할 것 같으니까.”
“와, 나 정치 쪽으로 원서 넣기 정말 잘했나 봐. 당장 등록할래!”
“제이콥, 이제 자동차 쪽은 아예 관심이 없어졌어? 너 원래 자동차에 관심 많았잖아.”
“아. 마커슨, 그쪽은 수학을 잘해야겠더라고. 내가 숫자가 좀 약하잖아. 매튜처럼 아예 정비를 하면 모르겠는데, 공대 쪽은 수학이랑 물리가 필수더라고.”
“맞아. 엔지니어링이 좀 어렵긴 하더라. 휘유, 진짜 살아남기 힘들다.”
“내 말이. 그래도 Undecided가 아니라 학과를 지정해서 넣은 건 잘한 거 같아. 그러니까 이런 제안도 받잖아. 하하. 아주 좋아.”
원서를 넣기 전 제이콥이 내게 물었었다.
넌 어느 학과로 갈 거냐고.
난 ‘폴리티컬 사이언스(Political Science)’라고 답을 했었고, 제이콥은 냉큼 낚아채 그쪽으로 넣어 버린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학과가 최고일 것 같다나 뭐라나.
왠지 Undecided로는 넣고 싶지 않았단다.
전공이야 대학 가서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까.
전과가 불가능한 곳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전공을 바꾸는 게 어렵진 않다.
잠시 후.
― 와아아아.
제이콥이 드디어 이메일을 연동시켰고, 대학 포털에 들어갔더니 작은 폭죽이 터지면서 합격이 되었음을 알렸다.
이미 합격한 걸 알고도 또 보니 좋은 모양이다.
옆에서 구경하던 놈들도 같이 또 한 번 함성을 지른다.
합격 폭죽은 딱 한 번, 처음 열었을 때만 나온다.
그다음엔 눌러도 폭죽이 나오지 않자 금방 관심을 끄는 놈들.
“근데 제이콥, 너 지금 이럴 때가 아니잖아. 빨리 집에 가.”
“어? 왜?”
“엄마 아빠한테 말 안 하냐?”
“아, 그렇지! 말해야지.”
“아아? 저 불효막심한 놈.”
“라이언, 사람이 잠깐 잊을 수도 있지. 뭘 또 불효막심까지. 헤헤, 근데 이거 완전 서프라이즈네. 얘들아, 내가 6학년 마지막 학기 때 처음으로 4.0 Highest Honor Roll(최우등상)이란 걸 받았잖아. 저기 저 제이든이 나를 얼마나 쪼았겠냐. 암튼. 엄마 아빠한테 그걸 보여 주는데 안 믿는 거야. 당연히 장난인 줄 알았대. 우리 엄마는 자기가 한 번도 공부로 스트레스 준 적이 없는데 왜 이런 장난을 치냐며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였다니까.”
“…….”
“나중에 진짜인 거 알고는 둘이서 얼싸안고 우는데. 나도 같이 울었잖아. 흑. 또 생각하니 눈물 나네. 암튼 우리 엄마 아빠 맨날 식당에서 일하느라 고생하는데 이거 주면 기절할지도 몰라. 아, 진짜 기절하면 어쩌지?”
“밑밥을 깔아.”
“어떻게?”
“케이크 사 들고 가. 축하할 일 있다고. 엄청 엄청 좋은 일이니까 놀라지 말라고.”
“오호, 헤나. 넌 그런 건 어떻게 알아?”
“마크가 전에 사고치고 한 행동이야. 물론 좋은 일이 아니라 잘못했다고 빌어야 했을 때. 뭐였더라? 몰래 아빠 차 끌고 나가서 범퍼를 해 먹은 날이었던가? 암튼 밑밥을 깔면 마음을 어느 정도 다잡고 듣기 때문에 웬만해선 기절까진 안가.”
“와, 내 저런 걸 동생이라고. 야! 너 집에 안 가냐?”
“너나 가. 나 아직 숙제 남았거든?”
“…….”
헤나가 점점 본성을 드러낸다.
남매간의 싸움이 커질 듯하자 제이콥이 후다닥 편지들을 고이 접어 품에 안고는 나가 버렸다.
“오호, 몰래 저 집 구경이나 할까?”
“야, 마크. 넌 아직도 그 짓을 못 끊었냐? 그냥 셋이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게 놔둬.”
“칫. 안 해. 안 한 지가 언젠데. 그때 제이든 할머니 왔을 때 그 난리가 난 뒤로는 내가….”
언급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언급되었다.
실수를 깨닫고 급하게 입을 닫는 마크.
동네 비밀이 없는 이유 중 하나다.
할머니라….
오랜만에 듣는 단어네.
엄마와 삼촌이 할머니와 어떻게 담판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후로는 조부모와 완전히 연락이 끊긴 상태다.
그동안 삼촌이 엘리와 스티브, 두 아이를 낳았어도, 엄마가 결혼을 했어도 서로 간의 왕래는 일절 없는 것 같았다.
가족 간이라도 서로 너무 맘이 상하면 ‘내가 죽어도 연락하지 마라. 장례식에도 올 필요 없다.’라는 유언까지 남기더라.
어디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미국이라면 더욱더.
어찌 됐든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다.
그들에게 나는 철저히 외부인일 테니까.
크리스틴이 쭈뼛거리며 다가온다.
쟤가 이러면 무서운데.
“저기 제이든.”
“왜?”
“그… 나도 좀 봐주면 안 될까?”
“뭘?”
“아니, 제이콥처럼 말야. 나도 좀 도와달라고.”
“대입 준비? 야, 너는 내년이잖아. 뭘 벌써 시작하려고 그래? 너무 빨리하면 지쳐. 11학년 끝날 즈음부터 시작해도 된다고.”
“그때 하면 늦어. 사관 학교는 다른 데랑 절차가 다르단 말야. 육사에서 하는 여름 캠프라도 가려면 1월부터 등록해야 한다고.”
“아.”
“너 올해 겨울 캠프는 어쩔 거야? 갈 거야? 아니. 갈 거지?”
“봐서.”
“가자아. 어? 같이 가자아. 윌슨 밀러 중위가. 아, 아니지. 이제는 대위지. 암튼 밀러 대위가 꼭 오라고 했단 말야.”
“제이콥 상황 보고. 제이콥이 ED(Early Decision)에서 합격하면 상관없지만 떨어지면 RD(Regular Decision) 지원도 봐줘야 할 거 같은데.”
“그건 지가 알아서 하겠지… 는 아닌가? 암튼 나 GPA도 엄청 끌어올려서 지금 거의 3.9야.”
“오, 잘하고 있네.”
“그러니까. 전 여친의 자격으로 나한테도 시간 좀 내줘.”
“그래, 알았어. 근데 꼭 육사만 고집하는 이유가 뭐야? 해사나 공사도 있잖아.”
“아냐. 난 육사가 딱이야. 땅개가 체질이라니까.”
“하하, 그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입학 사정관 오는 학교들 중에 관심 가는 학교 있으면 한 번씩 가 봐. 교장 샘이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이번엔 꽤 괜찮은 대학들에서도 많이 온다더라.”
“그거 12학년들만 갈 수 있는 거 아냐?”
“11학년들한테도 오픈된다던데? 아리아가 그러더라고.”
“아하, 오케이! 게시판 자주 들여다봐야겠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각 대학에서는 고등학교를 돌며 ‘우리 학교는 무려 이 정도로 학생들에게 잘하고, 또 이 정도로 훌륭하며….’ 등등 본인들의 학교를 홍보하러 다닌다.
한 명이라도 괜찮은 학생들을 끌어가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다.
미국엔 4천 개의 4년제 대학이 있다.
이에 학생들은 자신에게 맞는 대학을 찾기 위해 빠르면 10학년 때부터 대학 투어를 시작한다.
대학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시골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 시골의 답답함을 못 참는 학생들이 있다.
아이비 대학 중 몇 개를 살펴보면.
다트머스나 코넬 같은 곳은 완전 시골에 위치해 있다.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몰린다.
반면 컬럼비아는 뉴욕의 중심부인 맨하튼에 위치해 있다.
도시적이고 화려한 걸 좋아하는 학생들이 몰린다.
컬럼비아 성향의 학생이 다트머스에 가면 숨 막혀 죽는 것이다.
그래서 각 학교마다 학생들의 성향이 반영되고, ‘학교와 핏(fit)이 맞네, 안 맞네’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형편상 투어 자체를 못 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도 사실.
그래서 대학에서 고등학교를 찾아오는 것이다.
톱 대학을 많이 보내는 명문 고등학교일수록 랭킹이 높은 대학에서 많이 찾아오고, 그렇지 않은 학교는 잘 찾아가지 않는다.
어차피 가 봤자 자기 학교로 올 수 있는 학생이 없으니 시간 낭비 안 하는 거다.
우리 학교는… 입학 사정관들이 잘 찾지 않는 학교 중 하나다.
그런데 갑자기 올해부터 달라졌다.
학군 점수가 올라서 그런 건지, 할머니 교장 샘이 막판 투혼을 벌이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완전 톱 대학들은 아니지만 30위권 근처의 대학들에서 돌아가며 오고 있다.
나도 입학 사정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직접 듣고 싶지만, 아직 10학년이라 못 간다.
아리아 말로는 별 이야기는 없단다.
그냥 대부분이 자기 학교 자랑이고, 아주 조금 자기 학교로 오고 싶으면 에세이를 쓸 때 이런 점들을 공략해라 정도를 일러준다고.
하지만 입학 사정관들의 마음이 다 다르니 본인의 말이 정석은 아니라며 빠져나갈 구멍도 꼭 만들어 둔단다.
암튼 그들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 평소라면 생각지도 않을 대학에 원서를 넣고 있는 12학년들이 제법 된다고 하니 아예 무시할 만한 건 아닌 듯하다.
슬슬 3주 전 넣었던 펜스테이트(펜실베니아 주립대, Penn State)에서도 답이 올 때가 됐는데.
내일 제이콥에게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