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145)
145화 위대한 유산 (2)
고대의 악신 카루이.
세계에 남은 세 명의 신과 달리, 그 종속들에게 무한한 대가를 요구하는 존재.
그는 자애롭게 모든 걸 내어주지는 않는다.
단지 간절한 바람을 이루어 줄 뿐.
선과 악의 구분 없이.
그 대가만 충분하다면.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허락하노라.]마침내 기다려 온 대답이 들려온 순간.
공간을 찢으며 나타난 마수의 팔이 루드위그의 팔을 뜯어 가져갔다.
다만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바라만 보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실로 악마와도 같은 힘이며 권능이었다.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점에서 특히나 더.
“내, 스리…… 다!”
그가 결심을 하는 순간에도 처절했던 전투는 그 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루드위그는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가져가겠노라.]그것으로 충분했다.
무엇을 대가로 무엇을 바라는지, 악신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느, 그이! 이게 무스, 지시냐!!”
바바리안 전사를 향해 검을 찌르던 용살자의 몸이 세찬 저항을 받으며 뒤로 튕겨나갔다.
하지만 그 대가로.
지지직-!
두 귀가 뜯겨져 나갔다.
악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그 어떤 신성력이나 포션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영구적 부상.
화마에도 비할 수 없는 통증이 피어난다.
그러나 루드위그는 오직 하나만을 생각했다.
그래, 저자들은 이런 고통 속에서도 싸우고 있었구나.
“느그니. 나르, 치료해, 라.”
용살자가 검은 안광을 내뿜으며 명을 내린다.
이에 의지와 관계없이 몸이 홀리듯 움직였다.
놈에게 영혼까지 사로잡힌 손자와 별개로, 그가 가진 이능 중 하나 [권속화] 때문이었다.
그 저주받은 이능이 옭아매는 한, 자신은 그의 말을 거부할 수 없다.
하지만…….
[열을 세겠다.]거대한 마수의 발톱이 한 짝 남은 팔마저 뜯어냄과 동시, 의지와 관계없이 나아가던 몸이 멈춘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하다.
아직 바라는 것은 많고,
바칠 것 또한 많이 남았다.
다리, 눈, 심장, 폐.
무엇이든 좋다.
비루한 육신의 전부를 바치겠다.
황혼에 이르른 몸으로, 젊은 영웅들이 나아갈 길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지친 삶을 끝내고 그분의 품에 안겨 쉬고 싶다는 소망마저도 내어주겠다.
그러니…….
“저자를 죽일 힘을 다오.”
루드위그는 말하였고, 악신은 답하였다.
[불가하다.]거절이 아닌 불가.
아무리 그가 ‘자의적인’ 희생을 가장 큰 가치로 둔다고 한들, 이 정도로는 대가가 충분치 않단 뜻이었다.
하나 루드위그는 모든 미련을 털어냈다.
매일 같이 해 왔던 체념과는 달랐다.
이룰 수 없는 희망을 버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마음먹은 게 바로 이전 아닌가.
악신이 그에게 허락한 자유는 고작 10초뿐.
절망 따위로 낭비할 시간은 없다.
“그렇다면 이들을 지킬 수 있게 해다오.”
루드위그는 재차 말하였고, 악신은 웃었다.
그리고…….
[허락하노라.]어둠 속에서 뻗어 나온 마수의 팔이 그의 몸을 갈가리 찢어 집어삼켰다.
***
순간의 위기를 모면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의문이 피어난다.
카루이의 사제가 어떻게 4시간 거리를 뚫고 이곳에 당도하였으며, 왜 용살자에게 해가 될 일을 하는가.
뭔가 다른 계획이 있어서?
“느, 그이! 이게 무스, 지시냐!!”
용살자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쉽게 말해, 저놈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는 뜻.
그러나 긍정적인 변수로 보기는 어려웠다.
“느그니. 나르, 치료해, 라.”
검까지 놓친 채 뒤로 나둥그러진 놈의 눈에서 흑색 안광이 피어난다.
뭔지는 안 봐도 뻔했다.
[권속화].놈이 가진 3등급 정수의 이능.
죽은 자에게 쓴다면 영혼을 흡수해 스탯이 증가하며, 몇몇 사용 조건이 있지만 산 자에게 쓴다면 대상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사기 스킬.
터벅.
이내 사제가 홀린 듯 걸음을 내디딘다.
다만 모든 게 끝이라고 여겨지던 그 순간.
드드득.
사제의 남은 팔 한 짝이 뜯겨져 나간다.
어둠 속에 숨은 악신에게 제물이라도 바치듯.
터벅.
홀린 듯 나아가던 사제가 걸음을 멈춘다.
그의 모습은 끔찍하다는 말로도 모자랐다.
두 귀와 양팔이 짐승에게 물어 뜯겨져 나간 듯한 형상.
하나 그 형상으로 사제는 말한다.
“저자를 죽일 힘을 다오.”
그제야 나는 정확하게 상황을 인지했다.
이 이름 모를 사제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거래를 하였는지.
전부 내 예상이 맞다면 살아날 길이—
[불가하다.]사제의 요구에 관한 답은 거절이었다.
이곳에 자리한 모두에게 말하듯이 통로 전체를 울리는 음성. 이에 희비가 교차하며 용살자의 눈에 짧게 이채가 감돈다.
그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을 지킬 수 있게 해다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어진 사내의 요구.
이에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허락하노라.]사제가 바닥에 쓰러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몸을 지탱하던 두 다리가 뜯겨져 나갔으니까.
그러나 악신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주는 모순적인 존재.
후우우웅-!
그 대가로 포탈이 열렸다.
통로 중심부에 생겨나 흑색의 빛을 흩뿌리며 휘몰아치는 포탈.
광채의 색은 달랐지만, 그것은 차원문이었다.
미궁에서 도시로 향하는 문을 열 수 있는 최상위 마법.
휘이이이이익!
이내 거대한 마력이 뿜어내던 차원문이 그 너머의 모습을 드러냈다.
익히 알던 회색 도시 라프도니아가 아니었다.
어두컴컴하고 우중충한 지하 요새의 모습.
“느, 그니! 머 하느 지시냐, 다자 머처……!”
보이지 않는 돌풍이 밀어내기라도 하듯, 용살자의 몸이 서서히 밀려난다.
포탈이 있는 곳을 향해.
“네 소자가 어떠케 대도—”
“진작에 했어야 하는 일이오.”
용살자가 분노하며 뭐라 외쳤지만, 사제는 너무도 완고하게 답할 뿐이었다.
“씨바아아아아아!!!”
놈도 슬슬 사제의 결심을 막을 방법이 없음을 받아들인 것인지, 노성을 터트리며 나를 보더니 시선을 움직여 한곳을 응시했다.
그리고 손을 길게 뻗었다.
스르륵.
그러자 주인 없이 떨어져 있던 아크제 장검이 지면을 긁는다. 자성에 이끌리기라도 하듯이 놈을 향해 움직이는 은빛의 장검.
뭘 하려는지는 너무도 자명했다.
갈 땐 가더라도 이건 챙겨가겠다 이거겠지.
‘빌어먹을 검 성애자 새끼.’
비틀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불어넣으며, 앞으로 몸을 내던진다.
양심 없는 용살자 새끼가 아니라.
놈을 향해 당겨지는 검을 향하여.
쿠웅.
너덜너덜한 몸이 바닥에 처박힌 충격에 머리가 어질했지만, 손을 뻗어 검을 쥐었다.
파치칫-!
주인 각인이라도 돼 있는지, 손길이 닿자마자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는 검.
고통 내성 덕에 아픔은 버틸 만했다.
하나 손이 마비되는 감각이 실시간으로 여실히 느껴진다.
이대로 몇 분만 더 쥐고 있어도 영영 팔을 쓰지 못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
‘……이놈은 계속 이 상태로 검을 썼던 건가?’
뇌리에 스친 불필요한 의문은 즉시 지워냈다.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그런 게 아니니까.
“이노!!”
버텨낸다.
지면에 체중을 싣고 바닥에 이를 박아서라도.
언젠가 나를 향할 칼날이 놈의 손에 다시 쥐어지지 않도록.
나의 동료를 해치지 못하도록.
카카칵!
일순 끌어당기는 힘이 급격히 강해졌다.
마찰력을 잃은 것처럼 미끄러지기 시작한 육신. 이 속도라면 검과 함께 통째로 포탈에 빨려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니미럴, 지금이라도 놓아야 하나?
그런 고민이 서서히 떠오르려던 찰나였다.
“커, 커허!”
놈이 피를 토해내며 저항감이 사라졌다.
그래, 너도 이 이상은 무리라 이거지.
“바바리아…….”
이내 놈이 나를 부르더니 짧게 읊조렸다.
“다시, 마나게 되 꺼다.”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도망치는 삼류 악당이 할 법한 대사를, 미샤도 창피해할 혀 짧은 소리를 내며 말하였다.
심지어 그 뒤에 어떻게 하겠다는 말도 없었다.
하지만…….
두근-!
그 한마디에 심장이 진동한다.
“…….”
어깨에 찔린 꼬챙이가.
반쯤 짓뭉개진 턱주가리가.
피부가 저릿할 정도의 살기가.
시뻘겋다 못해 까맣게 물들어 김을 피워내는 녀석의 오른팔이 말해 주고 있다.
그날이 온다면, 오늘 같은 요행은 없으리란걸.
수백 마디 저주의 말보다도 선명하게 나에게 전달하고 있다.
근데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꽈악.
오르큘리스의 일원?
용살자란 이명의 8층 탐험가?
다음엔 ‘균형의 수호자’ 따위 없으리란 것?
‘그쯤이야 이미 알고 있어.’
그래, 당장은 놈을 이길 수 없겠지.
뭔가 수작을 부려온다면 오늘처럼 처절하게 발버둥쳐야만 하겠지.
하지만······.
솨아아아아아아-!
살아남을 거다.
그게 내가 제일 잘 하는 일이니까.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고, 앞으로도 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매일매일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강해질 거다.
그래서 언젠가 요행 따위가 필요 없어질 그때.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다, 용인.”
나는 놈을 찾아갈 것이다.
오늘 무언가를 잃은 건, 너만이 아니니까.
***
솨아아아아아-!
탐욕스레 벌어진 포탈이 놈의 몸을 뒤 삼키며 소멸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몸에 따스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료 모두에게.
‘……신성력?’
나는 멍하니 손을 바라봤다.
느릿하지만 착실하게 상처가 재생되고 있었다.
포션과 달리 아픔은 존재치 않았고, 오직 포근함만이 가득했다.
스르륵.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 뒤를 확인했다.
갈가리 찢겨져 나간 사제의 육신이 보였다.
아니, 이제 저걸 육신이라 부를 수 있을까.
팔과 다리가 없다.
파여진 눈두덩이로는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며, 전쟁터의 시체처럼 코가 베어졌다.
또한, 세로로 길게 베어진 복부 안에는 응당 있어야 할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째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도대체 이 노인은 무엇 때문에 그 많은 것을 바친 걸까.
그것도 생면부지인 우리를 위하여.
“편지……. 품에…….”
그때 희미하게 소리가 들렸다.
사제가 뱉은 소리였다.
믿기진 않지만 재빠르게 다가가 로브를 뒤져 보았다.
여기저기 구겨지고 낡은 편지 한 장이 나왔다.
“레아, 트…….”
“걱정 말고 쉬어라. 이 편지는 꼭 레아틀라스 교단에 전해주겠다.”
“고맙…….”
이내 사제가 눈을 감았다.
온갖 곳이 피투성이였으나,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만큼은 너무도 깨끗하고 편안해 보였다.
이를 보고 있으면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어떻게 이 상태로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지?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지금을 놓치면 기회가 없을 테니까.
“……왜 우리를 구한 건가?”
그것이 올바른 일이기 때문에?
글쎄, 이런 의지를 품은 자라면 진작 해방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오늘이었는가.
단순히 우연은 아닐 터였고, 나는 그 속사정이 너무도 궁금했다.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이미 죽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일어서던 차에 사제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마, 법…….”
문장은 완성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렇군, 알려 줘서 고맙다.”
나는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왠지 노인이 이미 이곳을 떠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나는 잠시 멈춰서 귀를 기울였다.
어색하리만치 이질적인 정적.
이 정적의 여운을 즐기듯 속으로 읊조렸다.
‘살아남았구나.’
살아남았다.
난쟁이놈도, 미샤도, 로트밀러도.
누구도 죽지 않았다.
하지만…….
‘이래서야 약속을 지켰다고는 못하겠군.’
나는 통로 너머로 보이는 동료의 시신을 보며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당당하게 그리 말하였건만.
정작 우리를 지켜 낸 건 녀석이었다.
우리 모두가 살아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란 말로도 부족한, 신이 내린 기적과도 같던 그것은.
[마, 법…….]단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투쟁했던 마법사.
리올 워브 드왈키.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