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5)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5화(5/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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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의 이유
모르는 척 할까 했다.
어른들에겐 가끔 혼자 우는 시간도 필요하니까.
그런데 조용히 문을 열어 본 엄마의 등이 너무 외로워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꼭 끌어안았다.
짧은 팔이 안타깝다.
“어? 흑. 우리 아들. 미안. 엄마 때문에 깼구나?”
“괜찮아요?”
“어? 어. 괜찮아. 미안해.”
“그 분은 누구예요?”
“아…이 친구…”
엄마의 손에 들려있는 사진 한 장.
거기엔 여자 두 명이 사이좋게 어깨동무 포즈를 취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딱 봐도 한명은 엄마의 젊은 시절 모습, 또 다른 한명은 아시안 여자다.
뒤로 치어리더들도 보이고, 풋볼 선수들이 몸 푸는 모습도 보이는 걸 보니 학교 풋볼 경기를 구경하며 찍은 사진인 듯.
“엄마. 진짜 예뻐요.”
“그래. 호호. 고마워.”
눈물 때문에 젖은 얼굴을 슥슥- 닦으며 엄마가 웃는다.
엄마 옆의 여자도 이상하게 친근하게 느껴진다.
한국인인가?
혹시…내 친 엄마?
머릿속으로 온갖 슬픈 드라마의 각본이 흘러다녔다.
그런데도 엄마는 한참을 망설이며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친한 친구였나봐요.”
“후우. 맞아. 엄마의 베스트프렌드였던 유주 먼데일.”
“유주 먼데일?”
“응.”
“이름이 한국 이름 같네요?”
어차피 상관없어요.
진실을 말해줘요!
“후우. 제이든. 엄마 이야기 좀 들어줄래?”
“그럼요. 엄마 이야기라면 언제든지, 무슨 이야기든 다 들어드릴 수 있어요.”
“후우. 그래. 그러니까…내가 7학년 때였어. 유주가 전학을 왔어. 아시안 보기도 힘든 곳인데, 입양아인데다 뉴욕 살다가 왔다고 하니 모든 학생들이 주목했지.”
“…”
“유주는 좀 특별했어. 뉴욕에서 와서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 여기 애들이랑은 성향이 달랐다고 해야 하나. 못된 애들이 인종차별도 서슴지 않고, 심할 땐 몸싸움도 했지. 유주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어.”
“멋진 분이셨네요.”
“그랬지. 나중엔 유주를 괴롭히던 친구들까지 유주를 좋아했었어. 너처럼 인기 만점이었지. 개방적이고, 활동적이고, 거침이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그 중에서 바이올린은 정말…환상적이었지.”
“와. 대단하다.”
“응. 우리는 금방 베스트프렌드가 됐어. 그리고 유주의 부모님은 적극적으로 유주를 서포트했어. 난, 그 분들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었지.”
“…”
“후우. 그날. 후. 식당에서 알바를 하고 집에 가야하는데, 부모님 두 분 다 날 픽업하지 못한다는 거야. 그래서 유주한테 부탁했어. 좀 데리러 와달라고. 유주는 차가 있었거든.”
“…”
“돌아오는 길에 유주가 운전대를 넘겨줬어. 밤이었고…거리엔 차도 없었고…후우. 필기시험 통과한지는 몇 달 지났는데, 실기를 준비할 기회가 없었는데, 그걸 불쌍하게 본 유주가 기회를 준 거지.”
“…”
“…순식간이었어. 커다란 사슴이. 후우. 갑자기 튀어나왔어. 뿔…그 커다란 뿔이…창문을 깨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유주의 심장에 그대로 박혔어. 원래는 내가 타고 있어야 할 그 조수석에.”
“…”
“즉사였어.”
“사고였잖아요.”
“그래. 사고였지. 소식을 들은 유주의 어머니는 혼절하셨고, 아버지는 울었어. 그리고 얼마 후 두 분은 이곳을 떠나셨지.”
이럴 땐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마음을 나눠본 친구는커녕 형제도 없다.
간혹 마약이나 약물중독으로 죽은 지인들이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지인일 뿐.
그다지 슬프지도 않았던 기억이 난다.
결국 통상적으로 위로하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힘…들었겠어요.”
“어. 많이 울었어. 반년을 폐인처럼 살았어. 내가 그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
“유주의 부모님이 떠나시면서 내게 차를 선물해 주셨어. 유주 대학가면 사주려고 했던 차라며, 운전을 두려워하면 이 땅에서 살 수 없으니 꼭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와.
도대체 어떤 인성이면 그럴 수 있지?
세상엔 간혹 천사들이 내려온다더니…
“그때 결심했어. 나중에 꼭 유주 같은 한국 아이를 입양해서 제대로 키우겠다고.”
“아. 그래서 저를…”
“어. 사진으로 본 네 눈빛이 잊히지 않았어. 유주가 내게 준 아이라고 생각했지. 혹시…서운하니?”
“아뇨. 전혀요.”
“후우. 나중에 네가 성인이 돼서 물어보면 말해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들켜버렸네. 잠도 깨워버리고.”
“내일 토요일이라 학교 안가잖아요. 괜찮아요.”
우리 두 사람은 엄마가 들고 있던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말 밝아 보이는 유주라는 사람.
반면 엄마는 웃고는 있지만 그늘이 있다.
자라온 환경은 어쩔 수가 없는 건가.
엄마가 젖은 손으로 사진 속 친구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갑자기.
– 짝!
손뼉을 치는 엄마.
“아! 완전 깜빡하고 있었어. 어쩜 좋지?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왜. 왜요? 뭔데요?”
“유주 장례식장에서도 그렇고, 너 아팠을 때도 그렇고. 내가 기도를 엄청 했거든? 내 일평생을 신께 헌신한다고 서약했는데 완전 잊고 있었어. 안되겠다. 이번 주부터 교회가야겠어.”
“네에?! 구. 굳이요?”
“약속 안 지켰다고 너 다시 아프면 어떡해? 아. 진짜 큰일 났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해. 간절히 기도할 때가 언제라고.”
“그…신이 그으렇게 쪼잔하지는…않지 않을까요? 어린이는 잠을 많이 자야 일찍 크고, 일요일에는 책도 읽으면서 쉬어야 그 다음 주를 준비하며…”
“어우야. 지금이라도 기억난 게 어디야. 좀 있으면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는데. 잠깐. 내일이 토요일이고, 그 다음이 일요일. 쇠뿔도 당김에 빼랬다고. 가자. 어…근데 어느 교회를 가야하지? 어릴 때 다녔던 데가 아직 있을까?”
왜. 왜 갑자기 전개가 이렇게 틀어지는 건데?
나. 나의 소중한 일요일은?
너튜브도 봐야하고, 셋플릭스도 봐야하고, 게임도 해야하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여보세요!
내 말 듣고 있어요?
“음. 옷은 뭘 입어야 되지? 어릴 때는 예쁘게 입고 갔어야 했는데. 날 밝으면 옷이라도 사야 될까? 우리 제이든은 양복이 필요하려나. 아냐. 그래도 양복은 투머치지. 깔끔한 바지랑 폴라티 정도면 되지 않을까? 페이첵(2주마다 받는 급여)이 나오려면 며칠 더 있어야하는데. 흠. 어쩐다. 지난번에 학교갈 때 입었던 그 블라우스랑 주름치마면…”
안 듣는구나.
“…안녕히 주무세요.”
“어? 어. 잘 자. 아들. 사랑해.”
“네…저도…뭐…”
우리 엄마 리사 여사는 외로워도 슬퍼도 혼자 잘 이겨내는 스타일이었구나.
괜한 오지랖을 부려 잠자고 있던 기억을 깨웠다.
좀 전의 그 아련하고 슬픈 기억은 어디로 갔냐고요.
***
다음날 아침.
엄마는 결국 쇼핑을 했다.
70%이상 세일하는 클리어런스 코너를 뒤지고 뒤지다 결국 엄마 옷장 안에 잠자고 있는 수많은 옷들과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한 벌 더 사왔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좋아하니 가만있자.
여자의 쇼핑은 이해하려 들면 안된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결국 끌려나왔다.
무려 오전 10시에.
어젯밤 폭풍검색을 하던 엄마는 본인이 어릴 때 다니던 교회는 이미 문을 닫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곤 이 동네에 있는 모든 교회 홈페이지와 평점 등을 샅샅이 뒤졌다.
이단인지 아닌지, 교인 수는 몇 명이나 되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뭐가 있는지 등등을 꼼꼼하게 검색하던 엄마는 어릴 적 다니던 교회 종파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더 보수적이라는 곳을 선택했다.
털털거리는 차 뒷좌석에 앉아 있다 보니 어느새 교회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서 10분 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다.
폭풍 검색은 왜 한 것이냐고.
“후우. 아들. 들어가자.”
활짝 열려있는 교회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섰다.
백발의 할머니가 우리를 맞는다.
“어? 리사!”
“어머. 안녕하세요. 미세스 베서스.”
“웰컴웰컴. 이 아이가 리사 아들이야? 진짜 예쁘게 생겼네. 몇 학년이야?”
“안녕하세요. 킨더예요. 제이든이라고 합니다.”
“아이구. 어쩜 인사도 이렇게 잘 하누. 킨더면 선데이스쿨로 가야겠구나. 내가 안내해 줄게. 따라오렴.”
“네…”
흠.
미국 교회 내부는 이렇게 생겼구나.
밖에서 보면 크고 화려해 보이는데, 내부는 생각보다 소박하다.
보이는 곳곳에 세월의 흔적들이 묻어난다.
계단 페인트칠은 다시 해야겠는데?
벽면 한쪽에는 교회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야외에서 놀면서 찍은 사진들부터, 각자의 가족사진 같은 것들이 붙어있다.
어?
쟤들…아니겠지?
아닐거야.
아니어야만 해!
계단을 내려가 어떤 문을 열자 모여 있던 이들의 눈이 내게로 모였다.
‘헐! 맞구나.’
“어?”
“제이든이다!”
“제이든!”
“와아. 제이드은~~”
.
.
.
뭔데!
왜 여기 다 모여 있는 건데?
무슨 씨족사회냐고!
헤일리도, 클로이도, 애슐리, 해리슨, 엠마에 알렉스까지…하이파이브를 해대던 5학년 남학생들의 얼굴까지 아는 얼굴들이 아~주 많다.
30명 정도 되는 아이들 중 25명은 아는 얼굴이라고.
환장하겠네.
엄마가 집 근처 교회로 온 이유가 있구만.
같은 학군에 사니 교회도 같을 수밖에.
“아하! 네가 제이든이구나. 이야기 많이 들었다.”
기타를 멘 아저씨가 아는 척을 한다.
“나는 선데이스쿨 목사 마크야. 그냥 마크라고 부르면 돼.”
“네. 패스터(Pastor) 마크.”
“아는 친구들이 많아서 외롭진 않겠구나. 잘 됐네.”
“그.러.네.요. 하하.”
제길.
학교에 이어 교회까지 이어지는 동네.
이사를 가지 않는 한 이 씨족사회에서 절대 발을 빼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든다.
엄마가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도 이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전빵이 최고지.
기타 아저씨가 기타를 튕긴다.
“자. 오늘은 특별히 새 친구도 왔으니 우리 환영 노래 불러줄까요?”
“네!!”
– Welcome to the family,
We are glad that you have come
To share your life with us,….
‘그래 고맙다. 환영해줘서…근데 나 무교야.’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표정이 제법 진지하다.
저 해맑은 얼굴에 진실을 뱉으면 학교에서 ‘왕따’ 당할 거 같다.
가만 있자.
나는 그 뒤로 1시간을 더 교회에 머물러야 했다.
10분 설교, 20분 찬양, 30분 놀이.
교회를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이 정도면 뭐 참아줄만하지.
설마 오늘만 특별히 10분 설교인 건 아니겠지?
담주는 막 ‘40분 설교’ 이러면 비뚤어질 거다.
방에는 각종 보드게임부터 탁구대, 미니풋볼게임대 등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아직 예배가 끝나지 않은 어른들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취향대로 놀았다.
나는…
체스를 두었다.
5학년 애들이랑.
그리고…
전부 이겨버렸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