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147)
147화 위대한 유산 (4)
7천만 스톤.
듣자마자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의 거액.
다만 애써 진정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기뻐하는 건 그 돈이 내 손에 쥐어진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이 편지면 증거가 되겠나?”
편지를 건네받은 크로비츠는 위에서부터 천천히 읽어내리더니 표정을 싹 바꾸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건가?”
“아, 죄송합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본교에는 정말로 중대한 사안입니다. 얀델 님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나, 잠시 안에서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지.”
파알 크로비츠는 신전 내부의 응접실 같은 곳으로 우리를 안내하더니, 다급한 기색으로 자리를 비웠다. 상부에 알리기 전에 필적을 먼저 확인해 봐야 할 거 같다던가?
“설마…… 뭔가 잘못되는 건 아니겠징?”
“하하, 그럴 리 있겠나. 단지 저쪽도 확실하게 검증을 한 뒤에 얘기를 나누고 싶은 거겠지.”
“무라드의 말이 맞네. 자네들도 읽어 봤겠지만, 편지의 내용이 내용 아니던가.”
기다림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서도 서서히 다른 추측이 나오기 시작할 때.
“사죄드립니다. 부득이하게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리게 하였군요.”
파알 크로비츠가 돌아왔다.
“자, 가시지요.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를 따라간 곳은 2층의 예배당이었다.
일반 신도들이 아니라 신관이 된 자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
“여긴 교단 사람이 아니면 들어가지 못한다고 들었소만…….”
“여신께서 인연을 이어주셨는데, 어찌 여러분을 남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로트밀러의 질문에 답하는 크로비츠를 보며 불안을 지웠다. 만약 편지가 가짜라고 판단한 거라면 저런 태도를 취할 리 없으니까.
끼익.
이내 크로비츠가 문을 열며 예배당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당히 넓은 공간이었으나, 그 안에 자리한 사람은 일곱 명에 불과했다.
그들의 면면을 확인한 나는 흠칫 굳었다.
‘미친.’
백작가 방문 이후 교단의 직위에 관한 책을 여럿 정독했기에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갑옷을 입고 있는 두 명의 남녀. 갑옷에 박힌 문양은 각기 달랐으나, 테두리를 장식한 은색의 실은 그들이 성기사단의 단장임을 의미한다.
파알 크로비츠까지 합치면 교단에 단 셋뿐인 단장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셈.
한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두 명의 대신관과 한 명의 추기경.
그리고 그들의 보좌를 받듯 중심에 서 있는 노령의 사내.
“……별을 따르는 종이 영성대주교님을 뵙습니다.”
로트밀러가 그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성호를 그렸다.
그럴 만도 했다.
가톨릭에 덧대어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교황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니까.
‘근데 저 어린애는 누구지?’
화려한 라인업에 묘한 압박감을 느끼기도 잠시, 나는 교황 앞에 자리한 꼬마를 응시했다.
열 살쯤 됐음직한 작은 남자아이.
이제 보니 모두가 그 아이를 지키듯이 진형을 잡은 것 같았다. 심지어 아이에 바로 뒤에 서 있는 교황마저도.
대체 뭐 하는 꼬마일까.
이를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황혼에 뜬 별이 우릴 인도할지니.”
교황이 먼저 성호를 그리자, 모든 구성원이 우리를 보며 묵례를 취했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신도이기도 한 로트밀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돌처럼 굳어 버릴 만큼.
“…….”
현재 자리한 곳이 예배당이기 때문일까?
묘하게 신성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가 공기 중에 흐른다.
잠시간의 침묵이 끝나고 교황이 입을 열었다.
“루드위그 대신관은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었소. 편지를 전해준 것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오. 혹시 어떻게 이 편지를 얻게 된 것인지를 물어도 되겠소?”
솔직히 조금 의외였다.
삼대 종교 중 하나의 최고 권력자인 자가, 4층 탐험가에게 하는 말이라기엔 너무도 정중했으며 조심스러웠으니까.
‘항상 이러는 건 아닐 테고.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었나 보군.’
이내 나는 천천히 말문을 뗐다.
그리고 라르카즈의 미로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한데 이게 성직자식 사고방식일까?
“황혼의 별이 길 잃고 헤매던 그에게 그대들을 보내주었구려. 그의 영혼을 구해주어서 고맙소. 비록 사악한 악신에게 사로잡혔을지언정, 그의 혼은 어둠 속에서도 영원히 빛을 이어갈 것이오.”
약간은 듣기 거북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나와 정반대에 위치한 사람들이라는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예로부터 나는 종교인과 상성이 좋지 않았다.
“……그의 유품이다.”
이내 나는 대신관이 끼고 있던 목걸이를 꺼내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만약 이게 성물이라면 포상금을 받는 것보다 훨씬 값어치 있을 테지만…….
도리를 지키는 것이기에 아깝진 않았다.
그 대신관에게는 빚을 졌으니까.
“고맙소. 찾던 물건은 아니지만, 이걸로 그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겠구려.”
그래, 성물은 아니었던 거구나.
하긴 그런 게 있었으면 전부 그놈이 빼앗아갔겠지.
“그레이온드 추기경, 이들에게 돌아갈 포상금이 얼마요?”
“성물은 되찾지 못하였으나, 자필 편지에 적힌 내용의 중요성과 그의 유품, 그리고 그의 마지막 순간을 전해준 바를 고려하건대, 재무청에서 지정한 7천만 스톤을 모두 지급해도 부족하지 않을 듯합니다.”
“그럼, 그렇게 해주시구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성물이 없어서 반 토막 나겠다 싶었는데, 그걸 전부 주겠다니. 그들의 말을 거북하게 들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이들은 정말로 훌륭한 종교인이었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겠지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말해 보시오.”
첫 단락이 끝났기에 즉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포상금보다 중요할 이것.
“그래서 너희들은 이제 어쩔 건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물어도 되겠소?”
“루드위그 대신관을 납치한 범인을 찾았지 않나. 혹시 복수하려는 건지가 궁금했다. 어쩌다 보니 나도 휘말리고 말았으니까.”
질문을 하면서 자연스레 너희에게도 책임이 있단 식으로 암시를 던졌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너무도 애매모호했다.
“그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확답할 수 없소.”
“그렇군.”
쩝, 얘네들이 복수한다고 설치면 당분간은 날 건드릴 여력이 없으리라 여겼건만.
정말 나 혼자 어떻게든 해보는 수밖에 없나?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위대한 전사님.”
아까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꼬마 아이가 입을 엶과 동시.
솨아아아아아-!
너무도 찬란한 은색의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내 굵은 손가락에는 세 줄기로 얽힌 덩굴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가 싶었으나…….
이어진 추기경의 외침을 듣고서 깨달았다.
“신탁……! 신탁이 내려왔다……!”
게임 내에서도 NPC들 대화로만 들었지, 실제로 겪어 본 일은 없던 그것.
신탁이었다.
‘니미럴.’
그것도 들어 보니 무척이나 오랜만에 내려진.
***
드디어 의문이 풀렸다.
교황이라는 자가 저토록 어린아이를 신줏단지 모시듯 대하고 있었는가.
그 해답은 실로 간단했다.
‘설마, 성녀일 줄이야.’
아니, 남자애니까 성자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호칭이 중요한 게 아니다.
신의 목소리를 듣고, 가끔은 그의 힘을 품어낼 수 있는 그릇.
그 그릇의 자질을 가진 아이가 말한다.
“방금 여신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 반지가 강하게 이어진 악연을 세 번까지 막아 줄 거라고.”
“악연이라면, 용살자 리갈 바고스를 말하는 건가?”
보통의 점쟁이였다면 이런 물음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식의 말을 했을 것이다.
하나 신탁은 달랐다.
“네. 오직 그와의 악연만을 막아 낼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러니 그 반지의 줄기가 모두 끊어질 때를 대비해 운명을 이겨 낼 준비를 하셔야 해요.”
마치 내가 마왕을 무찌를 용사라도 된 기분.
솔직히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리 엘리사년을 조지고, 대신관과의 일도 있었기로 하거니, 여신이 이런 선물을 왜 준단 말인가.
심지어 악령이라 불리는 자에게.
‘뭐지? 몰래카메라 같은 건가?’
문득 이 꼬마애를 이용해 다 같이 사기를 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손에 끼워진 반지가 그 의심을 지워주었다.
경악으로 물든 표정들도 연기라기에는 너무나 신실해 보였고.
“황혼에 뜬 별이 우릴 인도할지니.”
“순리대로 흘러갈지어다.”
이 세계의 최상위 종교인인 그들이 일제히 나를 보며 성호를 그린다.
나는 동료들의 표정을 확인했다.
“비요른, 너 정체가 뭐냥!!”
“정말로, 운명을 타고난 자였나!”
“아니,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오. 어, 어떻게 바바리안이 인간의 신에게 선택을…….”
아니, 그렇게 쳐다봐도 나도 모르는데.
그제야 나는 단순히 기뻐할 일이 아님을 깨닫고서 꼬마애를 응시했다.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다만…….
털썩.
신탁을 받은 대가인지 힘없이 쓰러지는 아이.
교황이 아이의 몸을 잡아들었고, 그것으로 오늘의 만남은 끝이 났다.
“크로비츠 경, 이분들을 밖으로 안내해 주게.”
“아니, 잠시만! 아직 물어볼 게…….”
“부디 양해해 주기를 바라오. 추후 다시 만나 모두 설명하리다. 그때까지 오늘 일은 비밀에 부쳐주기를 바라오. 어쩌면 그대에게 큰 재앙이 닥칠지도 모르니.”
“뭐, 재앙?”
터무니없는 말을 들은 거 같지만, 대화는 거기에서 끝이었다.
“자세한 건 크로비츠 경이 설명해 줄 것이오.”
교황의 완고한 태도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내쫓겼다. 그리고 파알 크로비츠의 인도 아래에 일단 아까 대기하던 응접실로 향했다.
“크로비츠,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분께서 대체 무슨 뜻으로 이종족에게 신탁을 내렸는지.”
“……이종족에게 신탁을 내리는 일이 없나?”
“예, 제가 알기로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그래서, 그자들은 어떻게 됐지?”
“기록에 의하면 종족 내에서 이단으로 낙인찍혀 내쫓긴 것으로 압니다.”
하, 이거 골치 아프게 됐네.
악령에 이어 자살 버튼이 하나 더 생겼다고 해야 하나?
“비밀로 부치라고 한 이유를 알겠군.”
“예, 아무래도 알려지면 득보다 실이 많을 테니까요.”
바바리안의 성장 핵심은 혼령각인이다.
그런데 부족에서 내쫓긴다?
그날부로 나는 망캐가 되는 거나 다름없다.
바바리안 주술사는 성지에만 존재하니까.
“그래도 저희 측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먼저 흘러나갈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 말하며 크로비츠가 동료들을 보았다.
말은 없었지만 하고자 하는 뜻은 명확했다.
따라서 나도 동료들을 보았다.
“아! 나, 나는 입 꾹 닫는당! 진짜로? 믿지? 비요른?”
“걱정 마시게. 오늘 나는 무엇도 듣지 못했으니.”
미샤는 두말할 것도 없고, 로트밀러도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성격도 성격이지만, 일단 이 아저씨는 레아틀라스 교도이기도 하니까.
다만, 문제는…….
“자, 자네! 왜 그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나?”
“몰라서 묻나?”
“……앞으로 술을 끊겠네.”
낙심한 표정으로 고개 숙이는 난쟁이놈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 여기를 다 같이 오는 게 아니었는데.
여기 신들은 다 이런 식인가?
가슴을 짓누르던 가장 큰 돌을 가져간 대신, 그보다 작은 돌을 새롭게 얹어준 느낌이다.
‘그래도 얘가 그 정도로 입이 가벼운 건 아니니까…….’
다만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기로 했다.
만약 이 반지가 정말로 용살자와 마주치는 이벤트를 막아 준다면, 이 정도 리스크는 리스크라 부를 수도 없지 않나.
득실을 논하자면 무조건 이득이다.
가장 간절했던 시간을 번 셈이니까.
‘신탁을 통해서 성물을 먹는 건 또 처음이네.’
신이 내린 물건을 성물이라 부른다.
대부분 사기적인 효과를 지녔다.
그렇기에 나도 반지의 성능만큼은 의심하지 않았다. 얼마나 갈지는 몰라도, 세 가닥이 다 끊어지기 전까지는 놈과 마주칠 일이 없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얼마나 늦게 끊어지냐는 거겠군.’
2년? 3년?
갓 나온 따끈따끈한 성물이니만큼 그 정도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일단 최대한 짧게 잡고 준비하는 편이 옳을 터.
최소 반년에서 일 년을 생각하기로 하며 마음 정리를 끝마쳤다.
그리고 소파에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지지직.
얽혀 있던 덩굴 하나가 끊어졌다.
“어, 비요른? 방금 하나가 끊어진 거 같은뎅.”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침을 바른 손가락으로 끊어진 덩굴을 새끼줄 꼬듯이 비볐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현실은 냉정했다.
“자, 봐라. 딱 달라붙어 있지 않나.”
보란듯이 반지 낀 손을 내밀은 순간.
솨아아아-!
끊어진 덩굴이 은색 빛을 뿜어내며 흩날린다.
나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별의 가호의 발동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