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146)
146화 위대한 유산 (3)
파치칫.
잠시 내려놨던 검을 집어 들고서 동료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단 내려놨던 가방에 검을 집어넣었다.
암만 봐도 평범한 아크제 장검은 아닌 듯한데, 이건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미안하네. 나는 이번에도…….”
면목 없다는 듯 고개 숙이는 난쟁이놈의 말에 그저 어깨를 두드린다.
내가 뭐라고 그에게 말을 하겠는가.
우리 모두가 살아남은 건 내 덕분이 아닐진대.
“비요른.”
미샤가 처연한 걸음걸이로 다가와 내 가슴에 손을 올렸다.
“살아서…… 다행이다. 정말로…….”
뭔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다.
그야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살아서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게 누구 덕분인지. 분명 녀석도 이 기쁜 순간을 함께하길 바라였을 터인데.
“로트밀러.”
미샤의 자그마한 손을 포옥 감싸 조심스레 밀어내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의식을 회복한 로트밀러에게 다가가 들려주었다.
드왈키가 남겼던, 고작 몇 마디의 유언.
“그렇군. 그가…….”
얘기를 모두 들은 로트밀러는 드왈키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고 성호를 그렸다. 그리고 혼자만 전하지 못한 작별의 말을 그 앞에 흩뿌렸다.
“자네가 처음 미궁에 들어왔을 때가 떠오르네. 세상이 넓다는 말을 이제 좀 이해할 거 같다고 말했지.”
3층 순례자의 길에서 있던 일이었다.
탐험을 하면서 힘들고 끔찍한 일만 있는 건 아니라며, 로트밀러는 우리를 높은 언덕으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은빛으로 물든 광활한 자연을 함께 보았고, 드왈키는 밤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설레며 기뻐했다.
“자네에게 좀 더 넓은 세상을 보여 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로트밀러는 담백하게 말을 마쳤다.
하나 남은 이들에게도 아직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던 걸까. 미샤와 난쟁이놈도 무릎 꿇고 앉아 속에 담긴 말들을 토해냈다.
나는 한 걸음 떨어져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으아아아앙! 내, 내 잘못이당 내, 내가! 내가 그 문을 고르지만 않았어도……!”
“아닐세. 내 잘못이네. 나만 믿으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 주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네.”
나라고 이 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던 결국 그 끝은 자책으로 이어질 터. 드왈키라면, 이런 모습을 바라지 않을 게 분명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곳은.
언제까지 쓰러져 있어도 좋을 만큼 상냥한 세상이 아니니까.
[메에에에엑-!]통로 저편에서 나타난 바이쿤두스를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다들 그만해라.”
“…….”
“적이다.”
기억하되 슬픔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남겨진 자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겨우 그 정도일 테니까.
“베헬—라아아아아아!!”
그저 나아가는 수밖에.
***
바이쿤두스와의 전투는 생각 외로 고됐다.
간단한 이유다.
이 드넓은 미로에 이제 네 명만이 남게 되며 능력치가 대폭 하락했을뿐더러, 아직 부상도 전부 낫지 않았다.
애초에 6등급 몬스터를 그토록 쉽게 잡을 수 있던 것은 드왈키 덕분이기도 했고.
“간단히 챙길 것만 챙겨서 돌아가지.”
전투를 끝마친 다음에는 뒷정리를 시작했다.
처절했던 사투로 바닥 여기저기 떨어진 장비.
아니, 장비의 잔해를 수거한 뒤에 사제의 품도 제대로 뒤져 보았다.
건진 것은 용도를 알 수 없는 목걸이 하나였다.
아티팩트인지 장식용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야 우리 중에 사물에 깃든 마력을 감지할 수 있던 건 드왈키뿐이니까.
“여기도 별거 없는 듯하네.”
전투에 휘말려 일찍이 사망한 중년 탐색꾼도 루팅을 해 봤으나 이렇다 할 건 없었다.
하긴 웬만한 건 전부 그 새끼의 아공간에 들어 있었겠지.
“……모두 자네가 바라는 곳에 전하겠네.”
지팡이 한 자루와 그가 매고 다니던 확장형 배낭. 부츠나 로브도 벗겨서 팔면 돈이 되겠지만, 그것은 일체 손대지 않고 남겨두었다.
“드왈키는 내가 업겠다.”
이후 우리는 함정방을 통해 포탈로 향한 뒤, 그대로 천공의 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제각기 널브러져 휴식을 취했다.
누군가는 드왈키의 앞에 앉아 몸에 묻은 피를 닦아냈고, 누군가는 벽에 등을 기대고 흐느꼈다.
거짓말처럼 찾아온 평화로운 시간이 도리어 자각하게 한 것이다.
틀림없는 현실이며, 꿈 같은 게 아니라는걸.
“비요른, 드왈키를 도시로 데려갈 방법은 없는 거냥?”
“……없다.”
“그래, 그렇구나…….”
이토록 현실은 잔혹하다.
우리를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쳤건만, 도시로 데려가 장례를 치르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죽은 게 마법사였으니까.
미궁에서 발생한 시신은 사물로 분류가 되며 ‘왜곡’ 마법이 없는 이상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바바리안의 심장이 특별한 거였고.
마법 없이도 도시로 갖고 돌아갈 수 있다니? 마법사들도 그 부분에 주목해 마법 재료로서 연구를 시작했을 테지.
“미샤, 너도 쉬어라.”
“나는 좀 더 여기에 있겠당. 우리가 떠나고 나면…… 혼자 외로울 거 아니냥.”
“……그래.”
숨 막히는 공기를 뒤로하고서 나는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미궁 폐쇄까지 하루하고 절반이 더 남은 시각.
왠지 입맛이 씁쓸했다.
‘……한 시간도 안 지났다니.’
정말로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다.
체감상 며칠 밤낮으로 놈과 싸운 거 같다.
그런데 수습을 모두 마치고 돌아왔음에도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나 하자…….’
사제가 남긴 편지를 꺼낸다.
오랜 세월 품에만 지니고 있었을, 여기저기 때 묻고 주름진 한 장의 편지. 편지에는 빼곡한 글씨로 노인이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경위가 적혀 있었다.
쭉 읽어내리던 나는 한 곳에 집중했다.
‘지하 도시 노아르크.’
노인이 어린 손자와 함께 용살자에게 납치된 곳의 이름이었다.
[노아르크의 연금술사가 만든 약이다. 복용 시 1시간 동안의 기억을 통째로 지워주지.]예전에 사이코패스년에게서 언급된 적이 있기도 한 도시의 지명이자, 도서관에서 아무리 정보를 찾아도 나오지 않던 그것.
그래, 그 하수도 아래에 그런 게 있단 말이지.
‘설마, 그 여자도 오르큘리스의 일원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편지를 쭉 읽어내렸다.
노인이 남긴 편지에는 지하 도시 노아르크와 오르큘리스는 협력 관계란 것 외에도 한 가지 놀라운 정보가 쓰여 있었다.
‘……포탈이 거기에도 있을 줄이야.’
라프도니아라는 도시가 유지될 수 있는 근간.
미궁과 이어진 포탈이 지하에도 존재했다.
그렇기에 지하의 탐험가들은 정체를 숨기고 마석을 캐와서 그것으로 도시를 세운다는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세웠다.
‘노아르크.’
나는 머릿속에 그 이름을 새겨넣었다.
앞으로 이곳과 얽힐 일이 있으리라는 강한 확신이 들고 있었다.
‘나가면 여기도 더 조사해 보자.’
그런 생각을 끝으로 편지를 다시 품에 넣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편지를 전해준다고 내게 해가 될 일은 없을 듯했다.
적의 적은 동료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럼 아무튼 이제 이 문제는 여기서 끝.
“…….”
길게 숨을 토해내며 눈을 감는다.
휴식이 간절했으나, 온갖 잡념이 떠오르고 지워지기를 반복하며 나를 괴롭혔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터무니없는 강적이 생긴 이상, 도시라고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 동료와 함께 미궁에서 나를 해치려 들 수도 있고.
‘니미럴.’
그 때문일까?
놈이 살아서 돌아간 사실이 새삼 아쉽다. 날 치료만 해주었어도 직접 놈을 끝장낼 수 있었을 텐데.
‘……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미련을 털어냈다.
세상은 바라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도 선택지가 없었던 거겠지.
악신이란 놈은 게임에서도 그랬으니까.
대가를 받고 소망을 이뤄주되, 결코 최상의 결과는 내주지 않았다.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불행도 함께 주는 원숭이 손처럼.
언제나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주는 존재.
‘……이 새끼도 묘하게 자꾸 나랑 얽힌단 말이지.’
조사 목록에 악신 카루이도 추가하며 나는 잡념을 털어냈다.
이만 나도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이었다.
도시보다 안전한 곳이 이곳일뿐더러, 밖에 나가면 해야 할 일도 많지 않은가.
“…….”
물수건으로 몸을 닦은 뒤, 침낭을 펴고서 안에 몸을 뉘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거의 이틀을 밤새며 그토록 처절한 싸움을 하였을진대.
한참 동안 잠에 들 수 없었다.
***
「미궁이 폐쇄되었습니다.」
「캐릭터가 라프도니아로 이동합니다.」
***
눈꺼풀 위를 콕콕 찌르는 햇살.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검문소를 지나 마석을 환전했다.
그리고 모이기로 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차원 광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탐험가 길드 지부. 그 앞에 도착하니 나와 비슷한 꼴을 한 자들이 한 무더기였다.
“…….”
수십 명이 모였다기에는 이질적인 침묵.
다들 엄숙한 표정으로 동료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도시로 돌아와 씻지도 않고 이곳부터 찾을 이유는 단 하나뿐이니까.
동료의 죽음.
“다 왔으면 들어가지.”
이내 동료들이 모두 도착하고서 우리는 길드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사망 신고를 하며 수습한 드왈키의 장비와 배낭까지 통째로 맡겨 버렸다.
“……고인께서 좋은 동료를 두셨군요.”
직원이 우리를 보며 묘한 눈빛을 지었다.
하기야 흔치 않을 것이다.
도시의 재산은 몰라도, 이런 부분이야 꿀꺽 삼켜도 아무런 탈이 없을 테니까.
대부분은 사망 신고만 하고 끝이겠지.
하지만…….
“왕가 공인 8등급 마법사, 리올 워브 드왈키. 사망 신고 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아깝다는 감정은 없다.
그도 그럴 게, 우리는 녀석이 미궁에 처음 들어서기 전에 썼던 유언장의 내용을 알고 있다.
[하하, 유언장이라니. 정말로 탐험가가 된 게 실감 나는구려.] [무슨 말을 써도 상관없지만, 재산 상속은 제대로 명시해라. 안 그러면 전부 탐험가 길드로 넘어가게 되니까.] [그 부분은 걱정 마시오. 이미 정해뒀소이다.]녀석은 어느 신전 산하의 고아원에 재산을 기부하기를 바랐다.
자세한 사정은 어제가 되어서야 알았다.
난쟁이놈이 말하길. 어린 시절 그곳에 맡겨져 잠시 생활했던 적이 있다던가? 녀석의 재산은 녀석이 바라는 곳에 쓰여야만 한다.
우린 이미 더없이 큰 것을 받았으니까.
“정말로 끝났군……. 자, 그럼 이제 가세.”
여하튼 이로써 도시로 돌아와 해야 할 첫 번째 일, 드왈키의 사망 신고가 끝났다.
그것은 놀라우리만치 간단했다.
서류를 작성하는 데 1분, 직원이 검토하는 데 2분. 한 사내가 짊어져 온 25년간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 것에는 고작 3분이면 충분했다.
‘그만큼 죽음이 흔한 세상이란 거겠지.’
씁쓸함을 뒤로하고 길드를 나선다.
그리고 레아틀라스교의 대신전으로 향한다.
이미 떠나 버린 망자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길은 고작 그것뿐이니까.
“너희들은 돌아가서 쉬고 있어도 된다.”
“어찌 그럴 수가 있겠나. 생명의 은인이신데.”
“나도…… 나도 따라갈 거당. 쉬는 건 안에서 충분히 했으니까…….”
하루 종일 우느라 쉬지도 못했던 미샤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숙소로 돌아가도 제대로 쉬지 못할 게 분명할 터이니.
“…….”
다 함께 목적지로 향했다.
머지않아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듯한 순백의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냈고,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견습 신관이 치료를 바라는 것이냐는 물음에는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루드위그 대신관의 부탁으로 방문했다고 말하였다.
“루, 루드위그 대신관님이요……?”
감히 신이 거하는 곳에서 거짓을 뱉으리란 생각은 못 하였을까. 앳된 얼굴의 신관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장 안으로 달려가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뵙는군요.”
가만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익숙한 얼굴이 마중을 나왔다.
제3 성기사단의 단장, 파알 크로비츠.
“몇 년 전에 실종된 루드위그 대신관님의 부탁을 받고 오셨다고 들었습니다마는. 혹시 증거가 될 물건이 있으신지요?”
그가 정중하게 물었다.
본교에 있어 무척이나 예민한 사안이라며, 부디 양해를 바란다고도 말하였다.
도시 전역에 내건 포상금 때문에 크게 경을 쳤던 사건이 몇 번이나 있었다던가?
“포상금?”
“예. 워낙 액수가 크다 보니 삿된 마음을 품는 자들이 있더군요.”
포상금을 바라고 온 것은 아니다.
하나 엘리사년을 해치우고 거액의 포상금을 받은 전적이 있는 나는 무심코 묻고 말았다.
“대체 얼마나 큰돈이기에?”
속물적인 질문에 미샤가 내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줬다. 난쟁이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자네라도 이건 좀 그렇군.”
탐험가이자 레아틀라스 교인이기도 한 로트밀러 역시 그리 마음에 드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크로비츠는 별 내색 없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제공한 정보, 성물의 유무에 따라 액수가 다르긴 하지만…….”
“하지만?”
“재무청에서 최대 7천만 스톤까지 내건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의 답변에 모두 그대로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