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188)
188화 템빨 (3)
어두운 숲속을 걷고 있다.
그림자 제단에서 도플갱어가 사라진 방향을 따라 하염없이.
“…….”
경직된 공기 속에서 발을 옮기는 중이다.
참고로 진형은 내가 최선두에 있고, 나머지는 몇 미터가량 뒤에 떨어져 따라오는 식.
일반적인 진형이라기엔 거리가 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게 바로 캐리형 탱커의 삶일진데.
“전투 준비!”
전방에서 인기척을 느낀 순간.
빛구체 마법이 닿지 않던 어둠 너머에서 수십 마리의 도플갱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 번째 챕터에 접어들게 되면 생기는 변화다.
도플갱어의 봉인이 풀린 다음부터는 필드에 깔린 분신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제국, 제국의…… 적……!”
“죽…… 여라!!”
더는 우리의 모습으로 변신하지 않는다.
적어도 본체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그렇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
게임을 할 땐 그냥 그러려니 했던 부분이니까.
뭐, 이제는 찾아보면 이 현상에도 분명 뭔가 숨겨진 배경이 있지 않을까도 싶지만…….
지금 생각할 건 그런 게 아니겠지.
「캐릭터가 [도약]을 시전했습니다.」
거리가 더 좁혀지기 전에 냅다 뛰어 놈들의 한복판에 착지했다.
콰아아앙-!
착지하기 무섭게 땅이 꿀렁거리며 이어지는 특수 지형 효과 [반동]. 수십 마리의 도플갱어들이 일제히 허공에 떠오른다.
콰직-!
일단 야구 방망이 휘두르듯 한 놈을 후려치며 [야성분출]을 시전했다.
“베헬—라아아아아아!!”
3배로 뻥튀기 된 위협 수치.
병사의 모습을 한 도플갱어들이 눈 돌아간 짐승처럼 내게 달려들었다.
몬스터인 이상 도발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제국을, 위…… 하여……!”
병사로 둔갑한 도플갱어는 스킬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까다로운 적이었다.
깡스탯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방패병이 내 메이스질을 버텨 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스탯만 본다면 하나하나가 최소 아이나르 이상.
또한 활, 창, 검, 마법, 석궁, 방패 등의 다양한 병과로 이뤄졌다는 것도 전투 난이도를 올리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콰직! 콰직!
막을 것은 막을지언정, 결코 피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피하는 건 의미가 없다.
이미 사방이 적이었으니까.
그저 탱커답게 처맞으면서 동료의 지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아루아 레이븐이 5등급 공격 마법 [낙뢰]를 시전했습니다.」
머지않아 고대하던 마법이 완성됐다.
광범위하게 쏟아지는 번개.
「카일먼 파르테이안이 5등급 보조 마법 [주문강화]를 시전했습니다.」
파르테이안의 보조 덕분인지 위력이 평소의 2배가량 증가했다.
따라서 마법에 휩쓸리지 않게 일시 정지.
콰콰콰콰콰쾅-!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낙뢰’가 내리친 시간은 약 5초 정도였지만, 도플갱어 군단을 반파 상태로 만들기 충분했다.
‘역시 사냥은 몰이사냥이지.’
남은 잔당들은 멀찍이 물러나 있던 동료들과 함께 시간을 들여 처치했다.
그렇게 끝난 한 번의 전투.
둔기 전사가 무기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읊조렸다.
“……파르테이안 님, 사르만 양은 괜찮겠지요? 자꾸 걱정이 됩니다.”
“자네도 보지 않았나. 제단 근처로 도플갱어가 얼씬도 못 하던 걸. 밖으로 나가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걸세.”
“그래도 데려오는 게 낫지 않았을지…….”
둔기 전사는 안전지대에 두고 온 인도녀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도플갱어의 특성상 인도녀를 활용할 방법이 아예 전무한 건 아닐 테지만…….
이는 일회용 버림 패로 썼을 때의 이야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함께한다면, 득보다 실이 훨씬 더 크다.
“그만하세. 사르만 양도 동의한 부분 아닌가. 어차피 우리가 실패하면 전부 죽을 걸세.”
파르테이안이 내 눈치를 보며 이쯤에서 대화를 끝냈고, 나도 그냥 별말 않고 탐사를 재개했다.
시간을 낭비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
드드드드-!
이후 몇 번인가 더 전투를 치르며 어두운 숲속을 나아가고 있자니, 발아래서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봉인 해제율이 20%가 됐단 뜻이다.
하긴 10분에 1% 정도가 올라가니, 슬슬 그럴 때가 됐긴 했지.
“얀델 씨, 조금만 더 빨리 갈 수 있을까요?”
“그러지.”
시간에 쫓기듯 이동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도착했네요.”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이전에 중간 보스를 찾느라 숲을 헤맬 땐 보지 못했던 싱크홀.
이제 이 아래로 내려가면 보스전이 시작된다.
다만, 그 전에 일단 이것부터.
“잠시 이 근방 좀 수색하고 넘어갈게요.”
레이븐의 지시하에 우리는 싱크홀 근처를 돌며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역시 책 내용대로네요. 반드시 입구 근처에 하나가 숨어 있을 거라더니.”
음산한 소리를 뿜어내는 백색의 비석.
게임 내에서는 ‘봉인석’이란 고유 명사로 명명되던 그것.
다만 이 자체로 히든 피스라 하기엔 그렇다.
네 번째 챕터가 되면 이 숲 전체에 다발적으로 생겨나는 것일뿐더러…….
“책 내용대로라니?”
봉인석에 대한 정보는 세 번째 챕터가 끝나면 그림자 제단에서 생성되는 [제물의 수기]를 통해 자연스레 알 수 있다.
뭐, 그래 봤자 그냥 찾아서 활성화하란 식의 정보지만.
“그 수기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네만.”
“수기 말고 다른 책이요.”
레이븐은 마법사 파르테이안의 의문에 자세히 답하지 않으며, 봉인석 위로 손을 올렸다.
솨아아아아-!
기둥 형태로 하늘 위로 쏘아지는 흑색의 빛.
「봉인석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봉인 해제율 10%.」
이로써 도플갱어의 봉인 해제율 10% 줄었다.
물론 우리 전략대로라면 이 수치가 크게 의미 있진 않겠다마는, 어차피 지나가는 길이니 스킵 할 이유는 없을 터.
“그럼, 여기서 할 수 있는 준비는 끝났네요.”
이내 우리는 다시 싱크홀 쪽으로 돌아왔다.
“다들 준비 됐나?”
보스전을 치를 차례다.
***
「캐릭터가 강탈자의 은신처에 진입했습니다.」
***
균열의 꽃이나 다름없는 보스전.
다만 ‘도플갱어 숲’의 보스전은 조금 특이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일단 원정대가 둘로 나누어져야 한다.
한 팀은 보스전을 치르고.
다른 한 팀은 도플갱어 병사로 가득한 숲에서 봉인석을 찾아 봉인 해제율을 관리해 주는 식.
[제물의 수기]에도 적힌 정석 공략법이다.‘컨셉 한번 짜증난단 말이지.’
이곳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믿고 제 역할을 해야지만 깰 수 있다.
아마 우리도 각 팀에서 두세 명씩 적정 멤버를 차출해 두 팀으로 나눠 보스전을 치렀을 것이다.
그 지뢰가 터지지만 않았더라면.
[이제 그 방법은 쓸 수 없어요. 지금 우리는 고작 일곱 명뿐이니까.]원정대가 반쪽 나며 일이 꼬였다.
팀을 나누기엔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드워프 및 한스G 팀이 남긴 전리품을 확인한 나는 일찍이 답을 내렸고, 레이븐에게 힌트를 줘 같은 답에 도달하도록 유도했다.
올인.
안 그래도 적은 인원을 둘로 나눠 이도 저도 아니게 될 바에, 한곳에 모든 전력을 집중해 단기전을 노리는 것.
쉽게 말해, 고인물식 공략법.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데, 다들 괜찮겠어요?] [별다른 수가 없지 않나.]그렇게 전략의 토대가 잡혔다.
내가 점친 성공 확률은 90%.
물론 확률은 숫자에 불과하기에, 이게 제대로 통할지는 직접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다.
삶이란 게, 어디 플랜A로만 되던가?
쿠웅-!
바바리안답게 먼저 땅굴 아래로 뛰어 안전 여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위로 신호를 보내자, 나머지 인원들도 하나씩 내려왔다.
“공기가 으슬으슬하군.”
서늘한 온도의 동굴.
[끼야아아아아아악-!!]안쪽에서도 우리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기괴한 하울링을 터트렸다.
나는 피식 웃었다.
이는 바바리안의 역할 중 하나다.
“뭘 얼어 있나? 조지러 가자.”
팀원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것.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앞장서 일직선 통로로 나아가자, 위축됐던 몇몇도 정신을 차리고서 그 뒤를 따랐다.
터벅, 터벅.
그렇게 한 마흔 걸음쯤 걸었을까?
동굴 전체에 흩뿌려져 있던 안개가 걷히며 보스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진 공동.
장난감처럼 여기저기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진실의 돌과 그 중심부에 등을 돌린 채 쪼그려 앉아 있는 사람 형태의 무언가.
그리고, 흐느끼는 소리.
“너, 희도…… 날 죽이러, 온 거야……?”
무언가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응시했다.
드러난 얼굴은 우리 중 그 어느 누구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꼬마였다.
눈코입이 상하 반전된 모습만 아니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 는데…….”
억울하다는 듯 우리를 노려보는 꼬마.
이내 눈빛에 담긴 감정이 분노로 변한다.
흔하디 흔한 보스전의 인트로다.
“나, 도 너희와 똑같—!”
따라서, 다음 대사를 치기 전에 스킵.
“베헬—라아아아아!!”
‘도약’을 쓰기 좋은 환경은 아니기에, 그냥 대시하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퍼억-!
앉아 있던 그대로 머리가 짓뭉개진 꼬마.
그러나 평소와 같은 손맛은 없다.
마치 물로 가득 찬 샌드백을 때린 것만 같은 감촉.
[끼예에에에에엑!!]어디서 나는지 모를 비명 소리가 동굴 전체를 가득 채움과 동시, 꼬마가 검은 점액질의 형태로 변했다.
부글부글부글!
성게 가시처럼 올록볼록하게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는 검은색의 무언가.
‘시작은 나인가.’
그 과정이 끝났을 땐, 또 하나의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의태擬態.
정수를 취해도 얻을 수 없는 도플갱어만의 고유 스킬.
다만 필드에서와는 조금 달랐다.
“끼예에에에에엑!!”
놈은 더 이상 내 말과 행동을 따라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름 없는 강탈자가 [휘두르기]를 시전했습니다.」
단순히 흉내내기로만 끝내지 않고, 원래보다 더 강해진다.
5등급 몬스터의 능력치에 의태 대상이 가진 스탯과 스킬이 추가된다고 보면 쉽다.
괜히 4등급 판정을 받은 몬스터가 아닌 셈.
후우우웅-!
일단 시험 삼아 뒤로 물러나 피했다.
그와 동시에 놈의 메이스가 바닥에 처박혔고.
콰아아아아앙-!
크레이터를 남기며 동굴 전체를 진동시켰다.
근력이 200은 더 증가해야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위력. 내 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뿌듯한 감정이 생길 정도다.
그러나…….
‘이 정도면 충분히 막을 수 있겠네.’
딸리는 능력치는 템빨로 커버하면 그만.
마구잡이로 메이스를 휘두르는 놈이 동료에게 다가갈 수 없도록, 방패를 들고서 저지한다.
콰아앙-!
기대했던 청명한 소리는 나지 않았다.
방패에서 느껴지는 무게감도 상상 이상이었고.
이게 50% 감소한 충격량이라고?
“레이븐!!”
졸렬한 탐험가답게 지원 핑을 찍었다.
그 즉시 날아오는 마법.
고등급 몬스터가 상대인 만큼, 시작은 공격 마법이 아닌 저주 마법들이었다.
콰앙-!
조금 더 버티기 수월해진 놈의 공격.
그러나 이는 공략을 위한 첫 번째 전제가 충족됐을 뿐.
본격적인 첫 페이즈는 지금부터다.
「이름 없는 강탈자가 [자가복제]를 시전했습니다.」
내 모습을 한 도플갱어의 몸에서 검은 점액이 무차별적으로 튀며 바닥에 떨어졌다. 숫자를 세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작은 알갱이들.
“이헤르노 하인다르!”
레이븐의 지팡이가 불길을 뿜어내며 알갱이를 녹였지만, 전부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꿋꿋하게 바닥을 기어 뭉쳐진 알갱이는 일련의 변신 과정을 거치며 우리의 모습으로 의태하기 시작했다.
“총 넷이에요!”
레이븐이 침착하게 정보를 내게 전달했고.
나는 빠르게 판단했다.
분신체이기에 이놈들은 본체와 같은 성능은 내지 못한다.
따라서, 계획은 속행.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놈들부터 해치워라!”
분신체들은 동료에게 맡기고, 본체를 상대하는 것에만 집중하려 마음먹던 그때였다.
“전부 한스 크리센이에요!”
추가로 이어진 레이븐의 브리핑에 몸이 저절로 굳었다.
‘뭐?’
두 귀를 의심하며 전투 중임에도 주변을 확인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레이븐이 내게 잘못된 정보를 전했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니미럴.’
어떻게 전부 다 한스G로 뜰 수 있는 거지?
죽었든 살았든, 15명 중에 한 명으로 변신하는 패턴 아니었나?
그럼 대체 확률이 몇인 거야?
내 속도 모르고 레이븐이 외쳤다.
“분신체 중에 얀델 씨가 없어서 다행이에요! 서둘러 정리하죠!”
마치 희소식을 전하는 듯한 목소리.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한스G는 우리 중에서 전투력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지는 편일뿐더러, 소환술사가 넷이면 조합적으로도 구리니까.
확실히, 우리에게는 잘 된 일이다.
하지만…….
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