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4
한 달 후.
베티는 근처 사립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 동네에서 나름 부자들만 다닌다는 사립학교.
전학을 가려고 해도 재학 중인 학생의 부모나 재직 교사, 혹은 지역 유지 2명의 추천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학교다.
초딩 생일파티 테마가 ‘승마’라고 해서 겨우 승마복을 구해서 입고 갔더니, 참석자 모두 자기 ‘말’을 끌고 왔다는 그 곳.
베티 엄마가 어떤 수완을 발휘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더 좋은 사립학교로 전학을 했다곤 하지만 결론은 우리 학교에서 쫓겨난 것이다.
엄마가 ‘제대로 일 처리 하지 않으면 교육부부터 언론사까지 모든 역량을 동원해 알리겠다.’고 교장을 협박한 덕이다.
웃음이 많은 친구였던 베티.
제 엄마 같은 사람처럼 자리지 않길 바란다.
카톨릭 사립스쿨이니 인성교육은 제대로 시키겠지.
머릿속에서 베티와 그녀의 엄마를 지웠다.
* * *
킨더의 점심시간은 오전 10시 30분.
크지 않은 학교의 카페테리아를 전교생이 나눠 사용하는 탓에 학년별로 점심시간이 다르다.
킨더는 나이가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가장 먼저 밥을 먹는다.
대신 나중에 간식 시간이 따로 있다.
식사 시간은 단 20분.
도시락을 싸 온 아이들은 바로 자리를 잡고 먹을 수 있지만, 사 먹어야 하는 아이들은 줄을 서서 받아와 먹는 것까지 20분 안에 해결해야 한다.
엄마는…
요리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다.
학교에 입학한 후 첫 한 달은 나름 도시락을 싸 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한 달이 지나자 학교 급식을 먹으면 안 되겠냐고 했다.
보통의 학생들은 한 끼에 2달러 남짓을 내고 사 먹지만 우리는 저소득층이라 급식이 무료다.
그래서 웬만하면 하루 한 끼는 급식으로 해결해 볼까 했다.
음식 가지고 이런 말 미안하지만 학교 급식은 진짜 쓰레기 수준이었다.
보통 피자나 치킨너겟 같은 냉동식품을 데워 주는데, 따뜻할 땐 먹을 만하지만, 식으면 정말… 돈 주고 먹으라고 해도 못 먹을 정도다.
학교 주방에선 따로 요리를 하지는 않는다.
워낙 음식 알레르기가 많은 탓도 있지만 다양한 민족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종교나 문화적인 이유로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라고.
‘이래도 먹고 싶은 사람은 먹어라’라는 마인드인 것 같다.
처음 며칠은 엄마 말을 따라 급식을 받았지만, 요즘엔 집에 굴러다니는 에너지바나 바나나 같은 것을 직접 챙겨 온다.
친구들 도시락들도 비슷한 수준이다.
스틱 치즈나 과자 같은 걸 싸 오는 애들도 많고, 좀 낫다 싶은 경우가 과일이나 브로콜리 데친 것들을 함께 싸 오는 거다.
어떻게 저렇게 먹고 키가 크고, 살이 찌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유전자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나이가 조금 더 들면 직접 요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스타라도 싸 와야지 도저히 이대로는 못 살겠다.
학교 다닐 때의 큰 기쁨 하나를 강제로 빼앗긴 느낌이다.
20분 후 이어지는 리세스(recess) 타임.
날씨가 안 좋을 땐 안에서 놀지만, 좋으면 무조건 밖으로 직행.
실내에서 조용히 사색이나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런치 티처의 지도 아래 병아리 줄 맞춰 놀이터로 나왔다.
런치 티처는 리세스 타임 동안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감시? 하는 역할이다.
“와아아아. 제이든. 미끄럼틀 타자.”
“제이든. 태그하자.”
.
.
.
열심히 놀아 주었다.
미끄럼틀도 타고, 술래잡기도 하면서 다칠 만한 상황은 미리미리 예방하면서 진짜 삼촌 된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봤다고나 할까.
…절대 내가 놀고 싶어 논 것이 아니다.
육체가 작다 보니 미끄럼틀이 제법 높아 보여 스릴감이 어떤가 체크하는 차원이었고, 그네는 높이 올라도 뒤집어지진 않는지 안정성 체크고, 술래잡기는 나보다 빠른 놈들은 봐줄 수가 없어서…
아무튼 온몸을 불사르며 애들과 놀아 주고 있으니 런치 티처들의 눈에서 하트가 마구 발사된다.
알지. 그 마음.
진이 쏙― 빠진다.
교실에 들어와 손을 씻고, 우리는 각자의 매트를 바닥에 깔았다.
낮잠 잘 시간이다.
보통 킨더는 오전 수업만 있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학교는 일하는 학부모들을 위해 킨더도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학교를 운영한다.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 4시.
아무튼 그 긴 시간 중 킨더 아이들에게는 낮잠 시간이 주어진다.
그 후엔 동그랗게 모여앉아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을 듣는 ‘스토리 타임’이 있다.
말했듯이 이 동네의 아시안 비율은 1%가 채 안 된다.
고등학교에는 좀 더 된다고 들었는데, 이 초등학교에서는 나와 베트남에서 온 남매 둘까지 총 셋뿐이다.
그 흔한 인도인과 중국인도 없다.
즉, 여기 초딩들이 평소 동양인을 직접 마주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어른들이야 직장이든 마켓이든 각종 사회활동이든 동양인들을 접할 일이 있겠지만 집과 학교, 놀이터만 전전하는 시골 동네 아이들은 상황이 다르다.
오늘은 5학년 형, 누나들이 킨더에게 책을 읽어 주는 봉사 시간이 있는 날이다.
이곳은 킨더부터 5학년까지 초등학교 6년, 6학년부터 8학년까지가 중학교 3년, 9학년부터 12학년이 고등학교 4년으로 분류된다.
총 13년의 학교생활.
자라면서 역변만 하지 않는다면 고등학교에서 치어리더로 이름을 날릴 것이 분명한 5학년 여자애 둘 헤일리와 클로이.
이 학교 모든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들이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교실로 들어섰다.
나의 일상이 번거로워지는 시발점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와아! 헤일리다!”
“클로이다!”
“하하. 안녕. 애들아. 난 헤일리야.”
“난 클로이야.”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둘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교실이 갑자기 밝아지는 것 같다.
빅 팬덤
학교 내에서는 이미 예쁘고 친절하다고 소문난 유명 인사들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환호한다.
“오늘은 우리가 ‘We’re Going on a Bear Hunt’를 읽어줄게. 이게 무슨 내용이냐면 한 가족이 곰을 잡으러 떠나는 이야기인데. 자 여길 봐봐.”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의자를 권해 주고, 클로이가 자리를 잡았다.
클로이가 책을 운율에 맞춰 노래처럼 불러 주면 옆에서 헤일리가 율동을 한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반 친구 놈들 몇이 벌떡 일어나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헤일리를 따라해 댔다.
종국엔 반 전체 아이들이 전부 일어나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의 어린이 책들은 노래처럼 곡조를 만들어 읽는 경우가 많다.
마치 노래의 후렴구처럼 책의 마지막 구절들이 반복되면서 따라 부르기 쉽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특히 이 책은 10년 전쯤 저자가 너튜브에 직접 노래와 율동을 선보여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교실이 소란스럽다.
두통이 몰려오려고 한다.
“제이드은~ 일어나 봐. 따라해 봐~”
“나느은 괜찮은데에~”
“같이 해. 가치이~”
아이들의 성화에 주춤거리며 일어났다.
일단 일어나니 이게 또 대충 할 수가 없네?
우리에겐 born to be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DNA가 있지 않겠나.
흥이 붙으니 제대로 된 웨이브가 튀어나온다.
“오 마이 굿니스! 이것이 바로 K―Dance!”
“헤일리, 모든 아시안이 다 한국인은 아니라고. 너 어느 나라에서 왔어?”
“아냐. 나 애 알아. 너 한국애서 태어난 애 맞지? 검은 눈동자가 반짝반짝. 진짜 별 같아. K 팝 스타 같이 생겼잖아.”
“헤일리! 클로이! 그런 말은 실례야!”
갑자기 내 인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선생님이 기겁을 한다.
이런 걸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얼마 전, 인종차별로 곤혹을 치렀기에 더 놀란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베티 엄마와는 다르게 명백히 호의를 가지고 있다.
괜한 적대감을 가질 이유는 없지.
“괜찮아요. 선생님. 어. 맞아. 1살 때 한국에서 입양됐어.”
“Cool!”
“와. 그럼 한국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춤을 잘 추는 거야? 완전 멋있어!”
“와아아아! 제이든 멋있다!”
“제이든 최고다!”
.
.
.
어린 것들이 내 주변을 돌며 멋있다를 연발한다.
흐, 내가 좀… 치지.
사실 이걸 춤사위라고 말하기는 쪽팔린다.
그냥 무릎 좀 굽혔다 펴고, 손으로 이마 좀 짚어 주고, 걷는 시늉 좀 하는 아주 간단한 동. 작. 들이다.
한국 유치원의 칼군무와 비교하면 걸음마 수준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 광대가 치솟는지.
아무리 어린 것들이라도 날 저렇게 좋아해 주니 기부니가 좋아진다.
부끄럽다.
“제이든. 나중에 나랑 꼭 사진 찍자.”
“나도, 나도.”
“그러든지.”
괜히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좀 더 쿨해 보이라고.
학교 수업이 끝나고 스쿨버스를 기다리는데 헤일리와 클로이가 다가왔다.
킨더는 제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5학년은 돌아다녀도 되는 모양이다.
부럽네.
“제이든. 우리 기억하지?”
‘내가 바본 줄 아나?’
“당연하지.”
“사진 찍어도 되지?”
“그래.”
실수였다.
오늘따라 스쿨버스가 늦게 왔고, 나는 장장 5분 동안 온갖 포즈를 다 취하며 그들의 요구에 응해야 했다.
나중엔 손가락 하트까지 날렸는데,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 아무래도 관종 끼가 다분한 듯.
다음 날.
“헤이. 제이든!”
“제이든. 쿨 가이~”
“제이든. 하이파이브!”
“나도나도. 하이파이브!”
.
.
.
무슨 일인지 등교와 함께 학생들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나서기 좋아하는 남학생 몇몇은 멀리서부터 뛰어와 굳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간다.
‘이게 머선 일이고?’
어리둥절한 채로 교실로 향하는데, 몇몇 선생님들마저 인사를 해 오네.
궁금증은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해결되었다.
대부분의 킨더 학생들에게는 휴대폰이 없다.
휴대폰이 있어도 교실에 들어서면 곧바로 각자의 사물함에 넣어 두거나 가방에서 꺼내면 안 된다.
하지만 어디든 말 안 듣는 놈들은 있게 마련.
특히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형제자매가 있는 집 아이들은 여러모로 조숙하기 마련이다.
큰형이 12학년 대학 입시생이라는 알렉스라는 놈이 휴대폰을 들이민다.
“제이든. 이거 봐봐. 어제 헤일리가 인스타에 올린 거야. 너 완전 스타야. 스타! 예이~ K 스타~”
“뭐래.”
#링컨엘리멘터리 #K―star #핸섬가이 #검은별 #입양아 #킨더 #세젤귀….
따위의 해시태그가 붙어 있는 사진.
어제 스쿨버스 타기 직전 내 얼굴에 본인 얼굴을 딱 갖다 대고 찍은 사진이 바로 뜬다.
얼씨구.
얼마나 사진 보정을 했는지 11살짜리가 마치 20살 여대생 같다.
내 눈에는 아예 진짜 보석을 박아 놨다.
반짝반짝.
“헤일리 팔로우 중에는 고등학생 형아들도 있어. 완전 인스타 핫피플이라고. 여기 봐봐. 좋아요가 무려 삼…음…3천만 개? 나 달렸다고.”
“3천만 개?”
알렉스의 말에 놀라서 자세히 보니 300개다.
얘, 뭐지?
아.
우리가 아직 백 단위 수를 안 배웠구나.
가끔 아니 자주 내가 아직 5살 킨더라는 사실을 까먹는다.
“너 혹시 헤일리 연락처 알아?”
“아니.”
“그럼 DM 보낼 줄 알아?”
“DM? 그게 뭔데? 몰라.”
“됐다. 전화기 좀 빌려줄 수 있어? 너 헤일리 팔로우하는 거지?”
“…이거 내 거 아니야. 제임스 거야. 걸리면 죽어.”
“…….”
제임스는 현재 이 학교 4학년에 다니는 알렉스의 형이다.
형의 휴대폰을 훔쳐 온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