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106)
106화 PK (2)
젠시아 네이프린.
약탈할 때 주로 쓰는 가명이지만 아무튼.
그녀는 홀로 ‘빙하굴’에 들어서면서도 딱히 걱정이랄 게 없었다.
다 죽이고서도 혼자 클리어할 자신이 있으니까.
이곳에서 ‘얼어붙은 숨결’이 드랍된다는 정보를 구매하며 그녀는 공략법 숙지까지 끝마쳤다.
하지만…….
[…짐은 되지 않겠군. 아브만 우리크프리트다.]시작부터 일이 틀어졌다.
[나는 6등급, 미샬은 7등급 탐험가다. 원래는 4층에서 주로 활동했지.] [그렇군, 나는 5등급이다.]5등급 궁수와 6등급 바바리안, 그리고 7등급 수인.
‘왜 이런 놈들이 이 시간에 1층에 있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1일 차에 열린 균열이라곤 한들, 기껏해야 7, 8등급짜리가 한두 명 들어올 수도 있겠다 생각한 정도였는데.
‘아무튼, 그래서 이제 어쩌지?’
원래 그녀는 대충 갖고 놀며 ‘취미 활동’을 즐긴 뒤, 혼자 수호자를 잡고 나갈 계획이었다.
그야 도시로 말이 새어 나가면 안 되니까.
이미 그녀의 장비와 스킬, 그리고 인상착의는 길드에 알려졌다.
살아 있단 게 들키면 분명 귀찮은 일이 생길 터.
‘혼자 등쳐먹기엔 너무 리스크가 큰데, 그냥 이번엔 조용히 있다가 다음번을 노려야 하나?’
처음엔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점점 변했다.
삶이란 가끔, 위기가 기회로 작용할 때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쓰읍, 3개월이야 못 기다릴 건 없는데, 역시 아쉽단 말이지?’
풍부한 약탈 경험 덕분에 쓱 보는 것만으로 대강 견적이 나온다.
‘궁수새끼는 3천만, 바바리안은 600만, 저기 저 고양이년은… 음, 300만 정도 되겠네.’
도합 3,900만 스톤.
미궁 내에서 이 정도 약탈을 하려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녀처럼 홀로 다니는 약탈자라면 더더욱.
‘그래, 해보자.’
이내 그녀는 다시금 계획을 짜내려갔다.
균열 속이라는 특수 상황을 이용한다면, 어떻게 각이 나올 거 같기도 했다.
‘문제는 이 궁수새끼인데…….’
바바리안이나 수인은 등급도 낮은 데다가, 전사 계열이기에 딱히 겁나지 않는다.
탐지계 능력이 있을 리 없으니, 설령 2:1 상황이 되어도 이길 자신이 있다.
그러나 한 놈은 달랐다.
‘뭐 이렇게 철저해?’
놈은 상위 탐험가답게 노련했다.
초면인 자들 앞에서 어지간하면 능력을 숨기려 했고, 슬그머니 사각 지대로 빠지려 할 때마다 버릇처럼 시선을 자신에게 옮겼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잘 때도 마찬가지였다.
궁수새끼는 벽을 등지고 앉았고, 시야 반경 안에 그녀와 칼슨이 있도록 했다.
‘하, 무슨 감시카메라도 아니고. 그 고양이년은 지 뒤에 있어도 신경도 안 썼으면서.’
같은 수인족이기 때문일까?
궁수새끼는 유독 칼슨과 자신에게만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뭔가 눈치챘기 때문은 아닌 듯했다.
그냥 버릇에 가깝겠지.
경험이 쌓이다 보니 숨 쉬듯이 자연스러워진.
‘……이래서 인간족이 구리다니까.’
그녀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그리고 고블린 궁수의 정수를 먹었고, 어려서부터 탐색꾼 교육을 받아서 함정이나 기계 장치에는 어느 정도 조예가 있어요.]처음 소개했을 때 밝혔던 대로, 초심자의 모습만을 연기하며 경계심을 흩트렸다.
그러고 있자니 그 순간이 도래했다.
[이번엔 내가 힘을 좀 써야겠군.]궁수새끼가 드디어 새로운 능력을 꺼냈다.
이미 놈이 가진 네 개의 정수는 얼추 확인이 끝난 상황. 드디어 가장 경계하고 있던 ‘영혼수’의 능력이었다.
[가아아아악!!]포효하며 네 발로 달려 나가는 회색곰.
보자마자 씨익 입꼬리가 휘어졌다.
궁수새끼는 소환계였다.
그것도 탐지계 능력을 지닌 게 아니라, 고기방패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탱커형 소환수.
또한, 하늘이 돕는 것인지.
콰앙-!
바바리안이 망치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6등급 탐험가라기엔 너무도 허무하게 당한 것 같지만, [저체온증]으로 민첩 수치가 줄어든 걸 고려하면 납득 못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6등급이라던 것도 거짓말일지 모르지.
애초에 저 바바리안이야 크게 중요치도 않았다.
「캐릭터가 [무장변환]을 시전했습니다.」
스킬을 사용해 장비를 교체하다.
낡은 검 한 자루가 맹독이 발라진 보검으로, 그 외에 부위들도 그녀가 하나하나 모은 대인전 특화 장비들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그 상태로.
「캐릭터가 [야수걸음]을 시전했습니다.」
「상급 은신 상태를 얻으며 3초간 이동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은신을 활성화시킨다.
평소 ‘취미 활동’을 할 때 고블린 궁수의 정수라 소개하던 그것.
탓-
지면을 세게 내디디며 달려 나갔으나, 상급 은신의 보정으로 발소리는 극히 미세했다.
오크에게 한눈 팔린 궁수새끼는 아직 이쪽의 움직임도 눈치채지 못한 상태.
「캐릭터가 [복수]를 시전했습니다.」
「최초 일격에 한해 관통력 및 절삭력이 대폭 상승하며, 상태 이상 ‘출혈’을 부여합니다.」
이내 그녀의 검이 목표물의 복부를 헤집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원래 찌르려던 것은 심장이었으니까.
‘그걸 반응할 줄이야.’
물론, 유의미한 발악은 아니었다.
검끝으로 내장의 감촉이 느껴졌으며, 미리 맹독까지 발라 두었으니까.
변하는 건 없다.
그저 좀 더 고통스럽게 죽게 됐을 뿐.
“컥!”
그렇게 피를 토하는 궁수새끼의 표정을 바라보며, 잠시 여운을 즐기려던 순간이었다.
쨍그랑!
머리에 무언가가 닿으며 깨지더니, 끈적이는 액체를 쏟아냈다.
“뭐, 뭐야!”
확인해 보니 다름 아닌 고양이년의 짓이었다.
“너, 나한테 대체 뭘…….”
뭔가 잘못됐단 생각에 일단 뒤로 물러나는 차.
기절해 있던 바바리안이 스윽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게 시야에 들어온다.
“뭐야, 뭐냐고…….”
도무지 이해되지가 않았다.
스킬을 사용하고 기습에 성공하기까지, 약 2초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경험이 많은 그녀는 알고 있다.
기습에 당하면 대개 화들짝 놀라며 배신감에 찬 얼굴로 비명을 내지른다.
그게 보통의 반응이다.
한데 이 고양이년은 어땠는가.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어 병을 깨뜨렸을뿐더러…….
멀쩡하게 일어선 저 바바리안도 그렇다.
배신한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저 그럴 필요도 없다는 듯이.
“베헬—라아아아아아아아!!!”
함성을 터트리며 달려들 뿐.
그 이질적인 행동을 통해 그녀는 한 가지를 유추해 냈다.
아니, 깨달았다고 말하는 편이 알맞겠지.
‘설마…… 내가 이럴 걸 알고 있었다고?’
뭔가 잘못된 게 아니라.
「캐릭터가 [야수걸음]을 시전했습니다.」
「위치스램프 용해액에 의해 은신 상태가 해제됩니다.」
아주 단단히 잘못됐다.
***
「캐릭터가 [야성분출]을 사용했습니다.」
***
조상신을 부르짖음과 동시.
온몸에 활력이 깃들며, 칼슨을 두들겨 패던 아이스 오크의 관심이 내게 이끌린다.
[취, 취익?]물론, 문제 될 건 없었다.
아까 머리를 한 대 맞아 봤는데, 그냥 버틸 만하더라고.
그런 의미에서…….
타닷-!
오크는 무시한 채 대시.
굵게 뻗은 바바리안의 기럭지를 쉬지 않고 움직이자니 거리가 빠르게 좁혀진다.
젠시아는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다.
하긴 이해가 안 되겠지.
누구보다 완벽하게 기습에 성공했는데, 설마 그전에 눈치챈 놈이 있을 줄 어찌 알았겠어?
피식.
아마 나도 눈치채기 어려웠을 거다.
내가 연 균열에 이년이 들어온 거였다면, 그냥 평범한 저층 탐험가구나 싶었겠지.
신발에 묻은 흙이고 뭐고 그냥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뭐, 그래도 뒤통수는 조심했겠지만.
‘이 세상엔 씹새끼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아, 얘는 여기 사람이 아닐 수도 있나?
아지렁이처럼 피어나는 상념을 지우고서, 한 번 더 지면을 세게 박찬다.
그 순간이었다.
“어……?”
젠시아의 안색이 하얗게 질린다.
아무래도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은신 능력이 먹통 상태로 변했다는걸.
“대, 대체 이게 왜…….”
아마 은신이야말로 비장의 무기였을 거다.
곰아저씨를 먼저 해치우고, 은신을 써가며 한 명씩 죽일 생각이었겠지.
마법사나 탐지 능력자가 없다는 가정하에, 중급 이상만 돼도 대인전에서 막대한 위력을 뽐내는 스킬이니까.
사실상 전사 계열이라면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능력인 셈.
내가 해 줄 말은 하나뿐이었다.
“병신년.”
그러게 정체를 감출 거면 입조심했어야지?
고블린 궁수의 정수를 먹었단 말만 나불거리지 않았어도 은신은 나도 몰랐을 텐데.
후웅-!
거리가 되자마자 메이스를 휘둘렀다.
한데 은신 하나만으로 날먹을 하려던 건 아니란 걸까?
젠시아는 기민하게 옆으로 공중제비를 돌며 내 공격을 피해냈다.
근데 이걸 어쩌나.
거긴 고양이가 있는 쪽인데.
“이 망할년앙!”
“읏!”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미샤의 칼질을 피한다고 젠시아년이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왠지 동작이 큰 메이스질은 피할 거 같았다.
그렇기에…….
퍼억!
오랜만에 실드 스매쉬.
테니스공을 받듯 방패로 면상을 후려치자, 젠시아의 몸이 종잇장처럼 날아간다.
한데 방어력에도 스탯을 투자했을까?
적당한 손맛이 있었음에도 기절은커녕 체공 상태에서 균형을 잡고 착지하는 젠시아.
주륵.
그녀가 쌍코피를 흘리며 짜증스레 외쳤다.
“이 빌어먹을 NPC 새끼들이……!”
너, 정말로 플레이어였구나.
동향 사람과 만나는 건 타리칸 리옌 다음으로 얘가 처음이지만…….
그래도 바뀌는 건 없다.
플레이어든 그냥 약탈자든, 나를 죽이려고 한 놈들은 똑같은 ‘씹새끼’니까.
“비요른! 조심해라!”
응?
한 번 더 대시해 이번에야말로 저년의 머리통을 박살 내려는 찰나.
미샤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니 오크가 보인다.
[취이익!]놈은 상황 파악도 못하고 내 머리통을 쪼개기 위해 도끼를 내리찍고 있었다.
머리로 맞기는 좀 그래서 고개를 틀었다.
그러자 라이티늄제 흉갑의 어깨선에 박히는 거대한 도끼날.
카캉!
뼈가 조금 시리긴 하다마는, 유의미한 대미지는 아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도 무시하고 대시를 이어갔다.
그야 얘가 죽으면 최종 보스가 튀어나오거든.
한데 오크 새끼의 공격에 꿈쩍도 않는 내 모습이 나름 인상적이었을까?
“베헬—라아아아아아!”
총탄을 튕겨내는 탱크라도 된 것처럼, 굉음을 내며 달려 나가고 있자니 젠시아가 다급하게 도망친다.
그것도 우리가 들어왔던 입구 방향으로.
뭔가 싶어서 따라가 보니, 머지않아 젠시아가 걸음을 멈췄다.
“어, 왜 벽이…….”
뭐지?
혹시 다른 요소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열심히 따라왔는데.
그냥 병신이었을 뿐인가?
피식.
왠지 우스웠다.
NPC 거리더니 정작 플레이어라면서 이것도 모르다니. 원래 세 번째 챕터에 들어오면 천장이 무너지면서 길이 막힌다.
즉, 이년은 그것도 모르고 도망친다고 제 발로 막다른 길로 향한 셈.
고로 나 역시 속도를 줄였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니까.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겠지.
터벅.
방패로 상체를 가리며 천천히 걸음을 내디딘다.
사람 두세 명 지나갈 크기의 통로지만, 나는 크고 소중한 바바리안 전사.
뚫고 지나갈 틈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카캉-!
뭐, 이 와중에도 오크 새끼가 또 뒤통수를 후려쳤지만…….
“비요른! 이놈은 내가 맡겠당!”
미샤의 외침이 들린 뒤로는 그럴 일도 사라졌다.
“죽이진 마라.”
“응? 일단 알겠당!”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이제 저년과의 거리는 고작 2m.
사실상 서로가 서로의 반경 안에 들어선 상황이었으나, 젠시아는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이미 마음속에서 서열 정리가 끝난 것이다.
터벅.
더욱 자신 있게 한 걸음을 더 내디딘다.
그제야 젠시아가 다급히 외쳤다.
“잠깐! 얘, 얘기를 해요! 오해가…….”
오해는 무슨 오해.
그냥 시간을 벌고 싶은 거겠지.
아까 칼이 빨갛게 빛나는 거 보니까 [복수]를 쓰는 거 같더만.
‘쿨타임이 3분이었나?’
쿨감 세팅을 안 했단 기준하에 그랬다.
다시 말해, 앞으로 2분간 저년이 내 방패를 뚫을 방법이 없—
휘익!
애초에 시선 분산용 협상 시도였는지, 도중에 말을 끊고 검을 휘두르는 젠시아.
카칵, 퍼억!
신속하게 방패로 막아냄과 동시에 메이스로 팔목을 아작냈다. 손목이 기이할 정도로 꺾이며 바닥에 떨어지는 검.
차카캉.
일단 외통수처럼 보였다.
이년에게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스킬 혹은 장비 효과가 더 있는 게 아니라면.
아직 확신은 할 수 없다.
그러니, 변수는 없애는 게 좋겠지.
자폭기 같은 걸 숨겨 뒀을 수도 있으니까.
“오해라니, 자세히 말해 봐라.”
“정말… 믿어 주실 건가요?”
“그럴 이유가 있는 이야기라면.”
내 말에 젠시아의 눈빛이 멍해졌다.
아무래도 나를 설득할 수 있을 만한 스토리를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
아니, 설령 설득할 수 없더라도 그럴듯한 얘기를 하며 시간을 끌어 보고 싶은 거겠지.
“저… 믿으실지 모—”
젠시아의 입술이 열린 즉시.
나는 메이스로 머리를 후려쳤다.
퍼억-!
제법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던 그녀였지만, 이번엔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픽 쓰러졌다.
털썩.
이내 젠시아가 몸을 경련하며 입을 뻐끔거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데…….
피식.
눈빛을 보고 있자니,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냔 거겠지.
나는 바바리안답게 솔직히 답했다.
“그걸 믿다니, 혹시 머리에 문제가 있나?”
당연히 구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