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60)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60화(60/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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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결혼식과 두 번의 장례식 1
바야흐로 4월이 다가왔다.
삼촌과 메디슨의 결혼식이 있는 달.
아직 봄 잠바를 꺼내 입기에는 춥다.
겨울 스포츠였던 인도어 트랙은 이제 봄 스포츠인 필드트랙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여전히 뛰었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라고 있었다.
덕분에 여전히 일주일에 한번 씩은 무릎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급격하게 성장을 해서 그러는 모양이다.
이미 엄마 키를 넘어섰다.
액티비티 버스를 타고 내리는데, 동네에 딱 한집 남은 수상한 집에 부동산 간판이 걸려 있었다.
9가구 밖에 없는 골목이라 누가 어느 집에 사는지 잘 알지만 저 집만큼은 사는 사람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사람이 사는 건 확실하다.
매주 수요일 쓰레기차가 오는 날 쓰레기통이 나왔다가 들어가니까.
“어? Estate Sale? 여기 살던 사람 죽었어?”
“그러게?”
“마크. 이 집 누가 살았대?”
“내가 어떻게 알아?”
“미안. 너라면 아는 줄 알았지.”
“아빠는 알 거야. 물어볼게.”
“그 정도로 궁금한 건 아니고. 그나저나 나중에 올 거야? 아님 줌으로 볼 거야?”
“갈게.”
“그래. 나중에 봐.”
트랙 클럽활동이 끝난 후 액티비티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 오후 6시.
3월에 서머타임이 시작된 후로 낮이 점점 길어지고 있긴 하지만 친구 집에 오기엔 시간이 좀 늦다.
같은 골목에 사는 마크와 제이콥, 헤나, 조나단은 시간 상관없이 들락거리지만 다른 골목에 사는 놈들은 자전거를 타고 와야 하니 어렵다.
이에 차선책으로 줌을 켜두고 숙제도 하고, 수다도 떨고 그런다.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그것도 나름 도움이 많이 된다.
저녁을 먹고, 베이스먼트로 내려갔다.
자동으로 줌을 켰다.
때마침 제이콥이랑 마크, 헤나가 뒷문을 두드린다.
아직 초등학생인 조나단은 오늘 줌으로 한단다.
간단한 인사말들이 오가고, 마크가 목소리를 내리깐다.
본격적으로 뭔가 할 말이 있을 때 내는 목소리.
“애들아. 우리 골목에 우중충한 집 하나 있었잖아.”
“아. 그 매주 수요일에 쓰레기통만 나왔다 들어간다는 그 집?”
“어. 그 집에서 Estate Sale 한대.”
“와. 거기 살던 사람 죽었어?”
“그러니까 그런 사인이 붙었겠지.”
“그럼 집도 곧 내놓겠네?”
“그렇겠지?”
“누가 살았었을까? 이스테이트 세일이면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살았다는 건데?”
이스테이트 세일(Estate Sale)은 사람이 죽은 후에 쓰던 물건을 파는 걸 말한다.
보통 부모가 늙어 죽은 경우, 그 자식들이 부모들이 쓰던 물건 중 가질 거 가지고, 나눌 거 나눈 후 남은 물건들을 내다 판다.
잘사는 동네의 노인이 죽으면 숟가락 하나도 좋은 것들이 많고, 못사는 동네의 노인이 죽으면 딱히 건질 게 별로 없다.
자연사로 늙어죽은 것이기에 물건에 대한 거부감도 별로 없다.
그래도 가끔 거물이 걸릴 때가 있기에 이스테이트 세일 간판이 붙으면 지나가던 사람들도 한번쯤 들러보기는 한다.
“큼. 크흠. 내가 오늘 저녁 먹으면서 아빠한테 그 집 이야기를 들었거든?”
“오오. 궁금하다. 궁금해. 마크. 이런 건 빅뉴스-라고 한번 외친 후에 전달하는 거야.”
“알렉스.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냐. 오직 너만. 어? 너만 할 수 있는 거지.”
“오호호. 영광인데?”
“…영광스러우라고 한 말 아니거든.”
“아. 뭔 잡설이 그리 길어. 그래서 뭐? 그 집에 무슨 사연이 있다는 건데?”
“크리스틴. 넌 진짜 성질 좀 죽여. 무서워서 말을 할 수가 없잖아. 큼. 암튼 너네들 코리안워(Korean War)라고 들어봤냐? 아. 제이든은 알겠네.”
“알지. 한국전쟁. 그건 갑자기 왜?”
“거기 살던 사람이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참전용사였대. 나이가 몇 살이라더라? 거의 100살 가까이 됐다던데.”
“한국전에 참전했으면 그럴 거야. 전쟁 끝난 지 벌써 70년이나 됐으니까. 고마운 분이시네. 진즉 알았으면 한번쯤 인사라도 드릴걸.”
“오. 착해착해. 근데 뭐 몰랐는데 어떻게 해. 어쩔 수 없지.”
“…”
“그 할아버지가 나이가 많아 혼자 움직이기 힘드니까 그 집 아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들렀대. 같이 살자고 해도 혼자 살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할 수 없이 1주일에 한번씩 들렀었대네. 새벽에 출근하기 전에 와서 쓰레기통도 내놓고, 아버지도 돌보고, 음식도 만들어놓고. 그러다가 쓰레기차 가면 쓰레기통 다시 들여다 놓고 일하러 갔었대.”
“와. 착하네.”
“그러니까. 그러다가 3주 전 수요일에 왔는데, 할아버지가 죽어있었던 거지. 몸이 따뜻한 걸로 봐선 간밤에 죽은 것 같다고 그랬대.”
– 으…
– 끄응…
.
.
.
고인의 사인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자 중딩들이 몸서리를 친다.
아직 죽음이라는 것이 익숙지 않은 탓이다.
“곧 부동산 간판도 달 거래. 아빠가 커피 마시면서 창밖에 보다가 Estate Sale 붙이는 거 보고 후다닥 나가서 인사하고 들었대. 그러니까 확실한 정보인 거지.”
“아들이라고 해도 나이가 많겠네?”
“어. 아들도 할아버지래. 하하. 암튼 그래서 이번 토요일에 ‘estate sale’을 하고, 일요일에 장례식 한대. 아빠보고 동네 사람들도 오고 싶으면 오라고 그랬대. 할아버지가 나이가 너무 많아서 친척이나 친구들 다 죽어서 좀 쓸쓸할지도 모르겠다고.”
“…난 안 갈래.”
“나도. 무서워.”
난…
가야될 것 같다.
바로 옆옆집에 한국전 참전용사가 산 것도 몰랐는데, 장례식까지 모르는 척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한국전 참전 용사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같은 걸 봐도 별 생각 없었다.
워낙 오래된 일이고,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이니 체감이 안되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미국에 와서 보니 그게 얼마나 큰 희생인지 알겠더라.
“제이든. 넌 어떡할 거야?”
“난 가야지. 일단 엄마한테 라이드 가능한지 물어봐야겠지만.”
“너 가면 나도 갈래.”
“오디. 진짜?”
“어. 그 분이 있었기에 우리가 너를 만날 수 있었던 거잖아.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야! 니가 그렇게 말하면 안 간다고 말한 우리는 뭐가 되냐?”
“사람 없다잖아. 가서 자리 채워줄래.”
“그. 그럼 나도 갈래.”
“나도.”
“아씨. 그럼 나도 갈래.”
“다들 부모님께 일단 물어 봐. 낯선 사람 장례식이라 못 가게 하실 수도 있어.”
“아. 그렇지.”
“오케이. 그럼 내일까지 갈 사람 말해 줘. 아빠가 Estate Sale 할 때 장례식 어디서 하는지 물어본다고 했거든. 그때 누구누구 가는지 말해주면 좋잖아.”
“그래그래.”
다음날.
공부방에선 아직 어린 조나단과 헤나, 그리고 마커슨을 빼고는 전부 참석하기로 했다.
‘캡틴을 만나게 해 준 고마운 분’이란 게 이유다.
좀 쑥스럽다.
마커슨 집은 집 분위기가 살벌해 물어보지 못하겠단다.
토요일에 동네 어른들이 Estate Sale을 하는 시간에 맞춰서 단체로 그 집을 방문했다.
우리는 얌전히 집에서 기다렸다.
아무리 나이가 많이 들어 돌아가셨다고 해도 좋은 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거라지 세일이나 야드 세일과 다르게 Estate Sale은 좀 엄숙한 분위기가 있다.
Estate Sale에 갔던 엄마가 돌아왔다.
손에는 화려한 문양의 접시 2개가 들려있다.
“그거 사셨어요?”
“어. 할아버지의 부인이 쓰던 거래. 안 쓴지 30년은 됐다고 그러네. 이렇게 예쁜데 말야.”
“예쁘네요.”
“역시. 우리 아들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그리고 내일 교회 끝나자마자 그쪽 교회로 가기로 했어. 교회 갈 때 장례식 복장으로 가면 될 거 같아. 가만보자. 나는 전에 미세스 베서스 돌아가셨을 때 입었던 거 입으면 될 거 같은데…너는 어쩌지? 그때 입었던 옷은 너무 작고. 그렇다고 리암꺼 입기에는 크고. 혹시 입을만한 옷 있어?”
“바지는 있는데, 웃옷이 완전 검은 건…없지만 짙은 곤색이 있어요. 그거 입으면 될 거 같아요. 걱정 마세요.”
“그래. 동네 사람들도 많이 가기로 했어. 그 집이 그런 집인지 누가 알았겠니. 다들 미안해서 말도 잘 못하더라.”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 뭐.”
“그렇긴 하지. 그 사람도 그래. 매주 수요일마다 왔으면 한번쯤은 동네 사람들한테 자기 아버지 혼자 계시니까 가끔 들여다 봐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는 거잖아. 사람들을 아주 무심하게 만들었어.”
“할아버지가 싫다고 하셨을 수도 있죠. 마크 말로는 10년 넘게 집 밖을 안 나오셨다고 하던데요.”
“뭐. 그런 것 같긴 하더라. 이유는 모르겠는데, 사람을 엄청 가렸대. 자식도 여럿 있는데, 저 아들만 집에 들어오게 했다더라고. 요양원도 절대 안 간다고 하고. 암튼 젊을 때는 안 그랬다는데 나이 들고 좀 이상해졌대.”
만약 그게 전쟁후유증이면 더 미안해지는데.
젊은 시절에는 안 그랬다고 하니 꼭 그 이유만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다음날 일요일.
우리는 단체로 검은 옷을 입고 교회를 갔고, 교회 사람들은 또 골목에서 단체로 뭘 하려고 그러냐며 놀렸다.
사정을 들은 사람들 중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장례 예배가 진행되는 교회로 향했다.
우리 교회에서 차로 30분 거리.
전쟁 참전 용사에 대한 미국인들의 경의는 상상을 초월한다.
교회 전체 인원 150명 중 60명은 이동한 것 같다.
장례식에 사람이 많아지니 해당 교회 목사님이 좋아한다.
평소 예배 인원이 20명 정도라고.
1시간 정도의 장례예배가 진행되었다.
낯가림이 심했던 고인의 성정을 존중해 뷰잉서비스는 생략되었다.
장례예배에 쓰인 사진은 군복을 입고 있는 젊은 시절의 사진이었다.
아마도 한국전쟁에 참여했을 때의 사진이 아닌가 싶다.
할아버지의 나이가 98세였다고 하니, 저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건 눈빛 정도가 아닐까?
우리는 결국 살아있는 할아버지의 얼굴도, 돌아가신 후의 할아버지 얼굴도 보지 못했다.
훗날 골목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장례식이었다.
***
4월의 마지막 날.
삼촌과 메디슨의 결혼식이 열렸다.
초대 손님은 40여명.
그야말로 스몰 웨딩이었다.
동네 사람들도 다 초대받진 못했다.
흔히 미국에서 남자가 프러포즈를 할 때 여자에게 건네는 다이아반지는 남자의 3달치 월급에 해당한다고 한다.
결혼식에서 주고받는 ‘웨딩 링’은 따로다.
웨딩 링은 대부분 남자와 여자가 같은 모양의 반지를 나눠낀다.
약속의 징표이기에 금액은 각자 배우자 것을 부담한다.
그래서 결혼한 여자들이 외부에 나갈 때는 웨딩링을 먼저 끼고, 그 뒤에 다이아반지를 껴서 결혼한 여자임을 알린다.
그리고 결혼식 비용은 대부분 여자가 부담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프러포즈할 때 주는 다이아반지 비용과 거의 비슷한 금액으로 맞춘다.
결혼식에서 주인공은 사실 신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여자애들 중에는 초등학교때부터 자신의 결혼식을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결혼식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여자가 초대하고자 하는 손님 수와 남자가 초대하고 싶은 손님 수가 다를 경우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가끔 남자측 손님은 최소한으로 가족들만 오게 하고, 나머지는 자기 손님으로 깔아버리는 여자들도 있다.
이 경우 남자가 등신이면 그대로 결혼식이 진행될 테고, 아니면 결혼 자체가 파토나 버리기도 한다.
삼촌의 결혼식에선 정확히 반반의 인원이 참석했다.
삼촌의 대학 친구들과 직장 동료, 그리고 나와 엄마, 마크의 가족들이 초대되었다.
결혼식은 동네의 ‘하트우드 맨션’에서 진행되었다.
결혼행진곡에 맞춰 홀로 입장하는 메디슨.
아니, 이제 숙모다.
저렇게 예뻤었나?
심플한 디자인의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들어오는데, 정말 눈부시게 예쁘다.
날씨도 받쳐준다.
그동안 그렇게 춥더니 오늘따라 포근한 기온이다.
삼촌의 입이 귀에 걸려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메디슨도 삼촌을 보고 웃는다.
나도 웃었다.
엄마는…웃으면서 울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