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198)
198화 마스터 키 (3)
마스터.
원탁의 감시자라는 비공개 채팅방을 만든 장본인. 그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자 회원들이 일제히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후, 정말 가버리셨군.”
“……채팅방을 나갈 때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어요.”
“예, 마치 로그아웃을 할 때와 같은…….”
이들의 목소리에는 오직 의문만이 가득했다.
뭐, 그 심정은 나도 크게 다를 바 없겠다마는.
“로그아웃은 방으로 돌아가야지만 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남기신 말씀을 들어 보니 튕겨져 나가는 느낌에 가까워 보였소만.”
이백호와는 여러모로 경우가 다르다.
걔는 처음부터 ‘초기 알약’을 먹어서 제한 시간이 1시간이었다.
반면 마스터는 어떤가?
원래는 멀쩡했던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다.
그것도 현실이 아니라 ‘고스트 버스터즈’란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데 있어서.
그런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
“마스터께서는 도대체 어떤 일을 겪고 계신 걸까요…….”
“피싯, 뭔지는 몰라도 하나는 확실하군요.”
“확실하다니요?”
여우의 물음에 광대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1년간 말도 없이 사라졌던 게 GM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
일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충격적이어서 그렇다기보다는 그저 제각기 생각을 하느라 생겨난 정적.
대체로 그의 추측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하긴, 역시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겠네요.”
“그렇지만 모순이 있소. 만약 마스터가 정말로 GM의 제재를 받은 거라면, 어떠게 다시 이곳에서 모습을 내보일 수 있단 말이오?”
“워낙 신비한 분이잖아요. 마법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니, 마법으로 무언가 해답을 찾아낸 것 아닐까요?”
“그, 그, 그럼 이 커뮤니티를 만든 GM보다 더 실력 있는 마법사일 수도 있다는 뜻이군요! 우리 마스터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이지요. 피싯.”
이후로 회원들은 온갖 추측을 주고받았고, 그 내용이 제법 흥미로웠던 나는 조용히 경청하기만 했다.
물론, 그 시간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저기, 수사자 씨는 혹시 아시는 게 있나요?”
머지않아 자연스레 내게로 이목이 모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백호인 척하며 이들 앞에서 영감이니 뭐니 했던 나 아닌가.
뭔가 아는 게 있을지 모른다 싶었겠지.
하지만…….
“글쎄.”
나라고 알 턱이 있나.
그의 정체가 궁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렇게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거, 모양 빠지게.
“네, 그렇군요. 역시 수사자 씨도…….”
‘수사자’에게 모른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이런 느낌이라면 모를까.
“짚이는 것 정도는 있다.”
나는 여우의 말을 끊고서 짧게 읊조렸다.
그러자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던 여우의 목소리 톤이 확 올라갔다.
“짚이는 것? 그, 그게 정말인가요! 아니, 이건 수사자 씨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어느새 가면 틈새로 드러난 여우의 동공에는 기대감이 물씬 피어나 있었다.
참고로 이는 다른 가면들도 매한가지.
‘……사실 짚이는 것도 없는데.’
아직 남아 있던 현대인의 양심이 꿈틀했지만, 애써 무시하며 또다시 여우의 말을 끊었다.
“어, 어서 알려 주세요. 마스터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
“그만.”
“……에?”
당연히 내가 말해 줄 거라 생각했는지,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우.
다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어깨를 살짝 으쓱하는 거면 충분했다.
여기서 이 제스처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으니.
“재밌는 걸 가져오라는 뜻이군요. 피시싯.”
내게 원하는 게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걸 가져와야 한다.
그게 ‘수사자’가 원탁에서 세운 철칙이다.
그렇다면 ‘여우’는 어떤 대답을 내릴까?
“……좋아요.”
예상대로였다.
유독 마스터의 근황이나 그런 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던 인물이 바로 ‘여우’였으니까.
“그래도 저는 조금 허들이 낮겠죠? 확실한 것도 아니고 짚이는 것 정도인데…….”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고, 이내 여우가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성물’이란 떡밥을 문 광대와 ‘소생의 돌’에 눈이 돌아간 초승달에 이어 자신까지 이런 처지가 될 줄은 몰랐던 모양.
“왠지 동지가 늘어난 기분이구려. 앞으로 여우 양도 고달파지겠소.”
초승달이 건넨 위로의 말에 여우는 체념하듯 쓴웃음을 내지었다.
앞으로 정보의 질이 더 올라가리라는 뜻.
‘남은 건 사슴뿔과 고블린 정도인가…….’
나는 흡족한 마음을 뒤로하고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지루하군.”
“…….”
“잡담은 이만하면 됐지 않나?”
“예, 슬슬 집회를 시작하죠.”
떡밥은 이만하면 됐으니, 수확을 할 차례다.
***
아무도 없던 3회차에 이은 어느덧 4회차 집회.
시작은 고블린이었다.
“마탑에서 머리를 맞대고 노아르크의 결계를 뚫을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처음 그 말을 했을 땐, 다들 얘가 뭔 당연한 소리를 하는 건가 싶은 반응이었지만 고블린의 부연 설명에 다들 납득했다.
“참고로 그 과정에서 신성력이 일정량 이상 필요한 모양이고, 적어도 결계가 해제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줄일 수 있을 거 같다더군요.”
“어느 정도 연구 성과가 있었다는 뜻이구려.”
“예, 그렇지요.”
정리하자면, 노아르크를 지켜 주는 마력 장막이 금방 벗겨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뭐,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다마는.
‘레이븐은 2년 정도 걸릴 거라고 봤었지…….’
이후 마탑에선 6개월까지 줄이는 걸 목표로 정했다는 말을 끝으로 고블린의 턴은 종료됐다.
그다음 차례는 사슴뿔.
“왕가에서 새로운 형태의 인식표를 제작했다. 위조가 불가능한 각인 형태의 마도구지. 준비는 예전부터 한 모양인데, 다음 주에는 탐험가들에게 보급이 시작될 거다.”
“다음 주부터라……. 너무 도움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미리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종류의 정보도 아닌데.”
“그럼 한 가지 더. 왕가에서 몸을 사린다고 탐사를 멈춘 클랜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눈여겨보고 있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이죠?”
“분위기를 보니, 모르긴 몰라도 분명 어떤 식으로든 상당한 불이익이 주어질 거 같더군.
“……그렇군요.”
티를 내지 않으려 하는 듯 보였지만, 여우는 사슴뿔의 정보를 듣고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따라서 나도 그 반응을 머릿속에 기억해 뒀다.
‘여우, 얘는 클랜 소속일 확률이 높겠네. 일반 단원은 아닐 테고, 설마 클랜 마스터이려나?’
물론 아직은 추측의 단계에 불과하기에 다음 순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엔 여우 차례였거든.
“대형 클랜들끼리 대규모 보이콧을 준비하고 있어요.”
“보이콧이라면?”
“뭐겠어요. 단체로 미궁에 들어가지 않는 거죠. 안 그래도 지난 토벌전 때문에 불만이 많은 상황인데, 최근에 불을 지피는 사건도 있었고요.”
“아, 그거 말이지. 뭔지 알겠소.”
초승달이 아는 이야기라는 것처럼 껴들었다.
“비요른 얀델, 맞소?”
응?
왜 여기서 내 이름이 나와?
“네. 맞아요. 원래라면 벌금으로 끝날 일 갖고 멀쩡한 탐험가를 비프론에다 추방해 버렸죠.”
아, 그거…….
“집행이야 그쪽 영역이지만, 대부분의 클랜은 이걸 우리에게 하는 경고라고 해석했어요.”
“여론이 좋지 않겠구려.”
“네. 여기서 더 물러났다간 다음번엔 강제로 징집이 될지도 모른단 얘기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니까요.”
내 이름이 언급된 순간 손이 굳고 입술이 싹 메말랐지만, 다행히 그런 내 반응을 눈치챈 자는 없는 듯했다.
비요른 얀델에 흥미를 갖는 놈도 없어 보였고.
‘후, 진짜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아무튼, 사슴뿔의 질문에 여우가 몇 가지 추가 답변을 해 준 것을 끝으로 세 번째 턴도 종료됐다.
“자, 그럼 다음은 누가 하실래요? 계속 시계 방향으로?”
“……클라운, 그대부터 해도 되겠소?’
“뭐, 원한다면야.”
초승달의 요구에 광대는 군말 없이 네 번째 순서를 맡았다.
내심 가장 기대하던 자의 순서.
하지만 이번에는 ‘재미있는’ 정보를 구하지 못했을까?
“솔직히 수사자 씨가 흥미를 느낄 얘기는 아닌 거 같지만, 그래도 일단 해보기는 하겠습니다.”
결속 마법을 얘기할 때와 달리, 광대는 그저 턴을 넘기겠다는 듯한 느낌으로 입을 열었다.
“노아르크에서 봉쇄 직전에 몇 명을 지상으로 올려다 보냈습니다. 목표는 한 명의 탐험가를 죽이기 위해서라는군요! 놀랍죠?”
“암살자라……. 타깃이 누군지도 알고 있소?”
“글쎄요? 그것까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피싯!”
진의를 알아보기 힘든 미소를 마지막으로 네 번째 순서도 종료.
광대는 재밌었냐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하긴 얘 입장에서 어떻게 알겠는가. 오늘 들은 것 중에 이게 가장 흥미로웠다는걸.
‘노아르크에서 보낸 암살자라…….’
듣자마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멜리아 레인웨일즈.
설마, 얘가 위로 올려보냈다는 암살자 중 한 명인 걸까?
능력치를 보면 얘가 딱이긴 할 거 같은데.
‘그럼 죽이려는 목표는 아우릴 가비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왠지 그건 또 아닐 거 같았다.
개인적으로 찾는 것이라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진 않았거든.
아무튼, 일단 이건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이제 내 차례구려.”
대망의 다섯 번째 순서가 시작됐다.
이번 턴의 주인공은 간절하게 ‘소생의 돌’을 바라는 초승달. 약속이 유효하냐고 묻던 걸 보면 꽤 자신이 있던 거 같던데.
과연 어떤 걸 준비해 왔을까?
“다들 예전에 내가 ‘성물 탈취자’의 흔적에 대해서 말했던 걸 기억하오?”
“물론이에요.”
초승달이 슬그머니 운을 떼자 나머지 가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고블린만 빼고.
“예? 성물 탈취자라니요?”
당시에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고블린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뭐죠? 이번에도 창세보구와 관련된 정보인가요?”
여우가 호기심을 전혀 숨기지 않으며 말했고, 초승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창세보구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소.”
충격적인 말을 뱉었다.
***
창세보구.
심연의 문이 자리한 마지막 층으로 가기 위한 열쇠이기도 한 그것.
“……창세보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뜻이죠?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
“확실한 정보인가? 너 혼자 그렇게 믿는 게 아니고?”
“피싯, 이건 좀 충격이군요.”
“어, 어, 어떻게 그게 없어질 수가 있습니까?”
모두가 귀환을 바라는 플레이어들인 만큼, 장내에 혼란이 가득 차기까지 잠깐이면 충분했다.
다만 어느 정도 예상한 반응이었을까?
초승달은 그저 씁쓸한 목소리로 설명을 마저 이어갈 뿐이었다.
“나도 내 착각이라면 얼마나 좋겠소. 하지만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오. 창세보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소.”
“파, 파괴되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소.”
“하, 하지만 그건 파괴불가 템인데요!!”
충격이 컸는지 고블린이 징징거리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그때.
솨아아아아.
원탁 중심에 박힌 보석에서 녹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위 내용이 사실이라는 뜻.
“그래, 정말로……. 창세보구가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거군.”
사슴뿔이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이를 끝으로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초승달이었다.
“그래서 어떻소? 재미는 있으셨소?”
참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어떻게든 노잼이라고 하려 했지만…….
‘아니, 여기서 어떻게 노잼이라고 해.’
정보를 읊는 내내 나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던 초승달이다. 분명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내가 흠칫 굳었던 것까지도 캐치를 했을 터.
‘어떡하지?’
짧게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노잼이라 하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니까…….
“재주도 좋군.”
차라리 인정할 건 인정한다.
대신 다른 쪽에서 손해를 줄이자.
“그 말은…….”
‘소생의 돌’이 목전에 다가왔다 생각했는지 초승달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나는 짧게 읊조렸다.
“솔직히 말해서, 제법 인상 깊었다.”
물론, 이를 인정하면 잃는 게 많다.
‘소생의 돌’에 대해서도 알려 주는 건 둘째치고, 원하는 걸 얻은 초승달은 지금처럼 의욕적으로 정보를 물어오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내가 만든 수사자 이미지와도 맞지 않는다.
공들여 준비한 ‘수사자를 웃겨라’ 코너가 첫 트라이에 클리어가 되다니?
영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하지만…….
씨익.
문제는 없다.
지금의 나는 비요른 얀델이 아니라 수사자’ 가면을 뒤집어쓴 고인물 아닌가.
‘오케이, 대사는 이 정도면 될 거 같고.’
머릿속으로 최종 점검을 끝마친 즉시.
나는 초승달에게 물었다.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지?”
내가 놀랐던 건 창세보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부분이라도 되듯이.
정확히 말하자면…….
“창세보구가 사라진 걸 아는 자는 몇 안 될 텐데.”
아쉽지만, 이미 알고 있는 얘기였다는 듯이.
“……!”
뉘앙스를 눈치챈 초승달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내가 사기를 치고 있단 것까지는 눈치채기 어려웠을까.
초승달은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 그대는 알고 있던 거였구려.”
그저 힘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체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도 안 되면 대체 뭐로 만족을 시켜야 하지?
그런 절망감이 공기를 타고 내게 전해질 정도.
내게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피시싯…….”
어색하게 웃는 광대만 봐도 그렇다.
이는 떡밥을 물은 모든 회원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피식.
나는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소생의 돌은 9층에서 얻을 수 있다.”
장려상 정도는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솔직히,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